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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문 일본 답사 | 번외편 (일본답사 중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6-06-28 13:27
조회
1213
규문 일본 답사 | 번외편 | 작성자 윤몽

 

일본답사 중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날짜별 재미있는 후기들 잘 읽으셨나요. 여기 제가 올릴 것은 이번 답사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몇 가지를 모은 번외편 후기입니다.

 

1) 막무가내 혜원이의 당황스런 요구 

첫날 도쿄에서 소세키의 흔적을 찾아 여기저기 답사를 하고 돌아온 뒤,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찾았어요. 다같이 둘러앉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서 두 테이블로 나눠 앉아야 했죠. 혜원이가 계산을 하려고 종업원에게 가서 양쪽 테이블 것을 다 계산하겠다고 말 할 작정이었어요. 갑자기 계산서가 일본어로 생각이 안 나더래요. 빌지, bill이라는 영어를 ‘삐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까 싶어서(‘맥도날드’를 ‘마그도나르도’라고 받침을 따로 읽는 거 아시죠?), 순간 이렇게 말했어요.

"저 테이블의 삐르 좀 줘요."

근데 종업원이 엄청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쩔 줄 몰라 하더래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일본어로 비르는 beer - 맥주를 말하는 거였죠.  웬 여자애가 계산하러 와서는, “저 테이블의 맥주를 내 놔요”라고 한 셈이지요. 종업원이 당황할 밖에요.

 

 

2) 바가지 쓴 선술집에서 

채운샘과 교토에서 상봉한 둘째 날 밤, 산책을 한 후 맥주를 마시러 작은 선술집에 들어갔죠. 안주도 괜찮았고 생맥주도 맛있었고 모두 즐겁게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이상한 바가지를 썼던 곳이었죠. 대충 계산해도 몇 만원은 더 올라간 것 같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이 나왔어요. 전체 가격 말고 각각 메뉴의 세부내역을 뽑아 달라고 하니 그토록 친절했던 주인장께서는 논문을 쓰러 가신 듯, 죙일 꾸물대면서 시간을 끌었답니다. 씁쓸한 기억이네요. 

암튼 여기서 한참 즐거웠던 때, 온갖 언어들이 마구 섞여들곤 했죠. 이를 테면, 채운샘이 주문을 할 때 갑자기 한국어에 영어를 섞어 ‘맥주 투(two) 잔’이라고 하시질 않나, 혜원이가 콘센트 위치를 묻다가 ‘고래?’하고 일본어로 물으니 일본인 주인장은 ‘여기’하고 또박또박 한국어로 대답하질 않나. 깔깔 웃었던 시간이었어요.

 

3) 윤몽의 일본어 첫걸음1

제가 외국어의 소리같은 것에 관심이 좀 많은 편인데요. 안타깝게도 일본어는 히라가나만 떠듬떠듬 읽는 수준이 아니겠어요. 어릴 때부터 많이 접했던 일본 문화 – 만화와 게임과 애니메이션과 영화와 음악 같은 – 덕에 왠지 모르게 억양만은 익숙한데 말이죠. 어쩌다 배우게 되어 쉽게 흉내를 낼 수 있는 말들은 다 좀 문제가 있는 것들뿐이었습니다.

가령, 여자들은 상대에게 ‘아나따(당신)’라는 표현을 쓴다고 하는데요. 전 ‘오마에’라는 남자들의 거들먹거리는 표현을 먼저 알게 되었거든요.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만화에 나오는 장면 중에 하필 ‘너, 뭐냐’ 하고 시비를 거는 장면의 대사만이 선명하게 머리에 남고 말았지 뭡니까. ‘오메 난다요’하며 시건방지게 내뱉는 어투 그대로를 비슷하게 재현 가능한 상태! 그런데 ‘오메’는 ‘오마에’보다 더 슬랭(속어)스러운 표현이라지 않습니까. ‘스고이(굉장해)’라는 말도 저는 ‘스게~’하는 속어말투를 먼저 들었고요. 게다가 게임에서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만족스러운 듯 ‘요시, 요시(좋아, 좋아)’하던 것도 사실은 아저씨의 말투라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게임 속에서 ‘요시요시’ 칭찬해 주던 게 수염이 덥수룩한 50대 아저씨였던 거 같네요. 잘 생각해보면 젊은 여자는 퀘스트를 완료하면 ‘아.. 요까따(아, 다행이야)’하고 엄청 여성스러운 목소리를 냈던 기억이 있네요. 흠, 전 우째 이런 것만 배웠나요. 아무튼 여행 중엔 하나도 써먹을 게 없어 슬펐습니다.

 

4) 윤몽의 일본어 첫걸음2

첫날, 조용히 사람들을 따라만 다니고 영어 밖에 쓸 수 없었던 게 슬펐어요. 그래서 둘째 날 아침, 기회가 되어 일본어를 좀 한다(?!)는 정건화 선생께 일본어를 좀 배우지 않았겠습니까. 사실은 제가 가져간 기초일본어 책 앞부분을 읽어보면서 약간의 코멘트들을 들었던 정도인데요. 이게 여행 책자가 아니어서 여행에 쓰일 만한 표현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인사와 숫자, ‘고레, 아레, 소레(이것, 저것, 그것)’ 같은 것들을 배웠지요.

그러다가 가게에 들어갔을 때 "뭐가 맛있나요"하고 묻고 싶어졌어요. 맛있는 걸 많이 먹게 될 거 같아서, 이왕이면 젤 맛있는 걸 좀 추천해달라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일본어로 작문을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건화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본 말이 바로 "도래가 오이시데스까." ‘도래’는 무엇, ‘가’는 ‘~이/가’ 같은 주격 조사인 것 같고요. ‘오이시’는 익히 알고 있던 형용사로 '맛있다'는 뜻이에요. ‘데스까’는 질문에 붙이는 것. 해석하면 분명 "뭐가 맛있습니까"이지요. 사실은 "실례지만, 제가 먹어본 게 없어서 그러는데요. 제일 인기가 많은 것으로 좀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뭐가 좋을까요", 뭐 이렇게 길고 거창하면서 매끄럽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껏해야 만들 수 있는 건 "도래가 오이시데스까" 정도였던 거죠. 

그런데 왠지 확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았어요. 숙소에 와서 우리 중에 일본어를 제일 잘하던 혜원이에게 물어보았죠. 이 말 어떠냐고. "도래가 오이시데스까. 알아듣겠어?" 혜원이는 갸웃갸웃 했어요. "어딘가 이상한데..? ‘도레’보다 ‘나니’가 낫지 않나?" 오잉?! 사전을 찾아보니 ‘도레’가 ‘어느 것’이라고는 되어 있었습니다만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리하야 혜원이가 만들어 준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문장, "나니가 이찌방 닌기가 아리마스까."(무엇이 가장 인기가 있습니까.) 오옷. 좋았습니다. 열심히 외웠죠! 근데... 써먹었던 기억은 없네요ㅠㅠ. 그런데 "도레가 오이시데스까’는 과연 말이 되는 문장이었던 것일까요. 아직도 궁금해요.

 

5) 윤몽의 일본어 첫걸음3

계속 벙어리처럼 지내야 했던 저는 '짧은 말 정도는 일본어로 하고 말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제일 많이 쓰게 되는 말이 ‘미안합니다’라는 뜻의 ‘스미마셍’이었지요. 버스에서 인파를 뚫고 지나갈 때도 ‘실례합니다’의 느낌으로 다들 ‘스미마셍’을 하더군요. 저도 ‘익스큐즈미’ 대신에 기회가 될 때마다 열심히 ‘스미마셍’을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실례합니다’를 말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 워낙 일본어가 입에 안 붙어 있던지라 떠오르지가 않았어요. 갑자기 떠오르는 문장은 어째서인지 ‘다이죠부’였어요. 저는 사람을 밀치고 지나가며 이렇게 말한 거에요. "다이죠부, 다이죠부."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ㅠ.ㅠ 뻔몽이가 됐습니다.

 

6) 윤몽의 일본어 첫걸음4

이제 마지막 일본어 시도입니다. 잠깐 잠깐 도움을 받게 될 일이 많아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혼또니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따"(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정도로 해도 괜찮았을 것 같긴 한데요. 그때는 여기저기 상점 같은 데서 너무 많이 고정형식으로 쓰는 말이라 마음을 다 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좋은 하루 되세요" 정도로 헤어질 때 할 수 있는 마음이 담긴 말이 없을까를 고민했어요. 마침 일본어 초급책의 예시 대화 중에서 헤어질 때 하는 인사가 뭔가 그럴 듯한 게 있지 않겠어요. 오, "시츠레에 시마스". 일단 외웠어요. 써 보려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이상한 뜻이었어요. 실컷 같이 있다가 그 자리를 먼저 떠나면서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가 보겠습니다.' 요런 뉘앙스를 지닌 용도였던 것이죠. 생각해 보세요. 길을 묻거나 물건을 건네받거나, 아무튼 몇 초간 잠깐 본 낯선 사람에게 "그럼 저는 이만 먼저 실례..."라니요.(;;) 이 말 한마디에 단박에 우스워지는 것이죠. 헤어질 때 한다는 "쟈네, 빠이(bye)"가 너무 짧아서 쓰기 싫었는데 차라리 그게 나을 뻔 했네요. 일본어를 제대로 모르는 바람에, 남발했다면 엉뚱한 한국여자가 되어 버렸을지도.. (왠지 일본어 직역스러운 말투네요.)   

 

7) X가지 없는 중학생

붐비는 버스를 탔어요. 우리는 줄곧 강행군을 했기 때문에 자리에 앉는 것이 매번 절박하지 않았겠어요. 자리가 비면 빠르게 다가가 일단 앉고 보거나, 내가 아니면 내 동지(!)라도 앉혀야 했으니 줄곧 빈자리를 눈으로 찾았죠. 그런데 뒤쪽 둘씩 앉는 자리를 보니 웬 중학생 한 넘이 한 가운데에 떡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지 않겠어요? 지금까지 봤지만 정말 뚱뚱하거나 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면(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정말 안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짐이 많더라도 다 자기가 끌어안고라도 옆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혔을 거예요) 보통은 두 사람이 같이 앉는 자리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는 그냥 가운데에 혼자 앉아서는 당당히 앞의 두 친구들과 얘기를 하기도 하고 나중엔 앞자리에 기대어 엎드려 자고 했어요. 버스가 점점 붐비는 데도요! 그 주위에 줄곧 서 있었던 우리는 한국말로 "얘 도대체 왜 안 비키니?", "이상한 애다, 야.", "비키라고 해볼까?" 막 그랬는데요. 역시 언어가 달라서일까요. 뒤통수에 대고 한 말이지만 분명 우리의 원망 내지는 분노(?)섞인 분위기의 압박 같은 게 있었을 텐데도 그는 태연히 잘 버티더군요.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이동했습니다. 잘 참고  서서 가면서 전 엉뚱하게도 그 X가지 없는 중학생에게 일본어로 한마디 건네고 싶은 마음에 속으로 문장을 만들고 있었어요. "아시가 혼또니 이따이데스네. 오네가이시마스." 말이 되는지는 모릅니다. ‘아시’는 ‘다리’고요. ‘이따이’는 ‘아프다’고요. 번역하면, "다리가 진짜 아픕니다. 부탁드립니다"였죠. 문법적으로 좀 틀렸을 수는 있어도, 이렇게 말을 했으면 비켜는 줬겠죠..?ㅎㅎ

 

8) 사랑해요, 슈크림빵

첫 날 훼미리마트 편의점에서 110엔(1200~1300원?) 밖에 안하는 빵을 샀는데요.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어요. 안에 든 생크림이 비싼 제과점의 고급스런 빵과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하나를 수경언니, 혜원이와 나눠 먹었는데요. 두 개나 세 개를 살 걸, 하고 엄청 후회를 했어요. 뭐 일본에서 앞으로 사흘이나 더 있으니 다시 먹을 기회가 있겠지, 했는데요. 웬 걸, 결국 마지막 날까지 훼미리 마트에 들를 일이 없었지 뭡니까. 여기저기 다른 편의점들을 들를 때마다 애타게 찾았지만 그 빵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일본의 케익들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케익을 먹을 시간도 없었고요. 그러다 길거리에서 훼미리마트 물품을 싣고 가는 배달차를 보거나 집에 가는 공항에서 다른 층에 있는 훼미리마트 간판의 일부를 보고는 "앗! 훼미리마트다!"하고 소리를 질러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죠. 편의점 간판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지경이라니요. 결론만 말씀드리면 결국 그 빵은 다시 먹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건 꿈이었을까요..?!

아무튼 원래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마지막 날, 숙소에 먼저 들어오게 되어서 근처 빵집 겸 제과점에 들어가 커피와 빵을 마시며 동지들을 기다렸어요. 그 때 그 훼미리마트의 빵이랑 비슷한 게 있냐고 묻고 싶었는데 도무지 슈크림이 영어로 뭔지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냥 크림이라고 했다가 그 기름기 많은 허연 크림을 골라줄까봐 무섭기도 했고요. 조심스레 "슈..(shoooo) 크림?" 했는데요. 역시 못 알아 듣더군요. 그럼 뭘까. '생... 크림...'도 아니고... 순간 막 ‘생..’에 대한 영어가 말도 안 되는 단어들로 떠올랐습니다. 'fresh.. cream..'도 아니고 'alive.. cream...'... 젠장. 나중에 수경언니가 말해줬죠. "커스타드 아니야?" 오, 커스타드!!

우여곡절 끝에 빵과 음료를 다 먹었어요. 그리고 나서기 전, 10원짜리 동전이 너무 많아서 그걸 100원으로 바꿔 달라 말하려 했어요. 계산대에 가보니 건화랑 종업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겠어요. 종업원이 영어를 엄청 잘했어요. 한국에 여러 번 가봤고 한국이 너무 좋다고 얘기하더라고요. "I love Korea." 아, 그래? 저도 대답을 했어요. "I love Japan, too." 그래그래, 나도 일본 사랑해. 거리도 넘 깨끗하고 사람들도 친절해. 근데 미안하지만 이 동전 좀 바꿔주겠니?...;;;
네네, 저도 알아요. 앞뒤 맥락이 좀 그랬다는 걸요.(;;) 근데 애초에 저는 동전을 바꾸러 간 거였는걸요. 동전 바꿔달라고 일본인을 사랑한다거나 일본인이 친절하다 아부한 건 아니었다고요. 그 친구가... 오해를 하진 않았겠죠..?  

 

9) 끝!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있긴 하지만 이미 충분히 길게 쓴 것 같습니다. 이번 답사여행을 한마디로 얘기하면요. 진짜 힘들었지만 진짜진짜 재미있었어요. 잘 다녀왔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일본에 돌아온 후 남동생과 나눈 대화를 마저 올릴게요.

동생 : 누나, 루쉰 형 보고 왔다매~?
나 : 오잉. 루쉰 형? ㅋㅋ
동생 : 아.. (멋적어하며) 루쉰 누난가?
전체 3

  • 2016-06-30 01:03
    여행보다 올라오는 감상문이 다들 재밌어서 잠도 안자고 읽고 있어요... 와아~ 또가야 되겠어요.. 우리에겐 글이 있군요 ㅎㅎ

    • 2016-06-30 08:28
      담엔 은남샘께서도 후기를!!^^

  • 2016-06-28 15:08
    다 쓴 댓글이 날라가버렸쪄ㅜ 훼밀리마트의 추억을 잔뜩 토로해놓았는데. 여러모로 슈크림은 나랑 인연이 아닌가봐; / 너랑 동생은 빼박 남매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