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혜원's 다이어리 : 시빌워 - 히어로 제국의 몰락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6-07-14 12:49
조회
939

<캡틴 아메리카:시빌워> - 히어로 제국의 몰락




<캡틴아메리카:시빌워>에 대해 쓴다고 말은 했지만 이걸 하나 뽑으면 그동안 마블이 만들어놓은 히어로 영화가 고구마줄기처럼 줄줄이 뽑혀 나오니 사실상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대한 잡다한 감상이 되겠다. 히어로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시큰둥하니 보러 간 <어벤져스>에 이른바 덕통사고를 당한 이후 몇 년간 그들의 우주를 따라다녔다. 탐험이 아니라 따라다닌 것이다. 그것마저도 힘겨워서 몇몇 영화는 아예 보지도 못했다. 이 방대한 우주는 또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도 해서 그야말로 다 챙겨보지 않으면 그 맥락을 놓칠 수도 있다.

요컨대 어벤져스가 지구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으면 저 먼 아스가르드에서는 지구로 치면 신화시대의 신들인 토르와 로키가 집안싸움을 하고 있다. <토르>의 세계관이 지구와 연관 있는 이유는 토르가 지구에 애인이 있고, 어벤져스의 멤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먼 은하계로 나가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춤을 추면서 은하계를 구하고 있다. 물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은 원체 지구인이고 그 영화가 다루는 사건의 발단이 된 아이템이 <토르>와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도 중요하게 기능한 것이므로, 머나먼 은하계의 이야기는 지구의 어벤져스의 세계관과 연결된다. 그뿐인가. 어벤져스의 활동을 보조하는 '쉴드'라는 집단의 소소한(?) 활동을 다룬 드라마는 몇 시즌에 걸쳐 만들어지며 영화와 영화 사이의 빈 스토리를 메운다(드라마 <에이전트 오브 쉴드>). 그러다보니 쉴드는 어떻게 탄생했는지도 알려줘야 하고, 그런 김에 2차 대전 때 캡틴 아메리카가 바다에 빠지고 나서 그와 썸타던 생존자 카터는 뭘 하고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해결해 줘야 한다. 그러니 쉴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여주는 드라마도 만든다(드라마 <에이전트 카터>). 거기다 이런 세계관에서 히어로 활동은 않는 탐정물도 나오고(<제시카 존스>) 느와르물도 만들어지고(<데어데블>) 등등. 장르를 넘나들며 그야말로 ‘유니버스’를 형성 중이다. 종으로 횡으로, 때로는 거시적으로, 때로는 미시적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코믹스로 짜인 세계가 바로 마블의 세계관이다. 이런 방대한 세계관을 보고 있으면 사마천이 세계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썼던 《사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마블은 정말 무한히, 계속해서 이 세계를 넓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블은 계속해서 한 이야기의 작고 작은 부분까지 파고들어가서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거대한 흐름의 줄기를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다. 그 중심에 선 히어로들은 앞으로도 계속 단독 영화로 소개되고, 또 같은 영화에 뭉쳤다가 떨어질 것이다.

히어로들이 움직이는 계기는 비상사태이다. 전쟁이 났으니 싸운다. 외계인이 쳐들어왔으니 방어한다. 적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세계를 멸망시킬 것 같으니 막는다. 빌런(히어로의 반대편)이 내 애인을 납치했다니, 만사 제쳐놓고 달려들어 되찾아온다. 위기에 처한 자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흔하지만 히어로물은 예외 없이 위기를 맞은 사람들 혹은 위기를 찾아다니는 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다가 그 ‘위기’를 히어로들이 직접 만들어내는 지점이 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었다. 그 영화의 빌런은 다름 아닌 히어로인 토니 스타크와 브루스 배너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이다. 그들은 인공지능을 만들어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우리세대의 평화’를 추구하다가 그 인공지능이 인류멸망이 평화의 시작이라는 결론을 내어 (히어로 입장에서는) 강력한 빌런이 되어버리는 사고를 친다. 결과적으로 수습한다고 어벤져스가 달려들었으나 이미 나라 하나(소코비아라는 가상의 국가)가 폭삭 망하는 지경에 다다르게 만든다. 이런 <울트론>의 재앙은 <시빌워> 문제의 시발점인 ‘소코비아 협정’의 계기가 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각국은 물론 히어로들마저 그들이 방지하려고 했던 ‘피해’가 사실 히어로 자신들에게 원인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을 자각하게 하는. 결론부터 말하면 <시빌워>에서 어벤져스는 해체된다. 그리고 그 균열의 시작은 그들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이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다. <어벤져스:시빌워>가 아니다. 즉 <퍼스트 어벤저>,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저>를 잇는 영화이자 캡틴 아메리카 트릴로지의 결말쯤 되는 영화다. 이름이 ‘캡틴 아메리카’인데다 성조기를 기조로 한 쫄쫄이를 별로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입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놀라운 정신력과 체력의 소유자인 스티브 로저스는 이름과 다르게 무슨 집단의 유지에 기여한 전적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애초에 그는 굳이 오지 말라는 군대를 기어코 들어간 사람이다. 거기다 후방에서 안전하게 차력쇼나 하면서 채권팔이에 일조하라는 명령에 불복하며 기어코 전장으로 뛰어 들어가 친구를 비롯한 전우를 구해 와서 전쟁영웅, 진정한 캡틴 아메리카가 된 사람이고, 거기다 옳다는 이유로 적군의 무기를 껴안고 북극의 바다에 처박히는 영웅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즉 남이 무슨 말을 해도 잘 들은 적이 없다. 그가 움직이는 동력은 자기에게 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행하고 그것의 결과에 책임을 진다. 그것뿐이다. 영화가 그의 회한이나 자조 섞인 얼굴이나 슬픔이나 좌절 같은 것을 비춘다고 한들 그 캐릭터성이 희석되지 않는다. 그가 아이언맨과 대판 싸우고 나중에 보낸 편지를 보라. ‘나는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었어.’ 이런 겸연쩍은 변명조의 담백한 고백이라니. 토니가 얼마나 화딱지가 났을까. 이름이 ‘캡틴’ ‘아메리카’인 주제에 집단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또, ‘아메리카’의 이상인 개인에게 가치를 두겠다는 그의 말은 애초에 어벤져스라는 히어로 군단조차 이상이 깨지면 해체될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전세계를 돌며 빌런들을 때려잡던 어벤저스는 해체에 이른다.

이게 <아이언맨> 시리즈였다면 <시빌워>가 해체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캡틴 아메리카가해체의 한축을 담당한다면 아이언맨은 응축하려는 힘이다. 그는 뉴욕 한복판에 어벤져스 타워를 세운 사람이다. <시빌워>에서 그는 MIT 학생들의 모든 프로젝트를 후원하겠다고 선언하며 등장한다. 이번 <시빌워>에서 아이언맨이 직접 픽업하러 간 귀요미(정말 귀엽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활동의 동기가 ‘힘을 가지고 있는데 좋은 일에 쓰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자기가 팔던 무기가 자신을 공격하는 사건을 계기로 아이언맨 활동을 시작하던 토니의 동기도 비슷하다. 토니는 문제가 생기면 참 다행이도(유감스럽게도?) 힘도 있고 수습할 아이디어도 있다. 미래를 예견할 만큼 머리가 좋은데 그걸 수정할 힘도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는 기본적으로 건물을 박살내기 전에 그걸 사들여서 ‘피해 없이’ 세상을 구하려는 사람이다. 무엇이든 포획해서 남의 출혈도 나의 출혈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토니의 이상은 확실히 스티브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출혈을 막는다고 한들 그 속에 곪고 있는 과거를 어쩌겠는가. 토니가 MIT 강연에서 하던 대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과거를 수정하는 사실적인 시뮬레이션을 수백 번 돌린다 한들 이미 벌어지고 만 일을 어쩌겠는가. 그의 노력은 돈도 천재성도 미칠 수 없는 영역, 그가 몰랐던 과거의 진실에 의해 깨진다.


<시빌워>는 마블 히어로물의 변곡점이 되는 영화임은 틀림없다. 함께 공통의 적과 싸우던 영웅들이 반으로 갈라져서 그동안 비상사태로 인해 뒤로 젖혀놓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놓고 싸우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일단 코믹한 모습이 강조되는 영화 톤이 그런 진지함을 쉽게 허하지 않는다. 거기다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이 책임을 히어로 개인이 감당할 수는 있는가. 지금이라도 더 크고 여러 국가의 동의를 얻은 기관에 맡겨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해야 하는가를 두고는 몇 마디 주고받더니 금세 옛 친구와 부모와 우정과 해묵은 애증 등등 이러저러한 개인적인 감정이 얽혀버린다. 심각한 싸움은 바로 거기서 터진다. 무수한 인명을 두고 주고받는 명분이나 책임론 같은 것은 원래부터가 제멋대로 사는 ‘코스튬을 입은 건달패’ 히어로들을 진정 갈라놓지 못한다. 애초에 너무 많은 개인 사정이 얽혀 만들어진 것이 히어로 천지의 세계관인 것. 히어로 열 명이 있으면 그 열 명에게는 정말 다른 각각의 개인사가 있다. 그러니 무슨 명분이니 협정이니 하는 것으로 묶으려고 하는 순간 모래알처럼 손 안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거꾸로 말하면 그런 것들은 히어로들이 뭉치거나 흩어지는 데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들은 늘 명분이나 제도에 상관없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비상사태를 계기로 움직이는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히어로들도, 그 사인을 요구하는 전세계도 안다. 다만 형태라도 갖출 것이냐 말것이냐를 두고 옥신각신 하는 사이, 진정 그들이 갈라지는 계기가 주어진다. 끊임없이 위기를 생산하는 제국 어벤져스의 멸망을 보고 싶다던 <시빌워>의 빌런 지모 대령의 등장. 그는 내가 봤던 빌런 중 가장 수수하면서도 집요했다. 지모는 날아다니지도 않고 초능력을 가지지도 않았고 돈이 많거나 아니면 컴퓨터를 천재적으로 다루는 사람도 아니다. 긴 시간을 들여 차분히 대상에 대해 조사하고 추적하고 수첩에 일일이 메모를 하고 꼼꼼하게, 실수 없이, 차근차근 어벤져스의 몰락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태생적으로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히어로로들은 의외로 이런 작은, 꼼꼼한, 전혀 화려하지 않은,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을 공격하는 전략에 당했고, 지모는 내가 본 것 중 유일하게 계획이 성공한 빌런이 되어버렸다. 어벤져스가 해체된 것이다.

아마 다음 페이즈에서는 이들에게 다음 비상사태가 주어질 것이다.(아니면 그들 스스로가 만들 것이다.) 무엇이든 다 덮고 다시 뭉치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일단 <시빌워>에서 그 어벤져스가 이런 이상도 주의도 뭣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깨질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명분으로 깨졌다면 다른 명분을 장착하면 되지만 과거와 감정이라는 건 그런 게 아닌지라, 아마 이들이 다음 영화에서 다시 만난다면 분명 다른 관계일 것이다. 그럼 관객은 그들의 다음 관계를 기대하며 MCU의 이미 정해진 다음 페이즈 또 다음 페이즈를 따라갈 것이다. 이 영화는 MCU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으니 이야기가 닫힐 리는 없다. 이 점은 물론 영화의 갈등구조에 대한 긴장감을 놓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유니버스를 즐기려면 완결성을 따지기보단 그 후에 있을 일들, 그와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상책이다. 이 영화에서 빠진 헐크나 토르의 입장은 어떨지? 그간 마블이 흩뿌려놓은 떡밥들은 어떤 위기를 만들지. 이미 변해버린 그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예전이랑 비슷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날지 등등. 이 우주는 분명 온갖 인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얽히는 곳이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단, 스튜디오가 판권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한해서.



 

관련영상 ('Star Spangled Man') click!
전체 3

  • 2016-07-17 16:00
    뭔가 4부작의 인트로를 본 느낌인데.. 마블영화로 또 써주세요

  • 2016-07-19 08:46
    혜원이 보내준 관련영상(?!)도 추가했습니다- 심심할 때 같이 보셔요!
    혜원, 마블 입덕자를 늘리기 위한 글인가요? 아무튼 담번에 또 한편한편에 대한 글도 써주십-

  • 2016-07-19 15:42
    이렇게 간단하게, 속도감있게, 부다부다 마블과 얽혀있는 혜원이야말로 어벤저스의 일원인듯! 단 한 편도 마블 영화를 안 봤는데도. 이 세계가 신기신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