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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곰의 벤쿠버 이야기 | 씨오터에서 살라맨더로

작성자
수영
작성일
2016-07-19 08:51
조회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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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은서 현서는 신체단련을 위해 지난 겨울부터 수영을 배우고 있습니다. 한 겨울 내내 심하게 아프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이곳 대학 수영장에서는 어린이 수영강습반을 동물 이름을 따고 있는데요. 초급반은 씨오터(Sea Otter 해달). 중급은 살라맨더(Salamander 도룡뇽). 그 다음 썬피쉬(Sun fish개복치)를 거쳐 고래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각 바다 생물들 사이에는 어떤 위계도 없지만, 해달과 도룡뇽이 땅에서도 물에서도 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초급 중급 단계의 명칭으로서는 근사합니다. 또, 최종적으로 고래가 된다니! 단지 수영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바닷 속 심연의 탐구자로 변신한다니 이 또한 멋집니다.

사실 저는 기대가 많았습니다. 특히 현서는 유아기 때부터 뒤집기, 구르기, 기기, 붙잡고 걷기, 달리기에 발군의 실력을 보인바 있고, 어깨와 허벅지 근육의 탄탄함은 채운 선생님도 감탄하셨던 바! 물 위를 스윽스윽 헤엄칠 현서를 상상하며 므흣 했었죠. 허나, 왠열? 현서의 물 고포증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몇 번의 수업 동안 물가에 앉아만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또 반전! 뒤뚱뒤뚱 달리기도 잘 못하는 은서는 쓩 하고 물에 들어가 놀기 시작했습니다. 음. 재능은 담력을 이길 수 없는 것인가?

어쨌든 인어공주로 빙의하신 첫 수영 선생님 덕분에 현서도 입수에는 성공. 두 달여를 즐겁게 물놀이를 했습니다. ‘수영은 언제 가르치나?’ 싶었는데, 역시나 강습은 도통 인어공주가 물에서 코로 숨쉬기에만 집중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받아든 성적표! “유급!” 이유인즉, “물이랑 아직 친해지지 못했어요.” 그리고 성적표 밑에는 ‘온 몸을 물에 담글 수 있는가?’가 평가 항목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그걸 왜 가르쳐주지 않았단 말입니까?

두 번째 씨오터 수업에 우리는 온 몸에 털옷을 입으신 남자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이 곰이야!” 은서 현서는 선생님을 심하게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현서도 물가에서 좀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을 튜브삼아 타고 놀기, 선생님 가슴의 털 뽑기, 물 속에서 방귀끼기. 너그러운 몸매를 자랑하셨던 선생님은 현서 은서의 과도한 물장난에 점점 살이 빠지시는 듯했고, 저는 교사의 살빠짐과 아이들 실력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며 수영 시간을 관찰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온 몸을 물에 담그거라!”며 주문도 하고요. 그런데 어떻게 물 속에 머리를 담그고 앉아있어야 한다고 가르칠 수,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에게는 ‘이론’과 ‘실천’ 사이를 메워 줄 자존심도, 경쟁심도, 인정욕망도 없는 걸요. 무엇보다 ‘수영’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데 말입니다. 곰 선생님도 아이들의 잠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듯 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물에서 잘 뒹굴고 노는지 시범 보이시기에 바빴고, 아이들은 박장대소하며 선생님을 쫓아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럼, 이번 수업의 결과는? “유급!”

세 번째 씨오터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서 은서의 심한 장난때문에, 다시는 이 아이들을 가르치시지 않을 줄 알았던 곰선생님이 나타나셨어요. 쌍둥이는 함박 웃음으로 환호했고 선생님도 씨익 이빨을 내보이시며 “너희들을 기다렸다!”(^^) 고 답했습니다. 셋이서 뭘 저렇게 좋아라 하나?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수업에 대한 기대를 다 버렸었거든요. 현서는 수영은 못하겠구나 단정했지요. 허리 위가 물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질 못했거든요. 그냥 저 정도로 물에서 노는 것에 만족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 마이 갓! 세 번째 씨오터 시간 저는 빛나는 도약을 목격했습니다.

세 번째 수업 첫 시간을 꽉 채운 것은 곰선생님의 살신성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세워놓고 한 소절씩 노래 부르며 한 명씩 풍! 풍!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난리가 났어요. 난리가. 좋아서. 곧이어 얕은 물 위로 작은 보트가 등장했습니다. 구명조끼를 입은 아이들을 태우고,선생님이 외치셨어요. “배가 흔들린다! 모두 준비해라!” 그리고는, 휙휙 심하게 흔들리던 보트가 “얍!”하고 갑자기 뒤집히는 거예요. 아이들은 순식간에 물을 빠졌습니다. 스릴 만땅! “꺄아!” 소리와 함께 구명 조끼에 의지해 사지를 버둥거리는 씨오터들이 물 여기저기에 나타났습니다. 오, 인간에서 씨오터로? “엄마! 나 뜬다! 뜬다!” 아이들은 물 속에고개를 박았다 들면서, 기뻐 소리쳤습니다. 과격한 즐거움에 빠져 자신이 물에 있는지 뭍에 있는지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선생님의 이마에는 땀인지 물인지가 비오듯 흘렀고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쉬지 않았습니다. “불가사리로 변신!” 이 외침에 선생님과 아이들은 물 속에서 코로 부르르 숨을 쉬면서 술래잡기를 했습니다. 은서도, 현서도 물 속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하며 히프를 흔들고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잠들어 있던 수영본능이 폭발한 듯 했습니다. 은서 현서는, 이날 집에 와서 이불을 깔아놓고 또, 또, 또 씨오터 놀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현서는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 꿈에 바다에 갈 거야!”

물론 현서의 물 공포증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로도 여전히 머뭇머뭇했습니다. 대신 뭔가 결심을 한 듯 했어요. 은서랑 다른 친구들이 물 속에서 숨쉬기 훈련을 할 때, 혼자 가만히 서서 물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쓰윽 온 몸을 물 속에 담궈 보는 거지요. 선생님이 보건 안 보건, 현서는 매 시간 자기 배움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물과 친해져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7월부터 우리는 살라맨더 수업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고, 걸음마를 배우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익힐 때 많은 감동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은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단 말입니까? 배움을 채우는 것은 두려움, 기다림, 셀 수 없는 시도, 그리고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아이는 좌절하지 않는 걸까요?씨오터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쑥쑥 진급할 때에도, 은서가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놀 때에도 현서는 자신이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배움의 목표(자유영, 배영, 접영 같은)에 대한 어떤 상식도 없어서였을까요? 5달 동안 인어공주(하반신만 물 속에 최적화된)였다가 갑자기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 그날, 현서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5개월 동안 씨오터 선생님들은 무엇을 가르쳤던 것일까요?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너는 물에서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어’ 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언제까지고 아이가 스스로 잠수하기를(누구나 수영을 익힐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기다릴 태세였던 것 같습니다. 현서가 잠수에 성공했을 때 곰 선생님은 가슴을 치며(가슴의 털을 다 뜯으시는 줄 알았어요 @.@;;) 환호하셨지요. ^^

 

 

펌: mvq.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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