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읽기

7.21 스피노자 후기

작성자
gini
작성일
2016-07-28 17:27
조회
602
심신평행론

스피노자의 심신평행론을 도식적으로 말해보면, 정신과 신체는 각각 자신의 고유한 연결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 그럼에도 양자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고유한 연결법칙이란, 신체는 자연의 물리법칙에 따라, 정신은 그 정신을 소유한 자의 무의식을 포함한 기억에 의해 연결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신체와 정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신체와 정신은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종종 착각되듯 정신이 신체를 지배할 수는 없다. 신체와 정신은 외부사물의 매개로 연결된다. 연장으로서의 두 사물인 내 신체와 외부 사물의 ‘만남’은 나의 정신을 그리고 외부사물의 정신을 작동시킨다. 두 신체의 만남이 내 정신에 어떤 관념을 발생시킨다. 신체와 정신은 사실상 서로를 모르고 있다가 외부사물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 평행관계란 각각 독립적 연결방식과 외부사물에 의한 내 신체와 정신의 어떤 일정한 관계 두 가지를 의미한다.

매 여름 최고점을 찍는 기온과 습도는 신체와 만나는 외부사물이다. 양자의 만남은 신체에 어떤 영향을(흔적) 미친다. 높은 기온과 습도는 어떤 신체와 만나면 땀을 유발하고, 또 어떤 신체와 만나면 열감을 발생시킨다. 또 다른 신체에게는 또 다른 효과를 발생시킨다.

각각의 신체에서 발생되는 효과는 정신에도 뭔가를(관념)을 발생시키는데 짜증일 수도 있고, 활력일 수도 있고 그렇다. 이때 생기는 관념들은 신체에서 일어나는 효과와 일대일로 대응되는 것은 아닌데, 즉 땀이 난다고 해서 반드시 짜증이라는 관념과 이어지지는 않고, 땀을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열감과 땀 등은 설명 가능한 어떤 물리법칙에 따른다. 그렇다면 짜증이나 시원한 감정 같은 정신의 작용은? 그것은 각자의 무의식을 포함한 기억과 관련된다. 기억은 곧 경험이며 경험을 통한 감정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땀을 많이 흘려서 놀림을 받았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기온과 습도가 짜증날 것이며, 빨개진 얼굴이 활력적으로 보인다는 칭찬을 받았던 사람이라면(보통 땐 너무 창백해서^^) 이 더위가 견딜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짜증을 내거나 내지 않거나에 따라 열과 땀이 조정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신체의 일이기 때문이다. 열과 땀을 조금이라도 해결하려면 정신의 의지로는 안 돼고, 운동을 한다든가 보약을 먹는다든가 등 다른 신체(사물)로 조치해야 한다. (정신과 신체는 전혀 다른 작동방식을 갖는다)

문제는 감정이다. 땀나는 신체의 원인을 알아내서 운동이나 보약으로 처방하듯이 짜증하는 이 감정도 그 원인을 알아내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스피노자가 감정의 원인을 알아내는 처방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는 것이다.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신체에 관한 처방이든 정신에 관한 처방이든 한방으로는 안 됀다는 사실이다. 땀이 나는 신체의 원인도 짜증이 나는 정신의 원인도 한 가지로 되어 있는 경우는 없고, 무수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신체가 근본적으로 집합적신체이고 정신은 집합적 정신이기 때문이다.

 

타당한 관념

감정의 원인을 찾으면 적합한 관념을 형성할 수 있다. 전술했다시피 어떤 감정이 생기는 것은 외부사물(기온과 습도) 자체에도 자기 신체(땀과 열이 나는) 자체에도 원인이 있지 않다. 감정은 자기신체에 일어난 현상(신체변용)에 대한 기억(신체변용의 관념)과 관련이 있다. 땀 때문에 창피했던 기억, 빨간 얼굴에 대한 칭찬의 기억이 현재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인식)’ 이것이 선행되어야 할 점이다.

원인에 대한 타당한 인식, 이것은 언제나 감정이 일어나고 난 후 사후에 고려되는 반성적 인식이다. 반성적 인식으로 지금 당장의 감정에 대응하기엔 무력하다. 그러나 다음번에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원인에 대해 타당하게 인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현행적 본질은 강해지고 그것은 곧 자신의 역량이 증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짜증이 과거의 창피함에 대한 ‘기억’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지금은 과거 자신을 놀리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이런 식으로 감정의 원인을 타당하게 인식하고, 그 원인들에 대한 인식을 더 많이 하면 할수록 이제 그 해결을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손수건을 잘 챙기고 다닌다거나, 땀이 나는 신체적 원인을 찾아서 치료를 받는다거나 등등. 원인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많이 하면 할수록 증가되는 것은 능동적으로 자기 신체에 대해 작용할 수 있는(작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증가다.

 

공통관념

원인에 대한 타당한 인식은 우선 신체의 일은 신체의 일로 정신의 일은 정신의 일로 인식하는 것이다(심신평행론에 대한 인식). 그 다음에 현재의 정신이(감정이) 기대고 있는 내 과거 감정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원인을 알아내는 작업이다(감정의 원인에 대한 타당한 인식). 이 과정이 주는 이점은 자신의 역량(현행적 본질)이 조금씩 커지는 것이다. 역량이 커진다는 것은 외부사물에 의해 신체변용을 겪되 신체변용의 관념, 즉 감정이 슬픔으로 이행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돼는 것이다.

외부 사물과의 마주침 즉 우리 인간은 한 시도 마주침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매번의 마주침 속에서 타당한 인식에 대한 자신의 노력 하나하나가 자신의 역량을 크게 한다. 역량이 점점 커지면 마주치는 외부사물에 의해 휘둘리는 일이 점점 줄어간다.

이번에 새롭게 환기하게 된 것이 있다면 역량이라는 것이 무한대로 커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마다 각자가 가진 최대치가 있다. 역량의 최대치를 하나의 원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면 외부 사물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의 역량은 그만큼 원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작아진다. 즉 외부사물의 영향력에게 자신의 역량을 잠식당하는 것과 같다. 반대로 타당한 인식을 하면 할수록 역량은 최대치에 가깝게 발휘될 수 있다. 외부사물의 영향력과 내 신체의 역량은 반비례하면서 하나의 원을 채우는 것이다. 이는 마주침이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작동이다. 여기서 공통관념을 말할 수 있다. 공통관념은 외부사물의 영향력과 내 역량의 적절한 비율이며 그 적절성은 자신의 감정이 슬픔으로 이행하지 않고, 기쁨이 될 수 있는가로 가름할 수 있다.
전체 3

  • 2016-07-29 21:31
    정말 자세하고 알아먹기 쉽게 쓰신 후기네요. 저한테 딱 맞춤 후기~~ㅎ 감사함다.

  • 2016-07-30 10:25
    뭔가 조금 헷갈리네요. 물리법칙에 따르는 신체와 그것에 대해서 선관념 같은 것을 통해 감정을 형성하는 정신을 구분하고 계신 것 같은?? 정신에 선관념같은 것이 작용하고 있다면 신체에도 그에 해당하는 흔적 같은 것이 있는 것 아닐까요?

    • 2016-07-31 16:23

      평행의 의미에는 신체와 정신이라는 두 양태의 독립적 작동과 어떤 ‘관계있음’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땀흘림’은 그 자체에 이미 정신으로 치면 선관념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땀흘림 자체는 선신체(?)의 흔적을 벌써 증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피부표면의 물기가 많이 맺힌다는 것은 외부의 기온과 그것과 만나는 신체의 온도 차를 증명하며, 신체의 온도가 외부 기온보다 현저히 낮을 때 훨씬 물기가 많이 자는 것이므로, 이런 신체는 그 이전의 섭생이 냉한 음식 같은 것의 과다(그 몸에)를 또 증명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거슬러 신체의 물리적 작동을 볼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땀흘림은 또 땀흘리는 그 순간 이미 어떤 감정과 결합되어 나타납니다. 이 감정은 신체가 외부와 마주친 결과 즉 ‘땀흘림’을 지각함으로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땀이 더 주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주침은 어떤 감정을 발생시키는 스파크 같은 역할을 분명히 하지요. 그러나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 것까지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짜증이 날지, 무덤덤할지, 개운할 지는 땀내는 그 신체를 가진 정신의 갖고 있던 선관념이 더 크고도 주요한 원인이 될 것입니다.

      신체와 정신은 완벽히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완전히 하나이지도 않다는 것을 스피노자가 평행론으로 설명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