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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고 채우고' - 주역수업(0716)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7-29 22:28
조회
584
오늘은 오랜만의 후기이니만큼  손괘(損卦)와 익괘(益卦)에 대해 같이 살펴보도록 할게요.

 

먼저 손괘를 살펴보면요. 원래 상괘가 곤괘, 하괘가 건괘인 상태에서 구삼이 상구로, 상육이 육삼으로 옮겨가서 상괘는 간괘, 하괘는 태괘가 된 것으로 봐요. 주역은 음보다는 양을 위주로 설명하기 때문에, 아래의 양(3)덜어서(6)를 채워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손괘의 ‘손(損)’은 ‘줄이고 덜어낸다(減損)’는 뜻인데요. 글자만 보면 손해를 본다는 건가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재물이 나간다거나 손해를 본다는 게 아니라 ‘과하거나 넘치는 걸 덜어내는 것’이에요. 정샘은 그 넘친 것을 덜어내고 억제해서 마땅한 이치로 나아가는 것(損抑其過 以就義理)이 손의 도라고 해요. 그러니까 덜어내어서 밸런스를 맞춰주는, 아주 긍정적인 것으로 본 거죠. 우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요즘처럼 덜어낼 줄 모르고 점점 더 원하기만 하는 세상에서는 가진 자도 더 가지려고만 하고, 아름다운 자들도 더 예뻐지려 하고, 완벽함에 대한 욕망에서 헤어날 줄을 모르잖아요. 이런 시대야말로 이 과도한 욕망과 그 욕망의 결과물들을 덜어내는 손의 도가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겠죠.

 

괘사에서는 두 개의 제기()만 있어도 제사를 지낼 수 있다(二簋 可用享)고 해요. 여기 두 개의 제기는 최소한의 것만으로 드리는 간소한 제사를 상징해요. 보통 제사를 지낸다고 하면 많은 음식을 온갖 그릇이 넘쳐나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선 과한 것들을 모두 덜어내고 겨우 두 개의 제기만으로도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한 것이죠. 이것을 정샘은 ‘과한 것을 덜어서 중을 취했다(損過而就中)’고 했는데요. 부차적인 것을 버리고 핵심만을 취한 것(損浮末而就本實)으로 본 거예요. 제사의 예는 격식이 가장 화려하지만 그 정성스럽고 삼가는 마음을 근본으로 하고, 그 의식과 형식은 그 본질을 꾸미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두 제기의 소박함(約)은 그 근본인 진실한 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꾸밈과 겉모양을 줄여서 중심과 마음만 있게 한 것(損飾存誠)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정샘이 보기에 천하의 폐단은 중요하지 않은 말단이 근본을 이기고 지나치게 승(勝)해진 것에서 말미암는 거예요. 담을 높게 쌓거나 담벼락을 화려하게 꾸미는 폐단도 집을 짓는 근본에서부터 점점 지나치게 된 것이고, 술과 고기가 넘쳐나는 주지육림의 파티도 원래는 먹고 마시는 기본에서부터 지나치게 된 것이고,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들도 가장 기본이 되는 형법에서 시작된 것이고, 상대를 전멸하고 학살하는 행위도 처음엔 명분을 세운 떳떳한 정벌로부터 출발한 것이에요. 무릇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모두 의식주에 대한 소박한 봉양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그 흐름이 점점 멀어지면서 해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 근본을 벗어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制其本)이 중요합니다. 살짝 더 예뻐지려고 했을 뿐이고, 조금 더 안락한 생활을 구하고자 했을 뿐이지만, 어느 샌가 그것이 삶의 목적이기라도 하듯이 집중한 채로, 모든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가 쉽잖아요? 우리의 이런 끝없는 욕심 때문에 손괘의 ‘덜어내는 도’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손괘에서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면요. 덜어내는 것은 효사로 가면 다른 이에게 덜어주는 것, 도와준다는 의미로도 쓰이는데요.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본 것은 자기가 해야 할 덜어주는 일을 끝내면 빨리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초구를 보면, 이미 일이 끝났거든 빨리 가야 허물이 없다(已事 遄往 无咎)고 했어요. 손의 시대에는 자신이 좀 넉넉하면 얼른 부족한 사람을 찾아서 도와줘야 하는데요. 초구의 경우는 육사에게 도움을 줘야 하죠. 그런데 누군가를 도와주고 나면 사람의 마음이란 게 생색을 내고 싶잖아요. 그럴 때 거기 뭉기적대면서 자신의 공을 내세우거나 내가 도운 일의 결과를 보면서 흐뭇해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일이 끝났으면 받은 자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고, 도와준 순간을 빨리 잊고 그 자리를 떠나라는 겁니다. 다른 효사들도 보면 남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덜어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요. 손괘는 그렇게 자신을 남에게 덜어줘서 자신이 가진 것들이 줄어들고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있기도 하고, 하늘이 돕기도 하는 둥 좋은 일들이 많이 있어서 풍족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역시 무척 주역다운 결과죠!

 

여기서 그럼 익괘(益卦)가 어떤지 살펴볼까요. 일단 익은 손괘를 위아래로 180도 뒤집은 모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요!

 

손괘 다음에 익괘가 오는 것이 무척 자연스러워 보이죠. 성쇠와 손익이라는 것이 모두 순환하는 것(盛衰損益 如循環)이 자연스럽습니다. 익은 상괘가 손괘, 하괘가 진괘이고요. 바람과 우레가 서로 만나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도 설명이 되어 있는데요. 바람이 매서워지면 우레가 격해지고, 우레가 격렬해지면 바람이 성이 나는 것처럼 서로를 돕는(助益) 형상을 이루는 것이죠.

 

아까 손괘에서처럼 원래의 모양을 건과 곤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본다면, 구사가 초구의 자리로, 초육이 육사의 자리로 간 것으로 봐야겠죠. 이번엔 양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아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더해준)’ 으로 말할 수 있겠네요. 여기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채워준다’는 말로 감을 잡으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바로 위에서 아래로 베풀어지는 임금의 은택이라는 발상인 것이죠. 그게 단전에 나옵니다. 익은 위를 덜어 아래를 더해주니 백성의 기뻐함이 끝이 없다(損上益下 民說无疆)는 거예요. 모두 상상하시는 모습 그대로, 위에서부터 시작되어 아래로 내려오는 그 도는 크게 빛이 납니다(自上下下 其道 大光). 이런 구도의 원조는 무엇일까요. 평소처럼 주역은 하늘과 땅, 천지로 뻗어나갑니다. 하늘이 베풀고 땅이 소생하는 것(天施地生), 익도(益道)의 가장 큰 것이 바로 천지의 존재 자체인 것이에요. 그런데 그 익(益)함, 채워주는 원리는 정해진 방소가 없어요. 이 아리송한 ‘무방(无方)’하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첫째로는, 딱히 누가 누굴 채워주기로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천지가 그렇듯 모든 것들이 모든 것들을 때에 따라 서로 채워주고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이런 말이 되는 거죠. 두 번째로는 그 채워주는 것이 정해지거나 구애받는 한계가 없이 무한하다(廣大无窮極)는 말도 되고요. 천지와 우주까지 무한히 뻗어나가고 보니 이 한계가 없다는 말도 바로 이해가 되네요.

 

손괘에서는 ‘개과천선’이라는 유명한 말이 나왔죠. 바람과 우레가 서로 더해주는 것을 본 군자는 선한 것을 보면 그것으로 옮겨가고 허물을 보면 그것을 고치는 것(見善則遷 有過則改)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한다는 거였어요. 더해준다는 것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나왔네요. 여기서 자기 자신을 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에요. 재물과 미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이 더욱더 훌륭해지도록 수행을 더하는() 이죠!!

 

효사로 가면요. 위에서 채워주니 큰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왕이 자신을 데려다가 큰일을 같이 하기도 하고, 많은 이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국가의 비상사태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진심을 갖고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기도 해요. 이렇게 놓고 보니 손괘와 익괘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저만 그랬나요?!)했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자신을 ‘덜어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든, 내 것으로 필요한 곳을 ‘채워주든’ 결국 다 돕는 것이니까요. 결국은 손괘건 익괘건, 능력과 재물을 포함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적재적소의 필요한 곳을 찾아 적절한 역할을 다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여기서 손괘와 익괘를 모두 정리하는 말을 한 가지 더, 손괘의 단전에서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로 ‘덜어내고 더하고 꽉 채우고 비우고 하는 모든 흐름은 때와 더불어 같이 움직여 나가는 것(損益盈虛 與時偕行)’이라는 말이에요. 항상 채우거나 항상 더는 것도, 언제나 꽉꽉 차 있거나 텅텅 비어 있는 것도 모두 비정상적인 것이죠. 살다보면 덜어야 할 때도, 채워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 그 때를 잘 읽어서 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것! 오늘도 주역은 어딘가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크게 보면 같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는군요! 이렇게 손괘, 익괘의 후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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