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예술톡톡 문학4강 - 부르주아의 엄숙주의, 그 이면의 도착적 욕망 - 에밀 졸라 <나나>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7-30 02:21
조회
540
엄청 늦은 후기 몸 둘 바를 모르게 죄송합니다. 오래 걸린 이유가 훌륭한 후기를 위해서이냐, 그게 아니어서 더 죄송하고요. 사실은 지난 토요일 동사서독 에세이를 준비한답시고 금요일 수업을 책을 거의 하나도 못 읽은 채로 갔던 것 때문에 다 읽으려고 했던 건데요; 이게 에세이의 후유증(?)으로 며칠은 헬렐레했더니 긴장이 풀어져선지 훅훅 안 읽히더라고요.

그날 수업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요. 나나는 에밀 졸라가 쓴 스무 권으로 이루어진 “루공-마카르 총서”라는 이름의 거대한 이야기, 루공가와 마카르 가의 5대에 걸친 이야기를 쓴 전체의 큰 스토리 중의 일부입니다. 작가는 유전과 환경이라는 두 요소로 인간과 사회를 해부하려고 했다는데요. 가계도를 따라 흐르는 신경증과 알코올 중독과 불행한 운명 때문에 사람들은 결정론적이고 비관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고 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출신성분’이 중요한 역할을 한 나나도 이를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 않았고요. 아무튼 19세기의 빛과 음악으로 가득 찬 극장들이 세워진 아름답고 번화한 파리의 부르주아들 사이로 이 두 가문의 후손들의 피가 유입되면서, 이들이 부르주아에게 안착하거나, 안착했다 처참하게 버림받거나, 도리어 부르주아를 파멸시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진행되는데, 나나의 경우는 마지막의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오스망 프로젝트로 새롭게 태어난 꿈의 도시 파리에 세워진 빛이 가득한 극장과, 그 소식을 나르는 신문기자들, 기차를 타고 사방에서 몰려 온 각양각색의 화려한 복장을 한 사람들, 그들에 의해 피고 지는 스타들.. 이 새 시대에 탄생한 부르주아의 삶과 함께 집으로 ‘귀환한 여성’들에게 핵가족을 잘 관리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집안의 천사’로서의 이미지가 씌워지고, 가정과 남편이 전부가 된 이 여자들은 모두 삶의 권태를 느껴요. 정숙한 그들이 깨어나 풀려나서 사회를 뒤흔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다룬 ‘드라큘라’라는 작품도 있고요(드라큘라-게리 올드만이었나요-에게 물린 후 신음소리를 내며 온몸을 비틀던 여자의 거친 호흡이 떠오르네요;). 그 사회가 두려워한 것은 그 도시의 다른 한편에 있었던 창녀와 부랑자가 들끓는, 더럽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뒷골목만이 아니라, 풀려난 여자들에 의한 위험들(실제로 작품 속 거의 모든 부인들은 모두 한 명 이상의 정부를 가지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정숙한 집안의 천사를 대신하여 벗은 몸으로 무대 위에 나타나 당장이라도 그들을 잡아먹을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나나의 존재 같은 것이었어요. 그녀는 파리, 균, 곰팡이, 질병 같은 것으로 부르주아들을 썩게 하고 파멸시키는 존재였는데, 그것은 그녀의 출신성분 때문이에요. 나나의 성공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부르주아지 침입’을 의미하는 대사건으로 부르주아들에게 ‘컨테이젼포비아’를 일으키죠. 나나는 그들에게 너무도 아름답지만 애초에 썩어있는 존재입니다.

저는 수업 때 아주 인상적이었던 것이 ‘누드’와 ‘나체’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나나의 경우, 그렇게 자주 벗고 속살을 드러내는데도 작품 안에서 한시도 나체가 되어보지 못한다고 했어요. 언제나 하나의 오브제로, ‘누드’ 상태로 존재하는 거여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기보다 전시를 목적으로 특정한 패션을 갖추고 있다는 거죠. 중간에 나나가 거울 앞에서 ‘누드’인 자신의 몸을 감상, 소비, 즐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희열에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상태가 됐던 것이 무척 강렬했던 기억(처음엔 자위를 했다는 건데 제대로 못 읽었나.. 생각했어요. 그게 아니었다는 점이 그 장면에 대한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 것이긴 했지만요.)이 나네요. 많은 이야기들이 더 있었지만 제가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알아들은 부분은 이 정도인 것 같고요.

수업 후에 나나를 다 읽고 난 느낌은요. 일단 그날 무성영화에서 못생기고 오동통한, 과장된 행동들로 까불던(?) 광기 있는 여자주인공을 보고 뭐 이리 못생기고 돌아이(!)같은 나나가 다 있냐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읽으니 의외로 그 배우가 캐스팅을 잘 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속의 주인공은 마냥 예쁘고 아름답기만 하지 않고 생명력은 있지만 약간 미친 것 같은, 일종의 징그러우리만큼 요사스런 느낌이 많이 들었거든요. 화면을 먼저 봐서 생긴 편견이었을까요. 흠.. 아직도 확실히 모르겠어요. 개인적으로 나나라는 캐릭터는 금발보다 역시 흑발이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업 때 접했던 네 명의 부인들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강렬했어요. 이건 단지 야하다거나 자극적인 성적 재료들이 많이 있어서만이 아닌 것 같아요. 아주 세련되어서 불편하지 않게 느껴지는 현대적인 말투, 자연스러운 고급 번역도 한 몫을 한 것 같고요. 가장 밑바닥에 떨어진 인간의 감정 묘사나, 극한까지 밀어붙여진 갈등의 끝 지점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특히 뮈파 백작 캐릭터에 마음이 너무 많이 가서요. 그렇게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평소에 주의를 꽤 들었고, 책 읽는 와중에도 혼났으면서도, 마음이 자동으로 먹먹해지는 걸 어쩔 수가 없었어요. 특히 나나에게서 자신의 부인과 포슈리의 관계를 알게 되고 나서부터의 뮈파의 행동과 내면을 묘사한 스무 페이지 정도가 압권이었는데요. 나나가 “입을 다물도록 발뒤꿈치를 들어 그녀의 머리통을 짓뭉개고 싶었”지만 대신에 “미친 사람처럼 정신없이 바닥을 두들기기 시작”했던 것부터 “다시는 그 여자를 보지 않으리라, 다시는 그 여자를 건드리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절망적으로 흐느끼”면서 밤길을 헤매고 다니던 것, 아내와 포슈리의 뜨거운 이미지들을 떠올릴 때의 분노, “사람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눈물이 쏟아져서 어둡고 텅 빈 거리로 달려”가 “어린애처럼” 울던 것, 그렇게 울다가 누군가의 발소리를 듣고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낀 것, 사람과 마주칠 때면 자신의 “어깨가 들먹거리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자신의 사연을 짐작할 것 같아서 걸음걸이를 가볍게 하려고” 애 쓴 것(그 와중에 이렇게까지!! 하고 불쌍하게 느끼면서도 사실은 그게 뭔지 이해가 너무 잘 되었고요), “머릿속에 고통스러운 분노가 으르렁거려서 오 분이면 올 수 있을 거리를 한 시간이 걸려서”가서는 “뭔가를 기다리며” 커튼 사이의 불빛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것, 달려들어 목을 졸라 죽일지를 초인종을 누를지를 갈팡질팡하며 세웠다 지우기를 반복하는 계획들, 순간 지나가는 그림자들을 보며 오간 수많은 생각, 미래에 대한 상상 속에 용해되는 분노, 불 꺼진 방 앞에서 추위에 떨다 시작한 몸과 마음의 방황, 신에 대한 생각과 자기 연민, 울며 구원을 부르짖던 성당에서 깨달은 신의 부재, 그토록 단단했던 결심에도 불구하고 나나에게로 돌아간 것, 매몰찬 나나의 앞에서 “두 눈에 눈물이 흥건히” 괸 상태로 두 손을 모으고 “같이 잡시다” 애원한 것(여기에서 저도 눈물이 그렁그렁..), 자신이 방황하던 사이에 다른 남자와 있었음을 보여주는 나나의 가장 잔인한 방식 – 침실 문을 열어 흐트러진 침대와 그 안의 속옷차림의 남자를 보여주는 것 –과 그 와중에 새로 찾아온 다른 남자와 함께 쫓겨나고는 “서로에게 우정을 느껴 조용히 악수를”하고 “다리를 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벽이 차가운 전율을 느끼게 하는 넓은 계단”에서 귀가하는 부인과 딱 마주치는 장면까지.. 정말 그를 가장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작가가 정말 무서워졌어요. 한 인간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다니! 하지만 바로 드는 생각은 ‘나도 저 자리에 있어 봤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 절망을 경험해가는 순서까지 그대로 잘 이해되는 거예요. 이건 특수한 예외적 상황을 특별히 상상해서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인 경험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것이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최근에 들은 ‘글을 읽는 이유’와도 연결이 되는 것 같은데요. 인간은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것을 경험으로 다 흡수해서 지혜를 가지기는 어렵지만, 글을 읽을 때 작품 속의 상황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을 이해하는 순간이 온다고(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들었거든요.

뮈파 백작 얘기 말고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데가 많이 있었지만요.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면, 작품 전체에 어둡고 축축한, 퀴퀴한 냄새가 나는, 썩은, 먼지가 쌓인, 더러운 장소에 대한 묘사가 정말 여러 번 나왔던 것인데요. 거의 나나라는 작품 전체의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끊임없이 이 더럽고 어두운 이미지가 이어져요(이것이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먼지나 어두움 같은 시각적인 것만이 아니라 썩는 냄새와 축축한 느낌 같은 후각과 촉각에 대한 묘사도 빠지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파리의 뒷골목에서부터 창녀의 방과 침실, 극장의 무대 뒤편, 분장실 등으로 연결되는 이 곳은 천하고 추악하고 더러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자 나나의 일부를 이루는 곳이기도 해요(나나는 가장 화려한 삶을 살고 있을 때조차도 천박함을 지워버릴 수 없었고, 백작부인 역은 의도치 않은 코미디가 되고 말아요). 나나가 ‘잘 나가’다가도 끊임없이 돌아오곤 하는 그 더럽고 축축한 곳은 나나의 혈통에 새겨져 벗어날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요. 루공과 마카르가의 양쪽으로 나뉘어 흐르는 피의 계보가 결정해 놓은 ‘몰락’이라는 결말로 치닫기 위해선지, 나나는 멀쩡히 지내다가도 갑자기 일종의 ‘자기파괴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꼭 버릴 수 없는 버릇처럼(뱀파이어가 때 되면 피를 찾듯?) 하곤 했는데, 졸라는 환경적인 요소들보다 유전적인 것들이 삶에서 더 실제적이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아무튼, 생각보다 나나가 재미있었기 때문에(시간의 압박이 아니었으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기회가 되면 목로주점 등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서없이 후기를 썼는데, 문학작품이어선지 다른 장르(?)의 후기들보다 훨씬 더 어렵고 계속 갈팡질팡하네요.  죄송;

이번 학기 수업분위기도 화기애애하고 중간중간 짧은 영화 감상도 재미있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즐겁고(이야기의 내용-주로 성인 여성들의 성인들의 이야기-도 즐겁고), 무엇보다 엄청 유명한 작품인데도 읽어보지 못한 것들을 읽고 얘기하면서 빠르게 무식함을 효율적으로(?) 채워가는 느낌에 무척 뿌듯한 수업이었어요. 한 달 잘 쉬고서 다음 학기도 모두 빠짐없이 참여하셔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작품 기대되네요. 흐흣.
전체 2

  • 2016-07-30 10:39
    무르주아란 어떤 계급인고? @.@ 다음 시즌 마지막 수업은 좀더 일찍 끝내고 더 진하게 뒷풀이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땐 반장도 함께 해주리라는 기대도...

    • 2016-07-30 11:27
      무르주아보고 깔깔 웃었넹ㅋ 뒷풀이 진하게 꼭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