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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낙천적 정신승리법' - 주역수업(8.20)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8-25 22:11
조회
730
다들 안녕하셨나요. 휴가를 다녀와서 오랜만에 후기를 쓰는 윤몽이에요. 그동안 길고도 성실한 후기를 열심히 써 준 몽삼양, 정말 고맙습니다. 괘의 모양을 크게 써 붙이는 재주를 부린 것이라든가(복사 붙여넣기..? 그림파일 붙이기..? 한 번 흉내내어보고 실패하거든 도와주길 바랍니다.) 제 분위기와 전혀 다른 방식의 후기를 보니 참 새롭고 좋았어요. 역시 익숙해진 한 사람이 고정적으로 쓰는 것보다 훨씬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돌아가며 쓰는 다양하고 새로운 후기’를 건의하는 바입니다!

자, 복습을 해볼까요. 지난 시간에는 곤괘(困卦)에 대해서 배웠는데요. 확실히 처음 소개 때부터 자세히 들은 괘가 더 쉽게 익숙해진다는 걸 알았어요. 곤괘의 소개와 첫 부분은 지지난 시간 이후의 복습이어서 간단히 정리하고 지나갔거든요.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열심히 집중했는데도 살짝 어려웠던 기억이 나요. 2주를 쉬었던 이유도 있었을 거고요. 아무튼 이해한 만큼 정리를 해보도록 할게요.

 

困卦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곤괘는 곤(困)이라는 글자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곤란한 상황, 갑갑해지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사방이 답답하게 막혀서 옴짝달싹 못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괘의 모양을 보시면 위에는 태괘, 아래는 감괘인데요. 감괘에서는 가운데(2)의 양이 두 음(1,3) 사이에 끼어 있고, 태괘에서는 두 양(4,5)들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음(6)에게 갇혀 있네요. 단전에서도 말하듯 곤괘는 양이 음에게 가려져(:갇혀, 눌려, 덮여) 있는 것이에요.

아, 그럼 얘는 엄청 고생하고 힘들겠구나, 하고 미리 걱정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요. 역시 주역은 또 상식과는 반대되는 것 같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괘사부터 형(亨), 정(貞), 길(吉) 등의 엄청 좋아 보이는 글자가 잔뜩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잘 읽어보면, 곤괘는 형통하고 바르니 대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困 亨 貞 大人 吉 无咎)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왜 곤란한 시대인데 형통한가? 여기서 포인트는 “대인이라야”입니다. 그냥 길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대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는 것이죠. 그럼 이 시대에 소인으로 살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뭐 안 봐도 뻔하죠. 망하는 겁니다. 대인으로 살면 수월한 시기든 힘든 시기든, 주어진 상황에 상관없이 형통해질 수도 무구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안고 가는 것이지요. 정샘의 주를 보면요. 곤의 시대에서도 능히 형통할 수 있는 것은 그 바름을 얻었기 때문이고, 이것이 바로 대인이 곤의 시대에 처하는 도라고 말해요. 때를 읽고 그 가운데 바르게 처하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만큼 현명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하늘의 이치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 편안히 거합니다(樂天安命). 그리고는 하소연이라든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인위적인 말들을 쏟아내지 않죠. 쓸데없는 말이 많으면 신뢰를 잃게 됩니다(有言 不信). 어려운 상황에서 말을 자꾸 앞세우면 그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워지는 거예요.

같은 이야기를 단전에서 조금 더 깊게 해나가 보면요. 곤란하고 어렵더라도 그 형통한 바를 잃지 않는 것은 군자이기 때문일 것(困而不失其所亨 其唯君子乎)이래요. 비록 곤궁하고 험난한 가운데 있어도(雖在困窮難險之中) 하늘의 이치를 즐거워하고 의에 편안히 거하니(樂天安義), 결국 스스로 그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된다(自得其說樂也)는 거죠. 여기서의 ‘낙천’이라는 말은 우리가 쉽게 쓰는 ‘낙천적’이라는 말의 가벼움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임을 알 수 있죠. 그러면 군자도, 대인도 아닌 평범한 우리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는 보통 어떻게 되나요. 우샘께서 들어주신 예가 생각나네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5~60대 아저씨들의 울화병이라든가, 갱년기 아줌마들의 우울증 속에서 목격하기 쉬운 신세타령 같은 것이죠. 내 인생만 이렇게 꼬였다는 판단과 방향 모를 분노, 삶이 불공평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한탄과 질투, 예기치 않게 하필 나에게만 닥쳐온 무자비한 사건들의 부당함에 대한 끝없는 성토.. 이런 건 굳이 5~60대나 갱년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나요.

저의 경우, 유난히 엄살과 징징거림이 많기 때문에, 제가 힘들어지면 벌써 소리 높여 지저귀므로(!) 주변의 모두가 제가 힘든 걸 알 수밖에 없게 됩니다. 두 손 들고 인정. 그래서 곤괘의 괘사와 단전을 읽을 때 너무 찔리고 불편했어요. 어려움 속에 편하게 거하는 건 어떻게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을 뿐더러, 거기까진 그렇다 하더라도, 하소연도 말도 많으니, 그렇다면 불신을 얻게 될 거라는 말이 협박처럼 느껴졌으니까요. 도대체 상황이 어렵고 고통스러운데도 불구하고 그 상황 속에서(현실도피하지 않고서도) 편안히 거하고 스스로 기뻐하며 즐거워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이 방법들을 배워가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때로는 군자의 경지가 너무 놀라워서 이렇게 매일매일 배워나가는 것만으로 정말 거기까지 이를 수 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든다고 해도요. 아무튼 곤괘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하괘에서 상괘로 올라가는 흐름이 그대로 보여주듯, 험난함(:) 속에서 자신을 잘 지키고 어려운 상황들을 참고 견디면, 험난함은 지나가고 기쁘고 즐거운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겁니다. 이 험난함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고 섣불리 바보짓을 하면 안 돼요. 그 흐름이 끝날 것을 알고 잘 버티며 때를 기다려야죠. 요 어렵지만 단순한 진리도 우린 주역 공부를 통해 배워가고 있는 것이에요.

효사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나오는데요. 거처가 불편해서 엉덩이가 배기는 애(1), 먹고 마시는 것(생계)에 어려움이 있는 애(2), 딱딱한 돌 위가 불편해서 자리를 잡은 곳이 하필이면 가시덤불인 애(3), 힘든 상태에서 도움을 구하지만 도와주는 손길도 믿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애(4), 왕의 자리에서도 코 베이고 발꿈치 베인 애(5), 칡넝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불안한 애(6).. 별의별 희한한 상황들이 다 나옵니다. 그래도 좀 괜찮은 결말을 맞는 위쪽의 아이들은요. 같이 할 세력이 있어서 간신히 상황을 모면하거나(4), 자기 돕는 세력을 존중하고 제사 등에 정성을 다하거나(5), 반성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고 조심하여서(6) 결국엔 무사해지거나 길해지는 것이에요.

결론을 내리기 위해 대상전을 조금 더 살펴볼까요. 군자는 이 어려움의 시기를 잘 견디는 법을 역시 알고 있군요. 군자는 곤괘를 보고 치명수지(致命遂志)한다고 했어요. 이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명을 받아들이고 그 뜻을 따른다는 것을 말해요. 내 시대와 내게 주어진 상황들을, 마땅히 일이 그렇게 되어가는 이치를 온 마음으로 이해하고 온전히 긍정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려움과 고난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대지 않아요. 자신의 명을 알지 못하면 험난한 상황 자체만 보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거든요. 주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어려운 처지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발버둥을 치다가, 그나마 지키고 있던 것들도 잃어버리기 마련이죠. 우샘께서 설명해주신 바에 의하면,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어려움이라는 그 상황 자체에 휘둘리지 않고 이 시기를 잘 살아내겠다는 선한 의지를 발휘하는 것이 바로 치명수지입니다. 바로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살겠다는, 타고난 본래의 선함을 다 이루겠다는 의지를 성취해 내는 것이죠. 현실을 도피하는 아Q식의 정신승리법이 아니에요. 좌절하지 않는 정도의 소극적인 해결법도 아니고요. 곤괘를 살아가는 군자의 삶의 비결은 매우 적극적이면서도 낙천적인 정신승리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가 주역 공부를 시작한 지가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어요. 요번 토요일 수업만 듣고 나면 몇 주간 방학을 하고요. 추석 지나고부터 다시 1년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하죠. 물론 1년 전체가 아니라 짧은 단위로 언제든지 신청하고 참여하실 수 있고요. 벌써 1년이나 공부해서 이제 분위기만큼은 꽤 익숙해진 주역을 이제 더 새로운 마음으로 보다 깊이 만나는 새 학기가 되면 좋겠어요. 겉에서 보시는 분들에겐 엄청 어려운 것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이만큼 쉽고 재미있는 게 또 없답니다. 더 많은 학우(동지! 벗!)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이번 주 토요일, 주역 첫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수업 때 뵐게요.
전체 4

  • 2016-08-25 22:33
    윤몽님 맞지요?! 넘 감동적이어요!! 다 읽고 작성자가 누구인가 다시 확인했어요^^ ㅋㅋ

    • 2016-08-27 09:31
      오잉.. 누구..?! 실명제 도입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 2016-08-26 11:47
    괘 모양 올렸어요~ 담에 알려줄게요-

    • 2016-08-27 09:31
      고마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