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후기] 논어 팔일편 1~4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8-30 15:55
조회
706
지난 시간엔 무시무시한 위정편 암송테스트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긴장을 너무하야 웬일로 간식에 손들을 안대고 웅얼웅얼 외우기에 바빴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성실히들 준비해 왔으므로

무척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로 시험을 잘 마칠 수 있었다죠.

결석하신 분들 - 특히 오영샘 - 이 계셨더라면 화기애매한 분위기가 되진 않았겠지요..?

아무튼 그리하야, 위정편을 건너 우리는 팔일편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지막 4번 문장을 제가 헤매는 바람에 채운샘께 진도를 많이 못나갔다며 구박을 받았지만,

이렇게 치고 보니 양이 적지 않았습니다.  딱 배울만큼 배운 것이더군요. )

 

자, 복습합니다~
  1. 孔子謂季氏 八佾 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공자께서 계씨를 평가하며 말씀하시길 천자나 할 수 있는 팔일무를 자기 뜰에서 추게 했으니 1) 이것을 차마 한다면 무엇을 마차 하지 못하겠는가 2) 이것을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을 참을 수 없겠는가

 

季氏, 魯大夫季孫氏也, 佾, 舞列也, 天子, 八, 諸侯, 六, 大夫, 四, 士, 二, 每佾人數, 或, 曰每佾八人, 未詳孰是,

계씨는 노나라의 대부인 계손씨입니다. 일은 춤추는 열입니다. 천자는 8열, 제후는 6열, 대부는 4열, 사계층은 2열로, 각각의 열의 사람 수는 그 열의 수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다른 설에는) 매 열이 여덟 명이라고도 합니다만 어느 것이 옳은지는 상세히 따질 수 없습니다.

 

季氏, 以大夫, 而僭用天子之禮樂, 孔子, 言其此事, 尙忍爲之則何事, 不可忍爲, 或, 曰忍, 容忍也, 蓋深疾之之辭,

계씨는 대부로써 천자의 예약을 참람하게(주제넘게, 분에 넘치게, 어그러지게, 예를 어기고) 사용하였습니다. 공자께서 이와 같은 일을 말하면서 오히려 이것을 하는 것도 차마 한다면 어떤 일을 차마하지 못하겠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는 인은 용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심하게 질책하는 말이 됩니다.

 

范氏曰 樂舞之數 自上而下 降殺以兩而已 故 兩之間 不可以毫髮僭差也 孔子爲政 先正禮樂 則季氏之罪 不容誅矣

범씨가 말했습니다. 악무의 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줄어드는 것이 둘로써 할 따름입니다(둘씩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씩 줄어드는 사이에 터럭(아주 조금)이라도 넘쳐서 차이가 있으면 안 됩니다. 공자께서 정치를 하는 데는 먼저 예악을 바로잡으셨는데, 계씨의 죄는 죽여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謝氏曰 君子於其所不當爲 不敢須臾處 不忍故也 而季氏忍此矣 則雖弑父與君 亦何所憚而不爲乎

사씨는 말했습니다. 군자는 마땅히 하면 안 되는 것에 수유(아주 짧은 순간)라도 감히 처하지 않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계씨가 이것을 차마 했으니 아버지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일지라도 또한 어찌 꺼리는 것이 있어서 하지 못하겠습니까.

 
  1. 三家者 以雍徹 子 曰相維辟公 天子穆穆 奚取於三家之堂


세 집안에서 주나라의 옹노래를 부르며 제사상을 물리니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돕는구나 제후들이, 천자는 평온히 조화를 이루시네, 이런 노래를 어찌 그 세 집안의 대청마루에서 취한단 말인가.

 

三家, 魯大夫, 孟孫, 叔孫, 季孫之家也, 雍, 周頌篇名, 徹, 祭畢而收其俎也, 天子宗廟之祭, 則歌雍以徹, 是時, 三家, 僭而用之, 相, 助也, 辟公, 諸侯也, 穆穆, 深遠之意, 天子之容也, 此, 雍詩之辭, 孔子, 引之, 言三家之堂, 非有此事, 亦何取於此義而歌之乎, 譏其無知妄作, 以取僭竊之罪,

세 집안이란 노나라의 대부인 맹손, 숙손, 계손의 집안을 말합니다. 옹은 주송의 편명입니다. 철은 제사를 마치고 제기를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천자가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옹을 부르면서 철을 하는데, 이때 세 집안이 예를 어기고 그것을 사용하였습니다. 상은 돕는 것이고 벽공은 제후입니다. 목목이란 심원하다는 뜻으로 천자의 용모와 기품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옹시의 가사입니다. 공자께서 이것을 인용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세 집안의 대청마루에서 이 일이 벌어지는 것은 틀렸는데 또한 어찌하여 이 뜻을 취하여 그것을 노래하는가라고 하신 것이니, 그 예를 알지 못하고 망령되이 행동해서 예를 범하여 몰래 그것을 행한 죄를 취한 것을 나무라신 것입니다.

 

程子, 曰周公之功, 固大矣, 皆臣子之分, 所當爲, 魯, 安得獨用天子禮樂哉, 成王之賜, 伯禽之受, 皆非也, 其因襲之幣, 遂使季氏, 僭八佾, 三家, 僭雍徹故, 仲尼, 譏之,

정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공의 공은 진실로 크지만 모두 신하와 자식의 직분에 마땅히 할 바인데 노나라가 어찌 홀로 천자의 예악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성왕이 하사하고 백금이 받았던 것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그 인습의 폐단이 마침내 계씨로 하여금 팔일의 예를 어기게 하고 세 집안으로 하여금 옹을 부르며 제사상을 물리게 하였으니 공자께서 그것을 나무라신 것입니다.

 
  1.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고서 인하지 않으면 예와 같은 것은 무엇하겠는가(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이고서 인하지 않으면 악과 같은 것은 무엇하겠는가.

 

游氏, 曰人而不仁則人心亡矣, 其如禮樂, 何哉, 言誰欲用之, 而禮樂, 不爲之用也,

유씨가 말했습니다. 사람이고서 인하지 않으면 인심(인간의 본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약 같은 것은 무엇하겠습니까. 예악을 쓰고자 하여도 예악이 그를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程子, 曰仁者, 天下之正理, 失正理, 則無序而不和, 李氏, 曰禮樂, 待人而後行, 苟非其人, 則雖玉帛交錯, 種鼓鏗鏘, 亦將如之何哉, 然, 記者, 序此於八佾雍徹之後, 疑其爲僭禮樂者發也,

정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이라는 것은 천하의 바른 이치인데, 바른 이치를 잃으면 순서가 없어지고 조화도 없어집니다. 이씨가 말했습니다. 예악은 사람을 기다린 뒤에야 행해지는 것이니 진실로 그 사람(그 예악을 행하기에 마땅한 사람)이 아니면 비록 옥과 비단이 서로 오가고, 종과 북이 울리더라도 또한 장차 무엇을 하겠는가(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기록한 자가 이것을 팔일과 옹철의 뒤에 배치한 것은 그 예를 어긴(질서를 어그러뜨린) 자를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1. 林放問 禮之本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었습니다.

 

林放 魯人, 見世之爲禮者, 專事繁文, 而疑其本之不在是也, 故, 以爲問,

임방은 노나라 사람으로 세상의 예를 한다는 사람들이 번다하게 꾸미는 것에만 너무 치중한다고(번문을 일삼는 것을 오로지한다고) 보아서 그 근본이 여기에 있지 않는 게 아닐까를 의문시했기 때문에 질문을 한 것입니다.

子 曰大哉問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질문이 훌륭하구나.

 

孔子, 以時方逐末, 而放, 獨有志於本故, 大其問, 蓋得其本, 則禮之全體, 無不在其中矣,

공자께서는 당시에 바야흐로 말단만을 쫓는데 임방만이 홀로 그 근본에 뜻이 있어서 그 질문을 위대하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무릇 그 근본을 얻으면 예의 전체가 그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게 됩니다.

 

禮 與其奢也 寧儉 喪 與其易也 寧戚

예는 사치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은 질서정연한 것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

 

易, 治也, 孟子, 曰易其田疇, 在喪禮, 則節文習熟, 而無哀痛慘怛之實者也, 戚則一於哀, 而文不足耳, 禮貴得中, 奢易則過於文, 儉戚則不及而質, 二者, 皆未合禮, 然, 凡物之理, 必先有質, 而後有文, 則質乃禮之本也,

역은 다스려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맹자는 밭두둑을 다스려 고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상례에서는 형식에 맞게 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 애통해하고 슬퍼하는 실질이 없습니다. 슬퍼하면 그 슬퍼하는 것에 집중해서 형식이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는 때에 맞아떨어지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사치하고 질서정연하게 하는 것이 형식에 있어서 지나친 것이라면 검소하고 슬퍼하는 것은 미치지 못하여 질박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예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물의 이치는 반드시 본질이 있는 것을 더 우선시 하고 형식은 나중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실질이 이에 예의 근본이 됩니다.

 

范氏, 曰夫祭, 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 喪, 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 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 禮失之奢, 喪失之易, 皆不能反本而隨其末故也, 禮奢而備, 不若儉而不備之愈也, 喪易而文, 不若戚而不文之愈也, 儉者, 物之質, 戚者, 心之誠故, 爲禮之本,

범씨가 말했습니다. 제에서는 그 공경함이 부족하고 예에 남음이 있는(넘치는) 것은 예가 부족하고 공경함이 넘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상에서는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넘치는 것은 예가 부족하고 슬픔이 넘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예가 실질을 잃고 사치하고, 상이 실질을 잃고 너무 형식적이게 되면 모두가 근본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그 말단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예가 사치하고 완벽한 것은 검소하고 부족한 것이 더 나음만 같지 못합니다(검소하고 부족한 것만 못합니다). 상이 질서정연하고 형식적인 것은 슬퍼하지만 형식적으로 부족한 것만 못합니다. 검소함은 만물의 실질이고, 슬퍼함은 마음의 진실이므로 예의 근본이 됩니다.

 

楊氏, 曰禮, 始諸飮食故, 汚尊而杯飮, 爲之簠簋籩豆罍爵之飾, 所以文之也, 則其本儉而已, 喪不可以徑情而直行, 爲之衰麻哭踊之數, 所以節之也, 則其本戚而已, 周衰, 世方以文滅質, 而林放, 獨能問禮之本故, 夫子, 大之而告之以此,

양씨가 말했습니다. 예는 모두 마시고 먹는 것에서 시작했는데 옛날에(여기서 가 옛날에는.. 하고 해석하는 게 맞나요? 때문이 아니라?), 웅덩이에서 손으로 물을 떠 마시던 것이 보궤변두뇌작 등의 제기와 술잔 등의 꾸미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형식화한 것이니 그 근본은 검소함일 따름입니다. 상은 정을 직접 드러내서 바로 행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상복을 입고 곡을 하고 발을 구르는 수를 정하였는데, 예로써 그것을 맞게 끊어놓은 것이니 그 근본은 슬퍼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주나라가 쇠하고 세상이 바야흐로 형식을 가지고 본질을 사라지게 했는데, 임방이 홀로 예의 근본을 물어볼 수 있었으므로 선생님께서 그것을 훌륭하다고 여겨 이로써 그에게 말한 것입니다.

 

휴우. 이제 끝이군요.

참, 지난 시간엔 수업 끝나고 김치 수제비 + 들기름에 부친 두부를 맛있게 먹고 나서,

모처럼 선선하고 맑은 날씨에 들떠 산책을 갔더랬죠.

창덕궁을 못가고 창경궁만 돌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찍지 좀 말라는 채운샘의 구박을 무시(?)하고 찍었던 사진 중에서 몇 작품(!) 올립니다.

흐흣.

전체 3

  • 2016-08-30 23:53
    허허허허허허허허 그저 웃지요-0-

    • 2016-08-31 12:19
      마지막 사진 영웅들 같지 않닝

  • 2016-09-01 19:54
    몽 반장님 덕분에 크게 웃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