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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담고도 기울지 않는 착한 솥으로 자라기' - 주역수업(08.27)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9-15 15:38
조회
717
긴 방학동안의 우리의 마지막 복습은 바로 정괘(鼎卦)입니다. 정괘는 귀엽게도 솥단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해요. 정(鼎)이라는 글자도 세 발이 달린 솥을 나타내고요. 우샘 말씀대로 주역은 절대 고상하거나 우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물(물론 요즘 말고 그 당시의 옛 중국)을 비유로 사용하는 소박함이야말로 엄청 주역다운 거죠!

 

잠깐 수업 시간에 들은 옛날이야기를 해볼게요. 우임금이 치수에 성공한 다음에 천하를 아홉 개의 주(9주)로 나누고 그 기념으로 아홉 개의 솥을 만들었대요. 그래서 이 아홉 개의 솥, 구정(九鼎)이 천자의 상징물이 됐는데요. 진나라가 통일할 때 주나라 왕실에서 이걸 갖고 오다가 운반하는 과정에서 하나를 분실했대요(이게 완전한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얘기라고도 하고요). 그래서 진시황이 그 솥이 빠졌다는 곳에 가서 찾으려고 엄청 노력했지만 결국엔 얻지 못했다고요. 아무튼 이 ‘구정’이라는 것이 옥새와 더불어서 천하를 소유하는 상징물이었고, 정이라는 것이 그냥 밥하는 솥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예요.

 

이제 다시 정괘로 돌아갈게요. 정괘는 위에는 리괘, 아래는 손괘로 되어 있어서요. 나무(, )가 불(, ) 밑에 들어간(, ) 으로 보면 불이 활활 잘 타올라서 음식을 익힐 수 있겠죠. 단전에 보면요. 성인이 음식을 잘 삶아서(享飪也) 위로는 상제에 정성스런 제사를 지내고(聖人 享 以享上帝), 아래로는 크게 요리를 해서 뛰어난 인재들을 먹여 키우는 것(大享 以養聖賢)으로 설명했어요. 이런 정괘의 형상을 보고 군자는 자신의 자리를 바르게 하고요(正位). 내리는 명에는 권위가 있게 돼요(凝命). 여기서 ‘응명’이라는 것은 자신감을 갖고 편한 마음으로 내려서 권위가 있는 명령(凝其命令 安重其命令)이에요.

 

이제 정괘의 모양을 살펴볼까요. 1과 5의 자리의 두 자리만 음효이고 나머지는 모두 양효죠. 이것을 솥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고 솥을 머릿속에 그려 보시면요. 맨 아래의 음효는 맨 아래서 솥을 받치고 있는 다리가 되겠고요. 2, 3, 4효는 솥의 둥근 몸통이 되겠죠. 그리고 음효인 5효는 솥의 귀고요. 마지막 6효가 손잡이, 걸이 되겠습니다. 이건 정샘이 주에서도 설명하고 있는데요. 저는 첨에 이 얘기를 듣고 정말 그럴 듯해서 재미있었어요.

 

효 중에서 솥의 모양과 관련된 재미있는 것 몇 가지를 살펴볼까요. 솥이 천하를 소유하는 상징물이라더니, 육오의 솥은 황금 귀를 가지고 있고 손잡이가 단단한 쇠로 만들어져 아주 튼튼하고요(黃耳金鉉). 상육의 솥은 마지막의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더 좋은데요. 옥으로 된 손잡이를 가지고 있어서 무려 ‘대길’에다가 이롭지 않은 바가 없다고 해요(玉鉉 大吉 无不利). 지난번 정괘(井卦)에서 배웠던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되시겠지만, 우물과 솥은 모두 물이나 음식을 끝까지 위로 끌어올려야 먹거나 마신다는 쓰임, 즉 좋은 결과에 이를 수 있는 거잖아요. 더구나 옥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강하기만 하지 않고 따뜻함도 겸비하고 있는 것,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 것을 상징한다고 보거든요. 리더쉽도 있으면서 포용력이 있는 사람을 떠올릴 수 있겠네요. 소상전은 이것이 강유가 절도에 알맞게 적절히 배합된 것(剛柔 節也)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이제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가여운 효 두 개를 더 살펴볼게요. 먼저 딱한 초육을 보면요. 발이 위로 뒤집어져서 솥이 발랑 드러누워 버렸어요(顚趾). 저런. 당사자에게는 모든 것이 다 끝나 보이는 처참한 순간이지만요. 우리의 주역은 이 순간에도 좋은 이야기로 격려합니다. 바로 찌꺼기를 꺼내기에는 이롭다(利出否)는 평인데요. 아, 모든 것이 끝났어. 난 틀렸어. 이렇게 주저앉아 있지 말고 엎어진 김에 솥 속에 있던 더러운 것들을 싹 청소하는 계기로 삼으라는 말이에요. 멋지지 않습니까. 어렵고 깜깜한 순간에도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미래를 도모하라는 거죠. 사실 더러운 것들을 청소하는 건, 솥이 똑바로 세워져 있을 때보다 기울어져 있거나 엎어져 있을 때가 더 수월하지 않나요. 물론 넘어져서 청소를 하고 나면 이제는 더럽지 않은 것들로, 깨끗하고 좋은 것들로만 솥을 채워야겠죠. 다시 더러운 것들을 채우면 넘어졌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 되고 마니까요.

 

이번엔 흉하기에 더 가여운 구사를 볼게요. 구사는 솥이 아예 다리가 부러져서요(折足). 군주에게 드릴 음식이 쏟아져 버리고 말았어요(覆公餗)! 그러니 그 형상이 부끄러워 진땀이 나는 상황이라 흉하다(其形 渥 凶)고 할 수 있습니다. 얘는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정샘의 설명에 의하면 대신의 자리에 있는 구사가 맡고 있는 임무가 막중한데도 임금을 보필할 생각을 안 하고 생각이 딴 데로 가 있었던 거예요. 정응인 초육만 보느라 한눈을 팔았던 거죠. 이런 건 정응이 오히려 좋지 않게 작용한 예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높은 관직에서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두루두루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해야 하는데, 구사는 덕도 없고 식견도 좁으며 경험도 적은 초육에만 신경이 가 있으니 기우뚱 중심을 잃고 쓰러져 다칠 수밖에요. 이것이야말로 직무유기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 주역은 아까 초육이 넘어졌던 경우에서는 격려를 해주더니 구사는 왜 이렇게 차갑게 비판만 하는 걸까요. 아무리 똑같이 넘어져서 내용물을 쏟는 솥의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아무 능력도 자리도 없는 어린 초육이 넘어졌던 상황과는 이건 책임도 스케일도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군주 바로 아래에서 나라의 실무를 모두 맡고 있는 책임은 실로 막중한 것이죠. 연습이나 실수 같은 것이 용납되기 어려운 자리입니다. 일을 그르쳐도 나 하나만 잘못되는 초육의 경우와는 레벨이 다른 것이에요. 사람이 항상 어리고 모르고 부족한 상태에만 머무를 순 없는 것 아닌가요. 때가 되면 성장해야 해요. 어릴 때는 살짝 타이르기만 하거나 혼내더라도 얼른 달래줄 수도 있는 거지만, 점점 자람에 따라서 그 나이에 맞는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죠. 자라가면서도 계속 자신을 아기 취급하기를 바라는 것은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고 자연의 도리를 거스르는 비정상적인 것이죠.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니 다소 느릴 수는 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성장해야 합니다.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죠. 언제까지나 무지몽매한 어린아이일 수는 없으니까요. 하핫. 쓰다 보니 솥의 이야기에서 성장에 대한 이야기로 내용이 옮겨오고 말았네요. 아무튼 주역은 여러 모로 생각할 기회를 주는 열린 책임에 틀림이 없군요.

 

자, 이제 한 주 더 쉬고 10월 1일,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주역 수업이 펼쳐집니다.

윤몽의 듬성듬성 후기와는 차원이 다른, 보다 깊고 재미있는 우샘의 수업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잡으시길 바랍니다! 모두 추석연휴 마저 잘 보내시고요. 10월 1일 웃는 얼굴로 만나요^^*
전체 6

  • 2016-09-15 18:25
    으흠, 드뎌 니 몫의 후기를 다 마쳤구나! 다음 1년에도 더 성실한 후기스트로 거듭나거라~

  • 2016-09-15 22:47
    지난 주역 수업이 새록새록+듬성듬성 기억이 남니다요- 주역 수업 때마다 반성과 발분, 두려움이 왔다리갔다리합니다...+_+

  • 2016-09-16 16:32
    솥이 거꾸러 뒤집어졌을 때 "찌꺼기를 꺼내기가 이롭다" 와~ 하며 뭔가 맞아 맞아 하며 읽었어요, 역쉬 이러다 주역사랑으로 마음이동할까 ㅎㅎ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글입니다. 감사해요^^

    • 2016-09-20 00:49
      당근샘, 주역의 세계로 좀더 깊이 들어와 함께하심이..?

  • 2016-09-17 10:33
    오잉. 오늘은 댓글이 넘쳐나네용@@ 이렇게 성실히 후기를 읽어주시는 분들께 덜 부끄럽도록, 저도 더 성실히 후기를 쓰기로~!!!!

    • 2016-09-19 01:10
      그동안 후기 고맙습니다. ^^ 후기가 없었다면 듬성듬성 기억도 없을 것, 아예 대머리될 뻔~~ 했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