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0928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6-09-24 16:03
조회
507

지난 시간에는 두 번째 고원과 여섯 번째 고원을 함께 읽고 모였지요.
시간 관계상 주로 두 번째와 관련해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다음 시간에 못다 한 여섯 번째 고원과 함께 세 번째 고원 “도덕의 지질학” 들어갑니다.
저녁 때 강의만 참여하시는 분들, 어렵지만 안 읽고 들어오시면 수업 때 손해여요 ㅎㅎ


앞으로 자세한 후기는 매주 반장인 건화 군이 올려줄 테니 기대하시고요^^ 저는 공지를 겸해 아주 약간만 환기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해볼게요.


지난 시간에 배운 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프로이트는 몰랐던 사랑’ 쯤 될까요?
…하지만 프로이트만 그럴까요. 실은 온갖 멜로드라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외쳐대지만 정작 제일 무지한 것이 이것이기도 하다는 걸 들뢰즈+가타리와 프루스트로부터 배웠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갈망하지만, 들뢰즈+가타리는 네가 아닌 무엇과 내가 아닌 무엇이 접속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하네요. 헐.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저자들이 보기에 프로이트가 몰랐던 것은 무의식이 무리라는 사실입니다.(채운쌤께서는 들뢰즈가 주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서구 철학의 본질주의/실재론이라 하셨죠. ‘무리’ 개념은 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주요한 개념)
늑대인간은 늑대 무리를 꿈꿀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늑대가 원래 무리동물이기도 하거니와 늑대 영(0) 마리에서부터 시작해 하나, 둘, 셋… 여섯, 일곱 마리가 각각 상이한 강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늑대인간‘이’ 다양하게 변신하는 게 아니라, 늑대무리가 변함으로써 매번의 새로운 늑대인간을 만들어냅니다.
무의식이란 그런 거라는 거죠. ‘나의’ 무의식이 아니라, 상이한 힘/욕망들이 무리로서의 무의식입니다.
그 무의식을 오직 내 내면, 개인적 심리 상태라 오해해선 곤란하죠. 나를 가로지르는 사회‧역사적 힘들이 투여되는 가운데 무의식이 존재들을 주파하는바, 나의 무의식이란 곧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산물이랄 수 있습니다.


채운 쌤에 따르면 바로 이 ‘무리’ 개념을 통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이 체험하는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체로서의 내가 개체인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이러저러한 역사와 정체성과 인격을 소유한 나와 또 다른 역사 등등을 소유한 당신을 만나는 게 아닙니다.
세미나 때 이 이야기를 하면서 락쿤쌤이 ‘잠재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오랜만에 상기해주셨어요.
채운 쌤은 이를 ‘미지의 것’이라 표현하셨던 것 같습니다.(이는 <프루스트와 기호들>이라는 책에서 사용된 표현인데, 마지막 학기에 이 책을 읽게 될지 어쩔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사랑은 무리와 무리의 만남입니다. 상대가 아직 펼쳐내지 않았으나 잠재적으로는 실재하는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펼치려는 노력이지요.
또는 사랑은 기계와 기계의 만남입니다. 한 번도 연결된 적 없는 이항기계가 코드에 의해 접속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 채 리좀을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가령 로미오를 보고 첫눈에 반한 줄리엣이 지고지순한 순애보의 주인공인 공주님이 되는 게 아니라, 가문의 명령에 반대하고 로미오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적극적이고 당차고 성숙하면서도 가벼운 여성으로 거듭난 것처럼.
혹은 연인 멜러즈와의 만남 이래 가정주부로서의 얼굴을 해체하고서 비로소 자연과 우주의 관능을 느끼게 된 코니 채털리(의 몸)의 경우처럼.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이성 내지 동성의 인간만이 아니라 책에 대해, 어떤 공간에 대해, 어떤 경험에 대해, 나아가 삶 전체에 대해서도 이 같은 사랑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지의 것에 활짝 열리려는 것, 그것을 힘껏 안으려는 것, 그것이 니체가 말한 사랑인 것 같기도 하고요.


자, 다음 시간에도 즐겁게 읽고 만나고요.
이번 주 후기는 건화 말고도 정옥쌤(맞져?^^), 그리고 간식은 이현정+김봉선쌤 되시겠습니다. 맛난 간식 부탁드려요~
자, 그럼 다음 주 수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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