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스쿨

[격몽복습시간] 리인 10~16

작성자
은남
작성일
2016-10-19 01:51
조회
444
10. 子曰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천하에서 오로지 주로 삼는 것도 없고, 안된다는 것도 없으니, (도와 함께) 의를 따를 뿐이다.” - 즉 군자는(반드시 이것이어야 해), (절대 안돼!) 요런 양극단을 오가며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義(마땅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답니다.

○ 適 專主也, 春秋傳 ,曰 吾誰適從, 是也, 莫, 不肯也, 比, 從也

적은 오로지 주로 삼는 것이며 <춘추천>에서 말하기를 ‘내가 오로지 누구를 따르겠느냐’ 한 것이 이것이다. 막은 긍정하지 않는 것이며, 비는 따른다는 것이다.

○ 謝氏曰 適, 可也, 莫, 不可也, 無可 無不可, 苟無道以主之, 不幾, 於猖狂自恣乎,

싸시가 말하기를, 적은 가함이요 막은 불가함이,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어서, 만약 도가 없는 것으로 주로 한다면, 지나치게 흘러서(도를 넘어서) 스스로 방자한 것에 가깝지 않겠는가!

此, 佛老之學, 所以自謂心無所住而能應變, 而卒得罪於聖人也, 聖人之學, 不然, 於無可無不可之間, 有義存焉, 然則君子之心 果有所倚乎

이것은 불로의 학문이 스스로 마음에 머무르는 바가 없이 능히 변화에 응한다고 하는 까닭이나, 이는 마침내 성인에게 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학문은 그렇지 않아서,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는 사이에 의라는 것이 존재하니, 그런즉 군자의 마음은 의지하는 바가 있는 것이도다!

11. 子曰 君子 懷德 小人 懷土 君子 懷刑 小人 懷惠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덕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소인은 편안함에 탐닉하며, 군자는 규범을 생각하고 소인은 빠져나갈 궁리(봐주는 것)만 생각한다.

○ 懷는 思念也, 懷德, 謂存其固有之善, 懷土, 謂溺其所處之安, 懷刑, 謂畏法, 懷惠, 謂貪利, 君子小人, 趣向不同, 公私之間而已矣

회는 생각하는 것이며, 회덕은 그 진실로 있는 선함이 존재함을 말하고, 회토는 그 처하는 바의 편안함에 빠지는 것을 말하며, 회형은 법규(관습법을 포함한)을 경외하는 것이며, 회혜는 이익을 탐하는 것을 말한다. 군자와 소인은 취하고 향하는 것이 같이 않음은, 공과 사의 사이일 뿐이다.

○ 尹氏曰 樂 善, 惡 不善, 所以爲君子, 苟安務得, 所以爲小人

윤씨가 말하기를, 선을 좋아하고 불선을 싫어함은 군자가 되는 까닭이요, 구차하게 편안함을 얻으려고 힘쓰는 것은 소인이 되는 까닭이다.

12. 子曰 放於利而行 多怨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는 이익에 의지하면(끌려서 행동하면) (다른 사람의) 원망을 많이 듣게 된다.

○ 孔氏曰 放 依也, 多怨, 謂多取怨  공씨가 말하기를 방은 의지함이요, 원망이 많다는 것은 원망을 취함(듣게 됨)이 많다는 것을 말한다.

○ 程子曰 欲利於己, 必害於人, 故 多怨  정자가 말하기를 자기에서 이롭고자 하면 반드시 남에게 해를 끼치니, 그러므로 원망이 많은 것이다.

13. 子曰 能以禮讓 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爲國 如禮何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예와 겸양을 한다면 나라를 다스림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며, 예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다면 예를 어찌 하겠는가!

○ 讓者, 禮之實也, 何有, 言不難也, 言有禮之實, 以爲國, 則何難之有, 不然則其禮文,雖具, 亦且無如之何矣, 而況於爲國乎

양(서로 사양하는 것, 서로 자기를 낮춰 양보하는 것)이란 예의 실제이다. 하유(何有)는 어렵지 않음을 말한다. 예의 실제가 있어서 나라를 다스리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그 예의 형식이 비록 갖추어져 있더라도, 또한 장차 어찌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이겠는가!”

14.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지위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그 지위를 행할 수 있는지(그 지위에 제대로 설 수 있는 방법,능력)를 걱정하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가히 (남들이)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기를 걱정해라.”

○所以立, 謂所以立乎其位者, 可知, 謂可以見知之實. 소이립(所以立)이란 그 지위에 설 수 있는 방법(능력)을 말한다. 가지(可知)란 남에게 알려질수 있는 실력(실제)을 이른다.

○程子曰 君子,求其在己者而已矣 정자 말하기를 군자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구할뿐이다.

15. 子曰 參乎 吾道 一以貫之 曾子曰 唯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다’ 고 하시니 증자께서 “예” 하고 대답하였다.

○ 參乎者 呼曾子之名而告之, 貫, 通也, 唯者, 應之速而無疑者也, 聖人之心, 渾然一理, 而泛應曲當 用各不同,

삼호란 증자의 이름을 불러서 그에게 알려주는 것이며, 관(貫)은 하나로 통(通)함이다. 네(唯)라고 하는 것은 응하는 것이 빨라서 의심 가는 것이 없는 것이다. 성인의 마음은 혼연하게 하나의 이치가 있어서, 널리 응하고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曲)에 합당하여 쓰임이 각각 같지 않으니(즉 이치는 하나인데 이치가 적용될때는 구체적으로 적용된다는 뜻, 이치를 꿰뚫고 있으면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曾子, 於其用處, 蓋已隨事精察而力行之, 但未知其體之一爾, 夫子知其眞積力久, 將有所得, 是以, 呼而告之, 曾子, 果能默契其指, 卽應之速而無疑也

증자는 그 쓰임에 있어서 일마다 세밀하게 살펴서 힘써 행하였으나, 다만 그 근본이 하나라고 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뿐이다. 공자께서는 그가 참으로 쌓아나가고(자신의 수행을 쌓아나가고) 힘을 쓰는 것이 오래되어서, 장차 얻는 바가 있음을 알아서 그래서 불러서 말씀해 주셨다.  증자는 과연 그 뜻을 묵묵히 받아 들여서 즉시 응하는 것이 빨라서 의심이 없었던 것이다.

16.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공자께서 나가시자, 문인들이 “무슨 말씀입니까?” 하고 물으니, 증자께서 대답하시기를. “공자의 도(道)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

○ 盡己之謂忠, 推己之謂恕, 而已矣者, 竭盡而無餘之辭也, 夫子之一理渾然, 而泛應曲當, 譬則天地之至誠無息 而萬物各得其所也, 自此之外, 固無餘法, 而亦無待於推矣.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 충(忠, 자기진실성)이라 이르고, 자기 마음을 확장하는 것을 서(恕, 타인에 대한 진실성)라고 이른다. 이이의(而已矣)란 완전히 다하여서 나머지가 없다는(단정하는) 말이다. 공자가 하나의 이치로 혼연하게 가득차 있어, 널리 응하고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합당하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천지가 지극히 성실하여 쉼이 없어(至誠無息) 만물이 각자가 자신의 마땅한 자리를 얻는 것과 같다. 이것으로부터 그 밖에는 진실로 남은 법이 없고(이게 전부이며), 또한 확장하는 것을 기다릴 것이 없는 것이다.

曾子 有見於此而難言之, 故, 借學者盡己推己之目, 以著明之, 欲人之易曉也,

증자가 이것에서 본 것이(깨달은 바가) 있었으나, 그것을 말씀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일이관지를 못알아 들으니까) 그러므로 학자들이 자기를 다하고 자기를 확장시키는 조목(忠恕)으로 밝힌 것이니, 사람들이 쉽게 깨닫게 하고자 하신 것이다.

蓋至誠無息者, 道之體也, 萬殊之所以一本也, 萬物各得其所者, 道之用也, 一本之所以萬殊也, 以此觀之, 一以貫之之實, 可見矣, 或曰 中心爲忠 如心爲恕 於義 亦通

지성무식이란 도의 근본(體)이니 만가지의 서로 다른 것들(萬殊)이 하나의 근본(一本)이 되는 까닭이요, 만물이 각각 제 곳을 얻음은 도의 쓰임(用)이니, 일본(一本)이 만수(萬殊)가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보건대 일이관지의 실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 자기 마음의 가운데를 두는 것이 충이 되고, 타인과 마음을 같게 하는 것(如心)이 서가 된다.” 하였으니, 뜻에 또한 통한다.

채운쌤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만수는 일본이요 일본은 곧 만수로 체와 용을 동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비유가 월인천강지곡(달이 천개의 강에 도장을 찍는다)으로 달은 하나인데 그 달을 비추는 것은 만가지이며, 그 달이 없으면 강에 비추는 것도 없고, 강에 비추는 것을 통해 우리는 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동시적이라는 것이지요. 서로가 서로를 근거지운다는 것이랍니다. 달이 바로 도라는 것으로 도가 어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행위속에 도가 있다는 것이라는데, 아뭏튼 머리뽀개집니다. 노자에서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듯요!!!...

○ 程子曰 以己及物,仁也, 推己及物, 恕也, 違道不遠, 是也.

정자가 말하기를 “자기로써 남에게 미친다는 것(나와 만물의 경계를 없앤다는 뜻)이 인(仁)이요, 자기를 확장하여 남에게 미침(내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확장하는 것)이 서(恕)이니, 도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다.

忠恕 一以貫之, 忠者 天道, 恕者 人道, 忠者, 無妄, 恕者 所以行乎忠也, 忠者, 體, 恕者, 用 大本達道也, 此與違道不遠異者 動以天爾

충서는 일이관지이니, 충이란 천도요 서란 인도이며, 충이란 거짓이 없음이요, 서란 충을 행하는 것이다. ( 즉 자기진실성이 있어야 다른 것에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충이 먼저다라는 뜻이라고) 충은 근본이요(體) 서는 쓰임이니(用), 커다란 근본과(大本)과 어디에도 통하는 도(達道)이다. 이것이 중용(中庸)의 충서위도불원(忠恕違道不遠-충서는 도와의 거리가 멀지 않는다)과 다른 것은 움직이기를 자연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움직이는 것이 차이가 난다는 것으로 도의 작용자체는 자연의 이치(하늘)를 따르는 것이며, 충서는 내 마음의 진실성을 가지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고)

又曰 『維天之命 於穆不已 忠也 乾道變化 各正性命 恕也』

또 말씀하시길. “하늘의 명령은 아! 심원하여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충이요, 하늘의 도가 변화하여 각각 타고난 본성을 바르게 하는 구나 하는 것은 서이다.

又曰 聖人敎人 各因其才 吾道一以貫之 惟曾子爲能達 此 孔子所以告之也

또한 말씀하시길 성인이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각각 그 능력(기본적 소양, 근기)에 따라서 하셨다. 오도일이관지라는 말은 오직 증자만이 이것을 통달할 수 있었으니, 그래서 공자께서 증자에게 말씀해주신 까닭이다.

曾子告門人曰 夫子之道는 忠恕而已矣 亦猶夫子之告曾子也 中庸所謂 忠恕 違道不遠 斯乃下學上達之義

증자가 증자문인에게 고하기를 부자의 도는 충서일 따름이라고 하셨으니 이 또한 부자께서 증자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중용에서 소위 충서라는 것은 도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으로 이것이 곧 하학상달의 뜻이다.

하학상달이란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는 천리를 통달한다는 것으로, 구체적인 것을 배워서 형이상학적인 것을 깨우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손님 접대도 하고 설겆이하고 마당쓸고서(하다가, 해야, 하고나서 등등 접속어가 중요하다고 해요. 여기서 실천방법이 나온다고) 도를 깨치는 것이 ‘하학상달’ 이라고 합니다.

저는 공자님의 ‘오도일이관지’ 이 한마디가 이렇게 어마무시한 말씀이었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채운쌤은 일이관지 이 한마디를 해석하느라 시경, 중용, 주역에서 보이는 유학의 중요한 개념들이 총동원 됐다고 해요-  충서, 지성무식, 만물각득기소, 천도, 인도, 도의 체와 용의 문제, 하학상달-

유학은 저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같은 형이상학적 진리를 우리의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윤리로 끄집어 내는 노력을 정말 열심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수고를 거쳐서 탄생한 충서가 오늘따라 달리 보여요...

격몽스쿨도 쭈욱~  이렇게 상세한 해석도 쭈욱 계속됩니다.
전체 2

  • 2016-10-19 13:33
    은남샘, 멋져요 ;ㅅ;

  • 2016-10-21 10:07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