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동사서독  &  동사서독 숙제방

10.15후기 + 10.22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6-10-20 11:39
조회
782
후기와 공지가 너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ㅠㅠ

이번 주에는 『하상공장구』를 추가하여 다시 『노자』 1~8장까지를 읽고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저희 조(깨달은...)에서는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인지, 장구함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양생가 치국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하상공이 말하는 ‘守一’이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제가 질문만 나열하는 것은 물론 이렇다 할 답이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채운쌤의 강의는 이런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예상치 못했는데, 채운쌤은 슬라보예 지젝의 강연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노자』를 만나는 우리의 시공간을 배제하지 말자는 취지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자꾸만 글이 공허해지는 것은 『노자』를 읽고 있는 저의 위치가 빠져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을 이해하는 것과 『노자』같은 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은 별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십 수 년 사이에 전지구적으로 분노가 확산되고 있는데, 지젝은 이러한 분노에 어떤 명분이나 이념, 이데올로기 따위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담론화되지 않는 분노의 폭발은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이 현상들이 나타내는 것은 자본주라는 체제가 인간의 본성과 아주 근원적인 층위에서부터 불화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계급의식이나 이데올로기 이전의 거의 신체적(?)인 반응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좌파의 한계를 보여주는데, 정치적 담론들이 이러한 분노에 대해서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좌파의 담론은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분노를 집결시키거나 분노한 이들에게 어떤 이념적인 틀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혹은 그러한 구도가 먹혀들더라도 어떤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실패합니다(지젝은 그리스의 예를 들었습니다.). 자꾸 좌파라고 말하니까 조금 이상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어떤 명분이나 이념도 지젝이 주목한 기이한 현상을 설명해내는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분노로 뭉친 이들이 어떤 구호를 외치는지, 자신들의 행위를 어떻게 의미화 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젝은 분노로 뭉친 사람들이 흩어진 다음날에 무엇을 하는지를 궁금해 합니다.

명분 없이 폭발하는 분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건 그 돌출된 사건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사건의 다음 날, 즉 그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그들의 일상일 것입니다. 영화 <엘리펀트>는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카메라가 범행의 동기나 원인, 혹은 ‘사건의 진실’이라고 여겨질 만한 어떤 핵심적인 줄기를 따라가지 않고, 그 사건의 가운데에 놓인 인물들의 일상을 그려낸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와 지젝이 제기하는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고 규정하는 어떤 것이, 혹은 ‘진정한 문제’라고 여기는 어떤 것이 실제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요?

채운쌤은 콜롬비아의 휴전협정 투표를 예로 드셨습니다. 콜롬비아는 무려 1964년부터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데, 얼마 전 반군과 정부가 휴전협정을 맺었으나 국민투표가 이 결정을 뒤집었다고 합니다. 국민들의 이해관계는 분명 휴전에 있을 텐데,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반드시 평화를 지향해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지젝이 말한 것처럼 ‘그 다음날’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명목상으로는 넘치는 자유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젝은 디지털 혁명이 자본주의의 내적 논리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배타적 소유를 바탕으로 발전해왔는데, 인터넷 상의 지적 재산은 그와는 반대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은 공유될수록 더 가치가 커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술의 발전에 의해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지적재산의 이러한 성격이 얼핏 우리의 자유를 확장해주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따져 보아야 합니다. 정보의 범람은 오히려 우리를 왜소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수많은 선택지는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는 걸까요? 채운쌤은 지금 요구되는 것은 단순화의 능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유재로서의 정보의 범람은 자본주의를 붕괴시킬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미 자본주의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는 욕망을 미세하게 나누고 주체를 분열증화하면서 작동합니다. 그런 점에서 웹상의 범람하는 정보는 우리에게 그만큼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욕망을 세분화시키고 자본주의에 가장 적합한, 분열증적인 주체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보를 단순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정보들은 우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주어지며 우리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오히려 그러한 정보들에 대한 능동적인 무지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조지 다이슨이라는 사람은 인터넷 시대의 정보습득의 문제를 카누와 카약의 제조과정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지역에 살던 알류트족은 해변에서 주워 모은 나무 조각으로 골조를 세워 카약을 만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림지대에 살던 틀링깃 족은 나무를 통째로 가져와서 배의 형태가 될 때까지 그것을 파내는 방식으로 카누를 만들었습니다. 조지 다이슨이라는 사람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카누를 만드는 기술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그는 정보습득의 문제에만 국한시키고 있지만, 단순화하는 능력은 훨씬 더 넓은 범주에서 요구되는 게 아닐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노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채운쌤은 우리가 한 인간의 생애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렇지, 실상 『노자』가 쓰인 시대와 지금은 지질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인류의 역사에서도 동시대에 속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령 하상공이 말하는 양생을 지금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양생은 항상 소유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하고, 힐링을 하고 … 하상공의 양생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양생에 대해서 근본적인 물음을 제공합니다. 하상공이 말하는 양생은 항상 줄이고, 최소화하고, 욕망을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합니다. 자본주의는 계속해서 뭔가를 더하고, 뭔가를 더 많이 소유하는 것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게끔 합니다. 그러나 하상공은 완전히 반대 방향을 제시하고 있죠. 이러한 차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 혹은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무위’나 ‘무지’, ‘무욕’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런 개념들을 구체화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급마무리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후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빠르게 공지하겠습니다.

이번 주 과제는 『노자』를 13장 까지 읽고 3장의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는 것, 그리고 삶의 윤리로서의 道에 대한 견해를 담은 공통과제를 써오는 것, 그리고 9장~13장까지의 번역, 입니다.

하상공주 9장 ~13장 스캔본은 오늘 저녁에 올릴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ㅠㅠ. 모든 게 너무나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아래는 채운쌤이 숙제로 내 주신 지젝의 강연영상 링크입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13670&pc_searchclick=sub_news_cnbc_01_01
전체 3

  • 2016-10-20 12:00
    이럴수가! 지 관심있는 얘기만 잔뜩 쓰고 노자 얘긴 정말 코딱지만큼 붙여놓고!! 후기에 못 쓴 노자얘기는 과제에 담아올 것! /이번주부턴 진도 제대로 나갑니다. 하도 노자를 맥락없이 뜬구름 잡듯이 읽으시는 듯하여 서설이 길어지고 있슴다. 우리는 노자 논평가가 되려는 게 아님다. 대체 왜 지금 노자를 읽는지, 자신의 사고에 길을 좀 내보셔요! 어떤 책도 우리 삶 속으로 훅 치고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 가슴으로 쑤욱 들어오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슴다. 냉철하게 생각하시고 절절하게 느끼시면서 읽으시길!!

  • 2016-10-20 12:22
    정말... 이거 노자 후기 맞슴까...! 쓸 이야기가 한참 있단 걸 알면서도 밀린 또다른 일 때문에 중도에 접은 듯한 느낌적 느낌이~~

  • 2016-10-20 21:46
    오오..많이 기다렸어요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