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유학일기 - 2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6-12-27 04:56
조회
536
안녕하세요. 두 번째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저번 시간에 그랬지만 이번 시간에도 참 많은 내용이 나왔는데 다 소화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많은 내용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닙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 중 일부만 소개하겠습니다. ㅋ

이번 강의의 제목은 “생물학적 결정론”입니다. 미리 던져놓듯이 얘기한다면, 생명에 대한 시선이 어떤 어땠는지를 저번 시간처럼 역사적, 사회적으로 따라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제목이 생물학적 결정론인 까닭은 어떤 특정요인으로 생물의 능력이나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19세기 프란시스 골턴이란 사람은 유전자가 사람의 능력을 결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람을 두고 우생학의 선구자라고 얘기합니다. (살짝 사족을 붙이자면, 다윈의 사촌입니다.) 익히 알다시피, 우생학은 우수한 유전자와 열등한 유전자가 환경과 무관하게 태어날 때부터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우수한 유전자만을 남기고 열등한 유전자는 점점 사라지도록 선별하고 거세를 진행하자는 것이 우생학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생학을 기반으로 인종차별, 성차별이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시선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들리지만, 당시에는 일반적인 관념, 심지어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교육이나 환경에서 자유를 외치던 많은 사상가들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들까지 우생학 연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흑인을 보고 와서는 충격을 먹고 우생학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우생학

지금 우리의 사고도 우생학에서 크게 자유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요즘에도 범죄자를 대상으로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옵니다. (특히 성폭력 범죄자와 관련될 때 더욱 자주 나오죠.)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유전자에 범죄와 관련된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우생학의 또 다른 맥락입니다. 그리고 화학적 거세를 비롯하여 우생학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끔찍한 일을 많이 저지르는데 주된 근거로 사용됐습니다.

1900년 초에 우생학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실제로 합법적인 강제 거세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맹장수술인 줄 알았는데 화학적 거세를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유명한 일화로는 ‘벅 대 벨’이란 사건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심지어 지능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음란한 벅이란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았지만 자신의 아이를 키울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음란하고 지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판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녀가 아이를 키우고 싶다면 그녀의 열등한 유전자가 퍼지지 않도록 불임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모두 동의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고급어휘를 사용하고 외국어까지 능통할 정도로 지능이 낮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임신한 것도 실제로는 그녀가 입양된 양부모의 친척, 한 백인 남성의 강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즉, 벅은 열등하지 않고 음란하지도 않았는데 백인 사회의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해 제물로 바쳐진 것입니다. (이 얘기는 <플라밍고의 미소>에서 굴드가 자신의 노고와 더불어 자세하게 풀어냅니다.) 나중에 단종법은 폐지됐지만, 이것을 그대로 나치가 가져가서 홀로코스트를 일으키는데 사용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우생학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피부색을 살구색이 아닌 살색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신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다 떠벌렸는데, 결국 돌아오면 화학적 거세에 대한 얘기 이전에 우리는 그것이 어떤 사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를 잘 살피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벅 대 벨’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 우생학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것은 사회의 주요계층, 백인 남성입니다. 우월함은 그들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생학을 비롯한 각종 생물학적 결정론은 사회의 주요계층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쓰는 유용한 도구인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나치가 우생학을 가져와서 혈통을 조사했는데, 3대가 순수 독일인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의 할아버지의 혈통이 독일인이었는지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히틀러는 순수 독일인이 아니라는 사실!) 나치의 홀로코스트뿐만 아니라, 두개골의 모양이 유인원에 가까울수록 열등하다는 두개학, 얼굴의 특징이 범죄적 요인을 설명해준다는 범죄인류학 등 모두가 생물학적 결정론적인 사고입니다. 이것들 모두가 이름만 바꿔서 나타날 뿐이지 계속 인류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사고가 끊이지 않는지 궁금증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얘기했듯이, 사회의 주요계층에게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대할 때, 경제력 있는 남성이 경제력 없는 남성을 대할 때 결정론적인 얘기가 쉽게 나옵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미 사회적, 구조적인 불평등을 개인의 유전자 혹은 어떤 것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론에서 중요한 것은 표본이 얼마나 많고, 이론을 표본에 대입했을 때 오차가 적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수의 표본이 필요했고, 많은 표본에 맞을수록 이론은 더욱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통계학이 탄생하고, 인류학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두개계측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브로카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선별적인 자료만을 사용했습니다. 그가 선별적인 자료만을 사용한 까닭은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백인 남성이 우월하다는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백인은 침팬지와 닮지 않았고 흑인은 침팬지와 차이가 없다는 이론을 내세우기 위해 자신의 이론에 맞는 자료만을 사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백인의 입술은 얇고 침팬지의 입술도 얇습니다. 오히려 흑인이 입술이 두꺼운데, 그러면 백인이 진화를 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인류의 진화에 대한 얘기가 분분합니다. 굴드 에세이집을 참고했을 때, 호모 에렉투스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아마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에도 서구에서는 이것을 반대하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IQ

우리에게 IQ는 그야말로 인간의 정신성을 수치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IQ의 기원을 보면 그것을 만든 프랑스의 알프레 비네란 사람은 학습이 떨어지는 학생의 공부를 보조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 기준을 만들면서 이것이 우열을 구별할 수 있는 낙인이 되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보고서 첫 장에는 먼저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습니다.

① 수치는 실용적인 고안물이며, 어떠한 지능이론도 뒷받침하지 않는다. 이 수치는 천성적 이거나 항구적인 그 무엇도 규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수치로 ‘지능’또는 그 밖의 어떤 물화된 실체의 척도를 측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② 이 척도는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미한 지체아들이나 학습 불능아들을 식별하기 위한 조잡하고 경험적인 지침이다. 이 척도는 정상적인 아이들을 서열화하기 위한 고안물이 아니다.

③ 도움이 필요하다고 확인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이든, 특별한 훈련을 통 해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 낮은 득점이 아이들의 선천적 무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의 우려대로 서열화의 도구로 쓰였습니다. 당시 미국으로 많은 나라에서 이민을 갔는데, 도착하는 즉시 IQ검사를 통해서 격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험은 미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이루어져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배에서 내리자마자 낯선 땅을 밟은 사람들이 곧바로 모여서 시험을 치르는데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요. 대부분이 통과하지 못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통과된 것이 1924년 이민제한법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국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혼란스럽던 시기였습니다. 그 책임을 이민자들에게 돌린 것이었습니다. 이민자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워졌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면, 미국의 성립 자체가 이미 이민자들이 원주민을 내몰고 빼앗음으로써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전자

현대로 넘어와도 여전히 결정론적 담론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그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안 읽어서 잘 모르지만 ㅎㅎ;; 생명을 분자적 관점, 유전자로만 보는 것입니다. 개체의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함이고, 현재 살아가는 생물들은 그 유전자를 보존하고 있는 그릇에 불과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서라면 개체는 전체를 위해 희생할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개미 같은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리차드 르원틴이란 사람은 <DNA 독트린>이란 책을 내면서 유전자를 청사진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유전자를 따로 떼어내어 ‘마스터분자(master molecule)’처럼 간주하는 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범하는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오류”

우리 몸에 있는 수많은 부위는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손과 발이 따로 자라서 따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손이 자라면서 발이 자라납니다. 손이 자라나면서 발은 그대로 있을 수 없다는 군요. 비슷하게 어느 특정부위에 특정한 효과를 내는 유전자도 없다고 합니다. A유전자가 B유전자, C유전자와 함께 기능해서 팔을 움직이게 하고, B유전자와 F유전자, A유전자가 기능해서 발을 움직이게 하는 식으로. (이 설명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ㅋㅋㅋ 그냥 이해를 도우려고 쓴 것이니 크게 참고는 하지 마시길.) 그러면 우리의 신체 중에서 콤플렉스라고 느끼는 부위는 우리가 장점으로 여기는 부위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시력이 나쁘고 청력이 좋아서 시력을 교정하고 싶다. 그래서 시력도 좋고 청력도 좋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도 청력이 좋은 것은 시력을 나쁘게 만든 것이 요인일수도 있고, 반대로 시력이 나쁜 것은 청력을 좋게 만든 요인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전자(이 유전자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습니다. 단순히 단백질 코드를 유전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를 유전자라고 할지, 세포의 핵을 유전자라고 할지. 근데 세포를 얘기할 때 세포막이 또 매우 중요하니까 이 막을 유전자라고 할지.)는 몸 전체와 연관된 것입니다. 사람의 키와 관련된 유전자만 해도 수백 개가 있다고 합니다.

가끔 저는 시력이 나빠서 이 눈을 돼지의 눈과 바꿔서 교정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돼지와 인간의 눈 구조가 매우 비슷해서 이식이 가능한지를 살피는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다른 종의 신체를 이식하는 것을 이종이식이라고 하는데, 이미 우리의 몸은 하나의 유기체 덩어리기 때문에 부위 하나만을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질적인 것을 이식했을 때 거부반응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과학으로 안전하게 이식이 가능한 것은 혈액을 관통하지 않은 각막 정도고, 그 밖의 장기를 이식하면 거부반응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몸의 면역체계를 마비시키는 것밖에 없습니다. 몸의 면역체계를 마비시키면 거부반응은 없겠지만, 그렇게 되면 몸 밖의 이질적인 것들이 그대로 들어와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면역체계야말로 타자와 나를 구분 짓는 경계, 나를 나로 있게 해주는 중요한 것인데 이것을 마비시키는 것은 사실상 존재를 부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음....... 뭔가 많이 길어졌습니다. 근데 김동광 선생님도 1학기로도 다 담을 수 없는 분량을 6주 안에 얘기하시는 것이라고 해서 이렇게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짧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는 능력의 한계입니다. 하하하. 어쨌든 다음 유학일기로 또 찾아오겠습니다.
전체 4

  • 2016-12-27 11:47
    그러고 보니, 한동안 엄청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병을 떼어내려 하지 말라는 거였는데. 각자 안고 있는 크고작은 병이 자기 존재 전체와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뭐 이런 이야기. 뭐,, 소개한 저 책에서 하는 얘기랑 비슷한 맥락이겠지.. 0.0

  • 2016-12-27 13:05
    마지막 부분이 재밌네... 유전자는 '마스터 분자'가 아니다~

  • 2016-12-28 11:54
    주역꿈나무이자 격몽꿈나무인 동시에 과학꿈나무인 규창이의 유학일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넹~ 애독하겠소

  • 2017-01-01 08:38
    오 재밌잖아... 우리가 병이거나 장애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건강하다는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0ㅁ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