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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의 '난중일기' 4화 - 주둔지에서의 나날들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7-02-07 20:20
조회
441
주둔지 FEBA에서의 나날

내가 있는 부대는 전방 막사에서 6개월, 그보다 후방인 주둔지(FEBA)에서 3개월을 한주기로 이동하며 임무수행을 한다. 주둔지인 이곳 대대 병영은 학교처럼 건물이 있고 앞에 넓다란 연병장이 있고 뒤에는 식당이 있다. 건물은 3층인데 우리 중대와 본부중대가 각각 3층 2층에 생활하고 있다. 영화에서 본 것 같은 옛날 학교 바닥처럼 반질반질한 돌로 복도가 펼쳐져 있고 지붕은 피스가 빠지거나 빗물 샌 자국이 있는 텍스가 울퉁불퉁하게 메워져 있다. 생활관은 무릎높이의 침상이 양쪽에 있고, 관물대가 서 있고, 가운데 창가에는 병사들 대부분이 자기시간을 소각시키는 TV가 우뚝 서 있다.

FEBA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타 소대와 함께 지내면서 마주칠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사 간, 점호 간에는 타 중대와도 마주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여기서 요는 우리 중대한테는 인사를 우렁차게 해야 하고 타 중대한테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누군지 구분하지 못했던 나는 우물쭈물 인사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애먹고 있었다. 그런 FEBA에서의 일상사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1. 편의시설

FEBA의 가장 큰 장점은 오락거리가 많다는 거다. 전방에서 컴퓨터 앞에 바글바글 몰려 있거나 황금마차가 오는 날이면 밖에서 떨면서 줄서 기다리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를 정도로 놀거리들이 많다.

첫 번째는 PX다. 생필품부터 먹거리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이곳은 세금이 붙지 않아 시중가보다 훨씬 저렴하다. 돼지바가 300원 월드콘이 700원 정도로 과자를 한가득 사도 대개 이만원이 안 넘는다. 그러니 저녁 먹고 PX가 열리면 아이스크림이나 초코바라도 하나 물고 나오는 것이 문화인양 하루에도 두세 번씩 드나들며 쥐꼬리만한 군인월급을 그렇게 소모하고 있는 풍경이다. 또 안에 몇 개의 작은 테이블과 전자렌지가 있어 냉동만두, 냉동 치킨, 탕수육 등 한눈에 봐도 몸에 좋을 거 없는 것들을 펼쳐놓고 집어먹는 것 역시 하나의 낙이자 문화이다. 나 같은 마지막 조각이 없어질 때까지 젓가락을 놓아서는 안 되는데(이런 걸 전투력 측정이랍시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방금 전에 저녁밥을 정량배식 받아 막내답게 후하게 먹고 온 뒤인지라 심호흡을 해가며 마무리를 힘겹게 한다. 그렇게 냉동식품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속이 여간 더부룩한 게 아니다. 그러다보니 살이 찌지 않을 수가 없다, 군대가서 살 쪘다고 하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이런 패턴으로 찐거다.



PX바로 앞에는 노래방이 있다. 가평의 펜션같은 곳에서 본 적 있을 것 같은 오래된 노래방 기계가 A방, B방에 하나씩 있다. 천원에 다섯 곳. 사회의 노래방보다 훨씬 싸고 최신곡 업데이트도 밀리지 않고 빠르게 된다. 이용도도 아주 높아 저녁 개인시간이나 주말에는 3층까지도 웅웅거린다. 그건 바로 TV로 매달 신곡을 감상하고 노래방에서 연습하기 때문이다. 참 이 땅끝 오지의 군부대에서 문명과 이렇게 밀접할 수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이버지식정보방, 통상 사지방이라는 곳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 보통 나를 포함한 이곳 인간들은 페이스북 등 SNS나 스포츠뉴스, 웹툰, 유튜브 동영상 등을 보며 사회와 접촉하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물론 그것이 재미도 있고 시간이 잘 가기도 한다.

그 외에도 휴게실에는 당구대, 게임용 컴퓨터, 오락기 등 편의 시설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은 없다. 그걸 바라는 사람도 없다. TV가 떠들고 수많은 시선들이 떠도는 생활관에서 공부를 한다거난 글을 쓰는 일은 상당한 리스크와 각오를 수반한다. 결국 부소대장과 상담을 하며 얘기를 드릴 결과, 간부들은 연구를 하지 않는 간부연구실에서 책을 보면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물론 매번 보고하고 이용해야 한다. 그 어느 간부보다 이 공간을 더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이 글도 이곳 간부연구실에서 쓰고 있다.

2. 종교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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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대체 무엇에 홀린 것인지...?

군대에서는 1인 1종교를 권장한다고 한다. 나 같은 후임층들은 종교활동을 가지 않겠다고 하면 수많은 눈초리와 피곤한 군생활의 길을 가야하므로 기독교나 불교를 택하는 것이 낫다. 교회는 연병장을 가로질러 영내에 위치해 있는데, 네댓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가 두줄로 있어서 교육할 때 쓰이기도 한다. 가깝고 끝나는 시간도 빨라 종교활동 인원의 대부분이 선택한다. 그런 장점이 있는 반면 내가 교회를 가지 않는 이유는 목사님의 설교가 싫어서다. 정확히 말하면 그 하이톤의 뒤집어지는 발성과 어투가 상당히 듣기 싫다.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야기들과, 양팔을 들어 올려 안 그래도 헐렁해 보이는 마이의 어깨패드가 귀까지 솟아있는 채로 꽉 힘주어 눈을 감고 쥐어짜는 듯이 외치는 기도는 듣고 있으면 좀 짜증이 난다. 또 설교시간에 졸기라도 했다간 뒤에서 선임들이 봐뒀다가 나중에 뭐라고 하는 거다. TV소리와 영양가없는 대화 같은 소음과 눈초리가 오가는 생활관이나 딱히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불교를 간다. 대대에서 15~20분 걸어가면 절이 하나 있는데, 부지도 제법 크고 민간 신자들도 많다. 우리 부대에서는 보통 열명 안으로 가고 인근 부대에서는 보통 열명 안으로 가고 인근 부대에서는 30~50명 차타고 와서 법회를 듣는다. 물론 민간인과 함꼐 들을 수는 없고 스님인진 모르겠지만 민머리는 아닌 군종장교라는 사람이 법회를 한다. 지금까지 네 번을 갔는데, 처음 갔을 때는 갑자기 자라고 하는 것이다. 바닥은 따뜻하고 방석은 푸근해 나른하니 잠이 잘 오는 구조인건 맞지만 왠지 진짜 자는 건 안 될 것 같아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자면서 왜 잠을 자는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옆을 보니 다들 누워있고 불도 꺼져 나도 잤다. 한 시간 푹 자고 일어나니 왜 자는지 생각했냐고 한다. 몇 번 대답이 오가고 안 알려주고 끝이 났다. 그리고 공양을 했는데 소문대로 절밥은 정말 맛있었다. 반찬의 정성하며 심심하면서 알맞은 간. 그 뒤로 큰 이변이 없으면 불교만 가기로 다짐했다. 법회에서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말씀을 얻진 못했다. 보통 그 군종장교가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는데 많이 졸리다. 들어보면 별다른 얘기는 아닌 것 같고 부모님, 간부님 말 잘 듣고 살라는 맥락인 것 같다. 삼사십분 이야기가 끝나면 병사 법우를 위한 책자를 보고 노래를 하는데, 페이지며 음꼐며 나온 것이 꼭 교회에서 찬송가 부르는 것과 흡사하다. 흥미로운 건 우리말 반야심경의 내용이다. 그러나 풀이해주면 좋으려만 주기도문처럼 읽고 끝난다. 어찌됐든 절밥은 맛있고 영외로의 외출도 좋고 경치도 좋아서 나는 별일 없으면 불교를 간다.

4. 연등

군대에서 책도 많이 읽고 영어공부도 깊게 할 거라는 허풍이 처음 생긴 것은 연등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 부터다. 연등이라는 말이 밤늦게까지 등을 밝힌다는 의미로 유래되었겠지만 그냥 보충학습 정도로 알고 있었다. 군대에서 수능공부를 해서 시험을 봤다는 사람, 무슨 자격증을 몇 개씩 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그 연등이라는 것을 매일같이 해야지, 어차피 잠자는 시간도 많으니까 생각 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이곳에서 연등의 의미는 그냥 ‘늦게까지 TV보는 것’일 뿐이다. 전에 알고 있던 연등은 말하려면 반드시 ‘공부연등’이라고 구분지어 말해야 한다. 뭐 불빛을 늦게까지 밝힌다는 의미에서 같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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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호 친구 페이스북 무단도용... 미안해요... 모자이크는 확실히 했음!

연등은 이곳 병사들의 낙이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에만 허락되는 연등은 달콤한 주말의 자유를 상징하는 이벤트이다. 연등 때는 과자나 음료 등을 먹고 마시며 자유롭게 TV를 보다가 누워서 잠들면 되는데, 이때의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주말에 PX는 텅텅 비게 된다. 이때 먹는 과자를 ‘연등과자’라고 부르며, 니꺼 내꺼 할 것 없이 사놓은 과자를 먹으며 예능이나 영화를 보면서 웃고 떠드는 풍경이 연출된다. 짧으면 24시, 길면 02시까지 이어지기도 하며 이때 부족한 잠은 주말의 남는 시간에 보충하곤 한다. 처음에는 TV보는 것도 꺼려지고 흥미도 안 생겨 등 돌려 자곤 했는데, 그 시간에 서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먹는다는 것이 선임들과의 관계나 어느 정도의 동질감을 인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고 어느 순간 함께 낄낄거리고 있다.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도 전보다는 덜한 것이 그렇게 나도 이 문화에 물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쪼록 이번 주도 연등을 기다리며 견디는 모습과, 화목하고 달콤하게 연등이라는 낙을 즐기는 풍경은 이곳 문화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처음 의미의 ‘공부연등’은 우리 중대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실시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간부들도 그렇게 인지하고 있다. 아예 공부연등이라는 것의 여건이나 운영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당직 간부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온 것을 두 번인가 들었을 뿐이다. 두 번 모두 한 명의 희망자도 없었다. 상담 때 물어보니까 원래 부대당 연등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희망자는 24시까지 평일-공휴일에도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규정이라는 것이다. 우리 중대에는 연등실이 있지만 간부들이 개인 짐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중이며 책상이나 의자도 없다. 들어가본 적도 없다. 그 간부는 자기한테 말하고 간부연구실을 이용하라고 한다. 그때 이후로 드디어 TV로부터, 눈초리와 소음으로부터 도피처가 생겼고 선임 한명을 설득해 두 번째 연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제 영어책만 구하면 괸다. 과연 남은 군생활동안 영어공부나 책읽기 따위를 얼마나 해낼 수 있을까?

나의 이 연등은 하루하루가 낭비되는 것 같은 우울함에서 나를 꺼내줄 수 있을 거다.

P.S 지난달에 보내주신 택배는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귀중한 과자와 책들이 들어있었는데 과자는 수많은 손이 집어가고 하나정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보내주신 책은 대대에서 검토필 승인을 받아야 해서 양손에 안고 돌아다니는데 이상한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책을 많이 가지고 있어 부자가 된 느낌이라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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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09 15:16
    "불교를 간다" 이게 말이 되나? 절에 간다, 도 아니고, 불교를 택한다, 도 아니고;; 띄어쓰기도 거슬리고! 쓴 사람이나, 그걸 그대로 옮긴 사람이나~ 끌끌~ 담에 휴가 나오면 또 와. 양념치킨 정도는 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