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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s 다이어리 : 소망의 거울 앞에서 <해리포터>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2-09 21:31
조회
551
 

혜원's 다이어리 : 소망의 거울 앞에서 <해리포터> 




 
해리는 ‘소망의 거울’앞에 있었다. 그는 부모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고아 소년으로, 진정한 자신의 신분을 알아 정신없이 마법세계로 온 다음에도 그렇게 절실하게 가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방에서 그는 자기와 닮은 사람들이 자길 향해 웃는 모습을 담은 거울을 마주한다. 소망의 거울은 자기도 모르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형제들에게 눌려 살던 막내에게는 학생회장 겸 스포츠 팀 주장인, 리더인 모습을 보여주고 친척집 더부살이를 하며 학대받았고 학교에서도 언제고 쫓겨날 거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는 소년에게는 항상 자기를 받아주고 돌아갈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덤블도어는 소망의 거울을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소망의 거울을 보통 거울처럼 사용할 수 있단다. 즉, 그것을 들여다보면 정확히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니까 말이다. 도움이 됐니?”


이 ‘행복’, 그리고 ‘현재’라는 충고는 나중에 해리가 자신의 소망을 미래나 환상이 아닌 현재에 일치시키면서 어떤 마법으로 드러난다. ‘마법사의 돌’을 사용하여 불로불사가 되거나 자신의 스승에게 바쳐 인정받겠다는 욕망이 아닌 그저 ‘마법사의 돌’을 갖겠다는 생각만 가득하게 될 때, 그 돌은 해리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리즈는 계속해서, 조금씩 이 소년에게 행복의 감각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웃음을 유발하는 마법은 두려움을 가장한 생물을 물리치고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야 하는 마법은 허무를 뭉쳐놓은 존재를 흩어놓는다. 마법은 두렵고 신기하면서도 무엇보다 웃음과 쾌활함이라고, 학교 호그와트는 해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 3권까지?


알버스 덤블도어가 죽은 6권(<해리포터와 혼혈왕자>)을 읽었을 때 나는 고딩이었다. 번역본이 출간되기도 전에 이미 짜하게 그가 죽었다는 얘기가 인터넷을 타고 돌았지만 그다지 나는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구해다 읽은 영문본을 봤을 때도 우리말이 아닌지라 내가 잘못 해석하는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반지의 제왕> 간달프처럼 살아 돌아오거나, 하다못해 그가 유령이라도 되어서 주인공의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번역본이 출간되고 막상 읽어보니 그는 정말 죽었고, 시신이 수습되었고, 묻혔고, 장례식도 거행되었다. 거기까지 읽고 보니 이대로 <해리포터>는 끝나는가, 뭐 그런 생각이 막 들었었다. 왜냐하면 덤블도어야말로 이 세계 최강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파워 면에서도 그랬지만 지략이나 덕성 면에서도 항상 최고점이고 기준점이었다. 행복과 웃음은 항상 그 반달모양 안경을 쓴 노인이 뒤에 버티고 있었을 때 가능했다. 이 현자만 주인공 편에 있으면 어떻게든 시리즈는 안정적으로 끝낼 것 같았다. 하지만 5권에서 해리가 겨우 찾은 가족(대부)을 죽여버린 작가는 이번엔 그의 실질적인 보호자를 죽였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6권에서 예전에는 내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장면이 보였다. 그건 덤블도어가 죽고 거의 ‘멘붕’상태였던 해리가 서서히 각오를 다지며 그의 원수를 갚고 또 몇 년이 걸리든 주적 볼드모트와 끝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장면 다음이었다. 해리는 자기가 진정한 ‘집’이라고 여기는 호그와트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더 이상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어른 마법사들과의 협력도 끊은 채 혼자 자기 운명을 해결하기로 했다. 행복도 안정도 웃음도 다 볼드모트가 사라진 다음에야 가능했다. 아니면 그와 나 둘 다 죽거나! 그때 해리가 어딜 가든 함께 하는 친구들 론이 말한다. 네가 어딜 가든 우리는 따라 갈거야. 그리고 무슨 모험을 떠나든 먼저 우리 형 결혼식은 참석해야 해!


“하지만 친구, 다른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 엄마, 아빠 집부터 들러야만 한다고. 고드릭 골짜기로 가기 전에 말이야.”

“왜?”

“빌과 플뢰르의 결혼식이 있잖아. 잊었어?”

해리는 갑자기 정신이 드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결혼식 같은 일상적인 일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렇구나. 우리가 결혼식에 빠질 수야 없지.”

마침내 해리가 말했다.


<해리포터>, 얼마나 마법의 순간이 많았는가. 학대받는 벽장 속 꼬마가 ‘넌 마법사’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은 다음부터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마법사의 운명뿐이었다. 나는 <해리포터>를 주인공이 구질구질한 학대를 벗어나 멋진 마법세계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와 함께 그의 앞에 닥치는 온갖 비일상적인 고난과 미스터리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꼬마 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가서 매년 목숨을 걸고 모험하는 모습을 매 권마다 보았던 것이다. 그때는 덤블도어의 수상쩍은 비호와 대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거대한 위험 볼드모트의 존재는 물론이요 대체 학생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가 싶은 아슬아슬한 고성 호그와트 자체가 내가 보기에 주인공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리고 6권에서 덤블도어가 있기에 가장 안전했던 호그와트가 붕괴되었다. 해리에게 일상, 행복, 현재 같은 말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 같은 암담함 뿐인 상황에 론이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덤블도어가 죽고 해리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승부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전에는 없었던 무뚝뚝한 말투와 결의에 찬 얼굴 같은 것 말이다. 매번 맞닥뜨려야 했던 위기의 순간을 자기가 스스로 찾아가겠다는 결심이 그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뜬금없는 결혼식 소식에 해리는 갑자기 그 예정된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일단의 기쁨을 느낀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되어 버티고 있는 행복의 마법을 여전히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모든 것이 끝났다고 믿었던 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무가 아닌 행복을 향해 얼굴을 돌릴 수 있다는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사상 최악의 위기에 몰린 6권 마지막은 해리의 기쁨으로 끝난다.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그 어둡고 험난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혹은 한 달이 될지, 1년이 될지, 혹은 10년이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볼드모트와의 마지막 대결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즐길 수 있는 평화롭고 찬란한 마지막 날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자, 해리는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가슴이 뛰었다.

 
전체 3

  • 2017-02-14 21:17
    책은 띄엄띄엄 읽어서 대사를 음미하는 맛이 적었는데 소망의 거울에 대한 저런 얘기가 있었네요. 해리포터 세계관 안의 마법사들이 자신의 마법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용도로 사용하면서 그것이 가진 웃음과 유쾌함도 사라진 것처럼, 우리세계도 어떻게 보면 마법과 같을 정도로 놀란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데 그런 기술들을 가지고도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점에서 해리포터와 우리세계가 겹쳐보이네요.

  • 2017-02-15 05:16
    '일과 날'의 소중함? ^^ 매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행복.
    해리포터 이야기는 너무 무섭다고 생각해서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

  • 2017-02-28 09:22
    해리포터 시리즈는 점점 거대하고 복잡해지죠. '불의잔'부터는 분량도 확 많아지잖아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양적으로 팽창하지만,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가장 놀랐던 설정은 '소망의 거울'이었지요. 혜원씨 덕분에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