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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선민의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 <선고> :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성자
선민
작성일
2017-02-19 16:58
조회
598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 안녕하세요. 선민입니다. ^^ 2017년 봄.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연재를 시작합니다.
카프카가 쓴 모든 글을 요로코롬 조로코롬 맛보고, 카프카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카프카라는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괴기스러운 골목길과 갑자기 튀어나오는 아이들의 놀이공, 어디선가 들려오는 서씨족 여가수의 휘파람 소리...
자, 함께 여행을 떠나 보아요. ^^

<선고> : 문학이란 무엇인가?

 

카프카는 셀 수 없이 많은 편지를 썼던 작가입니다. 연인에게, 친구에게, 업무 상 동료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그리고 작품 속에서도 편지의 모티프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나중에 장편 『아메리카』의 도입부가 되는 「화부」(1913)에서 카알 로스만은 고향의 하녀가 써 보낸 편지 덕분에 외삼촌 야콥을 만나 ‘미국’이라는 미로에 빠집니다. 또 『성』은 성의 백작과 K사이에서 상실되어 버리는 수많은 편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카프카가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을 결심하게 된 작품 <선고>에서도 편지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편지? 진정 내 마음(뜻)을 알아주세요? 하지만 카프카의 편지는 이와는 다른 길을 냅니다.

1. 나를 믿지 마세요

선고의 주인공은 게오르크 벤데만입니다. 그는 사업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고, 유복한 집안의 아가씨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전. 그는 러시아에 있는 친구에게 결혼 초대의 편지를 쓰지요. 그리고 이 편지가 모든 사건을 불러 일으킵니다. 우선 게오르그는 이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친구인지를 밝힙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결혼도 못하고 불안한 정세에 휩쓸린 러시아에 갇혀 있어야 하는 친구에게 나의 행복을 알리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 설마 결혼식에 와서 난장판을 치지는 않겠지? 러시아에 있는 친구를 떠올리며 게오르그가 하는 모든 걱정은 모두 위선이었습니다.

그 다음 게오르그는 어쩐지 편지 쓰기가 꺼려진다는 자신의 사정을 약혼녀에게 알려주는데요, 그 때문에 연인은 미래의 남편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됩니다. “게오르그, 당신이 그런 친구를 갖고 있다면 아예 약혼을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뻔했어요.” 그리고 나서 게오르그은 이 부치기 직전의 편지를 들고 아버지 방을 찾아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의심하지요. ‘너에게 러시아에 친구가 정말 있기나 한 거냐?’ 그런데 아버지는 러시아 친구를 의심한다는 말을 뒤집고, 실은 자신이 그 친구와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실토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진짜 자기 마음의 아들이라며 이렇게 소리칩니다. ‘내가 니 아버지가 맞기냐 하냐?’

한 통의 편지가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게 하다니! 결혼한다는 소식은 실제로는 약혼을 뒤흔들고, 부자 관계를 깨뜨렸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생사의 기로에 내몰게 합니다. 그것도 수신인에게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오직 편지 그 자체의 경로 위에서 말이지요. 아버지는 결국 게오르그에게 가족과 친구 모두를 속인 ‘악마’이니 ‘빠져 죽을 것’을 명하는데요, 쫓기듯 방을 나온 게오르그는 집 밖을 뛰쳐 나와, 차도를 지나, 강물로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행위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므로 게오르그가 떨어져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믿을 수는 없’겠지요.

2. 도착하지 않는 편지

카프카는 29살이 되던 해, 1912년 9월 22에 이 작품을 썼습니다. 법학 공부를 마치고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다지던 중이었지요. 그리고 이 무렵에 펠리체 바우어라는 여성을 만나, 그녀에게도 열렬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카프카는 1912년 9월 20일에 펠리체를 향한 최초의 편지를 썼습니다) <선고>의 부제도 ‘펠리체 바우어 양에게’입니다. <선고> 자체가 펠리체에게 보내는 편지인 셈입니다. 그런데 작품은 ‘나를 믿지 마세요’, 그리고 죽음을 통한 파혼을 이야기하죠. 펠리체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한 편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고>는 문학입니다. 카프카가 그녀에게 보낸 ‘진짜’ 편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편지인 <선고>가 진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카프카는 몇 번이나 펠리체와의 약혼을 번복했고,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니까요.

묘조 기요코라는 카프카 연구자는 작가란 모름지기 선하고 옳은 존재, 주인공이란 진실만을 말하는 자라고 하는 문학의 통념을 카프카의 이런 ‘믿을 수 없는 편지’를 통해 뒤집습니다. 묘조는 카프카가 문학의 형식을 빌어 펠리체에게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카프카에게 문학이란 허위로서 진실을 밝히는 활동이었다는 것이죠. (묘조 기요코,『카프카답지 안은 카프카』)

카프카가 생의 진리 같은 것을 탐구하는 작가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가 쓴 어떤 작품도 ‘깨달음’을 설파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카프카가 허위로서 진실을 폭로하려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카프카는 진리가 어디 땅 밑이나 산 위에 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뭔가에 가려져있을 뿐이라고도 믿지 않았죠. 그리고 <선고>의 핵심은 러시아에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 게오르그가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냐 아니냐, 아버지 벤데만 씨가 러시아 친구랑 아느냐 모르냐가 아니었습니다. <선고>의 편지는 게오르그의 손아귀에 있는 채로, 단지 이동할 뿐인 채로, 결코 도착하지 않는 채로, 게오르그가 맺고 있던 모든 관계를 다 끊어버립니다.

또 다른 단편 「황제의 칙명」(『시골의사』, 1919)에도 도착하지 않는 편지가 나옵니다. 죽어가는 황제가 먼 곳의 ‘그대’에게 칙명을 보내지요. 칙사는 제국의 위인들을 뚫어야 하고, 궁궐의 방을 헤쳐 나가야 하며, 마침내 성을 빠져 나와 왕도(王都)의 모든 벽을 넘어 ‘당신’에게 도착해야 합니다. 하지만 칙사는 절대로 나에게 도착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무리는 너무나 방대했고, 그들의 거주지는 끝이 없”으니까요. 카프카에게 문학이란 그 황제의 칙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복종하고 있는 그 많은 약속과, 쉬고 있는 이 집의 곳곳과, 우리를 이어주는 가족, 친구, 동료, 이웃,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 마음의 얼어붙은 바다를 쉼 없이 깨부수는 도끼. 그것이 바로 카프카가 생각하는 문학. 도착하지 않는 편지로서의 문학입니다.
아래 사진은 카프카가 펠리체에게 보낸 편지의 봉투입니다. 카프카는 펠리체에게 편지를 쓰는 와중에 <화부> (1913)라든가, <변신>(1915)을 완성했습니다. 퇴근 후에 연애편지를 쓰다가, 갑자기 종이를 옮겨 소설을 완성하고, 그 뒤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일기를 쓰는 식이었지요. 그는 마치 연애 편지를 쓰듯, 자신의 내면을 향해 말하듯 독자에게 편지(문학)을 썼습니다.

전체 2

  • 2017-02-20 10:01
    고등학교 때 친해지길 바라며 편지를 많이 썼는데, 소세키의 마음도 그렇고 카프카가 사용한 편지라는 방식은 뭔가 투정(?)에 가까운 느낌이네요. ㅋㅋㅋ 음....... 의미심장........

  • 2017-02-20 10:11
    다음달 중에 시작할 카프카 세미나가 엄청 기대됩니다^_^ 모름지기 편지란 도착하지 않아야 하는 것, 모든 문학이, 모든 글쓰기가 그런 것처럼! 정말이지 그가 쓴 방대한 양의 편지야말로 작가 카프카의 문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