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읽기

16일 후기와 23일 세미나 공지

작성자
현옥
작성일
2017-02-21 13:04
조회
314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의 정신이 사물을 자연의 공통적 질서에 따라 지각할 때, 즉 외부로부터 결정되어 사물들과 우연히 접촉함으로써 이것 또는 저것을 생각할 때, 정신은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도, 또 외부의 물체들에 대해서도 타당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단지 혼란스러운 그리고 단편적인 인식만을 가지게 된다.”

에티카 2부의 정리29 주석에서 스피노자가 했던  저 얘기 다들 기억하시죠? 이처럼 스피노자는 우리가 ‘일반적’이라거나 ‘보편적’이라고 일컫는 것들을 실재가 아닌 ‘상상적인 것’으로 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각자의 신체의 기질 내지는 상태에 따라서, 그때그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외부물체와 접촉하고 느끼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실재하는 사물의 질서와는 다른 상상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공부를 해왔으니 뭐 몰랐던 얘기도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저는 이번에 텍스트를 읽으면서 이게 참 생각해볼수록 기가 막힌 얘기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더라구요. 그냥 마음 푹 놓고 눈에 보이는 세상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살아가는 한에 있어서는, 제아무리 사력을 다해 열심히 살아도 상상 속을 허우적거리다가 죽게 된다는 무서운 얘기잖아요 이게. 우리는 그냥 태어났고 열심히 사는 죄밖에는 없는데, 어쩐지 부당한 것 같기도 하고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하죠. 대체 이런 간극은 어째서 생기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그냥은 ‘자연스럽게 실재하는 대로의 사물의 실재’를 인식할 수가 없는 것일까요?

그 가장 큰 원인은 우선 우리가 ‘무한한 개체들로 합성된 물체(복합신체)’라는 것을 모르는 데에 있습니다. 2부의 13번(자연학 소론)에서 공부했듯이 우리의 신체는 애초에 ‘나’라는 단일체를 위해 유기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개체들이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함께 함으로써만 존재하지요. 즉 내가 먼저 있어서 이 신체를 느끼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함께 한 효과로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플 때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어서 배가 아픈지를 내가 전혀 알 수 없고, 그 복통을 내 의지나 명령으로 멈추게 할 수도 없다는 간단한 사실만 생각해봐도 이 신체가 내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죠!^^ 아프다고 느끼는 게 나일뿐이지.)

두 번째의 무지는 우리가 무한한 외부물체들(타동적 원인)과의 연쇄에 의해, 그 힘의 관계에 따라 규정되는 (완전히 수동적인) 존재라는 점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유한양태인 인간은 타동적 원인과의 연쇄와 그 만남의 결과를 결정하는 내재적원인의 역량(무한자의 역량)에 의해서만 존재합니다. 이 두 가지의 사실로부터 생각해보면, 아무리 이리저리 따져보고 꿰어 맞추어 보아도 인간은 스스로 자족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부와 너무나 뚜렷하게 구분되는 이 신체를 의식함으로 인해서 자신이 독립적인 주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신(자연)이라는 무한한 원인에서 비롯된 무한한 인과연쇄의 한 부분이며 결과인 자신을, 효과나 결과 혹은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시작점이자 원인으로,  또 전체로 인식하는 전도망상이 일어나는 건데, 이게 바로 ‘주체적 사유’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바로 이 주체라는 시작점으로부터 헤겔은 신과 같이 전능한 주체로서의 정신을 상상했고,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라는 두 개의 실체를 하나의 주체에 병합시키는 방식을 사유했지만 모순율의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유한자로부터 무한자를 구축하는 전도망상의 방식으로는 아무리 해도 우리 삶의 실재를 제대로 인식할 수는 없다는 얘기기도 하죠. 그동안 하도 반복한 얘기라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반복하고 거듭거듭 그 이치를 똑바로 따져보지 않는 한은 우리는 몸에 밴 익숙한 방식으로 어느새 빠져들고 만다는 걸 저는 계속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주체 없는 사유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주체 없는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나를 부정해야만 할까요? 그렇기는커녕 차라리 반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그 원인으로부터 아주 또렷이 인식하는 것, 어떤 질서와 인과연쇄 속에서 지금의 내가 이 모습과 이 감정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야말로 자신에 대한 최고의 긍정이라고 스피노자는 얘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상상의 질서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 실존하는 이 모습 그대로의 나를 이해하는 것(적합한 관념)만이 자신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이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긍정할 수 있는 역량 속에서만 우리는 타동적 원인의 무한한 다양성을 대립이 아닌 차이로 받아들여 내 역량으로 만들 수 있는 능동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진짜 주체적인 사유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오늘 후기는 어째 좀 진부합니다만, <헤겔과 스피노자>를 한 시간 남겨놓고 있으니 자꾸 이걸 확인하게 되네요.

다음 시간은 드뎌 이번 학기 세미나 마지막 시간! 끝까지 읽습니다.

‘독특한 본질들’은 은하쌤이, ‘힘과 코나투스’는 태욱쌤이 발제하십니다. 간식은 희동쌤이 맡아 주셨고요.  이제 에세이를 써야 하는데요, 우선 이번 주에 각자의 주제에 대해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3월 2일에 프로포절(구체적인 목차와 참고할 텍스트와 부분까지)을 함께 보며 서로 조언을 하고, 9일에 발표합니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잘 이해가 안 되었거나 풀어보고 싶었던 부분들을 주제로 잡으시고, 가능하면 구체적으로(너무 넓게 범위를 잡으시면 두루뭉술해져서 아무 것도 손에 안 남는거 아시죠?) 압축하시어요! 에세이 발표날 채운쌤께서 와주시기를 다들 앙망하고 있으니 저도 따로 청을 드려 보겠나이다! 그럼 다들 ‘쎄게’ 공부하시고(에세이 주제 생각하시면서 읽으시면 아마 쏙쏙 들어올 듯^^) 즐겁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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