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5.29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7-05-23 14:49
조회
22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의 첫 시간이었습니다. 뭐랄까, 『비극의 탄생』에서는 문헌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온갖 상징들을 다루고, 『반시대적 고찰』에서는 친절히 슈트라우스의 문장을 교정해주기까지 하던 니체가, 조금 잠잠해졌달까요? 정제됐달까요? 저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알렉스 샘은 발제문에서 당시 니체의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고, 증세가 악화되는 사이사이의 짧은 휴지기에 긴 글을 쓰는 것은 무리였으리라고 하셨죠. 또 『바이로트의 바그너』를 쓰고 바그너로부터 그리고 쇼펜하우어로부터 떠나와 더 이상 어디에도 의지할 필요가 없었던 니체가 자신의 형식을 찾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주제 면에서도 색달랐는데요, ‘그리스 비극’, ‘속물 교양’, ‘역사’, ‘철학자’ 등의 한정된 주제를 파고들던 니체가 이번에 선택한 주제는 정말로 ‘인간’인 것 같습니다. 물론 니체가 인간에 대한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구성하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직 1장을 찍었을 뿐이지만, 니체의 작업은 인간의 기만적인 자기인식을 파헤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니체는 형이상학의 전제들과 오류들을 날카롭게 포착해내죠. 세계를 낙관론적으로, 또는 염세주의적으로 조망하면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세계의 척도로 삼습니다. 그러나 세계에 색을 칠한 사람은 인간들 자신일 뿐입니다. 니체는 인간이 꿈으로부터 현실과 가상의 분리, 현상계와 실재계의 분리를 만들어냈으며, 언어의 확실성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믿어왔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계의 색채라고 믿었던 것은 인간의 눈동자가 뿜어내는 빛이었을 뿐이며, ‘세계’ 혹은 ‘사물들’이라고 인간이 믿어온 모든 것들은 사실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의 관점으로부터 출현한 것, 즉 ‘인간적인 것’들일 뿐이죠.

책 뒤의 연보를 보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니체가 “건설의 전 단계인 파괴의 시기로 진입함을” 보여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건설과 파괴가 꼭 분리된 단계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남김 없는 파괴가 이루어져야 (알렉스 샘 발제문의 제목처럼) ‘그 잿더미에서’ 새로운 것을 건설할 수 있을 테니까요. 니체가 건설해놓은 무언가를 취하는 것 이상으로 파괴의 과정을 촘촘히 함께 따라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주 발제는 제가 맡았고, 간식은 계숙 샘과 성희 샘이 맡아주셨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전체 1

  • 2017-05-24 15:08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시작하는 니체였네요. 몽샘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이번 글은 우선 짧막짧막해서 다행이었다는 ㅋㅋ 후기 잘 읽고 물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