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본색

7월 2일 서사본색 공지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6-26 15:26
조회
172
삼장법사와 그의 제자들의 여정이 어떤지 슬슬 그 윤곽이 잡히는 것 같습니다. 손오공은 사건을 일으키고,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바쁘게 돌아다닙니다. 삼장법사는 그런 손오공을 질책하고, 저팔계는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사이를 이간질시킵니다. (사오정은 아직 별다른 특징을 찾지 못했습니다.) 은남쌤의 표현을 빌리면, 이들은 요괴와 같이 외부의 적을 만날 때는 단합하는데, 일단 내부의 갈등이 일어나면 요괴와 싸울 때보다 더 격렬하게 마음이 요동칩니다. 그런 와중에 각각의 인물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어떤 번뇌를 가지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우선 손오공부터 풀어보면, 손오공은 정말 잘났습니다. 어딜 가도 존경받는 제천대성이고, 천상을 뒤집어놓을 만큼 신출귀몰한 술법의 소유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채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합니다. 삼장법사는 손오공이 그렇게 행동할 때마다 혼내지만 손오공은 절대로 뉘우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일을 크게 벌려도 결국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 손오공에게도 뭔가 모자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손오공이 부릴 수 있는 술법이 72가지라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잠시 동양의 수의 세계를 보면, 동양에서 9는 완전수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손오공이 부릴 수 있는 72가지의 술법은 9와 8의 곱입니다. 즉, 완벽해 보이는 손오공에게도 사실 어딘가 모자란 부분이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능력의 결함보다는 마음의 문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서유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유능/무능이 아닙니다. 능력과 관계없이 인물들은 자기가 처한 조건 속에서 모두 번뇌를 가지고 있고, 문제를 겪으며 살아갑니다. (아직 절반도 안 왔지만 무능해서 고민하는 인물들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손오공의 결점 역시 그가 아직 충분히 유능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능함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어떤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손오공의 문제는 뭘까요? 아마도 그건 너무나도 비대한 ‘자기’가 아닐까요? 손오공은 불목하니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동녘 땅 위대한 당나라 황제의 아우님이신 삼장법사님의 제자이며 제천대성이라 불리는 손오공 행자”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불목하니는 이름이 너무 길어서 그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손오공이 자신을 “당나라 승려의 제자 손오공”이라고 소개한 뒤에야 불목하니는 그것을 전합니다. 이 장면은 손오공이 스스로를 아무리 위대하게 생각해도 남들에게는 그저 승려의 제자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뛰어나도 자기 세계에만 갇혀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결점이 아닐까요? 남에게 인정받기만을 바라고 남을 인정할 줄은 모르니 손오공은 자신의 사부조차 쉽게 욕을 하고, 남이 자신에게 욕하는 순간 욱해서 앞뒤 분간을 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자기와 비슷하거나 더 큰 존재와 맞서야만 합니다. 그럴 때마다 석가여래의 도움으로 상황을 해결하지만, 계속해서 상황을 나쁜 쪽으로만 일으키는 것이 손오공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잘났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비우기란 쉽지 않은 손오공. 과연 손오공이 자신의 번뇌를 어떻게 할지 궁금해집니다.

저팔계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탐욕덩어리’입니다. 그의 형상인 돼지는 탐욕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늘어난 귀와 코는 먹을 것을 찾고 탐하기 위해 발달된 감각입니다. 2권을 읽고 3권까지 보면 저팔계가 얼마나 감각에 지배당하는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밥 먹을 때는 자기 식탐 채우기에 바쁘고, 스승님의 공양보다는 낮잠이 우선이며, 여자들이 유혹하면 항상 그에 넘어갑니다. 즉, 저팔계라는 인물은 식욕, 수면욕, 색욕에 지배당하는 인물로 외물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실제로 일을 잘해서 쓰러져가는 집을 만석꾼의 집으로 만들고, 얼굴이 흉측한 것만 빼면 육체도 건장하다는 것입니다. 손오공도 그랬지만 저팔계도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능력이 되는 것이죠. (물론 손오공이나 저팔계가 실제로 가진 능력이 뛰어나서 욕망을 추구해도 된다기보다는 그 탐욕이 끝이 없어서 결국 남는 것은 허무함밖에 없다는 것이 작가가 전달하고 싶었던 얘기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손오공의 경우에는 그가 분주히 움직이는 만큼이 그의 번뇌를 표현하는 것이었다면, 저팔계의 경우에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의 무게가 곧 그의 탐욕의 무게인 것 같습니다. 손오공의 경우에는 자신을 비워내는 것, 공(空)을 깨닫는 것이 중요했다면, 저팔계의 경우에는 자신의 식욕, 색욕, 수면욕을 다스리는 계행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보면 인물들이 부여받은 이름 안에 이미 그들에 대한 설명과 그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 제시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의아했던 것은 ‘왜 삼장법사가 손오공의 근두운을 타고 불경을 가지러 가지 않았을까?’였습니다. 그 궁금증이 이번에 풀렸습니다. 인간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유사 앞에서 삼장법사는 잠시 주춤합니다. 저팔계가 구름에 태워서 옮기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이에 대해서 손오공은 근두운에 태우기에 인간의 몸은 너무 무겁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고행을 겪고 경전을 구하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삼장법사는 구름을 탈 수 없습니다. 상상을 약간 가미하자면, 삼장법사는 구름을 단지 구름으로만 봅니다. 하지만 구름을 타는 자들은 신선으로 모두 속세의 가치를 내려놓은 자들입니다. 반면에 삼장법사는 당나라 황제의 명을 받들어야 하고 부처님의 명을 받아 경전을 구해야 합니다. 그가 구름을 타지 못하고 말을 타는 것은 그만큼 그가 속세에 묶여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유사를 건너기 전과 건넌 후의 차이도 있습니다. 유사를 건너기 전에는 사람이나 마을이 구체적인 중국의 지명이나 풍경을 그려줬는데, 이상한 것은 건넌 후에도 여전히 중국의 풍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설이 아닌 현장법사의 여행기를 보면 중국을 건넌 이후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어쩌면 유사 이후의 공간은 속세의 어떤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흔드는 가상의 공간인 것 같습니다. 인물들도 봐야 하고, 그 인물들 사이의 갈등도 봐야 하고, 게다가 공간도 봐야 합니다. 볼 게 참 많습니다. ^^;;

서유기의 인물들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차이점도 있었습니다. 서유기에 나오는 인물들에게는 자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삼장법사는 손오공을 내쳤다가도 손오공이 돌아오면 어딜 갔었냐고, 내가 너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칭얼댑니다. 저팔계도 손오공을 모함하고 큰소리 쳤다가도 정작 공양도 준비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잠을 자고 왔다고 합니다. (이런 저팔계의 모습에 대해서 누구는 솔직해서 마음에 든다고도 했지만 누구는 싫다고도 했습니다.ㅋㅋ) 이들에게는 딱히 트라우마가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과거에 어땠는데 지금은 이런 처지에 있어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특히 저팔계를 보면 자의식이 없음이 느껴지는데, 예전에 천봉원수로 살아간 때에 비해서 지금 돼지의 외모를 가지고 탐욕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것에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조건에 따라 변하는 자신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들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지점들인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4권을 읽고 오시면 됩니다. 수정쌤이 한 달 동안 서역으로 떠나셔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손오공이 삼장에게 돌아오듯 금방 돌아오시겠죠..! 간식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다음 주에 봬요~ (수정쌤은 한 달 후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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