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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의 '난중일기' 6화 - 닭장 에세이

작성자
민호
작성일
2017-06-27 19:18
조회
316

난중일기 #6  닭장 에세이


군계일학을 꿈꾸며 입대했었다. 영어공부 건, 고전 독파 건, 아니면 인성의 비약적 함양이건, 한꺼풀 키가 자라서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딜 둘러보아도 닭뿐이었다. 나는 결코 학이 아니었고, 이 울타리 안 누구도 아니었다. 그렇다. 여기는 닭장이었고, 나 역시 보기 좋게 살이 오른 한 마리 닭이었다.

1. 선진병영과 탄식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우리 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세대가 갈수록 뒤떨어진다니까." 춘추시대 이전부터 있어왔다는 '요즘 세대'에 대한 탄식은 듣는 이로 하여금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고, '이분 참 고리타분하신 기성세대시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자신과 상이한 특성을 지닌 것들에 배타적 감정을 갖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어서 일까? 이질적 집단을 폄하하려는 경향은 어느 정도 사회의 일반적 법칙으로 보인다. 특히나 자신보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그 경향이 더욱 또렷해지는 것 같다. 그리하여 '요즘 세대'에 대한 탄식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이어져 온 것이지 않을까.

후대에 대해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 탄식이 가장 많은 사회 중 하나가 바로 군대이다. 지금의 우리 또래가 상상하기 어려운 아버지 세대의 전설적인 군대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군대는 다 똑같은 누워서 떡 먹기 식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이등병 땐 임마..."로 시작해서 "너넨 진짜 풀린겨"로 끝나는 설교는 밖의 아버지뻘 아저씨가 아닌 현역 선임들에게 오히려 더 귀 아프게 듣는다. 불과 2년도 안 되는 복무 기간 동안 무슨 혁명들을 그렇게 겪으셨는지... 그러나 한 달 차이로 선임과 후임이 갈리고 계급이 나뉘는 시스템 안에서는 짧다면 짧은 간격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점이 분명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 세대는 왜 이래"라는 탄식에서 '세대'는 몇 십 년도 아니고, 몇 년도 아닌, 몇 개월 단위까지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아니 너희 1, 2월번들은 왜 그러는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해보면 나이 차이도 안 나지만 군대 며칠 빨리 왔다고 답답해하고 비난하는 모양이 꼴사납다. 하지만 내게도 후임들의 행동거지가 성에 안 차고 못마땅하게 보이는 것은 나도 역시 똑같은 놈들이어서 일까, 아니면 정말 '요즘' 애들의 문제인 것일까? 우습지만 "나 이등병 때"를 되짚어가며 정리해 본다.

2014년 윤일병 사건으로 인해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가 언론에 조명되면서 '병영문화혁신' 이라는 운동이 생겼다. 각 부대들은 동기 생활관, 전문 상담사 등을 운용하고 가해자들은 전출, 징계 하면서 구타 및 가혹행위와 폭언욕설의 근절에 부랴부랴 힘썼다. 그리하여 병영 부조리가 잠잠해진 부대들은 '선진병영'이며 '무사고 OOO일'하는 슬로건을 부대의 자랑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전방의 몇몇 부대들은 그 홍보에 비해 실제론 부조리가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내가 전입 온 부대가 그 중 하나였다. 이곳은 실탄을 사용, 관리하고 현행작전을 하기 때문에 작전 군기와 위계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인정되었고, 어느 정도의 '후임 관리'는 용인되어 왔다고 한다. 내가 처음 전입 왔을 당시까지 "누구 밑으로 다 집합" 등 갈굼과 부분적 폭행을 포함한 부조리가 남아 있었다.

난중일기 두 번째 편에 기록했듯 갓 전입온 '짬찌 중의 짬찌'였던 나의 초라한 모양새는 지금 떠올려 봐도 불쌍하다. 그때 느꼈던 압박과 갑갑함, 절대 밉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각오로 눈알을 굴리던 꼴이 눈에 선하다. 두세 달 이상을 웃을 일도, 노래 한 소절 흥얼거릴 틈도 없이 긴장해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분위기가 그 특정 인물들의 괴팍한 성격 때문일 수도 있었고, 그 이전부터 내려온 문화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그때 분위기와는 상당히,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작년 가을, 두 명이 전출을 가고 4명이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 6월, 내가 처음 왔을 당시 상병이었던 선임층 전부가 전역을 했다. 그들을 신고했던 당시 후임층 녀석들이 지금 선임층이 되었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당했던 것처럼 새로운 후임들을 대하지 않았다. 사실 그럴 깡도 없었으며, 체구도 작은 편에 성격 또한 유순했다. 게다가 간부 편재가 늘어나 보는 눈이 많아졌다. 또한 어설프게 다 불러 모아 놓고 혼내는 '소집권'마저 뺏겼다. 그들은 주로 투덜거렸다. "요즘 애들은 너무 삐리하다니까." 삐리하다는 말은 약하거나 멍청하여 무언가를 잘 못한다, 마음에 안 든다는 뜻의 속어이다. 한숨을 한 번 더 쉬고 말한다. "선진병영 이라더니..."

"요즘 애들은 진짜 표정 관리도 너무 안 되고, 휴가 나갈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이건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지만, 이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굳이 화내거나 욕을 해주지 않고 말로 몇 번 알려줘도 알아듣는다는 것이 내 의견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겁먹고 긴장해 주눅 들어 지낸 시간을 후임들에게 똑같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재밌게 이야기하며 밥을 먹어도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잇고, 빨래를 개고 있어도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 후임들의 사소한 부분들이 아쉽다. 나도 모르게 "나 때는 안 그랬는데." 하는 구차한 마음이 불끈 불끈 솟아오르곤 한다.

혼내고 갈군다고 후임들이 싹싹해지고 만족스럽게 행동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배짱도 없다. 나는 부조리를 당한 세대와 전혀 모르는 세대 사이의 딱 중간이다. 물론 날로 빠르게 변해가는 병영 문화에서 과도기가 아닌 사람은 없겠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두어본다. 후임들의 표정과 태도가 아쉬워도 그게 변하는 문화의 모습이고, 그들이 겪는 군대의 현재이다. 내 이런 글을 예비역이 읽으면 헛웃음을 지을 것이고, 그 모습을 아버지 세대가 본다면 혀를 차겠지만, 그건 그 당시 군대는 그들이 경험한 각각의 문화였다. 때리고 군기를 잡는다고 말을 더 잘 들을까? 그때는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고로 분류될 테고, 자살이라는 사회적으로 예민한 키워드까지 연결될 것이다. 이는 전투력의 손실이고 그 부대와 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카리스마나 거친 행실 보다는 사회성과 유머감각이 더 인지도(?)를 얻기 쉽게 된 것이다.

군 문화도 그렇게 변해간다. 바른 말 고운 말 쓰는 밝고 화목한 병영으로. 예전의 잣대를 가져다 '요즘 군대'를 탄식할 이유가 없다. 바로 지금이 '요즘'이고 지금의 현역병들이 '요즘 애들'이기 때문에. 어쩌면 '요즘 것들'에 대한 탄식은 당연한 것이고 다행인 것인지도 모른다. 문화와 정서가 계속 바뀌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고, 그것은 이 사회가 고여 굳어져 있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삭막하고 아쉬운 선후임 관계가 되어가는 것일 지도 모르지만, 더 이상 갈굼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제법 괜찮은 성과라고 생각이 된다. 그 방법이며 시행 동기가 탐탁지 않지만, 병영문화혁신은 그래도 어느 정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은 맞는 것 같다.

2. 청소와의 전쟁 (faet. 행정보급관)

"6월은 DMZ에서 보낸 시간보다 취사장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열탕소독을 끝내고 땀으로 젖은 내가 비꼬듯이 던진 말이다. 3일에 한 번 수색 또는 매복 작전을 수행하러 DMZ에 들어가 있는 시간보다 2일에 한 번 꼴로 취사장 청소를 하는 시간이 더 길겠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었고 식중독 예방에 대한 강조 지침이 있었고 새로 바뀐 행정보급관은 취사장 청소 수준과 방법을 상당히 강화시켰다. 하지만 1개 소대 당 병사 수는 계속 줄어, 작년 26명이었지만 지금은 19명이다. 대신 간부의 수가 늘었다. 즉, 먹는 입 수는 그대로 이고, 치우는 손은 줄었으며, 감시 감독하는 눈은 늘어난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 전에 없던 열탕소독과 배수로 및 잔반통 세척을 주 1회에서 매일 1회로 추가되었으니 취사장 청소, 일명 '취청'이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짐이 되었다.
열탕 소독이라 함은 취사용 대형 솥에 물을 끓여 식판, 취사도구, 반찬통, 수저, 행주 등 온갖 취사장 물품들을 소독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뜨겁고, 무엇보다 열기와 습기로 인해 땀이 무척 난다. 점심 식사 후 실시하며, 이 작업 덕분에 ‘취청’이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다반수다. 그 외 벽 닦기, 배수로 청소, 거름 채와 잔반통 닦기, 발판과 창틀 닦기 등 절로 코를 쥐게 되는 항목들이 많다. 물론 식탁 및 바닥, 설거지 등 기본적인 것들은 그대로 실시된다. 7~8명 정도가 매끼 30~40분가량 2일에 한번 취청을 하고 있다. 불만이 꽤 있었지만 기각되었고, 행정보급관은 부드러운 말투로 "너희를 위한 거니 너희가 애를 좀 써 줘."라고 했다. 결국 취청을 하는 날마다 무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결과는 좋다. 취사장은 여느 식당과 비교해도 위생 면에서는 밀리지 않을 것이다. 식기에는 식중독 균 한 마리 없을지도 모른다. 개수대며 배수로도 청결하고 식사 환경도 쾌적하다. 그렇지만 그게 병사들에게 어떤 커다란 기쁨이나 감동을 줄까? "보급관 온 뒤로 막사가 훨씬 살기 좋아지지 않았냐?" 물어보기에 많은 말을 누르고 “그렇다”라고 답했다.

확실히 화장실의 악취도 사라졌고, 세탁실의 빨래도 정돈되었다. 그러나 청소와 작업, 부대관리에 소모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할일은 자꾸만 생긴다. 간부들은 전동 드릴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나사를 박고, 가만 두면 마를 물웅덩이를 메우게 하고, 쓰레기 창고의 쓰레기를 예쁘게 정리해보라는 어처구니없는 작업을 시킨다. 아침마다 뽑는 잡초를 포함하여 매 작업에 전후 사진을 꼭 찍어 놓는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은 내게 상당한 충격을 주어 허탈하게 만들었다. 바로 간부들 스스로 행정보급관이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실적'이라는 것을 쌓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일을 만들고 병사들에게 시킨 후 다 되면 보고하라는 식으로 돌아가고 있던 것이다. 모든 간부가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혀를 끌끌 차게 할 정도로 지저분한 모양새였다.

소비자고발도 아닌데 이곳에 분풀이를 하게 되었지만, 군대 생활 내내 시간과 정력과 자금을 아무런 가치도, 감동도, 진보도 없는 곳에 흘려버리고 있다는 것을 여러 순간 느끼고 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청결한 병영의 단면 뒤엔 보이지 않는 무의미의 축제가 꽤나 빈번하다.

3. 군계일학(學)의 꿈

이심전심인 것인가. 무려 3개월 만에 난중일기를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의리 없고도 불성실하게도 그간 글을 써 보내지 않은 핑계 아닌 핑계를 대어 본다면, 바로 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송구스러움에도 다시 쓰는 것은, 그와 동시에 새로운 난 속에 있음을 발견해서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역으로 반이 시작이다. 이제 상병이면 한참 남았고, 시간은 더 안 갈 거라고들 농담을 하지만 들여다보고 생각하면 휴가 등을 빼면 300일 밤도 안 남게 된다. 그 동안 보내온 반의 생활을 미루어보아 이 300일 밤도 내 입대 전 목표와 멀어지는 것은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군대에서 공부해 수능을 다시 쳤다느니, 자격증을 몇 개나 땄다느니 하는 무용담을 입대 전에 들었던지라, 나도 군대에서의 시간을 기회 삼아 이뤄낼 거창한 목표를 세웠었다. 1.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공부 2. 고전인문 독파 3. 스페인어 공부 4. 건장한 근육질의 몸매. 하지만 반이 지나간 지금 이것들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 때때로 이런 목표들이 어린 시절 꿈처럼 허황되고 유치한 것처럼 여겨질 때조차 있었다.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어린애가 정해 놓은 것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DMZ 작전과 일과 속에서 책을 잡고 혼자가 되기란 조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더욱이 눈알을 굴리며 거슬리지 않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닐 시절에는 더 큰 배짱이 요구되었었다. 특히나 내가 세운 '공부'같은 목표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아 가장 거슬리는 행동 중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온통 닭들뿐이었고 학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법을 아는 놈 역시 한 놈도 없는 이곳은 닭장이었다. 나는 덩치도 작았고 낯설었으며, 하루 종일 꼬꼬댁 거리는 소리에 시달려야했다.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옆구리를 쪼아대는 닭들도 없어졌고 눈에 띠지 않고 수그리고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난이 사라졌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다가 취침시간 화장실에서 그날 일들을 일기장에 끄적이곤 했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렇게라도 써두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생활이 없어졌다. 눈치 볼 사람도, 억지웃음 지으며 경직되어 있을 필요도 없어졌다. 편안하고 고생할 일이 없어졌다는 의미로 '풀렸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지금이다. 난이 사라졌다. 그렇게 난을 기록하려는 의지 또는 의무감도 사라져 버렸다. 난폭한 녀석들이 사라진 닭장은 온통 온순한 닭들로 붐볐다. 뭔가 배워 볼 수 있는 학이 있을까 기대했지만 하나 같이 닭이었다. 내가 학이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했던 포부는 허상이란 것을 알게 된지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문득, 닭장이니 뭐니 한탄하던 내 모습을 보고는 깨달았다. 나는 잘도 살이 오른 영락없는 닭이었다. 쪼는 닭이 없는 닭장에서 그 동안 여러 곳에 비계가 끼었다. 실제로 살이 찌기도 했다. TV 앞에만 누워 있는 놈들을 한심하게 보며 고기를 저었었지만 나도 같이 누워 드라마를 보고 있고, 라면에 과자 등 군것질 거리들을 매일 같이 먹고 있었다. 관물대에는 규문에서 보내주신 책들이 읽히지도 않고 꽉 차 있고, 나는 읽기 쉬운 소설책들만 골라 읽고 있다. 이전에는 대피소이자 안식처였던 북카페를 찾을 기회도 누군가 축구하자고 하거나 이발을 부탁하면 "네~"하며 흘려보내고 있다.

진짜 난은 일학(一鶴)을 찾지 못한 이 닭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학(一學)도 찾지 못한 이 살찐 닭에 있었다. 군대에서 선임들에 대한 압박, 부조리 따위는 더 이상 난이 아니다. 병영문화혁신이라는 기묘한 타이틀의 운동이 어설프게 정착된 수 더 이상 그런 것이 문제되지 않았다. 쌈닭들이 사리진 것은 이미 옛날 일이다. 이제 난은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더 내밀한 곳으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맺음

병도 소문내라고 했다. 말 그대로 병을 소문낸다. 어차피 학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왕 닭일 거 케이지 안의 치킨보다 몇 발자국이라도 날 수 있는 토종닭이면 좋지 않은가? 살을 좀 빼야겠고, 날갯짓이던 뜀박질이던 발악도 좀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학업에 힘쓰리렸다. 부지런히 시간을 내어 닭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짓을 더 해야겠다. 다행히 쌈닭들이 없어 시비 걸어오는 일은 적을 것이다. 영어책과 '스페인어 입문편'책도 하나 샀다. 이 닭장을 나가는 날 그래도 "백숙감이로구나"하는 느낌을 주도록, 바보 되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 한다.

P.S.

이사를 축하드립니다.
설거지며 허드렛일이라도 도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군생활이 너무 기네요. 사회도 많이 그립고요.
특히 규문에서 공부하던 때가 많이 그리워요.
건강하세요~.
전체 2

  • 2017-06-27 23:45
    영어에, 고전인문에, 뜬금없기가 이루말할수 없는 스페인어에, 뭐?근육질 몸매? 얜 군대를 간거야 유학을 간거야? 허허..... 미노야, 그냥 짬나거든 부지런히 잠이나 자그라! 여기서도 안/못하던걸 왜 굳이 거기서....성격 참 유니크하도다! 글고 휴가받음 걱정말고 놀러오니라. 니가 원하는 설겆이며 허드렛일, 원없이 앵겨주마!!ㅋ

  • 2017-06-28 09:28
    오뉴월 하류볕 차이에도 순서와 위계를 따지는 게 인간 아니더냐. 아무리 군대가 좋아지고 어쩌고 해도 그놈의 서열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지 않을 듯~~~ 이런 생각하는 거 보니, 너도 인제 거기서 나올 때가 머지 않았나 보다^^. 니 글을 읽다보니, 함께 루쉰을 읽은 기억 때문인지 아님 내용 때문인지, 불현듯 루쉰 선생이 떠오르는고나ㅎ. 날 더워질텐데 건강 관리 잘 하고, 남은 복무 기간 한두가지만이라도 잘하고 와라.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