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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전 역사의 탄생 5강 <전국책>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8-17 17:57
조회
154
벌써 5번째 강의가 끝났네요. 다음 주가 벌써 시즌 1 마지막 강의에요. ㅠㅜ 아쉬운 만큼 시즌 2가 기대되지 않으신가요? 이런 강의 어디 가서 듣기 참 쉽지 않습니다. 모두들 다음 시즌에도 계속 재밌게 들어요!

《국어(國語)》가 춘추시대에 활약한 패자들의 성공담을 담은 역사책이라면, 《전국책(戰國策)》은 전국시대에 활약한 유세가들의 성공담을 담은 역사책입니다. 작자, 편자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누군지 아는 게 뭐 중요한가요. 《사기(史記)》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더욱 풍부하게 그 시대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비자의 죽음에 대해서 《사기》에서는 이사가 죽인 걸로 나옵니다. 하지만 《전국책》을 보면 한비자가 요가에 대해서 도적 출신이라고 얘기하면서 믿을 만하지 않다고 말하자, 요가가 한비자야말로 쟤는 한나라 출신이라고 하면서 죽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사가 한비자를 죽였다는 얘기는 이사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쌓이면서 와전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밖에도 《사기》의 〈자객열전〉에 나오는 백정 섭정의 나머지 이야기도 《전국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 없는 부분을 저 책에서 발견하고, 퍼즐 맞추듯 읽어가는 게 동양고전만의 재미인 것 같습니다.

전국시대에 떠돌며 유세한 이들을 종횡가라고 합니다. 종횡이란 말은 《한비자》 〈오두편(五蠹篇)〉에 처음으로 나왔는데, 두(蠹)는 ‘좀벌레’라는 뜻으로, 〈오두편〉은 나라를 파먹는 다섯 가지 좀벌레라는 뜻입니다.

종은 여러 약한 나라가 합쳐서 하나의 강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고, 횡은 하나의 강자를 섬겨 여러 약한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다. 모두 나라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從者, 合衆弱以攻一强也; 而者, 事一强以攻衆弱也; 皆非所以持國也.”

‘종횡이란 변설을 잘하고 응대하는 말을 잘해서 상하의 뜻을 소통시키는 것이다

“縱橫者, 所以明辨說, 善辭令, 以通上下之志者也” -<<隋書>>ㆍ<經籍志>

종횡가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말빨입니다. 제후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고, 그 사이에 제후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기본적인 학문, 재능도 중요하지만 순발력과 임기응변이 더 중요한 것이죠. 일단 자신을 어필한 게 잘 먹히면 높은 관직을 받거나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잠시 이전시대와의 차이를 살펴보면, 춘추시대까지 평민이 제후에게 발탁되더라도 그들은 충성심과 의리, 백성을 위하는 마음 등 여러 정치적인 비전으로 묶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상나라의 고종과 부열이나 주나라의 무왕과 강태공이죠. 하지만 종횡가들의 주된 관심사는 오직 돈입니다. 이들에게는 일단 자신을 알아봐준 이에 대한 보답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후들이 이들을 쓰는 까닭은 잘 뽑기만 하면 굳이 여러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전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진과 장의만 봐도 혀 하나로 나라의 관계를 묵었다가 갈라놓는 등 좌지우지합니다.

이런 종횡가들에 대해 맹자는 率土地而食人肉(솔토지이식인육), 토지를 끌어다가 사람의 인육을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죽는 것도 개의치 않고 땅, 부귀영화를 얻는 데 혈안이 된 것을 비유한 것이죠. 그렇다면 맹자는 종횡가가 아니었을까요? 우쌤은 큰 틀에서 보면 맹자도 종횡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맹자는 다른 종횡가들의 태도와 달리 자신의 말을 군주에게 전할 뿐이었다고 합니다. 종횡가의 화술 중에 군주의 관심을 끌기 위해 먼저 군주의 약점을 찌르는 등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범수(사기에는 범수(范睢, 전국책에는 범저(范雎)로 돼있다고 합니다.)가 진(秦) 소왕에게 유세할 때, 당시 권력이 소왕에게 있지 않고 어머니와 숙부에게 있다는 것을 콕 집어서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우쌤은 충격요법이라고 하셨죠. ㅋㅋㅋㅋㅋ 하지만 이렇게 군주에게 도발을 해도 곧 그 마음을 어루만져야지 군주의 심기를 거스르기만 하면 죽어버리죠.;; 근데 맹자는 자기 말만 합니다. 양혜왕의 대화를 봐도, 양혜왕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법에 대해 묻자 맹자는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심기를 거스르지 않더라도 군주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그 자체로 매우 눈엣가시일 것 같은데 용캐 안 죽었네요. 우쌤은 전국시대에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맹자 한 명뿐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전 맹자를 잘 모르지만, ^^;; 끝까지 다른 종횡가들처럼 타협하지 않고 인(仁)과 의(義)를 얘기했다는 게 멋있네요. 전 이런 우직함이 좋더군요.

종횡가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꼽아보자면, 소진, 장의, 공손연, 혜시, 범수(범저)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소진과 장의입니다. 이번 시간에 소진에 대한 임팩트가 컸으므로 잠시 소진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전국시대는 소진과 장의의 행보에 따라 전쟁과 평화가 결정됐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이죠. 소진은 연나라, 제나라, 초나라, 위나라, 한나라, 조나라 여섯 개 나라의 동맹을 맺어서 진나라를 견제하는 연횡책을 사용했습니다. 이때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했다고 하죠......! 그런데 사실 소진이 처음부터 여섯 나라의 연횡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당시 진(秦) 혜왕에게 먼저 합종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 혜왕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연횡책을 쓰게 된 것이죠. 이렇게 상황에 따라 선택을 바꾸던 것을 혁면(革面)이라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자기 허벅지에 송곳질을 한 결과 나중에 소진은 단번에 가난에서 벗어나 출세하게 됩니다. 무안후(武安候)의 칭호도 받고, 연왕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낼 정도로 어마어마해지죠. 출세하기 전에는 가족이 그를 멸시했지만, 출세하고 나서는 가족이 그를 향해 기어왔다 이런 얘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소진의 이야기가 많은 유세가의 꿈이었다고 하네요. 뭔가 고생하다가 성공하는 이야기가 진 문공과도 겹치네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어느 시대나 똑같나 봅니다.

소진이 유세에 실패했을 때 집에서 책을 읽으며 췌마술(揣摩術)을 단련했다고 합니다. 췌마(揣摩)라는 것은 헤아릴 췌(揣)와 마사지할 마(摩)가 합쳐진 것으로, 군주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것을 마사지하듯 구워삶는 유세술을 말합니다. 그런데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런 현란한 화술을 얻기 위해 이들의 공부도 대단했습니다. 소진은 책을 읽다가 잠이 오면 송곳으로 자기 허벅지를 찔렀는데 그 피가 다리에 흐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채운쌤이 어제 이거 들으시고는 조심스레 샤프를 저한테 밀어주시더군요. ^^;; 공부하면서 코피가 나거나 한 적은 없었는데, 피맛을 봐야 공부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가 봅니다.
전체 2

  • 2017-08-17 19:16
    고뤠? 그렇담 피맛을 함 보여주마 ㅋㅋㅋ 최성능을 자랑하는 고급송곳을 선물해주겠어!

  • 2017-08-18 08:55
    강의의 감흥이 가시기 전에 바로 후기를 보게 되는 이 즐거움이라니~~ㅎ.
    전국 시대 종횡가를 무슨 21세기 국제적인 로비스트처럼 생생하게 그려내시는 우샘의 스킬, 어케 좀 배워서 써먹을 수 없는지~~ㅠㅠ.
    글고, 전 췌마니, 비감 이니 하는 종횡가들의 심리 조종술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상대방을 마구 비행기 띄우다가 아무 말도 못하게 입을 봉해버리는 기술 같은 것을 연구하고 매뉴얼화했다니, 놀라운 데가 있는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