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Q

절탁Q 10.18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7-10-15 10:50
조회
127
안녕하세요, 돌아온 탕아입니다^^; 조용히, 은근슬쩍 돌아왔습니다… 이번학기엔 분발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 지난 시간 후기

“여기서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 책세상, p.13)

채운샘은 푸코의 글을 읽을 때마다, 굉장히 엄밀하고 정제된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꿈틀거리는 힘이 느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푸코를 정말 조금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저도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어떻게 '감옥의 역사'를 쓰면서, 18세기와 19세기 사이 유럽(프랑스)의 형벌제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세밀하게 밝히면서 독자를 두근거리게 만들 수 있는 걸까요? 푸코의 문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방법론 등등 여러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그가 '현재의 역사가'였다는 하나의 대답 속에 함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채운샘의 푸코 강의(철학하는 월요일)을 들으며 가장 놀랐던 것은, 푸코가 '투사'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난 강의에서도 언급하셨지만 푸코는 알제리와 이란에서 혁명의 한 가운데 있었고,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많은 지식인들과도 개별적인 문제들을 놓고 연대했습니다. 사르트르와 함께 ‘감옥정보그룹’을 조직하기도 했죠. 푸코의 관심은 언제나 ‘현재’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중세 유럽이나 고대 그리스에 대해 말할 때조차도. 그에게 지식은 ‘미끼’였고 개념은 ‘도구’였습니다.

푸코를 추동한 것은 ‘참을 수 없음’이었다고 합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집필하던 당시에 전세계에서 발생한 감옥폭동을 “신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푸코 자신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요?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의식적 자각 따위가 아니라, 신체의 차원에서 느껴지는 ‘참을 수 없음’(말하자면 ‘클리나멘’ 같은 걸까요?)에서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은 가장 논리적인 순간에서조차 끊임없이 진동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푸코는 왜 과거로 가야만 했을까요? 왜 “현재에 대한 역사서술”이 필요했던 걸까요? 니체는 《아침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시대의 인간들이 무엇이 선이고 악이며, 무엇이 찬양되어야 하고 비난 받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믿었다는 학자들의 판단은 올바르다. 그러나 그 어느 시대보다도 지금의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학자들의 판단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책세상, p.21)

모든 시대는 세계에 대한 그 나름의 앎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세계를 더 조금 이해하고 있던 상태에서 더 많이 이해하는 상태로 이행해온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신화적인 방식으로 또 때로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하며 나아온 것이죠. 푸코의 생각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것들을 사유할 뿐, 모든 것들을 사유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모든 시대에는 ‘가능성의 조건’이 있다는 것이죠. 니체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 어느 시대보다 지금의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거나, 지금 우리는 우리시대의 조건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죠. 그러한 방식으로 역사에 접근할 경우 현재의 지평 속에서 역사를 소비하게 될 뿐이겠죠.

푸코는 역사를 통해 ‘가능성의 조건’의 한계지점까지 가고자 했습니다. 어떻게 가능성의 조건의 한계까지 갈 수 있을까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려고 머리를 쥐어짠다고 될 일이 아니죠. 사유와 경험의 한계지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사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푸코에게는 ‘역사’가 바로 조건을 사유하게 하는 도구였던 것 같습니다. 역사적 작업은 ‘지금’을 낯설게 보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역사’란 현재의 문제설정으로부터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역사연구로부터 현재의 자명성을 의심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어쩌면 푸코가 궁극적으로 저항하고자 한 것은 총체화와 단순화가 아니었을까요. 가능성의 조건에 대한 사유는 모든 것을 하나의 관점을 통해 설명하고 인간적인 인과를 부여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일에 저항합니다.

“나의 역할은 문제들을 효과적이자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몇몇 개혁적 지식인이나 정당의 두뇌진의 생각을 통해서 단번에 제출되는 일이 없도록, 문제들을 가능한 엄격하게 그리고 최대한 복잡하고 어렵게 제기하는 것이지요. (…) [그래서] 나는 법칙들을 만드는 것을 삼가려고 노력합니다. 오히려 나는 아주 복잡한 작업틀 속에서 문제들을 결정짓고, 이것들을 밝히고 풀어나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 위에서 말하는 예언가와 입법자들이 침묵하도록 만들고자 합니다.”(둣치오 뜨롬바도리, 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2. 공지사항

* 이번 학기

- 공통과제 형식 : A4 1페이지 넘지 않게 읽은 내용을 정리 및 요약 + 질문 만들기(돌아가면서 그 주에 읽은 내용을 말로 정리합니다).

- 참고도서 :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그린비/ 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갈무리

* 다음주

- 읽어야 할 텍스트 : 폴 벤느,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 《역사학을 어떻게 쓰는가》, 새물결/ 《감시와 처벌》 1부 2장

- 공통과제 : 《감시와 처벌》 1부 2장 요약 + 요약한 내용과 관련된 질문
전체 1

  • 2017-10-15 13:10
    푸코는 '참을 수 없음'에 의해 저술을 썼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참을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거든요. 껄껄껄 내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딱히 살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었습니다. 근데 여기서 저와 푸코의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문제제기를 하는 푸코와 무엇을 문제제기할 줄도 모르는 저. ㅎ 문제제기를 하는 그 태도 자체가 '현재적'인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