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서독

  동사서독  &  동사서독 숙제방

10.21 동사서독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10-16 19:31
조회
125
171021 동사서독 공지



1. 忘



장자는 술에 취한 사람이 오히려 정신이 온전하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은 어찌나 마음속에 콕 박히던지 여러 분들이 인용을 하셨더군요. 생각해보면 술에 취했을 때는 넘어져도 아프지 않고 뭐가 눈앞에 있어도 두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지요...물론 장자는 웃자고 하는 얘기였겠지만 '의도가 없는' 상태를 강조했다는 점에서는 장자의 전체 논의와 통하는 것 같습니다. 술 취한 사람은 의식이 없지요. 그러니 인사불성이 되어서 수레에 실려도 떨어져도 몸이 굳거나 긴장하지 않아 무사합니다.

강석쌤께서 이번 시간에 '방황'이라는 단어를 고찰하셨지요. 지금까지 ‘방황’이란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였는데, <장자>에서는 오히려 권장하고 있어서 다시 그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셨다고요. 우리 시대에 '방황'이란 곧 '빈둥거린다'와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빈둥거림은 용납할 수 없는 상태 중 하나이지요. 우리는 스스로가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방황'에 부여된 부정적인 뉘앙스는 사실 목표와 시간에 의미를 두는 근대에 생겨난 것입니다. <장자>를 따르자면, 사실 '정처가 있는 삶' 자체가 이상한 것이죠. 우리의 몸과 정신은 안정될 수 없는데 나는 안정을 원할 때, 우리는 자신의 신체를 거스르게 됩니다. 즉 긴장하고 몸을 딱딱하게 만들고, 그래서 자신이 생각한 '안정'과는 다른 것이 닥칠 때 속절없이 부러지고 말죠.

장자는 속세 그리고 일탈/방황을 나누어 봅니다. 속세란 일정하게 홈을 파고 그 홈을 따 흐르게 하는 곳입니다. 세속 사람들의 특징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대로 될 수 있게 하려고 무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일이 닥치면 그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듯 당황합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잔뜩 자신을 무겁게 한 상태에서는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장자는 이런 부러지기 쉬운, 무거운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스토아학파 사람들은 무슨 일이 닥치든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맞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내가 가벼워지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장자는 우리에게 잊음(忘)에 대해 말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자신의 의도나 목적을 잊고 유연해지는 것처럼. 어린 아이가 앞질러서 자기의식을 사건에 투영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떠올랐다가 사라지지요. 사실 우리는 이걸 다 알고 있고, 또 들으면 동의하곤 합니다. 하지만 왜 미운 것은 계속 밉고 좋은 것은 계속 좋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생각과 감정, 그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들 사이사이를 메워서 하나로 연결되는 것처럼 고정시키기 때문입니다. 이 감정과 생각이 고정되어 있다고 여기기에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도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요. 장자가 잊으라고 하는 것은 이 고정된 감정과 생각에 관한 것입니다. 느낌이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여기면서 우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다른 생각이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장자는 이처럼 실체화된 자신을 잊고, 만물과 하나 되는 경지를 말합니다. 술 취한 사람까지 예로 들면서요^^



2. 學而知之


우리는 주로 알아서 행동하기 보다는 습관대로 삽니다. 가령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것을 매일 합니다만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움직이지 않습니다=_= 그냥 정신 차리면 거기 서 있고 익숙한 버스에 오르지요.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의도하거나 정신력으로 이겨내겠다고 해봐야 어느새 신체에 새겨진 習대로 움직이고 있지요. 이렇게 습관대로 움직일 때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바로 사유의 불능성입니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언어가 나를 압도하고 우리는 습관대로 또 감정과 생각을 자기 것으로 여기죠.

이런 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성의 힘을 사용해서요. 그것을 직관적으로 아는 경지가 있다고 합니다. 공자님은 ‘生而知之’라고 하셨죠. (공자님 정도의 경지래요^^) 그 다음 배워서 아는 경지가 있는데 바로 ‘學而知之’의 경지입니다. 혹은 곤란을 겪어서 배우려고 하는 ‘困而學之’도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기는 합니다만 그 배움은 매우 어렵습니다. 경험에도 습관의 앎이 작동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경험을 하고 나서도 문제의 근본까지 파고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장자>를 읽으며 배우는 것은 생명의 실정, 우리를 ‘뻘짓’하게 만드는 욕망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여 자신의 정기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일 겁니다. 기대와 욕심과 이상한 망상이 어떻게 나를 무겁게 만들고 또 부러지기 쉽게 만드는지 아는 것. 이것은 지성을 통해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일 것입니다.



-다음시간은 내편 [인간세], 외편 [산목] 읽고 공통과제 써 옵니다.

-암송 있습니다~

-간식은 혜원, 강석쌤.

-후기는 은남쌤,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전체 1

  • 2017-10-17 18:49
    지난 시간에 샘께서 우린 장자를 너무 무겁게 읽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계속 맴도네.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고, 무겁지 않게 읽는다 하는 것이 뭔지, 그렇게 읽으려면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아~~ㅠ.
    내용 정리에서 뭔가가 빠진 듯 싶어 생각해 보니, '달생'에 대한 얘기가 없네~~~. '초료'님의 후기를 기대해봐야겠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