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아침놀> 세번째 세미나 후기

작성자
알렉스
작성일
2017-10-18 21:05
조회
139
니체는 <아침놀> 1권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바울로라는 한 인간의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탄생했으며, 얼마나 인간을 자기학대의 나약함으로 이끄는가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며 신랄하게 비판했었죠.  2권에서는 비판의 대상을 도덕과 윤리라는 좀 더 일반적인 영역으로 확대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좀 더 명료하게 결론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니체가 사용하는 방법은 여전히 심리분석적입니다. 프로이트가 니체를 읽었다는 것을 절대 말하지 않았다는 게 이해될만큼, 니체는 이 정신분석의 창시자에 앞서 이미, 이 새로운 학문의 가장 핵심적 개념들이 되었던 꿈과 무의식, 자아와 충동에 주의를 기울이며 거침없이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그대들의 꿈보다 그대들을 잘 나타내주지 못한다! 그대들의 꿈이야말로 바로 그대들의 작품이다! 소재, 형식, 지속의 정도, 배우, 관객까지 – 이 희극에서는 이 모든 것이 그대들 자신이다!”(128절)

“현명한 오이디푸스는 옳았다는 것, 즉 우리는 틀림없이 자신의 꿈에는 책임이 없지만 이와 똑같이 우리가 깨어 있을 때 행한 것들에도 책임이 없다는 것이며, 자유의지론이란 인간의 긍지와 힘의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128절)

“이 모든 무의식적인 과정들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의식되는 한에서만 어떤 행위를 준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습관이다”(129절)

인간들의 치명적인 오류의 하나가 의식적인 세계는 무의식적 세계와는 분리되어 있고 다른 것이며 그러므로 다른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니체와 그의 계승자들 덕분에, 의식적 행위의 근저, 그 중심에는 무의식적 충동과 동기들이 놓여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니체가 여기서 목표로 삼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행위는 인간들이 믿는 것처럼 그렇게 ‘능동적 자아’에 의해 나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잘 파악하지 못하는 어떤 힘들로부터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행위의 근거를 도덕에, 그 도덕의 근거를 진리에 두는 윤리적 사고체계 자체가 전적으로 오류라는 것입니다.

“인식에서 시작해 행위에 이르는 다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놓인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야말로 ‘무서운’ 진리가 아닌가? 행위는 우리에게 나타난 그대로의 것이 결코 아니다!” (116절)

“우리의 도덕적인 판단들과 가치 판단들조차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생리학적 과정에 대한 영상과 상상 또는 어떤 신경의 자극을 특징짓는 일종의 습관적인 언어에 불과하다.” (119절)

“그대의 행위는 그대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해진다!....인류는 항상 능동과 수동을 혼동해왔다. 그것은 인류가 영원히 범해온 문법상의 오류다.”(120절)

여기쯤 오면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습니다. 우리 세미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계숙샘만 그런 건 아니었겠죠.(^^) 아니, 그러면 도덕이란 전혀 필요없단 말인가? 우리의 행위가 능동이 아니라면,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지? 저는 ‘습관적인 언어’라는 니체의 말에 이 의문들에 대한 해답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행위 자체가 아니고, 언어인 것이죠.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실상을 전혀 보지 못하는 언어, 자신의 동기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하고 미련한 언어, 자신의 은밀한 충동을 감추고 미화하는 부정직한 언어. 이런 언어들로 구축된 것이 도덕을 비롯한 인간들의 가치체계들인 것이고, 이런 것들을 습관적으로 내면화하면서 수동적으로 살면서도 능동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기만하는 것이 소위 ‘자아들’의 삶 아닌가? 니체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체의 의도는 우리의 행위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행위들의 힘을 증가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인간의 기만적 언어와 자아와 주체라는 환상이 사라져야 합니다. 즉 우리는 ‘다르게 배워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도덕이나 다른 인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느낌’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윤리적 행위의 장려와 비윤리적 행위의 극복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근거들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르게 배워야만 한다.…..마침내 더 많은 것에 도달하기 위해, 즉  다르게 느끼기 위해.” (103절)

다르게 느끼기.  모든 허망한 목적이 결여된 이 소박한 말. 그러면서도 힘으로 가득찬 말.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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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20 11:07
    충실하도고 깔끔한 후기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언어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봐도 재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