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강좌

'덧없는 삶, 댄디, 그리고 현대성' - 예술톡톡(06.03)을 듣고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6-06-05 00:00
조회
659
이번 시간은 마네를 중심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며 그리고 그 작품들을 보았던 푸코, 보들레르와 같은 인물들의 시선을 빌려 ‘댄디즘(Dandyism)’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여 우리는 어떤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시작은 보들레르의 시, ‘썩은 짐승 시체’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어쩐지 불쾌한 느낌을 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채운쌤은 이것도 많이 순화되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매우 낯선 느낌입니다. ‘강벌 위에 더러운 썩은 짐승 시체’, ‘음탕한 계집’, ‘발산물로 꽉찬 배때기’, ‘너를 입맞춤으로 뜯어먹을 구더기’. 이 시는 ‘악의 꽃’이라는 보들레르의 시집 중 하나의 시입니다. 다른 시들도 찾아보니 공격적인 느낌의 시어들이 전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불편하고 날 선 단어를 쓰는 것은 그가 신경질적이라거나 광기에 홀린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1853년 당시 파리 지사인 오스만에 의한 ‘파리 개조 사업’을 알아야 합니다.

 

오스만 이전의 파리는 중세시대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 도시입니다. 좁은 길들이 미궁처럼 얽혀있고 무질서하게 건축된 허름한 도시들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오스만은 이 모든 것을 다 밀어버리고 파리를 새롭게 재구축합니다. 기차역과 주요 문화재들을 잇는 널찍한 대로를 만들고 주택과 공공시설을 건축함으로써 오늘날의 파리가 탄생합니다. 그런데 새롭게 정비된 대로를 마치 자신의 할 일 인양 마음껏 거닐었던 것은 부르주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목적 없이 거리를 걷다가 아는 사람이 반대편에서 걸어오면 가벼운 인사를 나누거나 혹은 대화를 합니다. 그리고 당시 그들의 사교공간인 살롱에 들어가 서로의 교양을 뽐냈다고 합니다. 결코 깊을 필요는 없지만 모든 것에 대해서 몇 마디는 던질 수 있을 정도의 지식. 겉으로는 선과 도덕을 찬양하지만 실제로는 온갖 음탕한 짓을 일삼는 이들. 그러면서도 자신은 특별하다고 여기는 그들. (마네의 ‘오페라극장의 가면무도회’를 보면 사람들을 검은색이 뭉텅이진 채 그려진 것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은 특별하지도 않은 데 특별한 것처럼 구는 부르주아를 비웃은 마네의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보들레르의 입장에서는 천박하게 보이기도 했던 부르주아의 모습을 보고, 선과 악에 대한 가치와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악의 꽃’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댄디즘 역시 옷의 형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개성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마네의 그림을 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것들,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사물의 위치나 크기, 시선과 같은 것을 부자연스럽게 배치하여 무엇인가 불편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폴리베르제르 바’라는 작품을 보면, 뒤에 놓인 것이 거울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신사를 하나 더 배치함으로써 ‘현실에 무엇을 더한 이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또한 여인은 그림을 보고 있는 관객을 정면으로 쳐다보는데 거울에서는 마치 옆에서 쳐다보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마네는 작가로서 자신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을 어긋나게 함으로써 ‘잘못 그린 게 아닐까? 이게 그림이기는 한 걸까?’ 같은 물음을 끊임없이 되새기게끔 합니다. 마네는 그림이 가지고 있는 관념 그리고 주제를 거부합니다. 따라서 그가 그린 ‘올랭피아’ 역시 흑인과 매춘부를 그림으로써 ‘이것이 아름다움을 그린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모두가 아는 사교적 인물의 누드를 그림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혼란과 부끄러움, 수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림 속의 주제가 아니라 그림 그 자체에 대한 질문. 그것이 마네가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이었고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가장 충격을 받았던 그림은 ‘오페라극장의 가면무도회’입니다. 그림은 부르주아를 그렸지만 뭉텅 그려진 모습에 저도 있었던 게 아닐까....... 많이 찔렸습니다. SNS를 보면 비슷한 것도 아니고 같은 옷을 입는 사람들을 보며 웃었는데, 길을 걷다가 저와 비슷하게 입고 있거나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볼 때면 누군가는 저를 보며 웃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파 속을 헤집고 걸어가면서도 자신의 개성은 어딘가 새어나오고 있었고 그것이 스스로를 특별하게 만들 것이라는 착각. 그래서 스스로에게 신경을 쓴 만큼 타인의 시선을 더욱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아무리 꾸미고 신경 쓴다 한들 웬만해서 눈에 띄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이한 개성을 표출하여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거나 미쳐 보이지 않는 이상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로운 옷과 새로운 장소, 새로운 활동을 찾아 나서지만 그럴수록 더욱 많은 부분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더 크게 뭉뜽그리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보들레르는 “군중 속에서 하나의 육신이 된다고 하면서도 익숙한 것에 열광하는 대중의 천박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휩쓸릴 수밖에 없다면 그 속에서 또 다른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걸 남은 시간동안 가질 수 있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실마리는 잡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봐요~

 

P.S 채운쌤이 강의 도중 책을 소개해주셨는데 빼먹은 건 댓글로 넣어주세요!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 샤를 보들레르

‘마네의 회화’ - 미셸 푸코

‘게으를 수 있는 권리’ - 폴 라파르그
전체 4

  • 2016-08-09 02:12
    I am a chemist who has built chemical plants i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Most of OTEC is chemical engineering with marine engineering needed for floating platforms and ocean discharge engineering (sanitary engineering) for land based systems. My partner is an expert in ocean discharge. OTEC needs the same pipes and pumps but flows both ways. The technology is proven so Gonvenmert R&D funding is minimal. What additional information is wanted?

  • 2016-06-05 15:32
    짜식, 굳!!
    이래 빨리 올리다니 & 단정하도다ㅎㅎ
    그리고......
    중동가지말자~~

    • 2016-06-09 18:47
      중동을가는겁니까. 나는반댈세.

  • 2016-06-09 18:44
    오~ 건화의 노는물(?)이 수질이 괜찮군요ㅋㅋㅋㅋ 성의있는 게다가 신속하기까지 한 첫 후기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