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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튀어!!!!!!" - 주역수업(06.04)을 듣고

작성자
윤몽
작성일
2016-06-10 14:32
조회
3586
다들 안녕하신가요.

일본 답사를 다녀오고는 피곤한 마음에 후기를 슬쩍 뭉개고 지나가려는 유혹을 누르고 책상 앞에 앉은 윤몽입니다. 아예 안 쓰는 것보다야 짧게라도 쓰고 지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철이 드나 봐요. 하핫.

이번 주는 둔괘(遯卦)였어요. 둔괘는 위 네 개의 양괘 아래에서 두 개의 음괘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어서 음의 세력이 점점 자라는 소인의 시대, 힘든 시기가 올 것을 미리 알고 피해야 한다는 일종의 경고의 메세지를 담고 있죠. 그래서 여기서의 둔은 숨는 것, 물러나는 것, 피하는 것(退, 避)을 의미합니다. 피하고 숨는다니까 엄청 나쁜 건가 보다 생각하기 쉽지만, 주역은 항상 상식을 거스르는 의외의 답을 이야기하죠. 결론은 어느 시대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시대든 잘 겪으면 형통해진다는 거예요. 여기서 핵심은 ‘잘 겪는다’는 것에 있죠. 어떻게 겪는 것이 잘 겪는 것인지를 배우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공부를 합니다.

이렇게 음이 자라고 양이 쇠하는(陰長陽消) 시대에 군자는 물러나서(君子退藏) 도를 펴야(伸其道) 해요. 이것이 둔괘가 형통하게 되는 방법이에요. 여기서 ‘물러나서 도를 편다’는 것은, 불우한 시대를 만나 여러가지 이유로(귀양을 간다든가) 벼슬을 하지 못했던 선비들이 각자 시골집에 조용히 박혀 술만 들이켜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가르침을 베풀어야 한다는 유가적인 방식의 발상이죠. 이것이 공자 이전에는 없었던 해석이라고 하는데요. 공자 이후로는 이렇게 상황에 따라 퇴장을 할 수도 있다고 보았고 이것도 하나의 실천으로 여기게 된 거예요. 시대가 달라지기를 기다리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스스로 공부하다가 때가 되면 다시 언제든 나아갈 수 있게 준비하는 거죠. 아무튼 둔의 시대는 음이 점차 자라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작은 일을 바르게 하는 것이 이롭지(小利貞) 큰일을 하려고 나서면 안 돼요.

효사에서 재미있었던 것 한두 가지만 더 이야기 해 볼게요. 하나는 귀여운 초육인데요. 급박한 위기의 순간, 무조건 도망가서 살 길을 도모해야 하는 위급한 때가 왔어요. “야! 튀어!!!!” 괘의 맨 위의 효부터 시작해서 모두 휘리릭 적절한 시기에 잘 도망갔는데 꼬랑지에 있던 초육이 혼자 우물쭈물 거리다 시기를 놓치고 만 거죠. 남들 다 알아서 피하는 순간에 소리를 못 들었든, 감이 늦었든, 결정적일 때 딴 짓을 하고 있었든 분위기를 파악하고 보니 이미 늦었어요. “오잉?”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예요. 늦었지만 나도 튀어볼까, 하고 뒤늦게 멀리 도망가는 동료들을 따라 움찔 움직였다간 오히려 너무 티가 나게 돼요. 이럴 땐 그냥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거예요. 그래서 초육은 둔미(遯尾)이고 위태로우니(厲) 가는 바를 두지 말라(勿用有攸往)고 하는 거죠. 전을 보면 얜 음이기도 하고 맨 아래여서 아직 약하고 미미한데 이미 뒤쳐졌으니 가게 되면 위험해진다고 했어요. 이렇게 위험한 시기엔 벼슬을 하는 게 좋지 않지만, 가난한데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경우에는 아주 말단의, 눈에 띄지 않을 한직을 골라 납작 엎드려서 때를 기다려야 해요. 낮은 관직에 자길 숨기고 좋은 세상을 기다리는 것(吏隱)이죠. 이게 바로 초육이 살아남는 지혜가 되는 거예요.

한 가지 더 인상적이었던 애는 구사인데요. 바로 호둔(好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좋지만 떠나야 하는 것이죠. 말만 들어도 괴롭고 어렵지 않나요. 사랑하지만 놓아줘야 하는 것, 너무 갖고 싶지만 욕망을 내려 놓는 것, 정말 재미있지만 그만해야 하는 것, 이런 모든 비슷한 계열의 어려운 일들이 다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우..ㅠㅠ.. 정샘의 말에 따르면 군자는 비록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도 상황이 둔의 시기가 되면 결단을 내려 움직이고는 뒤를 돌아보거나 의심하지 않아요. 자신의 사욕을 이기고 예를 실천하면서(克己復禮) 바른 도로 욕망을 제어(以道制欲)하고요. 그러니 길한 것도 당연하네요. 소인의 경우는 이렇게 못해요. 좋아하는 데엔 빠지고 사사로운 데엔 막 끌려다니죠. 그래서는 자신을 욕되게 하는 지경에 빠지는데도 그칠 수가 없게 된다는 거예요. 너무 무섭지 않나요. 이게 바로 불행이고 지옥인 것이에요. 여길 읽는데 욕망에 끄달려 방황하던 오랜(!) 시절과 뒤따른 온갖 번뇌들이 마구 떠올랐어요. 어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피곤하더군요. 물론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작년이나 올해도, 이번 주에도, 어제도, 오늘도, 지금 글 쓰는 이 순간도, 여전히 여러 욕망 속에 허우적대고 있으니까요. 소인의 삶에서 군자의 삶으로 옮겨가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합니다. 매일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조금씩,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는 수 밖에요.

 

그리하여 이번 주부턴 곤권, 그러니까 둘로 나누어진 책 중의 뒤의 권부터 나간다는 것 알고 계시죠? 헷갈리지 마시고 곤권으로 잘 챙겨오시고요. 모두 토요일 웃는 얼굴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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