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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화의 독서노트] 소크라테스적 미니멀리즘 ― 《소크라테스 회상록》[1]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21-11-24 21:05
조회
1541

소크라테스적 미니멀리즘
- 《소크라테스 회상록》(숲)


 
“소크라테스는 따르기만 하면 별일이 없는 한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고 비용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생활방식에 익숙해지도록 자신의 몸과 혼을 단련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너무나도 검소해서 세상에 그처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도 벌지 못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는 먹는 게 즐거울 만큼만 먹었고, 그에게는 언제나 시장이 반찬이었다. 목이 마르지 않으면 마시지 않았으므로 그에게는 모든 마실 거리가 달콤했다.”(크세노폰, 《소크라테스 회상록》, 숲, 42쪽)

 

나는 연구실에서 맥시멀리스트로 통한다. 얼마 전에는 15만원짜리 후드티를 샀다가 한동안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그러나 믿어주시길, 내 옷장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친구라는 걸). 옷은, 내게는 타협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똑같은 반찬에 밥을 먹는 건 상관없지만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참을 수 없다. 트렌드를 앞지른다거나 대단히 유니크한 스타일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언제까지고 내가 나름의 스타일을 지닌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옷에 대한 이런 욕망과 관심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약간의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 나이가 든 걸까? 내가 입는 옷들이 내가 속한 공간과, 내가 속한 공간에서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공부와 잘 어울리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스치듯, ‘그런지룩’, ‘밀리터리룩’, ‘프레피룩’ 하는 말들이 참 우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용어들이 보여주는 어떤 소비 행태가. 거기에는 옷을 잘 입으려 해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유튜브를 보면 옷 잘 입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버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공부하라’고 말한다. 무작정 마음에 드는 옷을 사면 안 된다! 그게 당신이 옷을 사도 사도 입을 옷이 없는 이유다! 옷을 잘 입고 싶으면 다음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 우선 다른 사람들이 코디한 것을 보고 원하는 룩을 찾는다. 그러고는 그 룩을 표방하는 브랜드들의 족보를 공부한다. 해당 브랜드들에서 중요한 기본템들부터 사 모은다. 어느 정도 옷장이 채워졌다 싶으면 포인트를 줄 수 있는 값나가는 신발이나 가방 같은 것들을 구매한다. 이대로만 따르면 누구든 원하는 룩을 완성할 수 있다!

아, 이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마치 카탈로그를 보고 주방을 북유럽식으로, 카펫과 벽지는 북아프리카 스타일로 맞추는 것처럼 아무 맥락도 없이 특정 ‘룩’을 소비하는 건 너무 이상하다. 마치 아바타 스킨을 고르는 것처럼. 정녕 이것을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최근 들어 내가 이런 위화감을 나 자신에게서 느껴버렸다는 점이다. 내 ‘스타일’은 내가 누구인지, 그러니까 내가 어떤 사람들과 관계하고 있고,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삶의 양식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바가 없다. 고작해야 내가 인터넷 쇼핑몰에 올라온 수많은 상품들 중에서 어떤 것들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지를 보여줄 따름이다. 물론 ‘공부하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복식 같은 게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옷이 정말로 내 삶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과 연관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 없이 스타일 운운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어느 지점에서 나는 내 스타일을 창조해야 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누구보다도 자기 스타일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일상의 영역에 있어서 그는 남달랐다. 그는 나이든 연인이 어린 소년을 추종하는 그리스의 기존 소년애 관습으로부터 성적인 접촉을 배제함으로써 관계의 구도를 역전시켰다. 당대의 미소년, 미청년들로 하여금 못생긴 소크라테스를 쫓아오게 만든 것이다. 추첨을 통해 민회의 의장이 되었을 때에도 그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았고, 늘 맨발에 꾀죄죄한 차림으로 다니면서도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알키비아데스가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소크라테스와 닮은 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겠는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서 그의 ‘철학함’의 이미지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천착했던 플라톤과 달리,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삶의 양식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일에 더욱 집중한다. 그렇다면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에게 남다름의 원천은 바로 ‘절제’다. 크세노폰이 회상하는 소크라테스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처럼 보인다. 그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신적인 것이고 되도록 적게 필요로 하는 것이 신적인 것에 가장 가깝다”(58쪽)면서, 고귀한 삶의 관건은 많은 소유가 아니라 적은 필요에 있다고 말한다. 이는 무조건적인 금욕과는 좀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쾌락 자체의 논리 안에서 절제의 윤리를 이끌어낸다. 그에 따르면 “무절제는 쾌락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라잡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자체는 우리가 쾌락에 이르게 할 수 없으며, 자제력만큼 확실하게 우리가 쾌락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233쪽) 무슨 뜻인가 하면,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성교하는 것과 쉬는 것과 잠자는 것을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주는 건 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우리 자신이 맺는 관계라는 것이다. 즉, 그 행위가 쾌락으로 충만한 것이 될 때까지 참고, 적절하고 쾌적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한계를 부여하는 절제의 기술에 의해 일상적 행위들은 비로소 즐거운 것이 된다.

내가 소크라테스에게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소크라테스의 고유성은 그가 지니고 있는 것들로부터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그리하여 외부 대상에 집착하거나 의존하지 않는 그 자신의 삶의 역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 둘째, 그의 절제는 양적인 절약이나 단순무식한 금욕이 아니라 쾌락이 더욱 풍요롭고 만족스런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한 기술이라는 점. 이런 점을 고려해볼 때 소크라테스적 미니멀리즘은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개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자기 자신의 욕망과 쾌락에 대해 갖는 주도권에 의해 정의된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의 남다른 스타일은 습관이나 사회적 규범이나 욕망의 대상에 부여된 환상 같은 것들에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즐거움에 의해 행위할 수 있도록 스스로의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는 훈련의 결과물이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고매하고 훌륭한 것은 모두 훈련의 산물”(27쪽)이다.

자, 그럼 어떻게 나의 스타일을 창조할 것인가? 일단 그것이 나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는 룩이나 스타일을 찾는 일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았다. 고유함의 발명은 절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보다 적은 소유와 소비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오늘날의 미니멀리즘과도 결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적절함을 규정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한 훈련이다. 물론 고대의 철학자들에게 훈련은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것, 공동식사를 하는 것,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들 바깥에 있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 이러한 훈련을 하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개성적인 스타일을 갖는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이미지의 소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자기중심을 갖기 위한 일상의 훈련. 이것이 전제된다면 무엇을 입고 다니건 그의 존재는 ‘스타일’을 갖게 되지 않을까. 어느새 또 겨울이다. 올 겨울은 새 옷을 사지 않고 나보려고 한다.


글 : 건화

전체 4

  • 2021-11-26 21:03
    가벼운 모자를 쓰고 자주색 짚업을 입고 아이패드를 손에 든 소크라테스~ 눈에 확 들어오네요. 건화샘이 입은 옷을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이제 눈을 닦고 봐야겠어요 ㅎㅎ
    스타일의 고유함의 발명을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절제하고 훈련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 길은 요원해보이는데 건화샘 글은 술술 잘 읽히고 재밌네요. 옷 하나 입는 것에서 이런 글이 나온다는 게 대단한 관찰력인 거 같아요^^

  • 2021-12-23 18:21
    pgl44b4a

  • 2022-01-16 01:07
    6khsilh9

  • 2022-01-16 01:12
    uk6e727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