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0727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6-07-24 16:21
조회
454

지난 시간에는 전제군주 기계를 중심으로 책을 읽었지요.
특히 수업 초반에 다룬 카프카의 <만리장성의 축조>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권력과 국가에 대한 카프카의 저 예민하고 독특한 촉수에 대해 생각하노라면 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만리장성 축조’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황제의 명령이라지요.
물론 황제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도,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사람도 없습니다. 황제가 있다는 것은 오직 소문이 들려주는 소식.
소문을 전하는 특권 계급의 말을 좇아 사람들은 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성을 축조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그 적이라는 존재도 본 적이 없지요.
채운쌤 설명에 따르면 이처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채로 존재하는 그것, 그것이 전제군주/초월적 기표랍니다.
영토 기계에서 추장은 언제나 부족민들과 직접적으로 만나 관계를 맺습니다. 부족민이 일할 때 그 곁에서 육성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부족민이 와서 요구하면 바로 그것에 부응하는 물건을 내놓았지요.
전제군주는 이와 매우 다릅니다. 바깥으로 나가 새로운 결연을 맺고 돌아온 금발의 야수(니체의 표현)는 단번에, 폭력적으로 의미화체계를 설립한 뒤 코드화를 실행합니다.
이때 야수가 새로운 코드화를 통한 ‘사슬 바깥’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존재가 초월적 기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기표 자신만은 탈영토화·탈코드화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금지와 억압이 기표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면 그는 초월자가 아니죠.
영토 안의 모든 대상을 빠짐없이 코드화하되 그 자신은 그로부터 이탈한 존재로서 머무는 것, 그것이 그의 권능을 증명한답니다.
그러니까 만리장성 쌓기를 명하는 황제는 결코 백성들에게 가시적인 존재여서는 안 됩니다. 그는 저 바깥에 초월자로 존재합니다. 다만 그의 말을 전하는 일부 권력자들이 백성들과 접촉할 따름이지요.
바로 그 점으로 하여 황제의 권위는 더욱 높아집니다. 물론 황제의 명을 전하는 메신저들의 현실적 파워도 한층 커지지요.
오직 소수에게만 부여된 코드 해석權은 곧 소수의 특권 계층을 의미한다는 것을, 채운 쌤 말씀대로 성경과 사제들이 유비적으로 보여줍니다.
신의 말씀을 듣고 해석할 권한은 소수의 성스러운 사람들에게만 부여됩니다.


이렇게 전제군주 기계를 설명한 뒤 들뢰즈+가타리는 바로 자본주의 기계로 넘어가지 않고 중간에 <원국가>라는 짧은 장을 삽입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저자들이 하는 말은 간단히 말해 이렇습니다. 전제군주 기계와 함께 등장한 국가는 다른 코드들을 억압하는 것인 한에서 모든 기계에 내재하는 것인바, 우리가 상상/기대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기계의 도래와 함께 국가가 소멸되는 건 결코 아니라는 것.
자본주의 시대, 올드한 표현이지만 글로벌한 시대, 초국적 기업이 번식하고 문화 컨텐츠가 비슷하게 독식하면서 번져가는 시대, 영국의 결정이 일본 엔화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국가란 아직도 유효한가? 어쩌면 국가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상이 일반적인 질문이겠으나, 들뢰즈+가타리는 그렇게 간주하지 않지요.
그들에 의하면 국가는 하나의 범주로서 잠복해 있으면서 상이한 기계들 안에서 상이한 모습으로 회귀합니다.
심지어 영토 기계에서조차 부족은 늘 국가의 문턱까지 가곤 했으나 부족의 시스템 자체가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면서 자신을 유지했다고 했었지요. 국가는 영토 기계 안에도 늘 내재해 있었다는 겁니다.
전제군주 기계에서 그것이 황제와 법으로 출현했다면, 자본주의 기계 안에서는 또 그에 걸맞는 형태로 자신의 기능을 선보이는 거죠.
실제로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새롭게 화장한 얼굴의 국가주의를 만납니다. 독일의 네오나치 청년들, 북유럽 국가들의 반인종주의 테러, 국내의 일베에서 우리가 보는 파시즘, 기타 등등.
앞서 보았듯 파시즘을 욕망하는 것도 대중의 욕망인바, 21세기 사람들이 그와 같은 국가를 욕망하게 되는 어떤 메커니즘이 있는 거겠죠.
결국 국가와 국가주의에 대해 질문하고 사유할 때도 들뢰즈+가타리는 욕망의 문제 위에서 그렇게 합니다.
문제는 국가적인 것을 욕망하게 하는 어떤 사회적 투여가 있다는 것, 인간의 무의식 안에서 이를 생산하게 하는 어떤 특정한 배치가 있다는 것.
그러니, 온갖 방식으로 진보적인 양 하지만 제도권 안에 자신과 가족을 편입시키고자 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에 비판적인 것처럼 논평하지만 어떤 일이 생기면 경찰 권력이나 관공서 민원 등을 자동적으로 떠올리는 자신의 욕망을.


요컨대 자본주의 시대에도 우리의 짐작(?)과 다르게 국가가 유지되는 이유, 거기에는 나의 욕망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핏속에는 국가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삶을 욕망하는 피가 늘 흘러 다닙니다. …무서븐 이야기지요-_-


자, 이런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다음 주에는 드디어 자본주의 기계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읽은 챕터 중 가장 난이도 높은 챕터인데, 채운 쌤 말씀에 의하면 맑스의 몇 가지 개념틀을 이해하면 그다지 어려울 게 없다고 하네요.
다음 시간 빠짐없이 출석하셔요 ^^


다음 주는 3장 끝까지 읽어 오심 됩니다. 후기는 최정옥 쌤, 간식은 재겸쌤+쿠누쌤.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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