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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s 다이어리 : 이상한 나라의 탐정 <명탐정 코난>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6-08-21 00:22
조회
1414

혜원's 다이어리 |




이상한 나라의 탐정, <명탐정 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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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은 고등학생 탐정 남도일(쿠도 신이치)이 이상한 약을 먹고 졸지에 몸이 작아졌다는 이야기다. 평범하게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던 탐정은 늘 하던 대로(?) 맞닥뜨린 사건을 해결하고 또 추적하다가 그런 일을 당한다. 정체 모를 검은 옷의 남자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하며 약을 먹이자 심장은 비정상적으로 뛰며 머리는 혼미해진다. 그리고 눈을 떠 보았는데 자길 두고 온 세상이 커졌다. 늘 입던 옷은 땅에 끌리고 늘 자기 몸처럼 차던 축구공은 힘이 없어 핑 날아가다가 도중 떨어진다. 자길 죽이려던 검은 조직의 사람들은 척 봐도 사람 목숨을 개미 취급하는 위험한 사람들이고, 그러므로 함부로 주변 사람들에게 정체를 밝힐 수도 없다. 갑자기 당연하게 생각하던 세상이 뒤집혔다. 탐정 남도일이 존재하지 않게 된 세상이 된 것이다. 그 자리에 남도일의 더미 캐릭터 혹은 남도일 대신 이 원더랜드를 파헤칠 캐릭터 코난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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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은 80권이 넘도록 이어진 시리즈다. 즉 코난은 80권이 넘도록 초등학교 1학년이다. 계절은 몇 번이도고 지나갔고 공중전화에 매달리던 작중 인물은 이제 스마트폰을 쓰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이 고정된 채 온갖 사건을 반복하는 것은 사실 오래된 시리즈들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다. 도라에몽은 언제까지고 어린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는 에피소드를 이어가고 짱구는 언제까지나 유치원생인 채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일상을 영위하다 가끔 세상도 구한다. 그 시간에 붙잡힌 캐릭터는 각자 책 밖에서 본다면 이상한 세계를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렇게 정지된 시간은 시리즈 유지의 근간을 이룬다.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는 짱구 자체를 가리키기 보단 철모르는 개구쟁이 유치원생 짱구라는 어느 특정 시기의 캐릭터를 지칭한다. 초등학생 짱구, 즉 어딘가 철이 들고 다른 세상을 겪고 또 성장한 짱구는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의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런데 <명탐정 코난>의 코난은 이미 한차례 성장을 겪은 캐릭터다. 고등학교까지 진학했었고 고등학생 탐정으로서 명성도 얻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자기가 사라진 세상에서 ‘에도가와 코난’이라는, 이름부터 급조한 티가 철철 나는 임시 캐릭터로서 살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유치원생인 짱구와 사정이 좀 다르다. 게임에 빗대면 열심히 키워놓은 본캐가 삭제당해서 어쩔 수 없이 부캐로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 처지다. 사건을 만나 어찌어찌 해결도 하고 또 다른 캐릭터들과 관계도 맺는데 어딘가 불만족스럽다. 이런 상태는 어디까지나 임시적이고 항상 곧 돌아가야 하는 진정한 '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시라도 빨리 이 임시상태를 벗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극장판, 이 20년간 이어져온 시리즈의 극장판에서 코난은 관객들을 향해 어려진 목소리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국내 더빙판 기준으로는 성우 강수진의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이렇게 한다. '나는 고등학생 탐정 남도일!'

 



 

그런데 코난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만한 자기소개가 나는 너무 낯설다. 나는 극장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무슨 특별한 이야기 전개를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기대가 있다면 풍문으로만 듣던 경험을 나 또한 해보고 싶었다. 바로 ‘내 이름은 코난’ 이라는 메기는 소리를 ‘탐정이죠!’라고 스크린 밖에서 받아주고 싶었다. ‘내 이름은 코난, 탐정이죠.’ 라는 대사는 극중 코난이 자기를 밝힐 때 하는 고정 멘트다. 물론 코난은 고등학생 남도일 없이 성립될 수 없지만, 그리고 자기가 남도일이라고 끊임없이 상기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시리즈이지만, 그럼에도 어느새 이 세계에 코난 아닌 남도일이 부각되는 것이 낯설다. 어느새 탐정 남도일은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혹은 맞지 않는 존재, 마치 진학한 진구나 짱구처럼 느껴진다.

코난의 정체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코난을 돕는다. 또 브라운 박사님의 물리법칙을 초월한 발명품들이 코난의 작은 몸과 적은 파워를 보충해준다. 하지만 애초에 이야기를 꾸미는 소품들은 남도일이었다면 사용하지 않았을 물건들이며 또 이야기의 온갖 장면들은 남도일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액션들이다. (간혹 기적적인 기회로 등장하는 탐정 남도일은 그가 동경하는 셜록 홈즈 같다. 여유롭게 사건을 추리하고 액션을 하더라도 힘을 적게 들여 범인을 체포한다.) 긴박하게 마취침을 날리고 잽싸게 몸을 숨기는 행위나 벨트에서 축구공을 튀어나오게 해서 허공에서 오버헤드킥을 하는 액션은 작은 코난의 신체로 하는 것이다. 이번 극장판에서도 굴러가는 관람차를 고정시키기 위해 직접 몸을 던지는 액션은 코난의 몸으로 해야 가능하다(그래...이런 장면이 있다...). 그래야 동료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코난이야 하루빨리 남도일로 돌아가길 원하지만, 그래서 자기만 두고 온통 커져버린 이 원더랜드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지만, 이 기나긴 시리즈에서, 1년 새 몇 번이고 사계절이 돌고 도는 이상한 세계에서 고등학생 남도일의 존재는 더 이상 요청되지 않는다. 오히려 낯설다.

코난은 작은 몸으로 괴도를 상대한다. 어린이 탐정단과 피크닉을 갔다가 사건을 만난다. 유명한 탐정을 잠재우고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코난은 "난 고등학생 탐정 남도일!"이라고 말하며 그 말이 맞다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캐릭터 코난의 목표 그러니까 원래 몸을 되찾는다는 목표가 그렇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차라리 ‘코난’과 동년배인 관객, 그리고 ‘코난’과 분명 같은 나이였는데 어느새 그를 두고 먼저 나이를 먹어버린 관객은 '내 이름은 코난!'을 따라 제창하고 코난이 자신의 작은 몸을 온갖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채 자기보다 큰 세상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을 따라가고자 한다.

 



 

그렇게, 어느새 코난의 돌고 도는, 절대 끝나지 않는 1년, 그 이상한 세계에 푹 젖어 있을 때, 그래서 코난을 보면서 ‘쟤는 굳이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즈음, 20번째 극장판이 나온다. 극장판 20기 <순흑의 악몽>, 극장판은 기존 시리즈가 보여주지 않는 스케일이 큰 사건들을 인기 좋은 캐릭터들로 꾸린다. 그런데 이 극장판은 ‘검은 조직’의 신 캐릭터를 가지고 온다. 그러면서 <명탐정 코난>이 온갖 기괴한 사건과 멋진 괴도와 번쩍거리는 유원지와 즐거운 피크닉으로 이루어져 있더라도, 여전히 이 시리즈는 탐정 남도일의 원더랜드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번 극장판에는 ‘내 이름은 코난’이라는 자기소개도 없고 ‘코난’ 자체를 상대하는 라이벌 괴도 키드도 없다. 대신 그를 원더랜드로 몰아넣은 검은 조직이 나오고 코난의 정체를 아는 국제 첩보요원들이 나온다. 그러므로 코난은 ‘탐정 코난’이 하듯 굳이 어른 대역을 세워서 사건을 해결할 필요도 없다. 대신 자기 몸을 다 던져서 어떻게든 검은 조직에 다가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탐정 남도일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나온다.

 



 

거기다 그를 13년간 알고 또 계속해서 그에게 연락하는 여자친구 미란이가 나온다. 이 세계가 남도일에게 원더랜드로만 그러니까 언젠가 고별해야 할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세계로만 존재 하는 이유는 그녀 때문이다. 남도일이 이 세계에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단 한사람 말이다, 남도일이 등장하는 순간은 여자 친구 미란이가 연락하는 때뿐이다. 전 세계가 코난의 정체를 알아도 미란이가 모르는 것에 비교하면 무게가 미란이 쪽으로 실리는 이유는 그녀만이 남도일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없으면 사실 코난은 오히려 남도일을 뒤로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80권이 넘도록 그를 초등학교 1학년으로 붙든 정체된 시간의 저주는 풀릴 것이다. 코난이야 ‘원래대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하지만 세상에 ‘원래대로’라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는 얼마든지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부모의 도움으로 새 신분을 얻을 수도 있고 안전한 곳으로 떠날 수도 있다. 검은 조직이야 경찰이 찾게 두고 어려진 몸으로 제 2의 인생을 살아도 된다. 그런데 굳이 요상한 이름을 택하고 남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초등학생의 몸으로는 너무나 가혹한 사건현장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고 탐정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진실을 파헤치고 정상태를 회복하겠다는 탐정 특유의 기질도 있지만 계속해서 이어온 미란이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어서다. 그러니까 사실 이 세계를 끝낼 열쇠는 코난이나 검은 조직에게 있기 보다는 미란이한테 있다. 그녀가 기다리기를 그치거나, 아니면 이 세계가 자신의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정체된 시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거나. 어쨌든 그녀가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나는 고등학생 탐정 남도일!’로 시작되어 롤러코스터에서 사람 목이 잘리는 사건과 거기에 휘말려 어린아이가 되는 장면의 리플레이 또한 멎고 아이들은 자라고 검은 조직도 잡히고 무엇보다 코난이 더 이상 임시 더미가 아닌 그 캐릭터 자체로 완결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3

  • 2016-08-24 20:22
    혜원양 잘 읽었수. 담꺼 또 기다리겠슴!

  • 2016-08-24 20:35
    기승전미란이ㅋㅋㅋ코난이 80권을 넘겼다니... 가능한 모든 살인방법이 다 나왔을듯하다

  • 2016-08-25 02:35
    요것이 나의 무지를 도와줄 보조 교재인 셈이군!!!! 극장판은 못봤는뎅~ 추천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