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톡톡

민호의 '난중일기' 2화 - '훈련소 편'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6-10-20 16:23
조회
832
어느 날 아침 연구실 문 앞에는 수상쩍다고 생각될 정도로 통통한 편지봉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바로 보충대대에서부터 신병교육대대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민호의 원고가 도착한 것! 무려 7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를 보내 온 민호가 대견하기도 하고 빡빡머리를 하고서 심각한 표정으로 원고를 썼으리라 생각하니 조금 웃기기도 … 어쨌든 민호가 보내온 글은 몹시 진지했다(!) 큰 따옴표 안에 있는 것은 ‘난중일기’라는 코너명에 걸맞게 민호가 그날그날 썼던 일기의 내용을 스스로 인용한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나 많은 민호의 얘기를 들어보자.

민호의 난중일기 2화 : 훈련소 편

민호호

버릇이 무서운지라 써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으면서 이렇게 마감 때나 마찬가지인 훈련소 마지막 주에나 펜을 잡는다. 훈련소 생활을 충분히 마친 상태에서 그 감상을 적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며 쓰기를 미뤄왔다. 어쨌든 매일 불침번 시간에 써왔던 일기를 뒤적이며 펜을 끄적여 본다.

1. 102보충대대-닭가슴살에 무너진 신념

“어제 나는 정말 숫자가 되었다. 장정 305번. 머리도 밀어버리고 입고 온 옷도 회색 활동복으로 환복하고 나니 이름도, 특징도 안 남았다. 모두가 왼쪽가슴팍에 달린 코드로 입력될 뿐이었다. 처음 강당에 밀착하여 1300명이 몰아 앉혀진 후, 다시 각기 신청 모집병 유형으로 분류되어 앉혀지는데, 그때 나라사랑 카드와 신분증을 체크해 민간인 신분에서 군인 신분으로 바뀌게 된다.”

크지도 않은 생활관에 다닥다닥 붙어 31명이 붐빈다. 천장에서 ‘털털털’ 돌아가는 두 대의 낡은 선풍기가 냉방시설의 전부인 이곳 102보충대는 자정이 넘어도 실내온도가 30도를 웃돈다. 102보충대대는 훈련소와 자대에서 사용할 피복, 전투화 등 군용품을 지급하고 신체검사를 하며 배치될 신병교육대대를 결정하는 곳이다. 이곳은 올 10월 사라질 예정이다. 리모델링이나 증축도 하지 않아 아주 낡았으며, 선발 막바지이기 때문에 신병들을 정원보다 훨씬 많이 모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더욱 비좁고 북적였다.

“첫날은 전투복을 포함한 물품을 나르고 보급 받았다. 강당에서 그것을 입어보고 나오자 또 우리는 순식간에 군인이 되었다. 그런 원리로 작동되는 게 아닐까. 어리벙벙한 빡빡머리 한 놈 군복 입혀 놓으면 군인이 되고, 거기에 마크 달아주면 계급이 달라지는 것. 옷 몇 점에 완전히 기분도 인상도 달라지는 것.”

머리를 밀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을 신은 녀석들 사이에도 다시 특징이 보이기 시작한다.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가운데 다름이 보인다. 입에서 나오는 말, 굴리는 눈알, 표정, 몸짓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안경 쓴 놈, 안 쓴 놈, 머리 안 자른 놈, 문신한 놈, 배나온 놈, 몸 좋은 놈, 나약해 보이는 놈, 못난 놈, 두상이 이쁜놈, 피부 안 좋은 놈, 다들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도 하나같이 삐질삐질 땀 흘리며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다. 모두들 털털 돌아가는 선풍기와 후끈하고 끈적거리는 실내에서 이불 따위는 차 놓고 뒤척이며 목덜미에 땀을 두른 빡빡이들이다. 불침번을 서며 복도 불빛에 일기를 쓴다. 이런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다.

어차피 힘들 걸 각오 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연하려고,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늘 ‘어차피 힘들 거 그 중에 재미난 일 하나 없을까’라는 자신감으로 군 생활에 대해 말해왔었고 실제로 흥미로운 것들, 재밌을 만한 것들을 상상해 볼 여유가 있었다. 그런 태연함으로 군대의 밥을 기대했었다. 습기가 후끈한 식당에 비좁게 줄을 서서 들어가면 마스크와 모자 쓴 빡빡이들이 반찬을 떠준다. 사람도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가로세로 폭 1m 쯤 되어 보이는 철제 사각 통에 음식물이 잔뜩 엉켜있다. 아마 동태찌개인가 보다. 불그스름한 물과 건더기들을 ‘철퍽’, 식판에 준다. 밥을 안 남기는 내 오랜 습관이자 다짐은 민트색이 도는 물컹한 오이가 채 썰어져 닭가슴살에 눌러 붙은 연두색 음시 앞에서 처참히 무너졌다. 잔반처리장도 가관이다. 취사병이라 손들었던 놈들은 삽으로 음식물쓰레기를 통에 퍼 담아가며, 발에 국물이 튀어가며 거기서 냄새 속에 있는 것이다. 끔찍했다. 그 이후론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거길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차피 오늘 내일이면 헤어질 인연이어서인지 같은 생활관 옆 사람들끼리도 별다른 말이 없다. 뭐 정붙여봐야 소용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스쳐가는 인연들일 텐데.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놀랍기도 하다. 생활관 대표로서 반장노릇하며 뛰어다니던 목소리 걸걸한 녀석은 지금 이곳 훈련소에서 옆 생활관 대표를 하고 있고, 옆에서 자기 술 마신 애기, 여자 만난 얘기, 노는 얘기 별 쓸모없는 소리를 지껄였던 속물 같은 녀석은 그 대표 놈과 같은 생활관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친다. 심지어 더 놀라운 건 그놈과는 앞으로 19개월을 보내게 될 자대까지 같은 곳으로 배치 받게 되었다.

2. 신병교육 대대- 병영캠프 같았던 날들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102 보충대에서 받은 군용품을 한가득 넣은 제 몸 만한 의류대를 매고 뒤뚱뒤뚱 신교대의 율곡관이라는 강당에 모여 섰다. 오와 열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어리둥절 서있던 우리는 춘천에서 세 시간을 달려 이곳 신병교육대에 왔다. 또다시 번호가 부여되고 번호 리스트 별로 분류되어 생활관이 정해졌다. 그리고 분대장, 소대장 등 담당 조교들에 의해 개인의 건강상태, 특이사항이 조사되고 상담이 진행되었다. 병영문화혁신 캠페인 문구와 포스터, 감사일기, 상벌제도판 등이 붙어있는 생활관 내부나 복도를 지나면서, 사람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민호

첫날이 지나고부터 우리끼리 가장 많이 한 말 중 하나가 “훈련소는 무슨 병영캠프 같다”는 얘기였다.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려울 게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옆에 동기들과는 교관 흉내를 내거나 웃긴 얘기를 나누며 낄낄 떠들곤 했다. “또 뭐했다고 밥 먹으라 그러냐?”하며 다시 시시덕거리면서 생활관 별로 모여 밥 먹으러 가는 게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개인정비 시간이 보장되는 주말에는 빙고, 공기놀이, 알까기, 오목, 실뜨기, 심지어 체스를 제작하기까지 하며 놀았다. 불침번 내기, 간식 내기를 하며 말이다.

훈련소에서는 빨리도 정이 들었다.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있으며 말 붙이고, 같이 씻고, 같이 땀 흘리고, 자고 하면서 정 붙이고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와 동시에 누가 속물이고 괜찮은 놈인지, 누가 실세이고 찌질이 인지, 잘 노는 놈이고 못 노는 놈인지 머릿속에서 판단이 끝나게 된다. 그리고 또 그렇게 무리를 이룬다. 스스로 원만하다고 자부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가소로운 신조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별로 금가지 않고 잘 유지되었다. 여기저기 무리를 돌아다니며 거의 모든 녀석들과 친해졌다. 군대에 오기 전에 군대엔 또라이 같은 사람도 많지만 정말 멋진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은연중에 나에게 스승이 될 만한 사람과의 인연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 역시 오만으로 가득 찬 생각이었다. 어쨌든 내 관계는 원만하지만 얕았다. 정말로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 녀석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다녔어도 핸드폰 번호를 적어가지 않았다.

어쩌면 딱 5주짜리 인연이라고 이미 나도 모르는 새 단정 지어 버리게 되어 깊이 친해져야 겠고 더 돈독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나만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같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서로 두루뭉술 닮아가고 비슷하게 정들어 갔지만, 자신을 다 드러낼 수없는 벽 같은 게 있었다. 딱 5주짜리의 인연이라는 생각이 수료 날이 다가올수록 진해졌다. 다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마지막 주는 조금 울적한 분위기였다.

3. 그 상병은 23살이었다네

푹푹 찌는 더위에 선풍기 몇 대가 끙끙 돌아가는 곳에 모여 그 이름도 불쾌한 ‘정신교육’을 듣다보면 팬티는 물론 런닝까지 젖기 일쑤다. 그럴 때면 교육하러 온 사람이 전투복 상의를 탈의하라고 하는데 그때마다 단체로 “감사합니다!” 크게 답하는 것이다. 또 훈련할 때 방탄모를 뒤집어 쓴 채 걷다보면 앞사람 뒷덜미로 땀이 삐질삐질 흘러 목뒤 카라를 적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훈련 중 쉬는 시간에 앉아서 쉬라고 하며 방탄모를 벗으라고 하면 또 애들은 “감사합니다!”하고 정말 감사함이 묻어나는 어투로 답한다. 나는 그 ‘감사합니다’가 너무나 맘에 안 들었다. 자신이 스스로의 아까운 시간을 여기서 기꺼이 써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맞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빨래를 하던 도중 한 소대장인 중사가 들어와 옆에 서서 빨래비누를 좀 빌려달라고 했다. 뻣뻣해져서 하던 일을 하고 있던 중 ‘잘 썼어요’, 하면서 돌려주는데 그만 “감사합니다”라는 대답이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입이 다물어지면서 화끈거렸다. “아뇨, 제가 감사하죠.”하며 그가 가고 나자 멍해졌다. 뭐가 감사하다는 거지? 왜 그런 대답이 불쑥 튀어나왔을까? 기세에 눌렸던 걸까? 어쨌거나 내가 노예 같다고 여겼던 그 속물성에서 나 역시 제외될 수 없는 것이었다.

tv에서 보던 철조망 아래를 꿈틀꿈틀 기어 통과하는 철조망 하단 극복 코스 앞에 모여서 있었다. 비가 오는 관계로 그 코스는 연습하지 않고 담당 조교는 노가리나 까고 있자며 껄렁거리며 궁금한 거 없냐고 한다. 이전에 자신이 스무 살이고, 군대 빨리 왔다며 깔보듯 웃으며 말했던 적이 있는 놈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을 되뇌며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다른 녀석들을 돌아보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아주 깍듯하게 질문하고, 공손하게 웃고 과한 리액션을 보였다. 그냥 군대 몇 개월 먼저 온 것뿐인데 그렇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해가며 입을 헤벌리고 우러러 보게 되는 건가? 심지어 자기들 보다 어린 사람에게 그렇게 된다니. 나는 늘 계급이 높은 거지 사람이 높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계급 외에 그 조교가 나보다 높은 것이 있을까? 나이마저 어린 녀석에게 상관으로서 대우를 하는 것으로 과히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부슬비를 맞으며 그렇게 침울하게 생각에 잠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상병은 23살이라는 것이었다.

민호우
4. 훈련병 성민호,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


군대라는 곳에 놓여진 후부터 자유, 부자유, 그리고 노예라는 것에 대해 짧게 짧게 생각을 이어보게 된다.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을 살아있는 생활, 죽어있는 생활이라고 가를 수 있을까? 훈련소 생활에서 나는 내가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느낌을 크게 받지 않았다. 오히려 주말과 의료서비스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건 바깥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한 번도 우리 세대가 어렵다거나 각박하고 숨 막힌다고 하는 말에 공감해본 적이 없다. 고민되는 문제가 없었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내 문제의식은 오히려 여기에 있다. 내 의지와 욕망이 제한된 상황임에도 그 안에서 안락함과 만족을 느끼며 ‘나름 자유롭지 않은가’하고 느끼는 것은 노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그렇다면 노예가 아닌 것은 뭘까… 자유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군대나 국가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늘 자신의 상상만큼 자유로울 수 없다. 육체를 벗어날 수 없다. 날 수 없고, 먹지 않을 수 없다, 자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신체를 입은 존재임에도 자유롭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훈련소의 몇 안 되는 대여도서 중 ‘그리스인 조르바’를 잡았다. 작가 카잔차키스는 실존인물 조르바를 보고 그를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조르바는 떠나고 모험하고, 여자를 밝히는 방랑자에 가까운 사내다. 일할 때 그 일이 되어 온통 몰두해 있고, 놀 때는 방탕하게 망가지는 사람… 두목의 돈으로 물건을 사러 갔다가 여자에게 그 돈을 몽땅 써버리고, 몇 달을 쏟아 부은 사업이 한순간에 망해버려도 춤을 추는 사람. 매일 아침 바다와 해변을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이다. 금욕주의자의 관점에서 조르바는 욕망에 지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카잔차키스에게 조르바는 욕망을 제어의 대상으로 보는 기존의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욕망에 지배되어 휘둘렸다기보다는 오히려 금욕주의으 허상을 깨부쉈다는 점에서 자유인이었다.

그런데 조르바를 바라보는 ‘나’, 카잔차키스 본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자는 누구인가? 그는 조르바와는 달랐다. 그는 조르바에게 ‘펜대 운전사’라고 놀림을 당하는 수도승과 같은 원칙주의자였다. 안경 쓴 샌님이었다. 그는 조르바 곁에서 조르바를 보며 감탄하고 그에게서 배우고, 자신을 깨나간 자다. ‘나’는 조르바를 보며 진정한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배워갔다. 그러나 결국 ‘나’는 조르바와 떨어졌고 그래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조르바가 되지도 않았다. 그는 조르바가 강력 추천한 과부와 하룻밤을 보내고 말할 수 없는 황홀함과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곧 그 일로 그녀가 마을사람들에게 음탕한 여인으로 몰려 죽게 될 때, 마을사람들의 돌팔메를 막아서는 사람은 조르바이고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구경하는 모습이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과 조르바를 노예와 자유인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면 ‘나’는 그 가운데에 있는 셈이다. ‘나’는 결코 조르바처럼 되지는 못했다.

다운로드

그렇지만 화자(‘나’)가 조르바를 악마나 미친놈이 아닌, 자유인으로 보는 시선을 가졌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조르바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가진 그는 조르바 곁에서 그와 교감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르바를 경험하고 겪어낸 것이다. 그가 조르바가 되거나 조르바의 삶의 방식과 동일하게 되진 않았지만 ‘나’이자 카잔차키스 본인은 조르바를 몸소 경험하고 그에 대하며 자신의 언어로 소화해 냄으로써 이미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나’는 그와 헤어진 후에, 그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전의 자신도 아니었다. 소설의 끝에서 ‘자유’에 대해 다르게 알게 되었듯, 전혀 다른 ‘천국’, 전혀 다른 ‘악마’, ‘춤’ 따위의, 이전에 그가 가졌던 가치와는 전혀 다른 가치를 재정립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르바를 스승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나’ 혹은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라는 큰 자유를 만나면서 전혀 다른 자유를 경험했다. 이제 자유/부자유, 자유인/노예라는 이분법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꼭 그렇게 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여기는 관념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점에서 그는 이미 노예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시스템 안에서 자유를 어떤 가치로 여기고 있는가. 그것을 되묻기 위해서 계속 을을 써야겠다. 어쩌면 이렇게 쓰지 않으면 그냥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교훈으로 끝나고 말았다.

P.S 너무 띄엄띄엄 쓰게 되어 글이 볼품없습니다. 8월 후반부터 쓰기 시작한 게 재주도 없는데 펜 잡을 시간도 이어지지 못하니 엉망입니다. 특히 이등병이 이등병인지라 펜은 고사하고 눈 들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 숨쉬기도 어려운 이등병의 편지, 난중일기 3편을 기대해주세요…!!
전체 1

  • 2016-10-21 10:08
    자의식과 망념들이 요동치는 난중일기ㅋㅋ 휴가 나오면 놀려먹을 게 켜켜이 쌓이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