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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생] 올리버 색스

작성자
선민
작성일
2016-12-17 00:04
조회
833
[길 위의 생] 올리버 색스

1. On the Move

당신의 인생을 하나의 장면으로 요약한다면? 유형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자서전에는 두 개의 종류가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우선 첫 번째 유형의 대표주자로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의 자서전을 들 수 있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새로운 사상을 익히고 수용하느라 잠잘 생각일랑 해본 적이 없고, 어느 날 찾아보니 아예 베개도 없었더라’ 라는 일화로도 유명하지요. 근대 일본 최고의 공부 쟁이. 단 한 번도 관직에 나간 적 없지만, 친구와 제자를 키워 정치, 교육, 사회의 제반 제도를 근대적으로 혁신한 인물입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당연, 자랑이 넘쳐납니다. 는 왜 이렇게 체력이 좋은가? 는 왜 이렇게 똑똑한가? 는 어쩌면 이리도 많은 일들을 이루었는가!

그런데 후쿠자와가 가장 공들여 썼던 부분은 이런 구체적인 업적이 아닙니다. 자서전에는 논점을 흐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 없이는 책 전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자서전의 초반에 나오는데요. 청년 후쿠자와가 불빛 하나 없는 밤을 겁 없이, 혼자서 한참을 걸어갑니다. 업적을 장황히 나열하는 다른 대목과는 다르게 이 부분은 아주 낭만적으로 묘사됩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청년의 혈기 넘치는 자부심이 좋은 대조를 이루지요. 홀로 근대화의 길을 내며 살았노라! 만년의 후쿠자와는 자신의 전 인생을 ‘고독한 개척자’로 요약했던 것입니다.

2015년, 올리버 색스(1933-2015)가 죽기 몇 달 전에 출간된 그의 자서전 제목은 <On the Move>입니다. 저는 이 자서전이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부류의 자서전은 ‘나’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경우처럼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도 청년 올리버가 막막한 사막을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달리던 순간입니다. 하지만 올리버 색스는 두려움과 설렘을 갖고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목표’ 비슷한 것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인간의 뇌와 환자 고통 사이의 관계를 성실하게 연구하려고는 했지만, ‘해명’이나 ‘완쾌’와 같은 단어로 그가 자신의 임무를 설명하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책에는 과학의 진보나 의학의 완성에 대한 그 어떤 이미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초지일관한 단 한 사람의 올리버 색스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회상 속에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탐험하듯 관찰하고,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수많은 올리버 색스가 출현합니다. 또 이 책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환자들의 이름이야 실명으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가족과 친구, 동료 의사와 과학자, 이웃과 자기 책의 독자에 이르기까지. 올리버 색스는 되도록 그의 이름을 밝히고 그들과 함께했던 일화를 구체적 회상합니다. 이때 각각 특별한 그리움의 색채를 묻히지요. 때로는 타인이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를 통째로 싣기도 합니다.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에서 ‘나’는 끊임없이 타인과 함께 움직이면서 자기 모습을 바꿉니다. 말 그대로 이때의 ‘나’는 움직임 속에 있습니다. On the Move!

2. 최고의 여행법글쓰기  

마약중독으로 치닫는 과정, 동성애자로서의 번민, 신경과학계의 왕따 되기, 로빈 윌리엄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슈퍼스타와의 만남 등 그 자체로 신선했던 대목이 많았지만, 제가 자서전을 읽고 가장 놀랐던 점은 ‘자의식의 부재’입니다. 자서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반성하는 시선, 자기가 자기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의식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아마 성취를 주제로 삼아 줄거리를 짜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올리버 색스는 허다하게 실수하고, 상처받고, 세월을 낭비합니다. 책 속의 사건들 각각이 딱히 연관이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렇게 다 각각의 성질을 내보이며,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 책에서 자의식을 느낄 수 없는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올리버 색스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단어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썼다”입니다. 그는 움직였을 뿐 아니라, 쓰고 있었습니다. 움직임과 쓰다는 늘 동의어였어요. 여행지에서, 진료를 마친 뒤,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서, 그는 썼습니다. 심지어 집 밖에 한 번도 나가지 않을 때에도 글은 썼지요. 자신의 마음이 어디론가 움직이기만 하면 펜을 들었던 것입니다. 마약, 동성애, 안구 흑색종에 따른 자기 왼쪽 눈의 실명도 그가 썼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이것들은 그가 사랑했던 광물이나 고사리 이야기와 같은 지위를 갖고 있었어요. 자서전을 쓰면서 그는 자신이 만났던 온 존재들을 글쓰기의 장면 위에 펼쳐냈습니다. <On the Move>는 올리버 색스가 아니라 쓰기가 주인공인 자서전이었습니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좋든 나쁘든, 그렇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 서사를 좋아하는 경향은 언어능력, 자의식, 자전 기억과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 특징이 아닐까 한다.

     글쓰기는 잘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잡념이나 근심 걱정 다 잊고, 아니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로지 글쓰기 행위에 몰입하는 곳으로. 좀처럼 얻기 힘든 그 황홀한 경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쉼없이 써내려간다. 그러다 종이가 바닥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날이 저물도록, 하루 온종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음을.

     평생을 걸쳐 내가 써온 글을 다 합하면 수백만 단어 분량에 이르지만, 글쓰기는 해도 해도 새롭기만 하며 변함없이 재미나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거의 70년 전의 그날 느꼈던 그 마음처럼.”(온 더 무브이민아 옮김, 알마 출판사, 476)

올리버 색스가 특정한 대학 연구소나 병원에 소속되기를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평생 이 환자의 병실과 저 환자의 요양원을 돌아다니며 개인적으로 연구했습니다. 환자를 방문하고 나오는 길 위에서 급하게 생각을 정리할 때도 있었지요. 그렇게 제도적 기관이 아니라 고통과 고통 사이에서 쓰여진 글은 신경의학계에서 철저히 무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은 같은 신경계 질병을 앓는 전 세계의 환자들, ‘수면병’이나 ‘안면 인식 장애’, ‘색맹’의 존재에 대해서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반 독자들의 마음을 울렸지요. 나중에 그의 글은 다큐멘터리(https://www.youtube.com/watch?v=QNum0dTYalk)나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http://www.imdb.com/title/tt0099077/; 이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올리버 색스를 연기했습니다. <On the Move>에서 올리버 색스가 로빈 윌리엄스와의 만남을 회상하는 부분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자아와 예술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올리버 색스는 평생 자신의 독자들과 편지로 교류를 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실제로 질병에 고통받고 있었고, 색스는 독자들의 사례를 통해 자신의 연구를 확장해나갔지요. 자연스럽게 그들 중 많은 이들과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경계란 중요하지 않았어요. 편지를 나누면서 이들은 서로의 아픔과 지혜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진화생물학자나 뇌과학자들이 그들의 최신 연구에 대해 올리버 색스와 의견을 나누려고도 했지요. 올리버 색스는 생의 후반기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던 사막보다 더 광활하고 어마어마한 세계를 만났습니다. 그것은 인연의 세계, 인간 마음의 세계였어요.

올리버 색스에게 글쓰기는 또 하나의 여행법이었습니다.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를 어디론가 데려가주는 행위였지요. 오토바위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청년. 그리고 시작되는 긴 여행. <On the Move>는 그렇게 시작되지만 ‘나는 이야기꾼이다’라는 말로 끝납니다. 펜을 드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이것이 이 책의 주제이지요. 그는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에 평생 경계를, 한계를 모르고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2015년 8월 여든 두 살의 나이로 올리버 색스는 생을 마감합니다. 그는 글을 쓸 때마다 앎의 경계를 넘어가는 체험을 했을 터이므로, 자기가 최후로 통과해야 할 이 여행 또한 두렵지만 기쁘게 받아들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움직이려고 노력했습니다.

 

* 유튜브를 뒤지면 올리버 색스의 생전 강연과 인터뷰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많아요. 그는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던 것 같습니다. 색스가 자신의 작업실을 소개한 것도 있었는데요, 소박한 책상이 있었고 그 위에는 그가 사랑했던 수많은 광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작은 돌맹이 하나에도 개성을 느끼는 올리버 색스였던 거죠. 그래서였겠지요. 그가 쓴 신경의학 보고서 속에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던 환자들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이상한 뇌염증후군 나라의 앨리스’, ‘가면같은 얼굴에 표정이 살아난’, ‘여러 명이 자아로 쪼개지는-마거릿 A’, ‘부재 중 인간이 되어버린-프랭크 G’ 같은 식으로 독특한 생명력을 띄며 활약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sAxTeEkmUs)

 
  • 첫 번째 사진은 1961년의 올리버 색스입니다. 영문판 <On the Move>의 표지입니다.  https://rhystranter.com/2015/08/30/oliver-sacks-obituaries-science-neurologist/

  • 두 번째 사진은 2000년 가을입니다.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525/n7568/full/525188a.html

  • 세 번째 사진은 그의 노트를 엿볼 수 있어서 실어봅니다. 아래 링크 5분의 4되는 지점에야 올리버 색스가 나옵니다. http://www.newyorksocialdiary.com/guest-diary/2015/jill-krementz-summer-pleasures-on-the-east-end-part-2


 

* <코너 안의 코너 : 짭쪼롬한 영어의 맛>을 싣지 못했는데요. 다른 공간에서 독립 코너로 되살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제 다음 주면 서울행 비행기를 탑니다. 이국의 숲과 바다를 돌아다녔을 때처럼, 서울과 규문에서 새로운 일들을 겪게 되겠지요. 그럴 때마다 올리버 색스처럼 움직이고 글 쓰려고 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갖고서요. 그럼,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전체 1

  • 2016-12-17 01:56
    캐나다발 <길 위의 생> 마지막회라니! 아마, 서울에서 또 다른 <길 위의 생>이 시작될 듯! 어서 오거라~ 너를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