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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의 '난중일기' 3화 - 이등병 편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6-12-19 15:37
조회
861
민호의 난중일기 3화 : 이등병 편

1.환멸에서 적응까지

처음 2주는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많이 괴로웠다. 어느 정도 예상과 각오가 되어 있었음에도 '아, 이렇게 되면 정말 자살을 고민할 수 있겠구나'하고 잠깐의 공감이 들기도 했다. 신병을 직접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뭔가를 잘못하면 그 바로 윗선임을 치는 방식이다. 훈련소에서 부대 설명회 때 자랑했던 병영문화혁신의 선두주자라는 홍보를 비웃으며 자기들 입으로 "우리 부조리(악습) 엄청 많다"고 말해대고 있는 꼴이다. 타겟이 되는 내 바로 윗선임들의 팔에 들어 있던 멍, 별다른 웃음기나 대화도 상병, 병장들끼리만 낄낄대는 것 외에는 찾아볼 수 없어 입 닫고 표정은 거슬리지 않게 짓고 있는 게 전부이다.

이 소대의 실세처럼 보이는 성격 더럽고 집요한 상병놈 둘 사이에 내 자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헐뜯고 꼬투리를 잡아 갈구고 비웃기를 일삼는 것. 사자우리 같다는 생각도 했다. 24시간 그 눈알들 사이에서, 그들 문화를 모르는 채로 던져져 정신 차리고 적응해나가는 과정은 정말 그 당시에는 '견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에서 쓸데없이 끄적였던 자유나 목표 같은 것도 부질없다. 짬찌(짬찌란, 갓 들어온 신병 또는 자신보다 후임자를 가리켜 부르는 표현으로 주로 1년을 채우지 못한 병사들에게 붙여진다.) 중의 짬찌인 나는 그냥 이곳에서, 이들 눈알들 밑에서 어떻게 밉보이지 않고 살아가느냐, 내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지게 할거냐에만 오로지 혈안이 되었을 뿐이다.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을지… 눈에 거슬리지 않을지 머리를 굴리고 그 말에 또 눈알을 굴려대는 나다. 신교대에서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웃기고 웃던 내 오랜 외면화 기술은 여기선 고물이 다되어 간다. 꺼내 켜볼 일이 없다. 부끄럽게도, 신교대에서 들어 담아두었던 말들이 생각난다. '마이노는 선임들한테 이쁨 받겠다.' 동기가 없어서 더 심한 걸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문제라고 짚어 보지만 아닐 테다. 오늘도 좁은 생활관 복도를 방황했던 내 모습들이 역시 가엾다." (10월 6일 일기)

어려서부터 그랬지만 나는 미움 받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남들이 싫어하는 놈이 되는 것은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특히 지금처럼 나를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 절대로 미운털이 박히고 싶지 않다. 폐쇄된 공간인 군대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소문이 막강하다. 한 선임 앞에서 했던 실수를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고참 선임이 와전되고 가미된 사건으로 알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다. 처음 눈치 없다는 말을 한 선임에게 들었을 때 그걸 그렇게 많은 놈들이 공유하고 있고 나를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아마 내가 밥을 늦게 먹어서였을 거다.

문제아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동시에 괜찮은 녀석이 되고자 하는 욕망도 컸다. 내가 나를 평가하는 수준보다 타인에게 과소평가 받는 것이 싫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이미 나를 바보로 여기는 것에 대해 초조하고, 내 어리숙한 반응과 주춤거리는 언행을 얕잡아 보는 게 수치였다. 몇 주간 이곳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어법, 관습, 룰, 일정 따위를 익혀가며 내가 온통 정신을 쏟은 것은 내 이미지였다. 좋게 말하면 유능한 병사가 되기 위해 힘썼다고 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껍데기만 만들어 놓은 거다. 일주일에 몇 번, 이곳 북카페에 앉아 불빛아래 혼자 일기를 쓰고 있노라면 비참함과 막막함, 씁쓸한 감정이 그제야 묵직하게 누르며 온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이 시간까지 내가 지은 표정은 그들이 보고 싶은 표정들─그들 말에 대한 억지웃음과 공감, 혼날 땐 숙연한 표정, 평시 생생한 표정─이었고, 내가 하는 말도 내가 하는 몸짓도 그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를 고려한 것들이었다. 가면이고, 거짓말이고, 아첨이었다. 그렇게 나는 '예의 있음', '센스있음', '괜찮은 녀석' 따위의 평가에 나에 대해 그들이 갖는 이미지를 올려놓기 위해 갖은 애를 쓴 거다. 아침에 눈을 떠 다시 잠들기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신경을 쓴 것은 나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발악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들이 TV를 보며 제 생각들을 떠드는 말들, 또 후임을 갈구는 것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이들을 야만인으로 구분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들 눈에 비칠 내 이미지를 위해 힘쓰고 있었다. 야만인들에게까지 그렇게 잘 보이고 싶은가? 왜 이런 껍데기만 두껍게 하고 이미지에 신경 쓰고 있는 걸까? 단순히 군 문화의 무거운 위계질서에 눌린 탓만은 아니다. 왜 내 진짜 모습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거지? 그런데 내 진짜 모습이 나에게 뚜렷하지가 않다. 어쩌면 나는 그들(이곳 선임들을 포함해 내가 아는 타인들)눈에 비친, 그들 입에 오르는 내 이미지를 나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밖에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내 이미지를 규합해 나로 인지하면 되어 그 관계에 있어 목멜 필요성을 못 느꼈지만, 이곳 폐쇄된 집단에서 나의 이미지에 대한 집착은 더 심해진 것이었다.

"너희 자신을 예찬하려 할 때, 너희는 증인을 끌어들인다. 너희에 대해 좋게 생각하도록 그 증인을 유도하고 나서 너희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했다. 이렇게 내가 만드는 내 이미지는 남의 만족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나의 만족을 위한 것에 가깝다. 타인이 여기는 나를 나로 여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무능한 게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운 거다. 그래서 그렇게 부지런히 만들어낸 내 짬찌로서의 껍데기는 보는 녀석들을 위해 만든 것이었지만 결국 내가 보기에 좋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만족을 위해 스스로 원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는 역설이다.

결국 우리 소대의 실세였던 녀석들 중 6명은 폭행과 욕설 및 가혹행위로 부조리 가해자로 선고되었다. 그중 2명은 전출을 가고 4명은 5일간 격리조치 및 휴가제한을 받았다. 이런 파문이 있고 압박들이 사라지자 통쾌했다. 계속해서 통쾌했으나 동시에 공허하기도 했다. 진짜 허물만 남은 것이었다. 지적과 갈굼, 비아냥에 의해 짧은 시간동안 굳어진 습관들─벌떡 일어나 가장 먼저 침낭을 반듯하게 개켜놓는 것, 옷걸이의 옷 순서를 맞추고 그들이 밥 먹는 속도에 맞춰 음식을 쑤셔넣는 것, 점호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것 등─이 진짜 허물처럼 느껴졌다. 통쾌했지만 씁쓸했다. 그리고 6주가 넘어가는 이때 즈음, 나는 군대 오기 전에 내가 나에게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유사한 이미지인 열심히 하고 똘똘한, (물론 규문 식구들은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꽤 괜찮은 짬찌로서 굳어져가고 있다는 걸 내게 증명했다. 별다른 저주의 대상도 남아 있지 않고 북카페에서 나에게 퍼붓던 조소도 사라졌다. 곧 있으면 후임도 들어올 것이고 근무 및 작전도 들어갈 것이다. 허무하게도 허물만 남긴채 나는 잘 적응했다.
2. 짬밥과 황금마차, 그리고 송중기!?

-짬밥 레이서들

익숙해졌다고 한 이곳 생활 중 매일 거슬리는 것은 식사 때이다. '분대건재'라는 것이 있어서 분대 별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지침이다. 취사장 테이블은 6인이 앉을 수 있는데, 이곳에서 한 분대는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즉 함께 밥을 받으러 와서 마지막 분대원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앉아 있는 거다. 나는 이 룰이 가장 싫다. 이곳에서 꽤 스트레스 받는 것이 밥을 사람답게 못 먹는다는 거다. 분대원들 중 밥을 마지막으로 받는 나는 일단 스타트가 느리다. 먼저 받는다고 해도 같이 시작하니 차이가 없다. 그리고 선임들은 짬밥을 오래 먹어서인지 밥에 미련이 없다. 받는 양도 적고 남기는 양도 많다. 나는 우걱우걱 먹어가며 선임들 식판의 남은 밥 양을 예의주시하는 꼴이다. 어느 정도 비슷하다 싶어서 숨 좀 쉬려하면 국 칸에 밥과 반찬을 말아 놓고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이때는 정말 절망스럽다. 그렇게 앉아서 말없이 내려 보고 있는 놈들 앞에서 밥을 우겨넣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다. 지난달에는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쫄아서 밥 양을 줄일까 하는 시도도 했었다. 요즘에는 대부분 먼저 가는 경우가 있고 한두 명이 기다려준다. 대개 일병급 녀석들이다. 특히 간부들이 식사중이면 고참들도 일어나지 못하고 기다리는데, 6명 중 혼자 먹고 있으면 밥이 밥이 아니다. 그런 경우 다 먹은 척하며 밥을 그냥 수저를 놓는다. 밥맛도 뚝 떨어진다.

왜들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대는지 이해가 안 된다. 훈련소처럼 자리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다 먹고 올라가서 할 일 없이 있을 거면서 TV에는 볼 것도 없다고 툴툴거릴 거면서, 이런 점이 야만인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건 우리 분대만의 특성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단지 소대개편 전 분대도 그랬고 지금 바뀐 분대원들도 그렇다는 게 문제다. 다른 분대들은 다 같이 얘기하면서 천천히 먹고, 라면 끓여서 나눠 먹고, 이야기 나누면서 기다린다. 다 먹고 난 후에도 그렇게 여유 있게 있다가 함께 일어나는 거다. 어쩌다 타분대 신입과 먹게 되면 천천히 먹으라고들 해주는데 그 말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입대 이후 혼자 밥을 먹은 일이 없는데 요즘은 그냥 주변에 누구 없이 혼자 밥 먹는 게 부럽다. 변비로 대변이 잘 안 나오는 것도 필시 설사의 스트레스 때문이리라.

-황금마차를 기다리며

군인들이 자기들이 먹는 밥을 '짬밥'이라고 비하하며 남기고 무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훈련소에서는 다들 열광하던 고기반찬도 이곳에서는 홀대받기 일쑤다. 이곳 사람들은 자기 침대 밑에 과자박스를 한 박스씩 품고 있다. 밥이 맛없으면 라면을 끓여먹으면 되고, 나머지 심심함은 얼마든지 과자로 때우면 된다. 밥을 아무리 잘 챙겨 먹는다 해도 견물생심인지라 옆에서 감자칩이나 쿠쿠다스, 빈츠 같은 과자를 먹고 있으면 절대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옆뿐만이 아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와작와작 과자를 먹고 있으면 밖에서는 거들떠도 안 봤던 것들이 있어도 꼭 먹어보고 싶게 되는 거다.



내가 있는 분대는 한 중대당 전방에서 6개월을 보내고 후방에서 3개월을 보내는 식으로 교대를 한다. 지금 우리 중대는 전방에서 철수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어찌 되었든 전방지역에서 막사 생활을 하는 우리 소대에는 PX가 없다. 그렇다면 과자는 어떻게 쌓아 놓으며, 샴푸나 비누같은 생필품은 어떻게 구하느냐, 바로 일주일마다 한 번씩 강림한다는 '황금마차'에서 구한다. 온통 노란색 비주얼의 덤프트럭이 도착하면 간부들을 포함해서 소대원 거의가 나라사랑카드를 들고 줄서서 대기하는 거다. 한 번에 두 명씩 밖에 들어갈 수 없는 비좁은 내부이지만, 과자나 음료수며 아이스크림, 라면이 섭섭하지 않게 있다. 취향이고 뭐고 이것저것 꽉 차게 때려 넣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들고 간다. 훈련이나 작전이 있어서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 꼬박 1주일을 짬밥과 보급 간식만 먹고 살아야 하니 한번 올 때 사재기를 해놓는 모양이다. 군대서 살찐다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시급도 300원 받는 주제에 이렇게 쓰니 돈이 모일 수가 없지. 이런 생각도 잠시 드디어 내 차례가 와서 설레는 마음으로 세련된 과자 몇 개를 올려놓고 카드를 내밀었는데 카드가 분실신고 돼서 정지되어 있던 거다….

크나큰 충격으로 나중에 카드사에 전화를 해보니 직접 방문하지 않고는 분실 해제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하여 몇 선임들이 사준 과자 외에는 보급되는 건빵만 먹으며 섭섭한 입을 달래고 있던 거다…. 황금마차가 왔다 하면 내 손에 카드는 여러 장 쥐어져 있어 무슨 포커 패라도 쥔 것 같지만, 그 중에 내 카드는 없다. 몇 봉지를 사서 주인 자리에 놓게 되면 임무 끝이다. 가끔 과자 몇 봉지가 떨어질 때도 있다. 고맙게 받는다. 슬프지만.

-태양의 후예의 후예

황금마차 내용을 쓰다 떠오른 얘기가 있다. 그전에 먼저 송중기가 지금 나와 같은 소속의 같은 소대였었고 이 막사에서 군복무를 했었다는 것을 밝힌다. 송중기가 짬찌시절 황금마차가 와서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카드를 긁었는데 잔액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와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다시 들어가서 물건을 잔뜩 사들고 나왔다. 그래서 누군가 물어봤더니 잔액이 3000만원이었다는….

어찌 되었든 놀랍게도 송중기와 같은 부대, 같은 대대, 중대, 소대까지 되었다. 내가 전입 왔을 때는 송중기를 직접 보고 함께 생활했던 최후의 1인인 병장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이번 달 11월 초에 전역했는데, 그 전에 몇 가지를 물어봤더니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해줬다. 어리버리 했었다, 겨울 매복 작전 가기 싫다고 툴툴대더라, 뜀걸음도 잘 못하더라, 흡연실에서 음담패설을 풀더라, 피부가 하도 좋아서 누군가 비법이 있나 몰래 관물대를 뒤져 봤는데 평범한 스킨로션 하나만 쓰더라, 팬들이 보내준 화장품은 소대원에게 돌렸다…. 사실이 아닌 것들도 있겠지만, 듣고 있으니 괜히 흥미로웠고 신기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어찌 되었든 현역으로 이곳에서 작전 열심히 뛰다 갔으니 인정하는 바다. 어떤 간부는 자기 부하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하는 게 자존심 상해서 끝까지 안 찍었는데, 그게 그렇게 후회된다고 한다. 송중기와 같은 부대여서 뭐가 어떻다는 건 아니지만 곧 나가게 될 휴가 때 친구들과 떠들며 이목을 끌만한 정도(?)의 얘기 거리가 있다는 것뿐이다.



-무료한 일상에서 탈출

하루일과는 매우 단순하다. 몸이 힘든 것도 작전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아직 짬찌인 나는 전입후 두 달간 작전가는 인원들의 방탄을 위장한다던가 물자를 준비해주는 일을 하면 되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은 얼마전에 다녀온 훈련을 위해 틈틈이 이곳 임무에 대한 공부를 하며 보냈다. 하는 척을 하며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어쨌든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힘들 거 없는 일상에서 눈알을 굴리며 가면을 겹겹이 쌓았다. 책을 읽거나 이렇게 펜을 잡는 일은 TV에 시선을 박고 있는 생활관에서는 호기심 또는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는 특이행동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곳 북카페 컨테이너로 도망친 후에야 정신이 좀 자유를 얻는다. 물론 몸은 덜덜 떨고 있지만. 요즘은 말더듬이 남영우 일병이 기타에 빠져 북카페에 먼저 박혀있는 경우가 있다. "아, 미, 민호야 기타 좀 쳐도, 아, 되니?"하고 물어오면 경쾌하게 승낙할 수 있을 뿐. 노래를 정말 못한다. 혼자 손 시렵네, 잘 안 되네, 중얼중얼 하며 기타줄을 더듬고 있는 거다.

희망적인 것은 그래도 임무수행 자격조건 같은 훈련을 마치고 와서 노트 보며 공부하는 척을 그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책을 펴고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책을 펴고 있어도 된다는 뜻이다. 부대에 읽을 만한 게 뭐 있겠나 했었지만 몇 권 재밌어 보이는 책들이 있어 읽었다. 자기계발서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이면서도 동시에 나를 지겨운 가면극의 매너리즘에서 탈출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책인가 싶다. 손이 시려워오는 컨테이너에서 또 이 조잡한 난중일기를 세 번째 써 보낸다.
전체 2

  • 2016-12-19 21:57
    군대에는 민호랑 닮은 애들이 아주 많구나.... 저기 위에 건빵들고 있는 애 같은....ㅋㅋㅋㅋ

  • 2016-12-20 11:44
    건빵 아니라 몽쉘. 첫 문장이 환멸에서 적응이라니 보기만 해도 무거운데 다행히 송중기 사진으로 마무리되어 정화된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