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탁마

02.01 수업 공지

작성자
수경
작성일
2017-01-21 12:53
조회
329
5학기 개강을 맞아 첫 시간에는 <감각의 논리>를 텍스트 삼아 들뢰즈‘의’ 베이컨을 만나보았죠.
누가 봐도 베이컨의 것인^^ 시뻘겋고 뭉개진 그림들을 함께 보며 강의를 들으려니 더 흥미진진하고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채운쌤은 <의미의 논리>와 <감각의 논리>를 한 세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셨지요. 전자가 의미의 발생적 차원을 사유했던 책이라면 후자는 감각의 발생적 차원을 사유하는 책.
들뢰즈의 모든 사유는 현실화된 것 내지 우리가 ‘존재’라 부르는 것에 대한 비판이나 설명이 아니라 그것의 발생적 차원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주장으로부터 독특성을 갖게 되지요.
내가 나라고 부르는 것의 발생적 차원, 인간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발생적 차원까지 내려가기. 그럼으로써 우리는 인간주의적 표상을 걷어내고 세계와 마주할 수 있게 된답니다.
그때 마주하게 될 것, 그것을 고유한 도표로 만들어냈을 때 가능한 생산물 중 하나가 바로 프랜시스 베이컨의 회화라는 거죠.
인간이 아니라 뭉개진 고깃덩어리, 얼굴이 아니라 빛과 힘에 의해 관통되는 얇은 표면, 신체기관이 아니라 어떤 강도에 의해 특정하게 변형 중인 구멍이나 기둥. 그러니까 동물적인, 혹은 괴물적인 형상들.
베이컨은 우리가 ‘내 얼굴’ ‘사랑’ ‘희생’ 등등으로 부르는 것으로부터 익숙한 이미지를 걷어냈을 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이와 같다고 여깁니다.
모든 것은 시시각각 생성 중인 것, 변형되는 것인바, 우리가 습관과 기억에 의해 그것을 붙들어두고 하나의 표상에 가둬두려 하지 않는 한 어느 하나도 단 하나의 형상, 낯익은 얼굴로 머물 수 없으니까요.
말하자면 존재하는 것은 ‘존재’가 아니라 ‘생성’. 언어로 붙들 수 없는, 매양 꿈틀거리는, 힘들.

자기 자신, 인간, 삶, 그리고 이 세계를 익숙한 지각체계로 느끼고 관습적으로 바라보는 것, 그에 대해 니체, 들뢰즈, 베이컨 등등 우리가 만난 많은 실험가들이 같은 이야기를 했지요.
그것은 실재를 충분히 긍정하지 못하는 것, (인간적인 눈으로 보았을 때)잔혹하고 끔찍한 실재를 바로보지 못하는 것!
이렇게 볼 때 들뢰즈, 그리고 들뢰즈가 생각하는 베이컨은 ‘재현적 사유’ ‘재현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라 여겼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어떤 本이 있어서 그것을 가지고 세계를 배열하고 대상을 평가하는 것, 그것을 따라 어떤 말, 행위, 생각을 재생산하는 것이 곧 재현적 사유인바, 이를 통해 인간은 점점 더 실재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러니 현실은 한편으로는 점점 더 좁아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만족스러워질 수밖에요.

베이컨의 그림이 끔찍하게 보이고 뭔가 혐오스러운 것을 싸발긴 것처럼 보이는 건, 그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일정한 감정들을 생산하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채운 쌤 설명에 의하면 들뢰즈는 그것을 affect(정서/변용태/힘…)라 부르지요.
채운쌤께서는 감정이란 익숙한 것으로부터 생산된다고 하셨죠.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감동할 때, 기뻐하거나 우울해할 때, 그것은 일어난 일, 눈앞의 대상을 해독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나의 번역기가 잘 돌아가면 그에 대한 반응으로 감정들을 생산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가끔 번역기가 고장 날 때가 있어요. 그건 다름 아니라 기존의 메커니즘과 언어로는 독해되지 않는 대상 앞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지요.
이럴 때 인간은 즐거움이나 분노, 서글픔 그 어떤 것도 아닌 이상한 상태에 놓입니다. 우리가 충격에 빠지는 게 이런 때죠. 감동이 아니라 충격.
이게 뭔지 알 수 없는 상태. 그때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낯선 얼굴을 하고 나를 뒤돌아봅니다. 바로 이때, 드디어 나의 언어, 나의 이미지, 나의 판단체계가 교란되면서 나는 습관 대신 사유 역량을 발동하게 되지요.
철학과 예술은 이 순간에 다름 아닙니다. 충격 받게 되는 순간, 정신이 얼얼해지면서 그만 말을 더듬게 되는 순간, 그리고 이토록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서서히 힘의지를 발동시키게 되는 순간.
니체 및 들뢰즈가 ‘긍정’이라 말한 게 바로 이런 것이겠죠? 차이 앞에서 달아나지 않고 그 차이와 더불어 자신을 차이화할 수 있는 힘의지를 발동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성에 대한 긍정, 이 세계에 대한 거대한 긍정이라는~

아마도 이것이, 베이컨이 계속해서 기괴한 그림을 그리게 한 원동력이겠지요.
표면의 매끄러운 얼굴, 우리가 이쁘다 좋다 인자하다 상찬하는 그 얼굴을 찢어내고서, 힘들로 요동치는 징그러운 괴물의 얼굴, 곧 생성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에 대한 긍정이라는 것을,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에서 읽어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자아! 여기서 배턴을 이어받아 우리 이번 한 학기, 모쪼록 사유의 울트라쇼킹한 모험을 해볼 수 있기를 ^^

수업시간에 공지한 대로 다음 주는 연휴 주라 휴강, 그 다음 주인 2월 1일에 카프카 수업 진행됩니다. 오선민 선생님 특강.
선생님 말씀을 전하자면 <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요제피네>를 꼬옥 읽어오시라는. 혹 가능하시다면 장편인 <소송>도 한 번 도전해보시고요.

간식은 배현숙쌤+노진우쌤. 그리고 이번 주 후기는 건화.

그럼 모두 2월에 만나요!
전체 2

  • 2017-01-22 16:15
    아는 게 없어서 더욱 흥미진진했던 시간이었어요. 이제 베이컨하면 샌드위치 속 베이컨이 아니라 프랜시스 베이컨을 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푸하하~~ ^^;

    • 2017-01-22 19:07
      으음... 2017년에는 선생님의 조크도 좀 업그레이드되길 기원하며...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