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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생] 호시노 미치오

작성자
선민
작성일
2017-02-02 11:14
조회
665
[길 위의 생] 호시노 미치오

1. 순록의 부름

소년은 홋카이도의 자연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도쿄 시내의 간다 헌책방 거리에서 알래스카를 찍은 사진집을 발견했어요. 1972년이었습니다. 모든 사진이 소년을 매료시켰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은 것은 회색의 베링 해안에 자리잡은 한 마을 사진. 흰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북극의 햇살, 작은 점처럼 박혀 있는 에스키모 마을. 쉬스마레프였습니다. 퍼지는 빛의 조화 속에서 시퍼런 대기와 인간의 온기가 어우려져 있었지요. 소년은 손 잡으면 닿을 장소에 사진집을 두고 보고 또 보며 알래스카의 모든 풍경을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썼습니다. 읍장님께.

“…… 저는 일본에 사는 호시노 미치오라는 학생입니다. 책에서 그 마을 사진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곳 생활에 흥미가 많습니다. 방문하고 싶지만, 그 마을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을 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으니, 모쪼록 어느 댁에서든 저를 받아주실 수 있을런지요. ……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사전을 뒤져가며 처음 써 본 영문 편지. 수신인도 주소도 불명확했습니다. 답장이 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지요. 하지만 쓰지 않을 수도 없었습니다. 알래스카. 알래스카! 그런데 기대없이 보낸 반년 뒤에 소년은 답신을 받았습니다. “… 편지를 잘 받아보았습니다. 그렇게 먼 곳에서 우리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니 무척 고맙습니다. 여름은 토나카이(순록) 사냥이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언제든지 오신다면 환영하겠습니다.” 아. 토카나이! 알래스카의 순록이 나를 부르는구나! 소년은 외쳤습니다.

그날부터 소년은 반년 동안 알래스카 여행을 준비, 1973년 여름 작은 비행기를 몇 번씩이나 갈아타며 알래스카에 도착, 며칠을 더 이동해서 마침내 쉬스마레프 마을에 들어갔고 거기서 3개월을 에스키모 가족과 생활했습니다. 빙하, 곰, 바다표범, 무엇보다 토나카이. 태양만이 반복되는 백야, 사냥, 그리고 에스키모인들. 열아홉의 소년은 북반구 최고 추운 곳에서 인생 가장 강렬한 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 후 일본에 돌아와서 대학을 마치고 사진작가로 일하다 1978년 다시 알래스카를 찾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길고 긴 여행. 오래 이어진 에스키모 친구들과의 멋진 우정.

청년은 동토와 냉기에 빨려들어갈 듯 흡수되었습니다. 알래스카의 북극권을 횡단하는 브룩스 산맥의 골짜기를 걸어 다니고, 카약을 타고 글래이셔 베이를 횡단했어요. 빙하의 울음을 듣고 가을 툰드라의 와인색 단풍을 밟고, 곰처럼 블루베리를 따먹으며 카리부와 함께 이동하고. 이후 18년을 마치 처음 알래스카에 발을 내딛었던 그 설렘을 안고 북극의 자연과 야생동물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미지의 친구에게, 야생의 동물에게, 몰랐던 자신에게, 늘 먼저 손을 내밀었던 그는 호시노 미치오.(1952~1996) 알래스카의 전설이 된 사나이입니다.

2. 또 하나의 시간

호시노 미치오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초가을 알래스카 여행이 급 취소되고 난 직후였습니다. 여름에 우연히 알레스카의 거대한 빙하 사진을 보았는데, 얼마나 놀랐는지요! 사진 속에는 인간의 숨이 한없이 연약하게 느껴지는, 차갑고도 거대한 세계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여긴 어디인가? 땅도 하늘도 대기도 신비로웠습니다. 그곳은 외계였습니다. ‘어머 저긴 가봐야 해!’ 저희 가족은 곧 알래스카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북미 최대의 설산 맥킨리의 위치를 찾아보고, 관광 안내소 홈페이지에서 그 사계의 풍경을 구경했어요. 오로라의 출몰에 대해 공부하고, 입체 지도를 보며 알래스카의 고속도로를 모의 주행해 보기도 했습니다. 앵커리지, 수어드, 휘티어, 발데즈, 페어뱅크스. 초록색이라고는 없는 하얀 땅. 저는 툰드라의 물망초, 호수의 작은 새들을 수없이 그려보았습니다. 아이들도 북극탐험에 신이 나 있었지요. 그러나 이 또한 운명. 2016년 9월 10일 출발 당일 날 아침까지 캐나다와 미국을 무비자로 오갈 수 있는 허가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두 나라 국경 사이에 끼인 채로, 한국으로 되돌아가게 될 수도 있었어요.  결국, 저희는 여행을 포기했습니다.

겨우 아이들을 달래어 유치원에 보낸 뒤, 저는 늘 하던 대로 숲 속으로 갔습니다. ‘지금 앵커리지 공항에 내려서 차를 빌리고 있어야 하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며 빙벽을 보고 있어야 하는데!’ 침엽수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제 마음은 극북의 찬 공기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화도 났습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런데 그때 서서히 어떤 전도가 일어났습니다. 놓치게 된 여행의 절실함을 자각하자, 벤쿠버에서 보내게 된 또 하나의 하루가 새롭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갑자기 발목에 덜 마른 이슬들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들어 돌아보니, 진녹색의 이끼로 뒤덮인 숲에 딱따구리가 울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부스럭, 작은 동물이 지나갔구요. 이 숲에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툰드라 어딘가에 그리즐리 곰이 뛰어다니고 있고, 나는 이 숲 속에 있다. ‘아, 너는 거기에 있구나!’ 하지만 우리는 공존했습니다. 저는 밟아본 적 없는 동토의 땅과 벤쿠버 인디언의 숲을 동시에 호흡하며 긴 오후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귀가해 보니 우리들의 허가증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3. 먼 자연을 품다

‘알래스카에 가지 못한 것 또한 여행의 경험이다.’ 스승님은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벤쿠버에서 뵙게 된 또 한분의 스승님께서 ‘좋은 인연은 더 기다려야 하는 법’ 이라시며 호시노 미치오를 소개해주셨습니다.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에서 잠자던 중 불곰의 습격으로 사망한 사진작가. 그는 토템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저는 호시노의 알래스카를 찾아보았습니다. 모든 사진이 아름다웠어요. 어떤 사진에도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하얀 얼음의 땅을 이동하는 순록, 카리부의 무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빙산과 빙판, 죽어있는 땅인지 살아있는 땅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대륙을 잿빛의 카리부 떼가 걸어갑니다. 서두름도 나태도 없습니다. 카리부는 왜 저 척박한 곳에 사나? 저는 카리부 떼가 맞닥뜨렸을 냉혹한 추위를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뜨거운 심장도. 이 자연을 가혹하다고 해야 할까요? 거기에는 너무나 연약하나 너무나 강한 생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래도록 호시노의 사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호시노는 이 카리부의 이동을 찍기 위해, 광대한 툰드라 지대가 펼쳐지는 이름 없는 계곡에 가서 두 달 동안 혼자 기다렸다고 합니다. 카리부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정말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고, 지난 7년의 시도는 모두 실패했었습니다. 그래도 또 그곳을 찾아간 겁니다. 인간의 말을 쓸 수 없는 두 달쯤은 당연하다는 듯. 그는 작은 텐트에서 추위를 피하며 매일 밤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혹독한 자연의 무심한 급변이 두렵지 않았을까요? 하필 왜 카리부였을까요? 그는 무엇을 위해 그 고생을 했단 말입니까? 따뜻한 대지에 발 딛고 있던 저의 일상이 새롭게 환기되었습니다. '그는 왜 여기가 아니라 거기에 있었을까?'

호시노는 마지막까지 에스키모인들의 전통적 생활 방식과 야생동물들의 세계를 사진으로 기록하기에 힘썼습니다. 알래스카의 모든 생물이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설고 힘찬 생명력을 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위대한 알래스카에서는 한 시대가 막을 내리고도 있었어요. 유전 개발이 논의되고, 에스키모인들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세련된 도시적 삶 사이에서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호시노는 순록의 부름을 받고, 카리부에 이끌리다가, 결국에는 알래스카에서 소용돌이치는 다양한 문제들과 잇달아 만나게 되었습니다. 호시노는 사진뿐만 아니라 많은 글을 남겼는데, 그것은 대부분 알래스카 사람들 이야기였습니다. 혹시 극북의 오로라를 묘사한 책인가 싶어 펼쳤던 『노던 라이츠』, 툰드라 식물 이야기인가 싶어 찾아본 『여행하는 나무』에는 모두 혹한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 인생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호시노는 야생의 풍경과 인간의 삶 전부를 아우르는, 생명을 탐구했던 것입니다. "엄청난 고래 한 마리도 알래스카의 자연과 비교하면 고작 한 마리 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자연에겐 그저 하나의 생명에 불과하다."(『여행하는 나무』) 우리는 서로에게 생명이며, 모두 함께 생명입니다. 호시노가 혼자서 두 달이나 묵묵히 카리부 떼를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힘들고도 당연한 여정을 자기 생의 시간과 오버랩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보라를 뿜어 올리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고래가 자연이라면, 그 고래에 작살을 던지는 에스키모 사람들의 생활도 역시 자연인 것이다. 자연이란 인간의 삶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마저 포괄하는 것이라고 본다. 아름답고 잔혹하고, 그리고 작은 것에서 큰 상처를 받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강하고 연약하다. 사람들은 왜 자연으로 눈길을 돌리는 걸까. 알래스카 들판을 걷는 그리즐리 한 마리에서,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지저귀는 박새에서 우리는 왜 눈길을 때지 못할까. 아마도 우리는 그 곰이나 작은 새의 생명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의 생명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다다르게 되는 종착점은 자기 생명, 살아 있다는 것의 신비일 터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생물의 다양성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할 것이다. 이리가 어슬렁거리는 세계가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의식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상상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풍요를 가져다주고, 우리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계속 가르쳐줄 것이다.

조금 추워졌다. 붉은다람쥐의 경계음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눈을 뒤집어쓴 가문비나무들을 올려다보지만,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바야흐로 긴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바야흐로 알래스카는 긴 겨울일 겁니다. 지금 카리부 떼는 어디를 걷고 있을까요?

전체 3

  • 2017-02-02 14:14
    사야할 책이 또 생겼네요. 아까 책에 실린 사진들 잠깐 보는데도 너무 좋던데. 작가가 사진을 찍기까지 기다려야 할 그 셀 수 없는 시간이야말로 예술의 시간이 아닐까... 카리부 떼와 만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두 달이라니...

  • 2017-02-03 00:29
    호시노 미치오는 그 예술의 시간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길지만 옮겨볼께요. 멋집니다.

    "그날 밤도 북극해에서 불어대는 바람이 쉴 새 없이 으르렁대고 있었다. 시야에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알래스카 대지에 150센티미터쯤 되는 나의 텐트만 툭 튀어나와 있어, 마치 나 혼자 이 바람을 다 당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잠자기 전에 다시 한 번 바깥을 확인하려고, 침낭에 들어간 채 목만 빼서 텐트 입구로 얼굴을 내밀었다. 강풍이 만드는 눈보라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산꼭대기에서 능선을 타고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다. 저게 뭐지, 하며 시선에 신경을 모으니, 그것은 일렬을 이루어 마치 사슬처럼 산기슭까지 뻗어 있었다.
    나는 허겁지검 카메라를 배낭에 쑤셔 넣고, 당장이라도 날아가버릴 것 같은 텐트는 나 몰라라, 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스노슈즈를 신어도 깊은 눈에 발이 자꾸 빠져서 마음만 급해진다. 강가에 도착해서 눈을 파헤치고 삼각대를 세우고 쪼그리고 앉는다. 어지간해서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삼각대가, 손을 놓자 바람에 날아가버릴 것 같다. 선두 카리부가 벌써 강까지 내려왔는데도 눈보라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강풍이 잠깐 힘을 늦추는 순간 블리자드의 눈보라 베일이 걷히자, 강을 건너려고 하는 카리부의 행렬이 영광 속에서 실루엣으로 떠오른다. 카리부들은 저마다 눈보라 속에 낮게 몸을 도사리고 강풍을 정면으로 받고 있다."

  • 2017-02-05 00:35
    사진에 끌어당기는 힘이 있을 수 있는 것도 찍은 사람의 철학이 그만큼 매력적이어야 하는 군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에서도 며칠 동안 기다린 눈표범을 찍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어떤 때는 이 순간을 카메라로 찍음으로써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더군요. 아마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들에게 찍는다는 것은 단순히 장면만을 포착하는 작업은 아닌 것 같네요. 교감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