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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문 도쿄 답사 : 02.10 한밤의 도쿄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2-21 20:57
조회
378

한밤의 도쿄


인천공항의 개화기 청년
반년 전에 그랬던 것 같은데, 또 밤을 새고 이상한 정신머리로 인천공항에 있었다. 또 송중기 얼굴을 보며 오늘 탈 작은 비행기가 무사히 도쿄로 갈 수 있도록 기도했다. 그래도 작년의 경험이 있다보니 일행이 도착하는 족족 여권을 강탈해 자동으로 체크인하는 기계 앞에서 빠르게 발권할 수 있었다. 열한명분을 한꺼번에 발권하는 바람에 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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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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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단체사진)


이번 공항패션의 스타는 규창이었는데, 품새가 딱 도시락폭탄을 옆구리에 끼고 유학길에 나서는 개화기 청년이었다. 물론 여행에서 본색(!)을 드러내는 이응언니가 도시락을 몽땅 먹어버리는 바람에 거사에 실패한다는 후일담이 있지만...적어도 일행에서 떨어져 혼자 출국심사를 받으러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것만 보았을 때는 혼자 개화기 지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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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에 찬 개화기 청년)


예매처가 달랐기 때문에 각각 좌석이 떨어져 있어서 문자 메시지로 출석체크를 했다. 비행은 전에 없이 순조로워서 난기류도 없었고 언제 떴는지도 모르게 이륙하고 언제 착륙했는지도 모르게 도쿄로 내렸다. 휴대폰에서 KT가 아닌 DOMOTO 통신사로 연결하겠다는 메시지가 떴다.


료고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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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역에서 료고쿠로)


나리타공항에 내렸을 때만 하더라도 맑았던 날씨가 점점 흐려지더니 지하철을 탔을 때는 눈발이 휘날렸다. 그리고 숙소가 있는 료고쿠역이 있는 곳까지 왔을 때는 거의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스미다강을 넘어 도쿄 외곽지역에 있는 료고쿠역에 내려서 걷고 있자니 괜히 얇은 옷을 여러개 챙기라는 공지를 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는 춥다기보다는 많이 스산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국기원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국기원은 말 그대로 일본의 국기(國技), 스모경기가 열리는 곳이었다. 도쿄는 여전히 깨끗했다. 숙소는 박물관과 국기원이 큼지막하게 자리한 가운데 곳곳에 민가가 있는 동네에 있었다.
에어비앤비는 처음 이용하는터라, 괜찮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숙소도 깔끔한 곳이었다. 사전에 받은 지령(!)대로 우편함을 열어 열쇠를 찾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현관에서 다시 만나니 이미 해는 다 넘어가고 한국에서부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배고파 죽을 노릇이었다.
배가 많이 고픈 건 확실했다. 평소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을 관광객 대상의 식당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료고쿠역 근처의 국기원과 에도 박물관을 의식했는지 전체적으로 스모와 에도시대로 장식된 역사의 식당가는 비쌌다. 거기다 들어간 곳은 외부 가게 DP를 착각해서 잘못 들어간 곳이었다. 물까지 다 얻어 마시고 사진까지 찍은 가게를 나와 옆 가게로 들어간 우리는 각각 나눠서 짜고 단 메밀국수와 튀김을 먹어야 했는데, 이런 식사는 도쿄에 있는 동안 반복되었다.


58ac289fe67016492454.jpg(이렇게 화색이 되어 사진까지 찍었는데 이 집이 아니었다.)


'료고쿠 역'은 오에도선과 JR이 교차하는 곳이다. 우리나라라면 어쨌든 한 역사 안에서 호선을 갈아탈텐데 일본은 특이하게도 같은 '료고쿠'라는 역이라도 역사가 몇 백 미터 간격으로 따로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JR 료고쿠 역에서 기껏 밥을 먹고 또 오에도선 료고쿠역으로 가야 했다. 거기다 한번 갈아타는 과정도 신기했는데, 우리는 일단 역사 개찰구 밖으로 나와서 다시 갈아탈 호선이 있는 역사로 걸어가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첫 번째 일정인 도쿄역에 도착했다.


도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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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쿄역)


<산시로>의 산시로는 해가 다 지고 도쿄역에 떨어진다. 물론 우리가 봤던 휘황찬란한 조명과 그 주변 건물의 야경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반년만에 다시 본 도쿄역은 여전히 공사중이었는데 역사 앞에 뭘 짓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어쩄든 어디에서 그 역사를 찍든 공사현상이 프레임에 들어왔다. 일단 우리는 종료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마루젠 서점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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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엔카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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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전집)


작년이 소세키 사후 100주년이라면 올해는 소세키 탄생 150주년이다. 서점에는 소세키에 관련하여 여러 책이나 전집이 나와 있었다. 내가 본 것 중에 재밌었던 것은 소세키가 썼던 원고지를 메모패드로 제작한 상품이었다. 소세키와 어떤 잡지의 인연에 대한 에세이집도 함께 진열되어 있었는데, 조금 훑어보니 내용은 소세키에 대해 우리가 아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번 여행에서 서점을 여럿 갔는데, 느낀 것은 일본은 그래도 여전히 소세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나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문인을 이렇게 열심히 기념할까.)
여전히 마루젠에는 사람이 많았다. 주로 퇴근한 직장인들이 가방을 어깨에 매고 포진해 있었다. 조금 돌아보던 나와 수경언니는 마루젠 건물과 도쿄역으로 연결되는 지하 아케이드를 돌아보았는데, 설탕을 굳힌 판을 얹은 매우 탐스러운 푸딩이 편의점에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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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노우치의 둥근 천장)


다시 마루젠을 나와서 마루노우치 건물에 들어가서 둥근 천장을 확인했다. 작년과 그대로였지만 밤이라 그런지 조명도 더 휘황찬란해 보이고 사람도 많은 것 같았다. 우리는 요란하게 단체촬영을 하고 다음 일정을 정해야 했다. 도쿄 역에서 숙소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조금 아쉬웠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히비야 공원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히비야 공원


이번 여행의 목적은 구글 지도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었으나, 계획대로 여행이 진행될 리가 없었다. 훔쳐본 구글은 친절하게도 한 30분정도 걸어가면 히비야 공원으로 갈 수 있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길도 꽤나 간단했다. 대강 경로를 머리에 넣은 나는 히비야 공원으로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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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아닙니다. 도쿄입니다)


가는 길은 전형적인 도시였는데, 어쩐지 광화문 근처 을지로를 배회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중간중간 오래된 건물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불이 켜져 있는 고층 건물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나무에 온갖 전구로 치장을 한 거리도 있어서 크리스마스 시즌의 롯데백화점 같다는 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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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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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호들갑을 떨며 보던 백조)


히비야 공원을 가던 길에 커다란 물길이 있었는데, 그 너머에는 성벽과 울창한 숲 그림자가 보였다. 황궁의 해자였다. 도시는 그렇게 밝은데 그 중앙은 나무가 우거져서 아무런 조명도 없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해자는 꽤 넓었고 길었다. 오른쪽에는 어두운 해자와 황궁 성벽, 왼쪽에는 밝게 조명을 밝힌 상자 같은 건물이 늘어선 길이 이어졌다. 우리는 중간에 해자를 떠다니는 백조도 보았는데, 어쨌든 도심인 그 물가에 백조가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계속 걷는 것도 지루했는지 매우 집중해서 그 백조 한 마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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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사진 아니고요, 밤의 히비야공원 앞 단체사진입니다.)


히비야 공원은 해자를 따라 걷는 길 끝에 있었다.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라는 히비야 공원 입구는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기둥 두 개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거의 망가진 것 같은 가로등 조명 같은 것이 있었는데, 히비야 공원 입구라면 전부 그런 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 같았다.
공원은 작년에 건화와 재원언니가 전한 바와는 달리 멋진 곳이었다. 입구부터 연못이 있었고,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겨울임에도 잎을 달고 있었다. 거기다 <태풍> 다카야나기가 말한대로 공짜인 벤치가 매우 많았다! 우리의 다카야나기 규창이는 여기저기를 앉으며 공짜 벤치를 만끽하였다. 하루종일 걸었기 때문에 나도 중간중간 벤치가 나오면 살짝 앉았다가 가곤 했다. 도쿄는 겨울밤이긴 했지만 그 공원은 나무가 바람을 막아줘서인지 춥지는 않았다.
밤에 보는 공원은 운치 있기는 했지만 좀 이상했는데, 예를 들어 잔디밭에 마치 막대기 다섯 개를 꽂아놓은 것 같은 홀쭉한 나무가 서 있다든가, 일본인데도 야자수가 있다든가, 마치 거기만 크리스마스 같은 전구로 요란하게 장식된 서양식 건물이 있다든가 하는 등 어딘가 그냥 공원이라고 하기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공원 중간에는 경양식집이 있었는데, <태풍> 다카야나기가 돈 많은 친구 나카노에게 밥을 얻어먹은 곳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밤이라 이미 문은 닫았지만 이 수상한 외국인 무리들은 매우 오랫동안 그 주변을 머물며 건물 이곳저곳을 들여다보았다. 외부 DP로 장식된 모형이 생각보다 맛있어보였다. 무엇보다 우리가 료코구 역에서 먹었던 것보다 저렴했다. 다음에 또 온다면...


료고쿠역 패밀리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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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을 봐도 어려운 도쿄의 지하철 노선도)


이번 여행 우리의 보급지는 료고쿠역(JR) 근처에 있는 패밀리마트였다. 역시 일본은 편의점이다. 히비야에서 곧장 JR을 타고 아키하바라에서 갈아타서 몇 정거장만 지나면 료고쿠 역이 나온다. 그리고 그 역사 근처에는 맥도날드와 패밀리마트, 그리고 24시간 하는 꼬치집이 있었다. 채운쌤은 그 꼬치집이 매우 싸고 좋아 보인다고 마지막 회식처로 바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셋째날 후기를 보시라.)
패밀리마트에 도착한 지치고 배고픈 무리들은 즉시 약탈을 개시했는데, 내가 각 방에 보급될 다음날 아침도시락과 식수를 경비로 사고 나서 뭔가 사볼까 돌아보니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다. 각 방마다 비닐봉지를 한가득 채운 사람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각각 여행지에 와서도 새벽까지 읽던 학구파, 서로를 안마해주는 건강파, 그리고 말이 필요 없는 먹자파가 있었던 것 같다. 각각 어떤 방인지 밝히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우리방에는 각종 푸딩과 유부가 들어간 라면과 조금 실패한 초콜릿과(푸석푸석했다) 일본식 믹스커피가 늘 탁자에 있었다.
도쿄는 큰 도시이기는 했지만 딱 도심에만 사람이 몰려 있고 그 외에는 매우 조용하고 깔끔한 곳이었다. 조금만 외곽으로 가도 다니는 사람이 매우 적었고, 그런데도 작은 가게들이 많아서 꼭 옛날 서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다니는 곳이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거의 사람이 없는 길이었는데, 그때마다 좋기도 하면서 어딘가 음산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여행의 특징은 매우 많이 걸었다는 것, 그리고 지하철을 질릴 정도로 타봤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던 지상에서의 환승도 하루정도 지나니 바로 익숙해졌고 지하철 표를 사는 자판기 앞에서의 시간도 짧아졌다. 하지만 걸을 때는 역시 많이 헤매기도 했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괜히 혼자 속상했던 기억도 있다. 무엇보다 처음 계획한대로 여행이 진행되지 않다보니 미리 알아두었던 경로를 이탈해서 걸었던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분명 전에 왔던 길인데도 전혀 다른 곳 같고 또 헤매고 있는 것이다. 언제쯤 지도에서 가라는 길을 따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성 : 혜원
전체 3

  • 2017-02-21 22:03
    지도에서 가라는 길을 따라가겠다는 그 생각을 버릴 것! 넌 아무래도 길잡이를 더해야겠다. 길을 헤매는 걸 긍정하게 될 때까지!!!!

  • 2017-02-21 23:11
    일본 첫날은 그냥 어둑어둑한 느낌만 있네요 ㅋㅋ 공항에서부터 뭔가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가득했는데, 그게 떠나기 전까지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대도시의 느낌만 났지, 딱히 일본에 왔다는 느낌에 젖을 틈도 없이 파바박 하고 지나가버려서 살짝 아쉽네요 ㅠㅜ

  • 2017-02-22 09:36
    우엉.. 공항에서 두근두근 출발했던 그때가 벌써;ㅅ;.. 첫날 그식당은 진짜 아니었던 듯. 젤 비싸고 젤 맛없던 곳.. 그리고 그곳에 가기 직전 잘못 들어갔던 식당에서 저렇게 멋진 사진을 찍어주고 물수건을 가져다 주고 탁자들을 붙여주고.. 앗 여기가 아니네.. 했을 때도 괜찮다고(최소한 겉으로는) 웃어주던 그 옆집식당 아저씨가 생각나넹.. 혜원이는 요번 안내는 엄청 스무스하고 스피디했음! 작년의 여행과는 비교도 안되는 전문 가이드가 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