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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의 '난중일기' 5화 - 입지가 생기다

작성자
규문
작성일
2017-04-20 16:15
조회
362

난중일기 #5


이곳에 적응해 갈수록 바깥세상이 낯설어진다. 따지고 보면 별로 오래된 것도 아닌데도, 입대 전의 일들이 그리운 추억처럼 향수로 느껴지고 되새김질 하게 된다. 군대 밥을 먹고 살긴 살아서 내게서도 군인 냄새가 나고, 처음 괴상하다고 받아들여졌던 이들 문화 속에서 이들의 모양을 하고 이들의 말투를 뱉고 살고 있다. 아무래도 프로그램 패치가 거의 다 된 것 같다. TV로 연예인을 볼 때, 여자면 유심히 들여다보고, 남자면 ‘군대는 갔나?’ 물어보는 게 어쩔 수 없이 냄새가 난다. 그냥 요즘은 이등병때의 막막함과는 다른, 싫증이 섞인 갑갑한 마음이다.

1. 아홉 개의 하늘 구천동


투입한지 한 달이 다되어 간다. 하늘이 아홉 개라고 할 할 만큼 변화무쌍한 날씨를 가졌다는 구천동은 바로 코앞에 GOP철책이 있고, 그 너머 DMZ가 훤히 보이는 지역이다. 내가 살고 있는 막사는 GOP철책을 따라 세워져 있는 막사들 중 하나이다. 강원도 가장 위쪽 구석에 어떻게 이런 콘크리트 도로며 막사 건물이며, TV며 음식이며 이런 문명의 산물들이 유입될 수 있을지 놀랍기만 하다. 군인을 제외하면 인구밀도는 아마 측정이 불가능한 지역일 텐데, 멀리 바다도 보이고 험준한 산세도 보이는 게 전망은 괜찮은 편이다. 반대편을 보면 GOP 철책 너머로 불모지 작업을 해서 황량한 DMZ 멀리가 보인다. 인근의 소초와 GP에서 실시하는 대북방송 소리가 이따금 선명하게 들려온다. “친애하는 북한장병 여러분, 오늘도 좋은 하루-” 종종 소녀시대의 ‘힘내’나 트와이스의 ‘Chear Up’ 같은 걸그룹 가요나 오래된 유행가, 어제는 태양의 후예의 OST도 틀었다.

막사 철책아래 언덕에는 멧돼지 두어 마리가 잔반통(짬통)을 버리길 기다리고 있다. 구천동 막사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는 100% 자연 처분이다. 짬통을 언덕아래 진흙으로 덮인 틀에 쏟아내면 많게는 7~8마리까지 꽥꽥거리며 달려든다. 막대기를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어 코 주둥이에 젖어있는 털까지 다 보일 정도다. 아직도 좀 무섭기도 하고 짬 냄새가 나기도 해 돌이나 하나 던져보고 빈 짬통을 손끝으로 들고 서둘러 올라가고 만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사이버지식정보방 컨테이너와 북카페 컨테이너가 나란히 있고, 족구네트도 있어서 6개월을 살기엔 나름 괜찮은 것 같다. 먹고 자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곳이긴 하다.
2. 입지라고 할 만한 것

요즘 나의 생활이나 마음가짐은 이등병때 아니, 불과 한 두 달 전과 비교해도 판이하게 다른 것 같다. 어느 정도 태평하다고 해야 하나? 이곳 용어로 ‘짬 먹었다’라고 표현한다. 전처럼 과도하고 쓸데없는 눈치를 안 보게 되었다. 샤워하러 갈 때 반바지를 입는다거나, 관물대나 침대에 책 같은 물건을 올려두거나, 밥을 내 속도로 먹는다거나, 노랠 흥얼거린다거나… 원래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지만 괜히 한 소리 듣거나 딴지걸까봐 삼갔던 것들이다. 이정도 안이함, ‘눈알 굴리기’로부터의 해방. 압박의 완화 등의 이례적인 변화에는 몇 가지 원인이 떠오른다.

첫 번째로 통신병이 된 것이다. 군대는 아주 무식하게도 25년 전에 쓰던 통신장비를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매우 무겁고 크기도 큰 쇳덩이 통신기를 사용한다. 통신병은 그걸 짊어지고 교신을 해가며 산을 타야 한다. 남들보다 무겁고 바쁘게 움직인다. 실제로 장비관리·운용 등 시간이 많이 들고 귀찮은 일들이 많기 때문에 잘 안하려고 한다. 일주일 정도 구두와 서면으로만 인수인계를 받아 통신병이 되었는데, 먼저 하던 놈이 무릎이 고장나게 되어 갑자기 물려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어 정신없이 배우긴 했지만 팀 내 중요도가 매우 높은 직책이고, 또 남들이 할 줄 모르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서 하는 고생의 정점이긴 하지만 아마 통신병을 맡게 된 것이 어느 정도 터치를 덜 받게 된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조만간 무릎이 고장날 것 같기는 하지만……

두 번째로 후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등병이 중대에 내가 유일했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했던 상태였지만, 위가 빠지는 만큼 아래가 채워졌다. 12월부터 줄줄이 신병들이 들어왔고 생각보다 알려줄게 많았다. 기형적인 어법이나 처음 접하기에 당혹스러운 문화들을 알려주고 기본적인 룰들을 알려줬는데, 선임들 눈엔 성이 안 찼는지 나한테 뭐라고 한다. 그래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또 알려주면 어느 정도 알아들었다. 화 안 내고 욕 안 섞어도 알아듣고 잘 하는 게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후임들은 줄줄이 들어왔고 이제는 어느 정도 중하위권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아침에, 밥 먹을 때 인사 받는 게 아직도 놀랍다. 이제 몇 개월 안에 윗대가리들이 사라질 것이고 나는 금방 왕고가 될 것이다. 막내부터 고참까지 TV 켜 놓고 춤추는 생활관을 만들 그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마지막으로 이발병이다. 소대당 1~2명씩 이발병이 있어 소대원 두발을 정리해주고 상점을 받는다. 같이 하던 선임이 경유 드럼을 옮기다 손가락이 깨져서 입원을 해버렸다. 결국 소대에 이발병이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일과 내내 통신기 정리하고 나면 두세명이 와서 머리 깎아달라고 한다. 내가 짬이 낮으니 늘 흔쾌히 허락하지만 한명 자르는 데 20~30분 걸린다. 매우 정성들이고 또 상당히 잘 깎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개인정비시간이 끝나게 된다. 이렇게 네 명을 잘라야 상점 1점인데… 어떤 놈들은 코팅 몇 장, 작업 몇 분 하고서 상점을 챙긴다. 그래서인지 보수가 약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이발병을 다들 꺼리는 거다. 역시 사서하는 고생의 일환이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입지라고 할 만한 것이 꽤 다져진 것 같다. 소대원들과 공유한 시간도 많아지고 같이 먹은 끼니수도 늘어나서겠지만, 제법 대화에 끼기도 하고 떠들며 놀기도 한다. 긴장이 사라지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던 눈알도 느껴졌다. 적응이 완료됐다.

3. 그림의 떡 휴가

요즘 매우 휴가가 나가고 싶다. 이등병때의 그 ‘벗어나고 싶다’가 아닌 ‘그만하고 싶다’이다. 압박을 못 견뎌서가 아닌 그냥 질려서 그렇다. 후임들 중 누가 못하고 누군 어떻고, 쟤가 그런 말을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 애들 너무 빠졌다, 군대 거꾸로 돌아간다 …… 아버지 세대, 그 이전 세대, 조선 시대, 더 옛날에도 있던 말이라고 하는 ‘갈수록 글러진다니까’하는 대화는 이곳 구천동의 훈련장에서도 어제까지 오갔다.

정말 별것도 아닌 쓸데없는 관습을 가지고 군기며, 기강 운운하며 열 내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그거 십 몇 개월 살았다고 군대놀이에 심취해 분별력이 마모된 것 같다. 나가면 아무것도 아닐 트집이나 잡아대는 모습에 싫증이 난다. 다 사회와 동떨어져 있어서 그런 거 같다. 입대 전 일들을 생각하면 먼 옛날이나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휴가를 받기는 했다. 통신병이 의례적으로 받는 포상과 머리 잘라서 받게 된 상점 포상. 하지만 휴가를 쓸 수가 없다. 전역 임박자들이 휴가를 쓰고 있고, 그만큼 들어온 신병들의 100일 휴가가 잡혀 있다. 그러고 나서야 짬별로 휴가 우선순위가 떨어지니 쓸 수가 없다. 또 통신병 대타를 맡아줄 인원이 없으면 쓸 수가 없다. 이렇게 되어 이번 구천동 6개월을 휴가 없이 보내면 무려 8개월을 못나가고 있는 셈이 된다. 거의 수도승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상상을 하니 현기증이 난다. 탈출해야 한다! 여름 되기 전에는 꼭 나가서 미세먼지를 먹고 돌아와야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

4. 안전 불감증

전방에 있으면 적 상황이 상급부대에서 종합되어 매일 아침에 최신화 된다. 적 몇 명이 어디 GP 부근에서 작업을 했느니 훈련을 했느니 하며 도발 가능성이나 침투·탈영 가능성을 연출해낸다. 적 조우시 각 개인별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포탄 낙하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말로 설명할 만큼만 암기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실제 상황을 맞닥뜨리면 아무것도 못하고 얼빠져 있게 될 거다. 적 병력이 증원되고, 포문이 개방되고 적 상황이 고조되어도 마찬가지로 별다른 감응이 없다. 그저 그렇게 되었다는 것과 그래서 작전간 조심해야 한다고 대답할 수만 있으면 된다.

뉴스에서 떠드는 풍계리 핵실험, 김정남 피살, 탄도 미사일, ICBM, 대북제제 … 이런 것들은 죽은 정보다. 흥미만 생기다가 이내 먼 세상의 이야기인 것처럼 뒤돌면 잊게 된다. 하지만 적 상황 고조나 북의 도발 징후등은 분명 나와 가까우면서도 연관성이 짙은 정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우린 왜 미사일 발사 소식보다 도깨비 결말이 더 기억나고, 적의 GP습격 훈련보다 아는형님 결방이 더 걱정스러운 걸까. 음원지점이 타격 목표물이 된다고 했지 … 가만 보면 막사 외벽은 판넬일 뿐이고, 그 어떤 방어 시설도 없다. 능선 위에 파란지붕으로 잘도 눈에 띄는데, 포탄 한 발이면 그냥 끝날 것이다. 이미 좌표도 알고 있을 것이고 조준도 필요 없겠지. 또 한 방이면 … 그런데 이런 생각도 TV켜진 생활관이 들어가자마자 사라진다. 그렇게 걸그룹 춤추는 모습에 눈은 고정된다.

왜 이렇게 태평할까? 가장 위험한 위치에 있는데도 더 안이하다. 이런 식의 안전 불감증은 단순히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에 대해 부주의한 것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호들갑떨고 신중하게 행동한다고 나아지지 않을 사건에 대해 감정을 소모할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북이 미사일실험을 했다고 슬퍼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이지 않은 감정소모일 뿐이므로 누구라도 겁 집어먹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안전 불감증에는 사회의 그것과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의지적으로 최악의 경우나 충분히 예상할 법한 악재를 외면하고 낙관을 잡으려는 모습에는 군대라는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가 있다.

건화형은 군 생활을 “맘 놓고 수동적일 수 있는 시기”라고 알려줬다. 상명하복의 계급체계에서 개인은 뭔가를 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기반 자체가 능동성을 배제하고 있는 시스템에서 우리는 그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동기 자체가 하복 미흡으로 혼나지 않기 위한 회피동기일 뿐이고 행동에는 일말의 책임감이 결여된다. 이렇게 수동적 위치에 놓이기를 반복하고 시키는 것 이상은 결코 상상하지 않는 패턴을 사고나 감정에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질문을 해도 받아주지 않을 걸 아는 상태로 수업을 들으며 받아 적기만 하게 되는 것처럼 사고의 폭이 잘려나간다.



바로 어젯밤 있었던 일이다. 남강을 경계로 적 GP와 마주하고 있는 폐GP에서 매복 작전을 하고 있었다. 매 작전마다 들어가는 곳이고 실내이다보니 방탄복이며 방탄모도 벗고 있었고 총도 세워놓고 있었다. 나는 통신병이니 근무는 서지 않고 팀장과 함께 실내에 있었는데 전방 근무지에 갔던 부팀장이 미상 불빛이 계속 다가온다며 팀장보고 나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목소리에는 조급함과 겁먹은 듯한 톤이 묻어나왔고 나와 몇 인원에게도 혹시 모르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어둑한 불빛 속에서 탄복과 방탄모를 쓰면서 조금 두근대기는 했지만 막 안절부절 못하거나 머릿속에 이런저런 상상이 퍼지지는 않았다. 약간 멍한 상태로, 드디어 넘어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이 상태라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겹쳤을 뿐이다. 2~3분 실내에 있던 정적이 지났고 정말 별일 없이 끝났다. 그건 그냥 적 잠복호 교대 활동이었다. 호들갑 떨었던 그 초임하사 부팀장은 그날 밤 코를 골며 잘도 잤다. 그 사건은 거기 있던 모두에게 별 거 아닌 일로 기억되어 쉽게도 잊혀졌다.

어찌됐든 이 안전 불감증은 정신 상태엔 이로울 수 있겠지만 결과가 매우 해로울 수 있다. ‘가능성은 있지’하고 등 돌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 멍 때리다 죽을 수도 있다. 정말 뉴스가 떠드는 것처럼 고조되는 대북관계에 전쟁이 터져버린다면, 다음 작전 때 한 놈이 넘어온다면 이 불감증은 극복될 수 있을까? 가끔은 정말 뭔가 확 일어나서 이 갑갑한 마비 상태가 깨어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주 가끔, 그래도 이 안전 불감증이 계속 안전 불감증으로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대부분이다. 또 쉽게 생각을 덮어버리고 말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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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2 23:39
    여름 되기 전에 미세먼지를 꼭 드실 수 있기를 바라며, 후방에선 재미있게 읽고야 말았습니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