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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민의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 실종자 카프카

작성자
선민
작성일
2017-05-24 14:08
조회
384
오! 선민의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실종자 카프카 여행을 떠나다

카프카가 과거의 사실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해 글을 쓴 것은 오직 여행일기에서 뿐이었습니다. 카프카의 작품 안에서 시간은 어떻게 흐르던가요? 흐르지만 멈추고, 다른 시간의 선분이 시작되는 즉시, 이야기의 길은 끝납니다. 그레고르 잠자의 의식처럼 말이죠. 누이의 바이올린 레슨비를 걱정할 것인가? 더러운 우유를 먹을 것인가? 그레고르는 순식간에 자기를 잃고 사방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일기에 그토록 역사적 기록이(사회적인 것이나, 민족적인 것이나, 사적인 것이나) 없었던 것을 ‘역사’(단선적인)에 대한 카프카의 특별한 태도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요? 저는 카프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가 현재에 도착하지 못하게 하라. 현재를 기록의 형태로 미래에 넘겨주지 마라. 저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인간을 창출하려는 것이 카프카의 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카프카의 여행일기에 나타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공간 묘사가 없다는 점입니다. 여행기란 응당 떠나간 장소에 대해 기술해야 할 것만 같은데도 말이지요. 카프카는 그가 만났던 사람, 통과했던 풍경, 접촉했던 사물에 대해 쓰기는 해도, 공간 전체를 조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확고한 서술 시점을 마련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통상적인 근대의 기행문이 여행을 통해, 여행기를 쓰면서, 쓰는 주체를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 같은 공간묘사의 효과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확실하게 전체를 조망하는 입각점을 마련함으로써 여행기를 쓰는 주체는 자신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랬기 때문에 여행자는 세계 어디에서나 잃었던 ‘자기’, 회복해야 할 ‘자기’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카프카는 문득 떠오르는 과거와 펼쳐지는 장관에 저항합니다. 떠나고는 싶지만 도착하고 싶지는 않다는 듯. 카프카는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확고한 지평을 버리기 위해 여행을 했고, 여행을 테마로 한 작품을 썼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돌연한 출발」입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은 ‘여기를 떠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목적도 갖지 않습니다. 그는 돌아올 곳, 중간에 머물 곳에 대한 그 어떤 환상도 없이 길을 나섭니다. 그는 자신을 잃는 일에 자기를 던집니다.

 

#나는 내 말()을 마구간에서 끌어내 오라고 명했다. 하인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몸소 마구간으로 들어가 말에 안장을 얹고 올라탔다. 먼 데서 트럼펫 소리가 들려오기에 나는 하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영문을 몰랐다.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다. 대문에서 그가 나를 가로막으며 물었다. “어디 가시나이까? 주인나리” “모른다내가 대답했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나 내처 간다, 그래야만 나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노라” “그렇다면 나리의 목표를 아시고 계시는 거지요?” 그가 물었다. “그렇다내가 대답했다. “내가 여기를 떠난다고 했으렸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니라” “나리께서는 양식도 준비하지 않으셨는데요그가 말했다. “나에게는 그 따위 것은 필요없다.” 내가 말했다. “여행이 워낙 길 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한다면, 나는 필경 굶어죽고 말 것이다. 양식을 마련해 가봐야 양식이 이 몸을 구하지는 못하지.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 없이 정말 굉장한 여행이란 것이다.(전영애 옮김, 돌연한 출발)

 

카프카의 모든 글은 그 자신이 떠난 여행의 기록이었습니다. 평범한 외판원은 자고 일어나자마자 거대한 벌레가 되어 있었습니다.(「변신」(1915)) 「변신」은 인간의 양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 자신의 인간적 본성을 돌연 중단하고 떠난 존재의 여행기이기도 합니다. 미완의 장편소설 「실종자」(1911~1914)나 「소송」(1914~1915), 「성」(1922)은 모두 ‘이런 식으로 살아라!’라고 하는 명령의 그물을 벗어나기 위해 전력 질주해서 떠난 도주의 기록입니다. 그들은 길 위에서 이웃을 만들지만 떠나며, 애인을 구하지만 버립니다. 어디서나 살 길을 모색하지만, 언제나 자기를 살려주었던 것들을 비껴서 달아납니다. 떠나지만 도착을 모르고, 그 어디에서건 거듭 사라지면서, 순간순간 살길만을 모색합니다.

카프카는 자기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조차 잊을 수 있는 여행을 꿈꾸면서 밤마다 글을 썼습니다. 오늘은 카프카가 여행과 인생에 관해서 남긴 멋진 말로써 그의 여행법을 정리해봅니다.

 

# 기차에서, 그 사실을 잊고, 마치 너의 집에 있기라도 하듯 앉아 있다. 그런데 갑자기 네가 어디에 있는지가 떠오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차의 힘을 느끼면서, 여행자가 되어, 가방에서 모자를 하나 꺼내, 보다 확실한 자유를 가지고 함께 가는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고, 더 많은 저항감과 함께, 너 스스로의 노력이라고는 들이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너 스스로를 옮기기를, 아이처럼 그것을 즐기고,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어, 영원할 것 같은 창문의 매력을 느끼면서, 항상 창문 위에 최소한 손 하나를 둔다. 똑같은 상황을 더 정확하게 묘사해보자. 잊어라 네가 잊었다는 사실을, 순식간에 아이로 변해 속도를 내고 있는 고속 기차로 여행을 하고, 마치 마법사의 손에서 나온 듯 모든 매혹적인 세부를 갖추고 구현된 차를 전율하면서 [일기, 1917731]

 
  • 아래 사진은 1909년 이탈리아 브레스치아를 여행하다가 친구들과 비행기 쇼를 관람한 카프카님의 사진입니다.  카프카는 <브레스치아의 비행기>라는 짧은 단편 소설을 남기기도 했지요.

전체 1

  • 2017-05-24 21:31
    '과거가 현재에 도착하지 못하게 하라. 현재를 기록의 형태로 미래에 넘겨주지 마라.' 공간 묘사가 곧 주체에 대한 사고와 같이 간다는 것이 재밌어요. 역사적 사고라는 것은 늘 공간과 함께 한다는 것 0ㅁ0
    카프카의 사진... 분명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대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모르겠는것도 그런 이유에서일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