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강좌

주역과 노자 29장 ~ 37장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6-15 17:09
조회
211
안녕하세요. 우선 우쌤이 8주 안에 끝내기보다는 좀 더 걸려도 이대로 계속하자고 하셨습니다. (짝짝짝짝) 저도 가능한 수업내용을 꼼꼼하게 적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9.

將欲取天下, 而爲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 故物或行或隨, 或歔吹, 或强或羸, 或挫或隳.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장차 천하를 다스리면서 그것을 인위적으로 한다면, 나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고 본다. 천하는 신기(神器)인지라, 뜻대로 할 수 없다. 의도가 있는 것은 실패하고, 가지려고 하면 잃게 된다. 그러므로 만물은 어떤 것은 앞장서고 어떤 것은 따라가며, 어떤 것은 정(靜)적이고 어떤 것은 동(動)적이며, 어떤 것은 강하고 어떤 것은 파리하며, 어떤 것은 꺾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와르르 무너지기도 한다. 따라서 성인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고, 사치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다.

취(取)는 ‘다스린다’(治)의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노자 전반적으로 위(爲)를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爲) 인위(人爲), 자연의 질서를 거슬러 의도를 가지고 행하는 것으로 부국강병 같은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고(故)는 앞의 문장을 받는 접속사인데, 우쌤은 노자에서 고(故)가 앞의 문장을 항상 받는 접속사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차(且)로 이해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진고응은 물(物)을 백성(民)으로 풀었지만, 우쌤은 노자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이것을 만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고 하셨습니다.

“或A或B”는 반대되는 두 개의 것이 동시에 생겨남을 말합니다.

행(行)은 ‘앞장서다’(先)입니다. 허(歔)는 숨을 마시는 것으로 정(靜)적인 것입니다. 취(吹)는 숨을 내쉬는 것으로 동(動)적인 것입니다. 우쌤은 특히 리(羸)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리(羸)는 ‘파리하다’는 뜻인데, 기운이 없는 모양입니다. 기운이 없다는 것은 살아가는 태도가 적극적이지 않고 차분한 태도입니다. 좌(挫)는 4장에도 나왔지만 “꺾이다”라는 뜻이고, 휴(隳)는 어떤 것이 우르르쾅쾅 무너지는 모양입니다.

거(去)는 무위(無爲)와 뜻이 통하는 것으로, ‘하지 않는다’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심(甚), 사(奢), 태(泰)를 하나씩 풀어보면, 심(甚)은 ‘심하게 하는 것’, ‘상식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奢)는 사치한 것으로 ‘정도를 벗어난 일’을 말합니다. 우쌤은 사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사치와는 다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치는 돈을 막 쓰는 게 아니라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돈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자들이 돈을 마구 뿌리는 것은 사치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태(泰)는 ‘교만하다’, ‘태평하다’, ‘크다’의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지나치다’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우쌤은 이런 태도들은 내면의 교만에서 비롯된다고 하셨습니다.

30.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 荊棘生焉. 大軍之後, 必有凶年. 善有果而已, 不敢以取强.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果而不得已, 果而勿强.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도(道)로 군주를 보필하는 사람은 군사로써 천하에 군림하게 하지 않으니, ‘도’로 그 일을 돕는 사람의 일은 무위(無爲)를 행한다. 군대가 머무는 곳에는 가시나무가 자라고, 큰 전쟁 이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군사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은 자기를 지킬 뿐이니, 감히 그 강함을 취하지 않는다. 자신을 지킬 뿐 뽐내지 않고, 지킬 뿐 자랑하지 않고, 지킬 뿐 교만하지 않고, 지킬 뿐 어쩔 수 없었을 뿐이고, 지킬 뿐 공격하지 않는다. 사물이 갑자기 힘을 쓰면 곧 노쇠해지니, 이를 일러 도(道)에 맞지 않는다 하고, 도(道)가 아니라면 금방 사라진다.

30장의 주인공은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가 아니라 군주가 나라를 잘 다스리게끔 도와주는 신하입니다.

병(兵)은 나라를 강하게 만들려는 마음을 뜻합니다. 군주로 하여금 부국강병의 정책을 쓰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강(强)은 ‘군림하다’는 뜻입니다.

기사호환(其事好還)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먼저 왕필의 해석으로 보면, 기사(其事)를 ‘도(道)로써 군주를 돕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고, 호환(好還)은 ‘무위(無爲)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고응은 기사(其事)를 ‘군사를 부리는 것’으로 봤고, 호환(好還)은 ‘군사를 부려서 응당 치러야 할 대가’로 봤습니다.

형극(荊棘)은 가시나무고, 언(焉)은 가시나무가 자라는 곳입니다.

선(善)은 ‘군사를 잘 부리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의 태도를 과(果)로 표현했다고 합니다. 과(果)에는 여러 용례가 있는데, 왕필은 이것을 제(濟)로 봤습니다. (왕필에 의해 과(果)를 제(濟)로 보게 됐다고 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군사를 잘 부리는 이는 자신을 위험에서 구제할 뿐이지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쌤은 ‘지키다’ 혹은 ‘보호한다’라는 의미에서 보(保)자와 뜻이 통한다고 하셨습니다.

장(壯)은 힘을 빨리 쓰는 것입니다.

31.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兵者, 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已而用之, 恬淡爲上, 勝而不美, 而美之者, 是樂殺人, 夫樂殺人者, 則不可得志於天下矣, 吉事尙左, 凶事尙右.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 以喪禮處之.

무릇 훌륭한 무기는 상서롭지 않은 물건이다. 세상 모든 만물이 그것을 싫어하니, 그러므로 도(道)를 따르는 사람은 그 무기를 쓰지 않는다. 군자는 평소에 왼쪽을 귀히 여기고, 군사를 쓸 때에는 오른쪽을 귀히 여긴다. 훌륭한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니, 군자가 쓰는 물건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쓸 때는, 담백하고 차분한 것이 좋고, 이겨도 좋다고 여기지 않는다. 또 아름답다는 것은 바로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천하에서 뜻을 얻을 수 없다. 길한 일은 왼쪽을 높이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높인다. 편장군은 왼쪽에 거하고, 상장군은 오른쪽에 거하니, 초상을 치르는 예로써 전쟁에 임함을 말한 것이다. 많은 사람을 죽이면, 슬프고 애절한 마음으로 곡을 한다. 초상을 치르는 예로써 전쟁에 임한다.

왕필은 여기에 주를 달지 않았는데, 많은 학자들은 그것 때문에 골치를 싸매고 있다고 합니다. 왕필이 31장을 도덕경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았다거나 기타 등등의 얘기가 있었습니다.

가(佳)는 ‘아름답다’가 아닌 ‘훌륭하다’는 의미로 쓰였지만, 판본에 따라서 없기도 하고 굳이 없어도 크게 해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쌤은 혹시 병자(兵者)부터 흉사상우(凶事尙右)는 이 장의 주석인데 편집 도중에 들어간 것일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념(恬)과 담(淡)은 성인이 전쟁에 임하는 태도로 담백하고 차분한 태도입니다. 이런 상태는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상태라고 하는데, 병법에서는 마음을 읽을 수 없는 것이 장군이 지녀야 할 자질 중 하나라고 합니다.

미(美)는 ‘최고로 여기다’는 뜻입니다.

32.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天地相合, 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도(道)는 항상 이름이 없고(無名), 소박하고 비록 작지만, 천하가 신하로 삼지 못한다. 제후와 제왕이 만약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장차 저절로 따르게 된다. 천지의 기운이 합하면 감로가 내리고, 백성들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잘 살게 된다. 성인의 정치가 시작됨으로 명분이 있게 됐고, 이미 명분이 있으면, 또한 장차 명분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그침을 알아야 위태롭지 않게 된다. 비유하자면, 천하에 도가 작용하는 것은 계곡물이 강과 바다에 모여드는 것과 같다.

상(常)에 따라서 약간 해석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부사로 보면, ‘도(道)는 항상 이름이 없다.’가 되고, 명사로 보면, ‘도(道)는 항상된 것으로 이름 붙일 수 없다.’입니다.

박(撲)은 앞에서도 계속 나왔지만 그 자체로 완전하고 자를 수 없는 전체를 말합니다. 이 글자 뒤에는 말 이을 이(而)자가 생략됐다고 하셨습니다.

자빈(自賓)과 자균(自均)은 도(道)를 따른 결과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빈(賓)은 보통 ‘손님’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따르다’, ‘복종하다’의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균(均)은 백성들끼리 알아서 상부상조하는 것을 표현한 글자입니다. 우쌤은 자균(自均)을 주자가 얘기한 향약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감로(甘露)는 이슬로 실제로 도가에서 얘기하는 양생법 중에는 감로를 마시는 게 있다고 합니다.

제(制)는 제도를 말합니다. 명(名)은 예(禮)로 바꿀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제도가 깨져서 만물을 이루듯이, 성인 제도를 그런 식으로 세운다고 합니다. 생김은 직위의 높고 낮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침을 안다는 것’(知止)은 이런 명분을 내세우는 정치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유천곡지어강해(猶川谷之於江海)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之)를 ‘가다’의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가 천하에 작용하는 것은 계곡물이 강과 바다로 가는 것과 같다.”가 됩니다. 왕필은 이 해석을 썼다고 합니다. 반면에 도(道)와 각각의 유한한 개체가 맺는 관계로 보는 것도 있습니다. 계곡물이 강이나 바다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것처럼, 개체들 역시 도(道)와 비교하면 매우 미미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33.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이 지혜(智)이고, 자신을 아는 것이 밝음(明)이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은 힘이 있으나,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고 한다. 만족을 아는 것이 부유함이고, 반드시 행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뜻이 있음이다. 마땅히 머물러야 할 자리를 잃지 않는 것이 항상됨이고, 죽더라도 [도(道)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장수다.

앞에 두 개의 문장의 구조를 보면, ‘다른 사람’과 ‘나’가 대비됩니다. 인(人)은 다른 사람을 뜻합니다.

지족(知足)을 다른 말로 풀면, 안분(安分)입니다.

강행(强行)은 ‘반드시 하겠다’는 것으로, 뒤의 지(志)는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뜻’입니다. 우쌤은 이것을 ‘베풀고자 하는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기(其)는 지칭대명사라기보다는 ‘알맞은’, ‘적당한’, ‘마땅히’의 뜻이고, 소(所)는 머물러야 할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곳이란 그것은 현실적으로 육체가 있어야 할 자리이면서 마음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사이(死而)와 불망자수(不亡者壽) 사이에는 도(道)가 생략됐다고 합니다. 왕필은 ‘도’를 넣어서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망(亡)을 ‘잊히다’라는 의미에서 망(忘)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고 합니다.

34.

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 ; 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위대한 도는 우주를 꽉 채우고 있어, [여기저기에 작용할 수 있다.] 만물이 그것에 의지하고 존재하지만 사양하지 않고,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름을 소유하지 않고, 만물을 감싸서 키워주면서도 주인이 되지 않는다. 항상 이루고자 함이 없으니 [그 작용을 알 수 없다.] 만물이 도(道)로 돌아가도 주인이 되지 않으니, 위대하다(大)고 할 수 있다. 영원히 스스로 크다고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그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다.

범(氾)은 ‘범람하다’는 뜻인데, 물이 흘러넘치듯이 도(道)가 우주에 미치지 않는 것을 형용한 글자입니다. 기가좌우(其可左右)도 ‘도’의 작용을 형용한 것입니다.

만물시지이생이불사(萬物恃之而生而不辭)는 불사(不辭)의 주어가 누구인가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우선 왕필의 해석을 따르면, 불사(不辭)의 주어는 도(道)입니다. 그러면 “만물이 도에 말미암아 생겨나지만, 도는 만물이 의지하는 것을 사양하지 않는다.”가 됩니다. 다른 해석은 불사(不辭)의 주어를 만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이 도에 말미암아 생겨났어도 그렇게 생겨났음을 말하지 않는다.”가 됩니다. 우쌤은 이것을 17장에서 백성들이 “우리들은 원래 이렇다.”라고 하는 말과 연결해서 이해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명(名)은 명예를 말하고, 유(有)는 그것을 가지는 것입니다.

의양(衣養)은 옷을 감싸서 키우는 것으로 도(道)가 만물을 양육하는 방식을 형용한 것입니다.

가명어소(可名於小)를 직역하면 “작다고 이름할 수 있다”입니다. 여기서 소(小)는 도(道)의 작용이 매우 미미해서 알 수 없음을 형용한 글자입니다. 그래서 의역했을 때 ‘알지 못한다’가 됩니다.

25장에서는 “도(道)를 억지로 대(大)라고 이름 붙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왜 대(大)라고 이름 붙였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63장에도 “스스로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위대하다”라는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우쌤은 이와 반대되는 단어로 자대(自大), 자용(自用)을 얘기하셨는데, ‘스스로 자신이 크다고 생각해서 자신을 쓴다.’는 뜻입니다.

종(終)은 ‘영원히’라는 뜻입니다.

35.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 安平太.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도(道)를 보존하고, 천하를 안고 움직이니, 움직여도 해치지 않으며, 편안하고, 평탄하고, 태평하다. 음악과 맛있는 음식은 지나가던 나그네를 멈춰 세운다. 도를 말해보면, 담담하여 맛이 없고,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며,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써도 다 쓰지 못한다.

집(執)은 ‘집다’로 봐도 괜찮지만 ‘지키다’ 혹은 ‘보존하다’로 볼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대상(大象)은 모든 상(象)을 키우는 근원이고, 만물을 안고 제어하는 것입니다. 우쌤은 ‘대상’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도(道)라고 하셨습니다.

왕(往)에 따라서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작동하다(生)의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道)가 만물에 작용하는 방식이 어떤지를 설명하는 구절이 됩니다. 우쌤은 이 구절을 이해할 때 34장의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大道氾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을 참고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돌아가다’의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道)와 만물의 관계를 설명하는 구절로, 앞에서 계곡물이 강과 바다로 귀의하듯 만물은 도(道)에 귀의한다는 뜻이 됩니다.

안평태(安平太)도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각각의 글자를 푸는 것으로 ‘편안하고, 평탄하고, 태평하다’입니다. 다른 해석은 안(安)을 이에 내(乃)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道)가 작동하고 해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태평하게 살 수 있다.”가 됩니다.

악(樂)과 이(餌)는 도(道)와는 반대되는 것들로 사람들을 현혹시키지만 그 작용이 일시적인 것들입니다. 주석과 41장을 참고하면, 사람들은 도(道)를 들어도 그것이 도(道)인줄 모른다고 합니다. 이런 도(道)의 모습은 14장에도 나옵니다.

기(旣)는 ‘고갈되다’의 뜻입니다.

36.

將欲歙之, 必固張之 ; 將欲弱之, 必固强之 ; 將欲廢之, 必固興之 ; 將欲奪之, 必固與之 : 是謂微明. 柔弱勝剛强. 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不可以示人.

장차 한번에 숨을 들이마시려면, 필히 그 전에 잠시 내쉬어야 하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필히 그 전에 강하게 해주어야 하고, 장차 없애려고 하면, 필히 그 전에 일어나게 해주고, 장차 뺏으려고 하면, 필히 그 전에 덧붙여줘야 한다. 이것을 일컬어 은미한 밝음(微明)이라고 한다. 유약함이 강함을 이긴다. 물고기는 연못에서 벗어나면 안 되니, 나라의 이로운 물건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면 안 된다.

흡(噏)은 단번에 흡!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모양입니다.

고(固)는 ‘굳다’의 의미보다는 ‘잠시 그 이전에’라는 의미의 고(姑)와 통용됩니다.

폐(廢)는 ‘없애다’의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18장에 나오는 구절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것 같습니다.)

우쌤은 우선 미명(微明)을 도(道)의 작동방식으로 설명하셨고, 구체적으로는 은미한(微) 이치(明)로 풀이하셨습니다. 이치는 앞에서 얘기한 장(張)에서 흡(歙), 강(强)에서 약(弱), 흥(興)에서 폐(廢), 여(與)에서 탈(奪)로 되어가는 과정을 말하고, 은미함(微)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어찌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40장의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을 참고하면, 도(道)에는 반대로 돌아가는 운동이 있습니다. 우쌤은 이러한 도(道)의 작용을 주역에서 얘기하는 역(易)과 화(化)의 작용으로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미명(微明) 같은 글자를 볼 때마다, 꼭 무엇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국지이기(國之利器)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28장에 나온 대제불할(大制不割)과 같이 성인의 정치 시스템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31장에 나오는 날카로운 무기로 보는 것입니다. 왕필의 주석에 따르면, 이기(利器)란 사물의 본성을 따르는 것이지, 형벌로써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쌤은 물고기와 연못의 관계를 개별자와 도(道)의 관계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연못을 벗어나는 것을 존재 근거를 잃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7.

道常無爲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도(道)는 항상 하는 것이 없지만 하지 못함이 없으니, 제후와 제왕이 만약 이것을 지키면, 만물이 장차 스스로 그렇게 될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되면서도 욕망이 일어나면, 나는 장차 이름 없는 박(樸)으로 그것을 누르겠다. 이름 없는 박(樸)으로 [그것을 누르면], 그렇기 때문에 장차 욕망이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를 안정시키면, 천하는 장차 스스로 안정될 것이다.

그때 찾지는 못했지만 도상무위이무불위(道常無爲而無不爲)와 비슷한 내용의 구절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혹시 3장의 위무위, 즉무불치(爲無爲, 則無不治)와 뜻이 통할까요?

자화(自化)와 자정(自定)은 32장의 자빈(自賓)과 자균(自均)과 같은 뜻입니다. 무위(無爲)의 정치를 행하면 백성들이 스스로 복종하고, 서로를 도와주며 다스려진다는 얘기입니다. 우쌤은 스스로 그렇게 되어가는 과정(自化)이 36장의 미명(微明)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정(自定)에서 정(定)은 정(靜)과 의미가 같습니다. 정(靜)은 자신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 차분하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욕작(欲作)은 “욕망이 일어나다”는 뜻입니다. 우쌤은 여기서 글쓴이의 고뇌를 느끼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글쓴이는 수련 도중에 갑자기 신선으로 화(化)하고픈 욕망이 들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욕망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에 소박함(樸)으로 그 욕망을 눌렀다는 것입니다.

강신주 같은 경우에는 노자의 철학을 제국의 정치술로 해석했습니다. 그 예로, 36장의 미명(微明)을 백성들을 우민화 시키면서도 통치자의 뜻대로 다스리는 기술로 해석했습니다. 분명 노자는 정치철학으로 읽힐 여지가 많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통치자만을 위한 철학 같지는 않습니다. 29장, 30장, 36장에서 천하는 신기(神器)이기 때문에 뜻때로 할 수 없다는 것이나, 이기(利器)를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표현을 보면, 천하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성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모습은 어떻게 하면 지배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모습보다는 천하만물 앞에서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몇 주가 늘어난 만큼 노자가 보여주는 성인의 모습에서 어떤 정치를 그릴 수 있을지 계속 생각 해야겠습니다. (어쩐지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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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16 17:13
    저..7월1일은 신청할때부터 참석 못한다구 말씀 드렸고..7월8일은! 美반장이 2주 쉬는 기간이라는 정보를 줘서 가족 모임이 있어요 ㅠ.ㅠ
    힝...두번 연속 빠지게되다니 아쉬움과 (벌써)궁금함이 엄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