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글쓰기

7월 24일 후기

작성자
潤枝
작성일
2017-07-25 08:20
조회
2752
드디어 저 두꺼운 녹색 경전 디가니까야를 마쳤습니다! 장장 10주간에 걸쳐 말이죠. 이렇게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과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1경 ‘하느님의 그물의 경’부터 34경 ‘십진의 경’까지, 2500년 전 아난존자가 1차 결집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며칠 아니 아마도 몇 주에 걸쳐 암송했을 그 긴 경들을 일단 저희가 일독을 했습니다.....만, 책거리의 기쁨보다는 에세이에 대한 부담이 더 큰 것은 저뿐만이 아니겠죠. ^^;

이번 수업에 저희는 각자 쓰고자 하는 에세이의 주제에 관해 발표를 하고, 8정도와 31~34경의 내용들을 간단히 짚고 넘어갔는데요. 먼저 채운 샘께서 저희가 준비한 에세이의 개요를 보시고는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해서 진심어린 훈계(!)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마음에 새긴 부분을 정리해 봅니다.

- 에세이의 문제의식은 내 삶의 비근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내가 공부한 경전을 의지처로 삼아 돌파해야 한다. 내 생각들을 헤집어가며 글을 쓰고 문제점을 돌파해 갈 때는 반드시 신체성이 따르고 그것이 글에 나타난다. 개념을 그냥 머릿속으로만 정리하려고 하면 관념적이 되고 허세와 오만이 가득한 글이 된다.

- 자신의 경험과 고민에서 나온 문제점을 가지고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통해 그 문제점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가족이라는 문제점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족과 더 잘 살아보겠다는 결론으로 끝내버리면 그것은 가족이라는 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성찰이 전혀 바뀌지 않은 것. 내 문제의식이 발생한 지점을 다른 차원에서 성찰해보는 글쓰기를 하라.

- 글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쓰지 말고 자신의 생각 하나를 깨는 방식으로 쓰라. 그러한 글에서는 그 사람이 개념을 돌파해가는 힘이 느껴지고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의 기존 사유나 전제가 깨지는 것이 보인다. 내가 문제를 바라보는 지점이 와장창 깨지지 않으면 그 글은 모두 가짜다.

- 진솔한 이야기를 쓰라. 내가 쓴 글로 어떻게 나의 삶과 만날까를 생각하고 거기에서 출발하라.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진솔하게 끄집어낸 문제의식, 개념을 자기의 온 몸과 마음으로 돌파를 해야 한다. 최소한 자기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어야 개념이든 뭐든 가치가 있다.

제가 써간 에세이 개요가 정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채운 샘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신체성을 동반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 안의 하나의 매듭이 풀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할 수 있을지! 다들 이번 주에 진지하게 고민하며 에세이를 몸과 마음으로 돌파해 보아요. 공부하는 과정, 글쓰기의 과정자체가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

글쓰기에 대한 설명에 이어 8정도와 31~34경의 내용들을 간단히 짚고 넘어갔는데요, 마지막 경인 33경과 34경은 부처님 가르침을 사리뿟다 존자가 암송하기 쉽도록 숫자별로 모아서 교과서적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 개로 이루어진 원리, 두 개, 세 개.... 열 개로 이루어진 원리까지 가르침을 이렇게 숫자의 묶음별로  정리를 해 놓은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는 수업 중 채운 샘께서 짚어주신 내용들 중에서 ‘합송의 경’에 나오는, 가르침을 해탈로 이야기한 부분이 크게 다가왔는데요, 그 부분만 간단히 정리하고 후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보통 해탈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것, 멀리 다른 곳에서 구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붓다는 가르침과 배움에서도 5가지나 되는 해탈의 세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진리를 배우는 데서 오는 즐거움, 자신이 터득한 배움을 다른 이에게 가르치는 행복, 가르침을 배운대로 상세하게 외우는 기쁨, 배움을 사유하고 숙고하고 성찰하는 행복 그리고 배움을 지혜로 꿰뚫는 희열 이 모두가 해탈이라는 것입니다. 채운샘의 말씀대로, 그렇다면 대체 저희는 그동안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배움도 가르침도 해탈의 길이 된다는 붓다의 가르침이 큰 울림으로 남습니다.

수행의 결실이 어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수행과 공부에 있듯이, 공부와 배움의 과정에서 깨달음을 구해갈 수 있다니 지금의 공부가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배운 것을 마음으로 사유하고 정신으로 성찰한다는 것 그리고 지혜로 꿰뚫는다는 것은 에세이 쓰기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해탈의 수준에 결코 이르지 못하더라도 ^^; 저희가 이러한 가르침을 받았으니 일단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이번 에세이 쓰기를 해볼까요? ^^
전체 1

  • 2017-07-25 10:26
    에세이 시즌을 맞아 해탈하자, 고 생각하자마자 머릿속에 웃긴 그림이 그려지는 걸 보면, 역시나 아직도 제 무의식 속에서 해탈은 뭔가 일상 바깥에서 맞이하는 신비로운 일인가봅니다. 개념에 대한 이해 하나 바꾸는 게 이다지도 요원하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