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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전 역사의 탄생 3강 <국어>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8-04 19:05
조회
137
이번 시간에는 저번 시간에 우쌤이 ‘수다학’이라고 얘기하셨던 <좌전>의 나머지 기록을 정리한 <국어>를 봤습니다. 정설에 따르면, <춘추>는 맹자에 의해 공자가 지은 것으로 언급됐고 사마천에 의해 확정됐습니다. <국어>는 사마천이 언급하고 유향에 의해 확정됐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옛날 서백(西伯) 문왕(文王)은 유리(囿里)에 갇혀 《주역(周易)》을 연역(演繹)했고, 공자는 진(陳)과 채(蔡) 사이에서 위험을 당하여 《춘추(春秋)》를 지었으며, 굴원(屈原)은 추방되어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명(左丘明)은 실명하여 《국어(國語)》가 있었으며, 손자(孫子)는 다리를 잘리고 병법을 논했으며, 여불위(呂不韋)는 촉(蜀)땅으로 옮겨져 세상에 《여람(呂覽)》을 전했으며, 한비(韓非)는 진(秦)에 갇혀 〈세난(說難)〉․〈고분(孤憤)〉을 지었고, 《시(詩)》3백 편은 대개 성현들이 울분을 나타내어 지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결(鬱結)한 바가 있어 자신의 뜻을 소통할 수 없었으므로 지난 일을 저술하여 후세 사람을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긁어왔습니다. ^^;;)

옛 성현들이 그 절실한 마음을 기록함으로써 후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듯이, 사마천도 자신이 궁형을 당한 마음을 글로써 남긴 것이죠. 이를 발분저서(發憤著書)라고 한다고 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궁이후공(窮而後工), 궁한 이후에야 공교로워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튼 사마천의 논의를 따라 <좌전>과 <국어>의 편찬자를 좌구명이라고 했습니다. 우쌤도 편찬자가 누구인지, 그게 가능한지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는 것이 고전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하셨지만 이번에는 퍼즐을 맞추셨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쩌면 좌구명은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사와 좌사 중에서 좌사를 통틀어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춘추시대에 주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각자 좌사와 우사를 두고 기록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우쌤은 <춘추>와 <좌전>이 다른 책이었듯이, <좌전>과 <국어>도 아예 별도로 문헌화된 다른 책이라고 하셨습니다. <좌전>은 노나라의 유가가 정리한 텍스트이고, <국어>는 진나라의 종횡가들이 정리한 텍스트라는 것이죠. 보통 텍스트는 어떤 한 사람에 의해 단일한 생각으로 정리된 것으로 생각했는데, 고전, 특히 중국고전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들은 마구 깨집니다.

<국어>는 제 환공이나 진 문공과 같은 패자의 성공담과 초 성왕, 부차와 같은 군주들의 실패담을 기록한 역사입니다. <춘추>와 <좌전>에서 권력이 천자에서 제후로 넘어가고, 제후에서 대부로 넘어가는 관계를 그렸다면, <국어> 역시 이런 권력의 이동관계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국어>에서 주인공은 천자의 나라였던 주(周)나라가 아닙니다. <서경>에서 찬란하게 얘기됐던 주(周)나라와는 달리 분량도 거의 없습니다. <국어>의 하이라이트는 진(晉)나라, 진 헌공과 그의 애첩 여희, 세 아들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과거시험에 자주 나왔던 신생의 자결과 19년 동안 망명하고 귀국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진 문공 모두 여기서 나옵니다.

우선 신생부터 다뤄보자면, 신생은 태자시절부터 매우 비범한 능력을 지녔고 세력도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 헌공의 애첩인 여희는 신생보다는 자신이 직접 낳은 혜제가 왕위에 오르기를 바랐기 때문에 온갖 모의로 신생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여희를 도와준 인물이 우시라는 인물인데, 여희와 사통하는 관계였다고 합니다. 정치판에 뛰어든 여자들은 늙은 남편을 대신해서 자신을 도와줄 인물들을 모색하고 그와 사통함으로써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게 래퍼토리라고 합니다. 우시의 도움으로 여희는 약 10년을 공 들여서 진 헌공의 자식 세 명을 쫓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얘기 나온 것은 없었지만 장공이 동생 공숙단을 부담스러워했던 것처럼, 아마 진 헌공도 출중한 자신의 아들 신생을 부담스러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희의 모략을 빌미 삼아서 아들을 죽였던 것이죠. 여기서 과거시험에 자주 나왔던 것이 ‘왜 신생은 자결했을까?’입니다. 신생도 바보는 아니라서 여희가 자신을 모의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세력도 꽤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한판 붙어볼만도 했는데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그냥 자살했다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죠. 신생이 한 말은, ‘여희를 죽이면 아버지가 미소를 잃고, 아버지의 흠을 드러내는 것도 효가 아니다.’(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아요.^^;;) “아버지가 죽으라고 해서 죽을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 효(孝)인지를 물어보는 질문 같은데, 제 짱구에서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은 죽으라고 해서 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ㅋㅋㅋㅋ

다음은 춘추오패 중 두 번째 패자인 진 문공입니다. 진 문공은 진 헌공의 차남으로 나라에서 쫓겨나고 무려 19년이나 유랑생활을 했습니다. 유랑생활을 하면서 이 나라 저 나라에 들렸는데, 큰 나라, 비범한 인물들은 진 문공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융숭한 대접을 해준 반면에 작은 나라, 보잘 것 없는 군주들은 홀대했다고 합니다. 찾아보니까 나중에 다 값을 치르더군요. 중이의 갈비뼈를 훔쳐봤던 조 공공은 나중에 포로로 끌려가고, 융숭하게 대접했던 초 성왕과의 전투에서는 예전에 약속했던 대로 90리를 물러납니다. 진 문공이 19년의 유랑생활이 있었으면서도 다시 돌아와서 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 패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이것도 자주 과거시험에 나왔다고 합니다. 과거의 것이라고 해서 고리타분하다는 제 고정관념이 확확 깨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과거시험에 나왔던 문제들은 요즘도 충분히 먹히는 화두들인 것 같습니다.
전체 4

  • 2017-08-04 20:30
    일단 죽으라고 해서 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규창이스럽다. 우샘의 역사강좌는 일단 들으셔야 합니다. 느무느무 알차고 재미있습니다. 이번 시즌을 놓치신 분들, 다음 역사 시즌2는 놓치지 마세요! 10월에 개강할 시즌2는 더 엄청난 텍스트와 우샘의 강의가 준비되어 있답니다!^^

  • 2017-08-05 21:20
    우샘 수업도 굉장히 재미진데, 너의 정리도 너의 목소리만큼이나 읽는 재미가 쏠쏠하구나ㅎ 누군가가 중국 역사가 글쓰기 공부에 큰 도음이 됐다는 얘길 한걸 들은적 있는데, 너한테도 그럴거 같다. 수업 듣다보니, 예전에 읽을 때는 잡히지 않았던 인간들의 내면이나 시대의 분위기 같은게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은 환각이 일곤 해서리, 언젠가 내 생에 다시 한번은 꼭 읽고 죽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더구나.^^ 유익한 수업과 알찬 후기에 늘 감사의 마음~~~!!!

  • 2017-08-05 22:26
    ㅋㅋㅋㅋ규창이와 달리 바로 죽어버린 태자 신생과 그 죽음을 계획한 우시의 통찰을 탄식하며 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ㅋㅋㅋㅋ

  • 2017-08-08 21:46
    규창이의 후기만 읽어도 재밌구나..글구 부럽고나~ 아! 사기가 새록새록 생각나고 듣고싶구나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