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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과 노자 하상공주 1장 ~ 9장 후기

작성자
박규창
작성일
2017-08-12 13:06
조회
134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_ _)

 

왕필주에 이어서 하상공주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현존하는 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고, 양생의 관점에서 쓰여서 왕필본과 완전 다른 부분도 많습니다. 슬슬 왕필이 뭘 말하려는지 100분의 1정도 알 것 같은데, 하상공으로 넘어갔네요. 하하..... 하상공은 또 헤매면서 읽어야겠죠? ^^;;

 

體道

 

道可道非常道 ; 名可名非常名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故常無欲以觀其妙常有欲以觀其徼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玄之又玄眾妙之門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정치에 쓰기 때문에] 상도가 아니고, 명이라 할 수 있는 명은 [부귀영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상명이 아니다. ()는 천지의 시작이고, 천지는 만물의 어머니이다. 따라서 항상 무욕한 사람은 도()의 핵심을 보고, 항상 유욕한 사람은 세속 사람들이 돌아가는 바를 본다. 무욕과 유욕 둘 다 같은 하늘에서 나왔지만 이름은 다르다. 모두 하늘로부터 나왔는데, 하늘 가운데 또 하늘이 있으니, 미묘함의 문이다.

 

1장의 제목은 체도(體道)입니다. 우쌤은 이를 ‘도(道)를 몸으로 체험하다’라고 해석해주셨습니다.

1장의 도(道)와 명(名)에 대한 해석부터 왕필의 해석과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2번 째 나오는 도(道)는 경술정교(經術政敎)의 도(道)인데, 우쌤은 현실에 적용하는 기술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상공이 말하는 상도(常道)는 자신의 신(神)을 기르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神)은 앞으로 중심이 될 개념으로 자신의 생명력입니다.

2번 째 나오는 명(名)은 명예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상공이 말하는 상명(常名)은 미분화의 상태로, 갓난아기가 말하지 못하고 계란이 부화되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합니다. 명(名)은 왕필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무명(無名)은 도(道)인데, 주석을 보면 “기(氣)를 토해서(吐) 화(化)를 베푼다(布).”고 해서 기(氣)에 대한 사유가 나옵니다.

유명(有名)은 천지인데, 주석을 보면 “천지는 기운을 뿜어서 만물을 생한다.”라고 합니다.

무욕(無欲)과 유욕(有欲)에 대한 사유도 왕필과 다릅니다. 왕필은 “무욕(無欲)으로서”라고 풀이했다면, 하상공은 “무욕(無欲)하다면”, “무욕(無欲)한 사람은” 이렇게 풉니다.

묘(妙)는 도(道)의 핵심입니다. 주석에서는 핵심을 또한 일(一)로 봤습니다. 도(道)도 일(一)이고, 도(道)의 핵심과 본체도 일(一)이 되네요. 뭔 소릴까요?

요(徼)는 ‘돌아가다’는 뜻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욕망이 있는 사람은 세속 사람들이 돌아가는 곳을 살핀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쌤은 추이(推移)를 살피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아마 부귀영화를 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인 것 같습니다.

우쌤은 만약 다른 거 다 잊어도 기억해야 될 것 하나 있다면 현(玄)을 천(天)으로 본다는 것만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왕필에서 현(玄)이 뭔지 한참 골머리를 싸맸는데, 여기선 다행히 한 큐에 정리해주네요. ^^

하늘 가운데 또 하늘이 있다는 것은 무욕(無欲)과 유욕(有欲) 모두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지만 각자가 받은 기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이런 사실을 알면 자신의 정욕(情欲)을 제거해서 타고난 생명을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2. 養身

 

天下皆知美之為美斯惡已皆知善之為善斯不善已故有無相生難易相成長短相形高下相傾音聲相和前後相隨是以聖人處無為之事行不言之教萬物作焉而不辭生而不有為而不恃功成而弗居夫唯弗居是以不去

 

천하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장점을 장점으로 여기지만, 그것은 악일뿐이고, 자신의 선함을 선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다투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서로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고, 길고 짧음은 서로를 형성하며, 높고 낮음은 서로를 기울며, ()과 성()은 서로 조화하며,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무위(無爲)의 일에 처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니, 만물을 만들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키우면서도 소유하지 않고, 베풀면서도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공이 이루어져도 머무르지 않는다. 오직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항상 복이 떠나지 않는다.

 

2장의 제목은 양신(養身)입니다. 우쌤은 여기서 신(身)은 1장에서 나온 신(神)이라고 하셨습니다.

미(美)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아름다움, 장점입니다. 주석에 현창(顯彰)이란 말이 나오는데, 스스로를 밝게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러면 위태로움(危)과 죽게(亡)된 다고 합니다. 자랑질 한 번 했다가 골로 가겠네요. 하하;;

선(善)은 공명심입니다. 우쌤은 사람들이 서로의 공명심을 드러내고 추구하면 다툼이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무상생(有無相生)부터 전후상수(前後相隨)까지는 왕필처럼 비슷한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有)와 무(無)는 앞에서 품부 받은 기에 따라 사람들이 다르게 형성되듯, 누군가는 유욕(有欲)하고 누군가는 무욕(無欲)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구는 이걸 성인과 백성의 관계로 본다고 합니다. 성인이 유(有)하면 백성은 무(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뒤에 구절까지 이렇게 하면 해석이 새롭게 될 것 같습니다.

우쌤은 고하상경(高下相傾)에서 기울 경(傾)에 주목하셨습니다. 이 글자가 어떤 판본에서는 찰 영(盈)으로 돼있기도 하고, 드러날 령(逞)으로 돼있다고 합니다.

왕필에서 생이불유(生而不有)를 도(道)의 작용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했었다면, 하상공은 이것을 원기(元氣)라고 하면서 기(氣)의 관점으로 해석했습니다.

 

3. 安民

 

不尙賢, 使民不爭 ;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 不見可欲, 使心不亂. 是以聖人之治 : 虛其心, 實其腹 ;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세속의 현자를 높이지 말아서 백성을 다투게 하지 말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서 백성을 도둑으로 만들지 말고, 욕망을 드러내지 말아서 마음을 어지럽히지 마라.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며,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강하게 한다. 항상 백성을 순박하고 순수하게 해서 안다고 하는 사람이 가볍게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무위를 행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3장의 제목은 안민(安民)입니다. 백성을 편하게 한다는 뜻인데, 1장부터 3장까지 봤을 때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로 제목을 짓지 않습니다. 우쌤은 아마도 본문의 주제를 따로 이야기가 되게끔 제목을 지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1장에서는 도(道)를 몸으로 체험하고, 2장에서는 자신의 오장신을 기르고, 3장에서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죠.

불상현(不尙賢)에 대해서는 하상공과 왕필이 비슷한데, 하상공이 좀 더 재밌게 해석했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봉록을 주지 말고 관직을 주지 않음으로써 높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ㅋㅋㅋ 불현가욕(不見可欲)도 재밌습니다. 정나라 음악과 아첨하는 자를 멀리하라고 하는데, 여기서 정나라는 50살이 되어도 남자들을 후리고 나라를 멸망시킨 하희의 나라입니다. 우쌤은 하희 같이 색기 넘치는 여자를 정녀(鄭女)라고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정나라 음악을 멀리하라는 것은 색기 넘치는 여자를 멀리하라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虛其心, 實其腹 ; 弱其志, 强其骨) 이 구절에서 왕필과 하상공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왕필은 이것을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정치술로 해석했다면, 하상공은 성인이 해야 할 수련(?), 덕목으로 해석했습니다. 우쌤은 하상공에서 정치는 성인이 자신의 몸을 다스리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구절에서 그런 사유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4. 無源

 

道沖而用之, 或不盈 ;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 湛兮似若存. 吾不知其誰之子, 象帝之先.

 

()는 드러나지 않지만 쓰임이 있으니, 항상 자만하지 않는다. 아득하고 알 수 없구나, 만물의 본원인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꺾고, 맺힌 원한을 풀고, 자신의 밝음을 누그러뜨리고, 무지몽매한 대중과 하나가 되어라. 푹 편안하게 잠겨있는 것 같구나, 오래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천지에 앞서는 것 같다.

 

우쌤은 4장의 제목을 좀 고민하셨는데, 본문에 오부지기수지자(吾不知其誰之子)를 참고해서 “근원을 알 수 없다.”로 해석해주셨습니다.

왕필은 충(沖)을 비어있는 것 같지만 꽉 찬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상공은 충(沖)을 명예(名譽)를 숨기면서도 쓰임이 있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영(盈)은 보통 ‘채우다’의 뜻인데, 여기서는 ‘자만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연(淵)은 연못입니다. 연못이 깊어서 그 속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도(道) 역시 분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왕필에서도 분별할 수 없는 도(道)의 성질을 현(玄)이나 황홀(恍惚), 연못 등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하상공도 연못만큼은 왕필과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비슷한 걸 찾으니 왠지 기분이 좋네요.

예(銳)는 ‘날카롭다’는 뜻으로, 남들보다 앞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분(紛)은 ‘맺힌 원한’이란 뜻으로, 이걸 무위(無爲)로 풀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중에 원한을 풀어도 반드시 남는다는 구절과 어떻게 연결해서 풀까요?)

광(光)은 이 세상의 이치를 아는 탁월함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더라도 함부로 드러내서 사람들을 어지럽히게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화(和)는 이러한 빛을 누그러뜨림으로써 조화를 이루라는 뜻입니다.

진(塵)은 무지몽매한 대중을 말합니다.

 

5. 虛用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천지는 자연을 따름으로써 만물을 풀로 만든 인형으로 여기고, [천지를 본받은] 성인은 자연을 따름으로써 백성을 풀로 만든 인형으로 여긴다. 천지 사이는 마치 피리와도 같구나! 비어있지만 고갈되지 않고, 움직이면 더욱 소리가 크게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환란이 닥치니, 내면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5장의 제목은 “허(虛)를 쓰다.”입니다. 우쌤이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ㅠㅠ 번역본을 일단 가져오겠습니다. “이 제목은 이 장의 전반부보다는 후반부와 관련이 있다. 즉 후반부에서, 천지 사이는 텅 비어 있지만 오히려 그 텅 빔으로 인해 만물이 저절로 생성되는 쓰임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또한 그런 천지를 본받아 말을 적게 하고 내면을 비워야 한다고 말한다.”

왕필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천지나 성인이 불인(不仁)하다는 것은 자연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추구(芻狗)는 제사에 쓰는 ‘풀 땅 강아지’로 푸는 것도 있고, 아니면 ‘천지는 짐승을 위해 풀을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짐승이 풀을 먹고, 사람을 위해 짐승을 기르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짐승을 먹는다.’로 푸는 것도 있습니다.

탁약(槖籥)은 ‘가운데가 비어있는 관’으로 ‘피리’를 뜻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가운데가 비어있으니 성기(聲氣)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굴(屈)은 ‘고갈되다’입니다.

동이유출(動而愈出)은 ‘움직이면 더 성기(聲氣)가 나온다.’는 뜻으로 소리가 크게 나오는 것입니다.

수중(守中)은 정(精)과 신(神)을 기르고, 기(氣)를 아끼고 말을 적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애(愛)는 ‘사랑하다’보다는 ‘아끼다’의 뜻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6. 成象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之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오장신을 기르면 명대로 살고, 이를 일러 현()과 빈()이라고 한다. ()과 빈()은 천지의 근원이다. [호흡을] 끊어질 듯 가늘게 유지하고, 기를 쓰더라도 힘쓰지 않는다.

 

6장의 제목은 “상을 이루다”입니다. 우쌤은 이것도 고민하시다가 아마 호흡에 집중하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도가에서 호흡 수련을 할 때 신체를 이미지화하여 거기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때 이미지를 이루는 것을 표현한 것이 이 장의 제목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왕필은 곡(谷)을 계곡으로 풀었지만, 하상공은 이것을 ‘기르다’로 풀었습니다.

신(神)은 오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 폐, 심장, 비장, 신장을 뜻한다고 합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현(玄)은 하늘로 사람에게는 코에 해당되고, 빈(牝)은 땅으로 사람에게는 입에 해당됩니다. 우쌤은 여기서 도사들이 벽곡(辟穀)이 가능한 이유는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호흡을 통해 대기의 기를 섭취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호흡으로 얻는 에너지와 입으로 얻는 에너지가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신(神)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죠. 장자에서도 이런 비슷한 얘기가 나왔는데 믿기 어려워서 그냥 비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진짜였네요.

현(玄)과 빈(牝)이 기가 드나드는 장소이기 때문에, 본문의 천지지근(天地之根)도 원기가 소통하는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韜光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하늘은 넓고 땅은 오래간다. 하늘과 땅이 넓고 오래갈 수 있는 까닭은 자기만 이기적으로 살겠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오래 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자신을 뒤로 하지만 천하가 그를 공경하여 관장(官長)으로 삼고, 자신을 돌보지 않지만 오히려 몸이 보존된다.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의 장구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7장의 제목은 도광(韜光)입니다. 여기서 도(韜)는 ‘감추다’는 뜻으로 육도삼략의 도(韜)라고 합니다.

자생(自生)은 자기만 이기적으로 더 살겠다고 하는 것으로, 우쌤은 다르게 표현하면 익생(益生)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성인이 자신의 몸을 뒤로 해도 관장(官長)이 되어 앞세워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관장(官長)은 28장의 성인이 쓰는 제도라기보다는 그냥 우두머리인 것 같습니다.

외(外)는 자신을 박하게 대하고 남을 후하게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8. 易性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무르니, 물은 거의 도()에 가깝다. 낮은 곳으로 잘 흐르고, 연못처럼 차분하게 마음 쓰며, 인자하게 남김없이 나눠주고, 잘 다스리도록 정치하며, 상대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시기에 맞게 움직이다. 오직 다투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원망을 듣지 않는다.

 

8장의 제목은 “성(性)을 물처럼 편안하게 다스리다.”입니다. 여기서 이(易)는 다스릴 치(治)의 뜻으로 해석됐습니다.

거선지(居善地)부터 동선시(動善時)까지는 물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선(善)은 ‘잘하다’, ‘능하다’라는 의미에서 능(能)과 통용됩니다.

지(地)는 낮은 곳입니다.

연(淵)은 앞에서도 나왔지만 연못처럼 차분한 것을 말합니다.

여(與)는 ‘남김없이 나눠주다’입니다.

정(正)은 정치할 정(政)의 의미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물은 안으로 형체를 비춘다고 합니다.

사선능(事善能)은 물이 모양에 맞게 움직이듯 상대, 상황에 따라 유능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동선시(動善時)는 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주석에서는 부쟁(不爭)을 “막으면 멈추고, 트면 흐르니 남을 잘 따른다.”라고 했습니다.

 

9. 運夷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成名遂, 身退, 天之道.

 

가지고 채우는 것을 그치는 것만 못하다. [쇠를] 두들기고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금과 옥이 마당에 가득하면 그것을 지킬 수 없다. ()하고 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재앙을 끼친다. 공이 완성되고 명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야 하니, 이것이 하늘의 도()이다.

 

9장의 제목은 “세상의 이치(道)는 움직여서 평안해지는 것이다.”입니다. 운(運)은 ‘운행하다’의 뜻이고, 이(夷)는 평안할 평(平)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우쌤은 주역의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구절과 비슷하다고 하셨습니다.

揣 이 글자는 ‘재다’, ‘측정하다’, ‘미루어 생각하다’의 의미로 보면 “췌”로 읽지만, 여기서는 ‘두드리다’, ‘때리다’의 의미로 봐서 “추”로 읽었습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욕망은 신(神)을 상하게 하고, 많은 재산은 몸에 누(累)가 된다.”고 합니다.

교(驕)는 ‘교만하다’, ‘무례하다’의 뜻입니다.

구(咎)는 ‘허물’, ‘재앙’이란 뜻입니다. 주석을 참고하면, “부유하면 마땅히 가난을 구휼해야 하고, 귀하면 마땅히 천함을 불쌍히 여겨야 하지만, 오히려 교만하고 방자하면 반드시 화와 걱정거리를 입는다.”고 합니다.

하상공은 하늘의 도(道)를 해와 달의 움직임에 비유했습니다. 해가 하늘 한 가운데 이르면 기울기 시작하고 달이 차면 이지러지는 것처럼, 사람도 일이 이루어지면 명예와 칭송이 따라오지만 그때 물러나지 않으면 해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神)이라는 새로운 글자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글자를 어떻게 봐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한테 익숙한 건 신체와 정신의 이분법인데, 동양에서는 정(精), 기(氣), 신(神)으로 나눠서 얘기합니다. 신(神)은 오장(五臟)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신체(身)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우쌤은 신(神)을 신체의 기운이라고 풀어주셨는데, 이 글자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또 81장을 헤매면서 알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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