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내어 읽는 니체

소니 09.04 공지

작성자
건화
작성일
2017-09-01 16:37
조회
87
지난 시간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우선 방랑자의 그림자는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나왔으나, 만족할 만한 답이 제시되진 못했죠. ‘2장을 끝까지 읽어봐야 안다’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자유의지’와 ‘의지의 자유’가 같은 것이냐는 질문도 있었는데, 같은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지요. 또 범죄와 처벌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쳐주신 경아샘의 발제문을 중심으로 여러 질문들과 논의들도 전개되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과의 작별을 앞둔 지금에야 이 책과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첫 에세이를 2주 앞두고 있기 때문인지, 저는 문체와 글쓰기에 대한 구절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수늬샘과 선화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언급해주시기도 했죠. 131절에서 니체는 문체의 개선이 곧 사상을 향상시키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글’과 그 글이 담고 있는 ‘내용’을 분리시켜 생각했었는데요, 니체는 이러한 생각을 뒤집어버립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용’이란 그것이 표현되어 있는 문자의 조합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니 문체를 달리한다는 것은 사상을 변이시키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언젠가 채운샘이 ‘문장을 훔치다’ 코너에 알튀세르를 인용하셨는데, 인용된 알튀세르의 구절에 따르면 철학은 ‘뉘앙스의 투쟁’입니다. 알튀세르는 철학에서 “단어들은 또한 무기이고 폭탄이며 진통제이고 독약”이라고 말합니다. 싸우고 있는 것은 이념도, 주체도 아닌 “몇 가지 단어들”이라는 것이죠. 니체는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니체는 계속해서 자유, 도덕, 진리, 건강 등등의 단어에 다른 뉘앙스를 부여하고 있죠. 공부란 결국 익숙해져버린 단어들의 뉘앙스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갖는 일이 아닐까요.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러한 뉘앙스를 비틀어내는 일?

저는 어째서인지 니체하면 ‘화려한’, ‘현란한’ 같은 수식어가 떠오릅니다. 형식을 해체하고 상징을 폭파시키고 관습적인 표현을 전복해버리는…. 그런데 생각해보면 니체의 글에 사람을 잡아끄는 강렬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풍부한 어휘나 세련되고 독특한 단어들로부터 오는 것은 아닙니다. 127절에서 니체는 “언어에서 개혁을 하거나 옛것을 좋아하는 것, 희귀한 언어와 외래어를 선호하는 것, 단어의 수를 제한하는 대신 오히려 풍부하게 늘리려는 것은 미숙하거나 부패한 취향의 징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 예술가들의 ‘고결한 빈약함’을 찬탄하죠. 그들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도 더 적은 수의 단어를 더 잘 소유하기를 원했다는 것이죠. 글이 안 써지는 것은 단어나 어휘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소화하지 못한 언어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론 중에도 이 구절을 함께 읽으며 글을 쓰는데 있어서 정직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겼습니다. 다들 에세이 화이팅입니다^^;

다음 주에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를 161절부터 끝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발제는 제가 맡았고 간식은 성희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다음주에 뵐게요~

*다음시간 역시 분량이 많은 관계로 30분 앞당겨 2시에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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