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Cahier de pomme de terre 감자의 프랑스 일기

작성자
감자
작성일
2017-10-24 08:00
조회
290
파리에 온 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네요. 비행기 탈 때까지도 규문 친구들에게 배웅과 함께 어서 감자의 일기를 올리라는 독촉을 받았었는데 이제야 제 소식을 전합니다. 여태까지 한국을 한 달 이상 떠나본 적이 없어서일까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낯선 나라에서 1년 남짓을 보내리란 게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베트남 호치민을 경유하는 여정이었기에 첫 비행기에서는 오히려 동남아 여행을 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그러나 역시 장거리 비행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첫 비행기 출발이 30분 넘게 지연되면서 두 번째 비행기로 환승할 때는 공항 직원분과 함께 달리기를 했어요. 기차나 지하철을 제외하고는 모든 교통수단에서 멀미를 하는 몹쓸 달팽이관(?!) 덕분에 비행기를 갈아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미가 시작되어 버렸고 이륙하기까지 파리에 가는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그래도 제가 머물 기숙사가 공항철도 노선에 있는 덕분에 쉽게 기숙사에 찾아올 수 있었어요.

제가 머물고 있는 기숙사는 까샹Cachan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데요. 파리 안에서 집을 구해보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월세를 보고 파리 인근 지역으로 방을 구하게 되었어요. 왠지 프랑스 젊은이들은 20대가 되면 독립해서 혼자 살거나 애인과 동거를 할 줄 알았는데, 이곳 친구들도 비싼 집값 때문에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까샹은 파리의 남서쪽에 있는 한적한 도시에요.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안양쯤 될까요? 작은 정원이 딸린 전원주택들과 학생 기숙사가 많고 북부보다 안전해서 대학생들과 동양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해요. 기숙사 주변엔 작은 정원이 딸린 아기자기한 전원주택과 학생 기숙사들이 많아요. 도심에서 벗어난 주거지역이다 보니 파리보다 여유롭고 고즈넉한 인상을 주는 곳이에요. 파리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말대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노트르담 대성당, 오르세 미술관, 에펠탑, 바스티유 광장 등이 연이어 나타나지만, 어딜 가나 오줌 지린내가 나고, 가방을 검사하는 경찰들, 구걸하는 이민자와 노숙자들을 마주하게 되고, 센느강은 한강만큼 더러워요. 그리고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일까요. 흐린 날이면 특히나 파리 시내는 우울한 잿빛 도시가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파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오스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마을에 머물게 되어 다행인 것 같기도 해요.


이곳은 제가 살고 있는 기숙사에요! 교환학생을 같이 온 학교 언니와 함께 살고 있어요. 월세는 너무 비싸지만 유제품이나 채소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싸서 요거트를 거의 맨날 먹고 있습니다 하하. 그리고 알아볼수록 프랑스는 여러 방면에서 학생들에게 주는 혜택이 무척 많은 것 같아요. 정부가 학생들에게 교통비, 주거비를 많이 지원해주고 있고, 은행에서는 학교와 연계를 맺어서 자율 적립식 예금을 든 학생들에게 매달 소정의 돈을 지급해주기도 하고요. 음식점들도 학생카드가 있으면 좀 더 저렴한 값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서 만 25세가 되기 전에 프랑스에 온 것은 참 잘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류를 작성하고 사무실을 방문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지만요… 행정처리에 쓰는 시간 소모를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프랑스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해보기도 하였으나, 늘 돌아오는 대답은 “이것이 프랑스의 삶이야”였어요. 자기들도 늘 행정처리 때문에 사무실과 우체국을 전전하고, 줄을 서느라 애를 먹는다고요. 이것이 프랑스의 삶이었다니! 처음으로 한국의 공인인증서가 만능 치트키처럼 느껴집니다  ;;



여기는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자주 가는 몽수히(Montsouris)공원이에요. '미소짓는 산'이라는 뜻의 이름인데, 이름만큼 공원도 예뻐요. 집 가까이에 작은 산책로와 공원이 많아서 산책을 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소르본 누벨 대학은 문학과 시네마로 유명한 학교에요.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 대부분이 불문학과 수업을 듣거나 시네마 수업을 듣는 데, 저는 커뮤니케이션학과의 기호학 수업과, cultural mediation(한국말로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과의 예술이론, 사회학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아직 귀가 트이지 않아서 매번 녹취를 푸느라 애를 먹고 있긴 하지만 기호학은 특히 이곳에 와서 처음 접해보는 분야라서 흥미롭게 듣고 있어요. 소쉬르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요즘은 롤랑 바르트의 « 신화론 »을 읽으며 기호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어려운 용어나 개념이 많아서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으면서 수업을 이해하고 있어요. 예술이론 수업은 총 3학기에 걸쳐서 진행되는 수업이라고 하는데, 저는 중간의 2번째 수업에 끼어들어 간 거라 르네상스 시기 예술부터 배우고 있어요. 수업은 ‘풍경’를 주제로 풍경화와 정원을 주로 다루면서 그림 후면의 장식적 요소였던 풍경이 어떻게 점차 ‘풍경화’라는 하나의 장르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화가나 건축가들이 현실지형pays을 어떻게 풍경paysage으로 구성해냈는지, 그 풍경은 또 어떤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는지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같이 조 활동을 했던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 브뤼겔(Bruegel)의 « 이카루스의 추락 »에 대해 발표를 했어요.



소르본 누벨은 생각보다 작은 학교였어요. 학생식당과 운동장이 없고, 도서관은 매우 작고, 보이는 건물이 다입니다 하하.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어서 수업이 끝나면 늘 학교 건물 앞엔 학생들이 여럿 몰려있습니다.

주 중엔 주로 학교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 가요. 목요일엔 예술이론 수업을 함께 듣는 일본 친구와 파리의 미술관들을 둘러보고 있고요. 주말엔 이곳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거나 짧은 근교 여행을 다니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친해진 독일과 일본 친구들이에요. 왼쪽 친구가 예술이론 수업을 함께 들으며, 목요일마다 함께 미술관에 가는 동무랍니다. 독일 친구들은 연극과 시네마를 공부하고 있어요. 이번 주말에 떡강정을 만들어 봤는데, 독일 친구가 맛있다면서 감자칩까지 떡강정 소스에 찍어 먹어서 다음번에는 더 맛있는 요리를 해주기로 했어요.

다음주는 일주일 내내 바캉스 기간이라 (이곳은 바캉스가 너무 자주 있어요ㅎㅎ) 프랑스 남부에 있는 엑상 프로방스와 아를, 마르세유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에요. 곧 여행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전체 6

  • 2017-10-24 10:15
    반가운 감자의 소식이구만^^ 마을, 기숙사, 공원은 뭐 저리 이쁜고. 고생담과 재미있는 사진들앞으로 많이많이 올려줘 ㅎㅎ

  • 2017-10-24 12:01
    역시 파리. 어딜 가든 오줌 지린내 허허. 어떤 친구랑 만나고 재밌게 노는지도 궁금하구만 자주자주 올려주시길~

  • 2017-10-24 13:10
    프루스트님의 동네를 걸어줘! 걸어줘! 잘 돌아다니면서 실컷 '체험' 하렴!

  • 2017-10-24 14:16
    헉 경찰들이 가방검사를 해? 그리고 프랑스 애들도 부모한테 얹혀 살아? 환상 깨지는구만 ㅋㅋ. 바캉스 소식 기대하겠슴니다

  • 2017-10-24 18:50
    드디어 올라왔구나! 디테일한 이야기 재밌고 공원 사진 넘 예쁘다 ㅋㅋㅋ감자는 이제 여행의 연속인가요~

  • 2017-10-27 19:55
    킁킁 감자 잘 살고 있구낭. 넘나 가보고싶다. 눈요기 사진 자주 올려줘 데헷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