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 알렉상드르 졸리앵

아테네의 가난뱅이들이 소원을 담아 기원한 일은 정말 중요한 요구사항이다. 그건 역경에 빠졌을 때 선 채로 버티는 법을 배우는 것, 동료들과 관계를 확립하는 방법을 찾는 것, 일상의 의미 없는 순간들을 사는 것이다. 그 훈련은 두고두고 위험을 내포한다. (…) 아직은 아이를 만들려면 인간 두 사람이면 충분한 것 같다. 허튼소리! 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궁금한 마음이 들게 하고 깊은 영향을 주고 그래서 곧 사람을 변모시키는 만남들이 있다.  마음을 사로잡고 운명의 방향을 바꾸는 인격들도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자신이 남들에게 빚진 것을 모두 기록한다. 목록은 길다. 그 목록에 실제에 부합하고 한 가지도 빠뜨린 게 없으려면, 도서관 하나를 다 동원해도 겨우 될까말까 할 것이다. 로마 황제의 붓끝에서, 사람은 타인의 존재가 있어야만 스스로를 구축해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짐작한다. 삶이 저절로 흘러가기를 멈출 때, 그 무엇도 확실해 보이지 않을 때, 이 위험하고 복잡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기술을 연마하기.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몰이해에 잠겨 익사할 지경인 사람이나, 자신의 취약성이라는 갈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은 남을 관찰하는 것을 의지(依支)로 삼을 수 있다. 수많은 일상의 정복, 그 허영 앞에서 의지(意志)가 산산이 부서져내릴 때, 전우를 한번 바라보는 것이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되어준다. 이처럼 타인을 같은 팀의 팀원으로 여기면 그는 준거가 된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따라야 할 모델이 아니라 어떤 장점을 갖춘 존재가 된다. 이때부터는 만난다는 것이 개성을 빚어낼 도구를 만드는 기회가 된다. -<인간이라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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