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 마루야마 겐지

내적인 고독만으로는 아무래도 유치함이 벗겨지지 않는다. 그런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태어나서 미안해’ 식이다. 자립하지 못한 것을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꼴사나운 비틀림에 지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어른의 감상에 대응할 수 있는 작품을 낳기 위해서는 외적인 고독, 이를테면 절대로 항거할 수 없는 엄동 같은 계절과 공간에 심신을 노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그네라는 편한 입장이 아니라 그 땅에 발을 디딘 주민처럼 말이다. 문학팬이라는 사람들이  도대체 문학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원하는 것이 결코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황홀한 꿈이나 연애, 그것의 그림 같은 해피엔딩이라면, 그런 꽃들은 어차피 조화일 뿐 진정으로 감동을 주는 살아 있는 꽃은 절대 아니다. (…) 가혹한 현실은 여전히 만인의 주변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어떤 허구를 들이대도 그것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일시적인 속임수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달아나고 달아나 피해 보려 해도 외상값은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할 때가 온다. 그때는 더는 싸울 마음을 한 방울도 짜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처지에 이른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파멸의 미 또는 유종의 미라고 해석하는 것은 자기 마음이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인간적인 말로와는 아주 멀다. 동식물에게 끊임없는 시련과 정면충돌은 필수조건이며, 그것이야말로 삶의 증거일 수밖에 없다. 시련과 정면충돌을 빼고 진정한 행복감에 직결되는 생명의 빛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인간임에랴.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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