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예술톡톡 4강, 믿음을 의심하라, 성장을 거부하라 - 로베르트 무질,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작성자
전연미
작성일
2016-11-02 09:21
조회
415
수경샘은 수업시간 초반부에 로베르트 무질이 몸담았던, 19세기의 유럽을 이해하기 위해서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라발스>라는 곡을 몇 분 정도 들려주었습니다. 누구나가 들어도 4분의 3박자 왈츠곡인데 악기들의 어긋나는 소리들, 속도에서의 불협화음 등 이전에 듣던 왈츠곡과는 다른 느낌...

라벨 자신이 알았든 몰랐든, 그의 음악적 우회는 현대의 문화적 위기에 대한 은유이며 세기말의 오스트리아 지식인들이 보고 느낀 것가 대체로 동일한 방식으로 그 문화의 위기를 제시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세계는 어떻게 해서 혼란에 빠졌는가? 개인들이 각자의 프시케 속에 뭔가 사회적 전체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어떤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러한 전체가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어떤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인가? 이런 물음들이 인류에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세기말 빈의 지식인들에게는 그것이 중심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해체되는 사회 내에서 개인이라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사로잡히게 되고, 오스트리아가 새로운 인간관에 뭔가 기여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러한 몰입 덕분이었다고 합니다.(강의안)

역사학자 칼 쇼르스케는 <세기말 빈>이라는 책에서 얘기 했듯이, 프로이트, 클림트, 쇤베르크, 비트겐쉬타인 ... 이 걸출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이 빈이라는 도시에서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 세기말 비엔나의 문화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은 신비주의와 환상, 그리로 나르시시즘이다. 그에 따르면 세기말은 세계의 끝이 아니라 실은 더 넓은 세계가 발견된 시기인 셈이라고 합니다.(강의안)

이러한 배경 속에 오스트리아 태생인 로베르트 무질이 있습니다. 1906년 그의 첫 번째 작품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자서전적인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는 공학도로서 공식과 법칙이 있는 합리성의 세계와 그 세계의 이면에 있는 합리성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세계에 대해 고민합니다. 언어와 사유로는 설명될 수 없는 세계를 과학적으로 고찰하고 그려내는 것이 글쓰기라고 그는 생각한 것입니다.

이 소설은 감수성이 예민한 퇴를레스라는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부모 품을 떠나 기숙학교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가 원해서 들어간 학교이지만, 낯설은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매일 밤 편지를 쓰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쓰면서 내면에서 자기만의 어떤 것, 놀라운 어떤 것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을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훨씬 더 복잡한 것, 그 뒤에 가려져 있던 공허감이라는 감정, 채울 수 없는 내면의 어떤 것들을 감지하게 됩니다.

내면의 공허감으로 인해서 새로운 어떤 것을 찾으려고 방황하던 시기에 영주의 아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비교적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시민 계급 집안 출신인 퇴를레스에겐 종교적이고 감성적인 왕자와의 사귐은 미묘한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종교적인 문제로 다투는 과정에서, 그는 무분별한 이성적인 논리로 왕자를 비난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고, 왕자는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왕자와의 사귐은 때늦은 후회와 그리움의 형태로 남아있게 됩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서 그의 내면에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새로 사귄 친구들은 왕자의 성품과는 다른 학년에서 가장 질이 나쁜 학생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그는 자신에게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도 하지만 뭔가를 찾기에는 너무나 미숙한 나이입니다. 그는 도서관에 가서 많은 책을 통독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내면에 영향을 줄 것을 찾지는 못합니다. 그는 마음 둘 곳을 못찾아서 학교생활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에서의 답답함과 그 나이 때에 생기는 육체적 욕망이라는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매춘부 보제나와의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는 방종한 아이는 아니었고, 일시적인 도피처라고 할까요, 도피의 노정에서 우연히 만난 길동무 정도의 관계였다고 할까요, 인간은 원래가 우연적인 만남 속에서 관계를 맺으니까요.

그리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바지니의 절도사건입니다. 씀씀이가 크고 허영심이 강한 바지니는 친구에게서 꾼 돈을 갚기 위해서 바이네베르크의 돈을 훔칩니다. 이를 우연히 알게 된 라이팅은 학교에 알리지 않고 바이네베르크와 공모하여 바지니를 괴롭히기로 결정합니다. 퇴를레스는 학교에 알려야 한하고 했지만 친구들의 권유로 마지못해 동의합니다. 그들의 비밀 공간인 다락방에서의 가학적인 행위들...바지니는 도대체 왜 그런 학대와 굴욕을 참아내는지, 단지 자신의 잘못이 다 밝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지..그는 바지니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궁금함과 자신도 또한 바지니에게 어쩔 수 없이 끌리는 관능적인 감정...그가 돈을 훔치던 순간과 친구들에게 굴욕을 당할 때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고 싶었으나...바지니는 그런 질문조차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퇴를레스의 충고로 바지니는 학교 당국에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게 됩니다.  그러나 역시 교활한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는 바지니를 철저하게 괴롭힘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로 만들고 자기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남게 됩니다. 여기서 퇴를레스는 더욱 혼란스러워집니다. 현실의 벽은 자기가 경험한 것과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은 느끼고 학교를 자퇴합니다.

낯설은 기숙사 생활에서 부모에게 편지를 썼던 퇴를레스 그리고 많은 사건, 시간들, 인물들과의 만남, 그는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의 삶"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에게 성장이란 일련의 연속적인 사건 속에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현재 안에서 이질적인 순간과의 만나는 지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일상의 시선이 아닌, 낯설음의 시선으로 감지할 수 있는, 실재의 현실이지만 그 이면의 다른 모습들, 언어로 포착될 수 없는 세계입니다. 모리스 라벨은 <라발스>라는 곡을 통해서 악기들의 어긋나는 끼어듬, 불협화음등을 들려주면서 하나의 왈츠곡을 연주합니다. 반면에 로베르트 무질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의 삶'을 글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그 지점에서 계속해서 미끄러집니다.  그는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서 이면에 있는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1

  • 2016-11-02 18:41
    저는 제사로 사용된 메테를링크의 말을 연관지어 읽으면서 작품이 더 흥미있게 읽혔었어요. 연미쌤 비롯 선생님들, 4주동안 수고하셨어요. 다음에 기회 되면 또 작품 함께 읽어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