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후기

겨울특강 마르셀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 : 제 1강 <스완네집 쪽으로>

작성자
감자
작성일
2017-01-18 22:47
조회
538

지난 강의는 프루스트의 삶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권 <스완네 집 쪽으로>에 대해 들었습니다.


19세기 말 - 20세기 초를 살았던 프루스트는 의사 아버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상류사회의 자제들이 모이는 파리 콩도르세중학으로 진학한 그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애독자였다고 합니다. 후일 그가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아라비안 나이트>가 끝을 모르는 이야기인 것처럼 끝이 안 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한편 프루스트는 10년이 넘도록 법정공방을 벌였고, 큰 이슈가 되었던 ‘드레퓌스 사건’을 목도했었는데요. 별다른 증거가 없었지만 유대인이라는 점 때문에 드레퓌스라는 유대장교가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종신유형의 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가 진범이 아닌 증거가 있었음에도 군부가 사건을 은폐하려 하면서 드레퓌스 사건은 오래도록 법정공방을 벌였습니다. 프루스트는 그 긴 기간 동안 인권을 외치던 이들과 반유대주의를 외치던 이들의 신념이 끝까지 유지되기보다, 반유대주의를 외치던 이가 유대인과 결혼하기도 하고, 이편에 서있던 사람이 저쪽에 서있기도 한 많은 변화들을 목격했는데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도 우리는 부르주아에서 대귀족으로, 서민으로 변신을 거듭하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샤를리스’는 가장 많은 변신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또 소심한 음악가가 도덕의 심급을 뚫는 소나타를 만들고, 낮밤 없이 살롱을 드나들던 아첨꾼이 위대한 예술작품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스물 넷 이래로 연달아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했던 프루스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모작과 생트뵈브(최초의 직업 비평가)의 비평관에 대한 반박에 열중했습니다. 먼저 모작은 프루스트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오랜 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면서 고통의 돌파구로 찾아낸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발자크와 플로베르, 앙리 드 레니에 등의 작품을 연구하고 나서 당시 이슈가 되었던 사건을 발자크 풍으로, 플로베르 풍으로, 앙리 드 레니에, 샤토브리앙 풍으로 써보았습니다. 그들이라면 이 사건의 어떤 점에 주목하고, 인물과 배경은 어떻게 묘사할지. 그에게 모작은 작가의 문체를 이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작가가 세계를 보는 방식, 그리고 그 작가의 시선으로 구성한 세계를 체험하는 일이었습니다.


가끔 어떤 작품을 해석하다보면 작가의 개인적인 내력을 가지고 작품을 통으로 해석해버리는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프루스트가 반박하려했던 생트 뵈브 비평관의 핵심은 작가와 작품의 완전한 일치였는데요. 생트 뵈브는 작가 개인의 내력과 정보를 따지며 작품에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내력이나 정보는 단지 소설의 많은 모티프들 중 하나일 뿐이기에,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생트 뵈브의 비평관에 동의할 수 없었던 프루스트는 당시 생트 뵈브 식의 비평관이 칭송하던 사실주의 문학의 기법들 - 고정된 시점, 기승전결의 구조, 주인공이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내용 - 도 따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생트 뵈브 비평관을 반박하는 기승전결의 논리적인 비평문을 써내려갈 수 없었던 그는 시대의 전형도, 인물의 전형도 없고, 기승전결의 형식도 거부하는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더불어 계속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다시 해석해볼 수 있고,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계속 깨달아 나가는 소설을 쓰고자 했습니다.


프루스트가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집필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고정된 시점과 기승전결의 구조가 없으며, 뜬금없는 회상과 예상치 못한 대화, 꿈으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다가도 ‘대체 줄거리는 뭐야? 주인공은 누구야?’ 하는 의문이 생기곤 하는데, 결국 주인공도, 줄거리도 정확히 정해놓고 쓴 소설이 아니므로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찾아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선생님은 책을 꼭 순서대로 읽을 것을 당부하셨어요. 프루스트가 시간을 탐험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처럼 독자가 그의 시간을 체험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혹시나 너무 어려워서 걸리는 부분들이 있다면, 내가 어디에서 걸렸는지 잘 기억해두고 책을 찬찬히 읽어가다 보면 “아!” 하는 때가 온다고 합니다ㅎㅎ.


그런데 고정적인 시점과 기승전결 구조를 거부한 작품도 물리적인 끝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끝이 나지 않는 소설”을 쓰려했던 프루스트는 ‘원구조’를 고안해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원모양으로 맞물리면서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과거가 되는 원구조에서 화자는 소리와 맛 등 여러 감각들을 통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접속합니다. 그는 과거시제가 아닌 현재시제로 과거를 회상하며, 회상하는 화자가 자기 생의 여러 시점을 넘나들도록 했지만 특정 시점을 알 수 있는 지표(화자의 나이, 시간, 역사적 사건 등)는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시점을 알 수 없는 회상들이 펼쳐지고, 반복되고, 변주되는 그의 작법은 마치 고딕성당의 축조와 닮았습니다.


결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온갖 거짓과 위선을 통과한 화자가 작가가 될 것을 결심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쓰기 시작할 것을 예고하며 끝이 납니다. 여태까지 과거를 회상했는데 다시 과거를 회상하겠다니?! 정말 ‘끝나지 않는 소설’의 끝을 이렇게 맺을 수 있겠구나 싶어 놀라웠습니다. 선생님은 이 마지막 권을 읽으며 여태 고생한 데에 대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고 하셨는데요. 우리도 긴 시간탐험 끝에 선물 하나 받을 수 있도록 파이팅입니다!


이번 주 간식은 혜원언니 연미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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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19 18:27
    정말 인고의 시간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야!" 하는 순간일거 같은ㅋㅋㅋㅋ저도 그 순간을 맛보고 싶네요 ~ 내일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