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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동사서독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9-03 16:27
조회
140
170909 동사서독 공지

1. 장자의 시대

서양철학의 근간에는 척박한 자연환경이 있었습니다. 유럽인들은 말 그대로 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넜고 자연에 대한 정복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그 안에서도 먹고사는 데 모자람이 없었던지라 외부로 진출하려는 욕망이 약했지요. 나가더라도 불경을 찾아 실크로드를 건너는 구법승들, 천자의 은혜를 베풀며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장건의 원정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뿐이었습니다. 이렇듯 공간성이 철학에 주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죠.
공간이란 단지 그 도시가 있는 지형의 문제는 아닙니다. 가령 관계성. 정치의 지형이 바뀌면 그곳의 철학도 바뀝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만 하더라도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폴리스 체제를 유지하는 것 즉 정치철학이었습니다. 하지만 폴리스가 깨진 이후 헬레니즘 시대가 되자 개체적인 삶과 죽음의 문제가 중요하게 떠올랐던 것입니다.

중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춘추시대에도 물론 전쟁이 많았습니다만 기껏해야 “군대가 주둔한 곳은 가시덤불만 자라고 전쟁이 휩쓸고 간 뒤에는 흉년이 덮쳐” 오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이것도 대단하지만 전국시대의 “피가 강을 이뤄 절굿공이가 떠다니는” “토지에 인육을 먹이는” 모습에 비하면 경미한 수준이죠. 춘추시대만 하더라도 예(禮)가 전쟁의 국면까지 지배했었다면 전국시대는 다릅니다. 천자와 제후, 제후와 대부 사이의 위계질서가 어지러워지자 중국대륙은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전국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의 철학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를 결의하는 국가철학 혹은 현실철학. 두 번째는 현실로부터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적자생존만이 최선인 양 혈안이 되어 있는 분위기를 비판하는 비판철학. 노장은 당연히 후자에 속합니다. 노장이 나타난 시대를 알면 일종의 반전 텍스트, 혹은 평화주의 텍스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소요유]나 [양생주] 혹은 <도덕경>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취해 그 시대를 간과해서는 알 수 없는 노장의 일면이죠.

전국시대에 나타난 질서의 혼란은 단지 구(舊) 귀족 세력과 신흥 지주간의 다툼만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전국시대에는 중국 전역에 걸쳐 변법운동이 시행되었고, 그로 인해 법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전국시대는 기존에 관습법에 의존하던 중국인들의 법에 대한 마인드를 바꿔놓는 계기였기도 합니다. 변법운동의 목적은 당연히 부국강병. 이 흐름은 위(魏)나라 문후 때를 시작으로 (B.C. 445) 초나라, 진(秦)나라, 한나라, 제나라, 연나라, 조나라 등 전국시대의 나라들을 예외 없이 덮쳤습니다. 오기, 신불해, 추기, 악의 등 걸출한 인물들이 돌아다니며 부국강병을 위한 변법을 주장하던 ‘지식인들의 전성시대’가 바로 요 시기!
이 당시에는 옛 전통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전에는 묻지 않던 걸 묻기 시작했던 시기였으니까요. ‘무엇이 전통이고 무엇이 예란 말입니까? 전통이라고 하는 것도 살펴보면 서로 다른데요?’ 이런 질문은 전국시대가 다양한 관습법들 중 한 가지를 확정해 제도의 통일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 되던 시기였던 것을 보여줍니다.

2. 장자와 무(無) 개념

장자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천명사상과는 다른, 기계적 자연관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그레이엄의 표현에 따르자면 ‘하늘 따로 인간 따로’의 사유를 보여줍니다. 다른 윤리성의 근거는 다른 윤리적 문제와 판단을 낳습니다. 노장은 세상을 작용의 차원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존재론적 차원이라고 할 만한 사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노자에 따르면 세상은 풀무 같은 것이고 인간은 추구(芻狗) 같은 것이죠. 그러다보니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 생각해야 인간이 거기에 맞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양 철학은 존재론을 문제 삼습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부터 출발하지요.
자연을 작용적 차원에서 보았던 노장은 무위(無爲)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 무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우리는 계속해서 고민합니다. 왜냐하면 무(無)는 무엇인가가 없어진 상태인 것 같거든요. 하지만 노장이 보는 무위란 도(道)의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도는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러면서 뭔가를 하겠다는 의도는 없지요. 이 의도가 없음이 무위(無爲)입니다. 인간이 할 일은 이 의도 없는 변화를 나와 일치시킬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의도가 없는 도의 흐름에 자기를 맞추는 것이 목적이니 결국 궁극은 자신 또한 무위(無爲)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여전히 헷갈리네요. ^^;;)
반면 유위(有爲)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끊임없는 변화에 맞춰 자신을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어떤 ‘상’을 위해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상의 흐름에 쓸려가 버리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결과는 허무함뿐.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나만 고정된 상을 가지고 그것에 봉사하면 그 간극에서 소외가 발생합니다. 결국 허무할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무위는 특별한 수행자들을 위한 궁극의 경지가 아닌,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요?

-다음 시간에는 <장자> [천하]/[우언] 읽습니다.
[천하]는 정리를 잘 해오시고 (퀴즈 있음!) [우언]은 왕보의 책 <장자를 읽다>에서 우언/치언에 대한 이야기를 한 챕터와 함께 읽어옵니다.  (왕보의 책은 부분적으로 스캔해서 곧 올릴게요~)
-첫번째 발제는 혜원
-암송 있습니다! 한문이나 번역문을 선택해서 외워 옵니다.
-퀴즈를 일정 이상 틀리거나 암송을 못하거나 지각하거나 과제를 안 해올 시, 아시다시피 벌금 있습니다^^
-후기는 이응 언니
-간식은 혜원, 이응 언니

첫 시간에는 조를 나누었지요. (은남쌤 없는) 은남조/(태욱쌤 없는) 태욱조!

은남조: 태욱쌤, 강석쌤, 혜원, 규창, 쿤우쌤, 이응
태욱조: 은남쌤, 건화, 완수쌤, 정옥쌤, 지현쌤

각자 조 확인하세요~

다음 시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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