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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 동사서독 공지

작성자
혜원
작성일
2017-09-10 13:56
조회
144
170916 동사서독 공지

1. <장자>의 언어
<장자>는 중국의 제자백가 가운데 유일하게 언어와 글쓰기에 대해 고민한 텍스트일 것입니다. 물론 자기 글과 말하기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학파는 없었겠지만 <장자>는 그 고민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텍스트로 남깁니다. 그것이 [우언(寓言)]편입니다. <장자>에서는 장자의 글쓰기를 우언(寓言), 중언(重言), 치언(巵言)으로 나누어 정리합니다.
첫째 우언(寓言)은 사물에 가탁해서 서술하는 방식입니다. 에둘러 말하기이지요. 장자의 이러한 글쓰기는 의미를 분산시켜서 말의 뜻을 한가지로 확정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문인들은 학문을 처음하는 초심자들(?)에게 <장자>를 읽지 못하게 했지요. 말이 너무 멋진데 또 자의적으로 해석하기도 쉬운 텍스트가 바로 <장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유를 감당할만한 사람이 아니면 함부로 펴볼 수 없는 마법의 책! 그래서 주자 왈, ‘뜻이 또렷한 <대학>부터 읽어야 한다!’ 학문의 순서를 강조한 주자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장자는 이런 에둘러 말하기를 왜 한 것인가? 장자는 그것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이 우언을 하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말할수록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우리의 시비판단이란 아주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즉각적인 반응입니다. 장자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한 것이 장자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말하는 것에 대해 동일시하며 그 이상 언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는 당대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는 것이죠.
둘째는 중언(重言)입니다. 무거운 말. 자신이 하는 말에 힘을 실어주는 인용구를 일컫습니다. 우리는 모두 홀로 자신의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죠. 처음에는 먼저 길을 간 선현들을 따라가다가 그 다음에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장자는 아무 인용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연로한 자의 지혜로운 말을 빌려오지요. 이때 연로한 이는 그냥 나이만 든 사람이 아닙니다. 말에 경위(經緯) 즉 조리가 있고 또 본말(本末) 즉 순서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나이가 들어 조리에 맞는 말이 아니라 그저 자기 욕심만 드러내는 말만 하는 사람은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진부한 사람(陳人), 즉 꼰대랍니다^^
세 번째는 치언(巵言)입니다. 치언에 대해서는 <장자> 안에서도 딱 뭐라고 정의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매우 중요하다는 식으로 설명을 길게 달아놓았지만 어떤 말이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죠. 치(巵)는 술잔을 뜻하니 아마 술을 마시다가 나오는 계산 없는(혹은 계산이 덜된?) 말에 가까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니 여전히 애매한 해석이지요. 그럼 도대체 무엇일까... 채운쌤은 장자의 치언에 해당되는 것은 비슷한 시대 소피스트들의 역설, 패러독스에 가까울 것이라고 하셨죠. 앞뒤가 모순되는 말. 무의식적 언사들. 국어시간에 배우는 모순형용(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말들도 치언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들의 공통점은? 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의심하게 합니다. 장자는 치언을 이용해서 가치에 대해 갖고 있는 일원적 세계를 비틀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말은 유동적이며 세상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도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달리 세상은 액체처럼 늘 변하고 있고 우리의 생각과 말은 그것을 고정하려는 고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치언은 우리의 논리구조를 넘쳐흐르는 말들, 코드화 이전의 말이거나 탈코드화 된 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오늘 이 언어를 가지고 이응언니와 규창이 사이의 언쟁(!)이 있었는데요. 이응언니는 장자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위해 언어를 사용한 반면 규창이는 장자가 언어의 차원을 초월하는 다른 경지를 추구했다고 봤던 것이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둘 다 맞았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되 장자는 그 일상적 언어용법을 깨려고 했지요.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을 가지고 다가가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장자가 쓰는 말을 통해 우리가 쓰는 말의 문제를 밝히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은 상식 안에서 시비를 따지는 반면 장자는 자연 즉 무궁한 변화를 근거로 가져옵니다. 자연과 언어는 기본적으로 (확정하고 유동한다는 점에서) 대립적인데 장자는 그 차원도 넘어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자연에 속하는 것은 인간의 시비분별에 구속되지 않지만, 인간은 또 그것을 언어를 통해 이야기 하는 수밖에 없지요. 그것을 위해 장자는 우언, 종언, 치언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자연의 변화, 그 불가지적 세계를 가시화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말입니다.

2. <장자>의 맥락
장자와 유가는 서로 대립되는 것 같다가도 매우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장자가 유가를 싫어한다고 말하기엔 너무 유가적인 뉘앙스가 많이 보이고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은근히 많이 소환되지요. 그래서 장자를 공자의 제자 안회 라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답니다. [천하]편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장자>를 하나의 사상으로 통합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유가와 대립하는 것 같으면서도 유가의 경전을 道의 시작으로 보는 구절도 있고, 도가(道家) 계열인 것 같으면서도 그것들의 파와 갖는 거리감이 저마다 다르고, 혜시와 절친인 것 같으면서도 [천하]편에서는 혜시가 세상없이 까이지요. 도대체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이번에 읽으면서 참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장자>를 생각과 말로 고체화 하고 싶은 사람의 고민일 것이고. 이처럼 많은 학파와의 다양한 거리감은 장자의 외연이 넓음을 보여주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장자>에서는 정말 순수한 ‘장자적인 것’을 잡을 수가 없지요. 장자는 변화무쌍하니까요. 다른 것들과의 접속력이 높고 확산력도 높은 것이 장자입니다.
하지만 ‘장자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역시 無爲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위가 무엇인지, 이것에 도전했다가 나가떨어진 도전자가 숱하지요. 장자는 정확히 말하면 유위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유위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집착, 행복추구, 의미형성, 축적, 기대... 이런 것들을 하지 않는 게 무위겠지요. 채운쌤은 차라리 유위가 무엇인지 생각날 때마다 적어보는 것이 무위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십니다.

-다음 시간에는 프린트로 나눠준 자료 세 개. [전병, 신도의 학술사상 연구], [장자와 유교의 관계], <중국 사상사> 읽어옵니다.
-<장자>는 외편의 [각의], [선성], 내편의 [양생주] 읽어옵니다.
-읽을 것을 바탕으로 한 가지 주제를 잘 뽑아서 공통과제 써 오시고요.
-퀴즈는 주로 내편에서 냅니다.
-암송! 잊지 마시고!
-벌금과 복사비 안 내신 분들 다음시간까지 준비해 주세요~

-간식은 건화, 지현쌤
-후기는 규창

다음 시간에 만나요/
전체 1

  • 2017-09-11 11:07
    공지보고 한 주 공부 결심을 하게되는 한심한 학인으로서, 발빠른 공지에 정말 감사~~^^.
    곰곰 생각해 보니, '천하' 편이 그토록 잘 안읽혔을 뿐더러 재미조차 없었던게,
    내 안에 고착화된 장자의 상을 확인하려고 드는 방식으로 텍스트를 읽으려다 보니 그랬던 거 같아.
    그거 한 학기 읽은 게 참 무섭네~~!!! 너의 말마따나 순수한 '장자적인 것'이 있다는 생각에서 놓여나려고 노력해야겠어, 이번 학기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