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n

2017 01 02 인도철학과 불교 후기

작성자
택원
작성일
2017-01-05 04:37
조회
406

  엘리아데의 책을 짧게 나눠 읽었습니다. 신화를 해석하는 방법이 재미있었는데요, 우리는 지속적이고 불가역적인 일상적인 시간 안에서 살아갑니다. 신화는 우리를 일상적인 시간에서 나오게 만듭니다. 제의를 하고 신화를 낭송하는 행위를 통해 무시간적 시간, 신성한 시간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는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해주는 기능을 합니다. 무지란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 우리가 가진 것, 생각하는 것, 처한 상황들이 실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조건과 상황들은 변하고 소멸하기 마련입니다. 신들조차 그 안에서 파괴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하는 일은 마야(현상세계)의 속박을 벗어나는 것. 곧 신성한 시간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곧 궁극적 실재 즉 브라흐만과 합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파니샤드, 스승의 앞에 앉아서 이야기되는 이 경전은 그 자체로 그런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채운쌤께서 우파니샤드를 읽을 때 다섯 가지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브라흐만, 아뜨만. 삼사라(윤회), 카르마(업), 모크샤(해탈)가 그것입니다. 브라흐만은 우주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들은 브라흐만의 일부로써 작동하고 있고 이렇게 개체 안에 있는 브라흐만을 아뜨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브라흐만을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상세계(마야)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마야 속에서 브라흐만과 합일된 전체성이 아닌 각각의 개체성을 경험합니다. 여기서 윤회가 일어납니다. 서로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 채 행동하면 그것은 업이 되고 지은 업에 따라 끊임없는 윤회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그저 브라흐만으로 행할 뿐이기 때문에 같은 행위를 해도 업을 짓지 않으며 따라서 윤회도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우파니샤드의 글들이 거의 이 안에서 이야기되는 것 같은데 왜 읽을 때 마다 새로운 이야기 같은지......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인도철학과 불교이기 때문에 당연히 힌두교와 불교를 비교하는 이야기가 자주 오갑니다. 힌두는 브라흐만이라는 근원이 있습니다. 브라흐만과의 합일이라는 최고의 경지가 있고 모두가 그 최고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지요. 그렇기에 힌두교는 필연적으로 수행이 필요합니다. 요가와 고행으로 감각적인 것들을 자제하고 기존의 감각들을 재배치함으로써 영성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고(苦)행이라는 것도 사실은 일상적인 것들보다 더 큰 쾌락일 뿐이라고 보고 그마저도 상일뿐이라고 말합니다. 불교는 어떤 근원적인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질 뿐입니다. 대략 이렇게 듣고 생각했는데 제가 불교나 힌두교나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제대로 말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파니샤드를 읽으면서 순간 뭉클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브라흐만을 아는 순간 개체성이 해체되면서 모든 것에서 그를 보고 그와 합일이 되는 경지.  깨달은 사람은 어떤 것에도 마음을 두지 않고 그저 개체로서, 또 브라흐만의 일부로서 해야 할 의무를 묵묵히 하겠지요. 또 그 사람의 행위가 곧 윤리가 될 것이고 도덕이 될 것입니다. 정확히 잡히는 모습은 아니지만 그저 상상만으로 뭔가 감동이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모두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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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5 15:54
    너의 뭉클함을 앞으로도 우리들에게 나누어주어~ ^^ / 그날 간식은 정말 최고였... 무아와 고행 개념을 배우면서 이렇게서 식을 탐하다니... ^^;;